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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폐업까지 내몰렸던 반스앤드노블은 어떻게 부활했나

By 에즈라 클라인 (뉴욕타임스 칼럼)

NYT
*에즈라 클라인은 미국 저널리스트, 정치 분석가,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이자 'Ezra Klein Show' 팟캐스트 진행자이다.

내 고향 마을에 반스앤드노블(Barnes & Noble) 서점이 처음 문을 열던 때를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 그전에 우리 동네에서 책을 사거나 볼 수 있는 곳이라고는 비좁은 동네 책방 한 곳과 아름답기는 해도 소장한 책은 많지 않던 도서관이 전부였다. 반스앤드노블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미지의 세상과 새로운 아이디어, 다양한 삶의 안내서와 같은 책이 그렇게 많이 진열된 공간은 그 자체로 한없이 설레는 곳이었다. 나는 아직도 훌륭한 서점에 갈 때마다 무한한 세상으로 발을 내디딜 때의 설렘을 느낀다.

짐작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나는 늘 책 속에 파묻혀 있는 좀 엉뚱한 아이였다. 아버지는 일주일에 서너 번씩 밤마다 나를 데리고 반스앤드노블에 가셨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감사한 일이다. 나는 판타지 서가에 진을 치고는 스타워즈나 던전 앤 드래곤 관련 시리즈를 닥치는 대로 읽고 또 읽었다. "퍼언의 용기사(Dragonriders of Pern)" 시리즈가 몇 권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즈음 서점 영업시간이 곧 끝난다는 안내방송이 나오면, 어린 나는 풀이 죽은 채로 아쉬운 발걸음을 억지로 뗐다.

나이가 들면서 책의 종류는 바뀌었지만, 시도 때도 없이 반스앤드노블을 찾는 습관은 그대로 남았다. 나는 한동안은 자동차 잡지에 꽂혀있다가 잘 이해도 못하는 철학책을 여기저기 펼쳐보곤 했고, 따라 할 것도 아니면서 명상 책들을 탐독하기도 했다. 특히 만만찮은 가격 때문에 사서 읽기는 부담스러웠던 만화 소설을 책상에 쌓아놓고 읽는 것을 정말 좋아했다.

내가 반스앤드노블에 끌린 이유는 이렇게나 많다. 서점이지만, 책을 사러 가는 곳이라기보다 반스앤드노블은 그저 책 속에 파묻혀서 있고 싶은 만큼 시간을 보내러 가는 곳이었다. 동네 책방과 달리 반스앤드노블에는 널찍한 공간이 있었다. 마치 "여기 앉아서 책을 읽다 가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일찍 문을 닫는 도서관과 달리 9시, 어떨 때는 10시까지 문을 여는 것도 좋았다. 원 없이 책을 읽을 수 있었으니까. 나는 학교를 싫어했다. 친구들이 여는 파티에 초대받지도 못했다. 내 학창 시절의 재미는 대부분 반스앤드노블이었다.

나이가 더 들고 나서 나는 고향을 떠나 여러 도시에 살았다. 어느 도시든 훌륭한 독립서점들이 있었다. 대학교는 캘리포니아 산타크루즈에서 다녔는데, '산타크루즈 서점'(Bookshop Santa Cruz)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자랑스러운 공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평생 산타크루즈 서점에서 반경 50km 안에 갈 일이 생기면 반드시 서점에 들를 것이다. 워싱턴 D.C.에서 살 때는 '정치학과 산문'(Politics and Prose)이라는 서점에 자주 갔다. 그때쯤부터 반스앤드노블과 내 기준에서는 반스앤드노블을 성의 없이 따라 한 것처럼 보이는 보더스(Borders) 서점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뉴스가 들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책을 찾아 주문하고 보는 일을 점점 더 온라인에서 하기 시작했다. 반스앤드노블 서점은 널찍하고 컸지만, 아마존의 서가는 무한하다. 종이책 대신 전자책을 읽는 사람에게 서점의 위치나 배송 기간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잠이 오지 않는 날에는 자정 무렵에도 원하는 책을 뭐든지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 아직 산 적은 없지만, 그런 날 틱낫한 스님의 글은 분명 마음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서점들은 책 말고 다른 것들을 취급하기 시작했다. 장난감 가게, DVD 대여점이 되었고, 생존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식당이 들어오기도 했다. 보더스 서점은 끝내 파산했고, 반스앤드노블이 문을 닫는 것도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나는 분명 반스앤드노블을 사랑했지만, 온라인 서점의 편리함을 누리던 나 같은 고객들이 반스앤드노블의 쇠락을 앞당기고 있던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나는 샌프란시스코로 이사를 했고, 아빠가 되었고, 코로나19 팬데믹이 왔다. 아마존 웹사이트에서 아이를 위해 동화책이나 어린이 서적을 주문할 때는 아무런 감흥이 없다. 또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도서관들은 한동안 문을 닫았다. 샌프란시스코 시내에는 반스앤드노블이 없다. 대신 차를 타고 남쪽으로 20분, 밀리면 35분 정도를 가면 반스앤드노블이 하나 있다. 나는 나의 어릴 적 경험을 우리 아이들에게 그대로 물려주었다. 매일매일 틈만 나면 우리는 반스앤드노블에 갔다. 그냥 앉아서 시간을 보내든 같이 놀이를 하든 우리는 책이 가득한 공간에 있었다.

알고 보니 나 같은 사람이 꽤 많았던 모양이다. 반스앤드노블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서점 숫자부터 매출, 이윤 등 많은 것들이 계속해서 줄어들던 반스앤드노블은 10년 만에 처음으로 확장 계획을 발표했다. 올해 반스앤드노블은 서점 30곳을 새로 연다. 이 가운데는 아마존이 오프라인 서점을 내려다가 끝내 실패한 곳들도 포함됐다. 반스앤드노블과 같은 대형 체인 서점은 많은 독립서점에 적이나 경쟁자가 아니라 공생할 수 있는 동반자 관계라는 사실이 잇달아 확인되고 있다.

반스앤드노블의 CEO 제임스 던트(James Daunt)는 지난 2020년 출판협회 연구회 기조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마존이 이커머스를 장악한 시대에 (오프라인) 서점은 어떤 가치가 있을까요? 바로 사람들이 즐거움과 설렘을 안고 책을 둘러보며 찾는 곳이 되는 겁니다. 서가를 헤매고 뒤지다 뜻밖에 인생의 책을 집어 드는 경험은 온라인에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죠. 이게 가능하려면, 훌륭한 서점이 여기저기 많이 있어야 합니다."

던트가 출판업계와 서점에 대해 내린 저 간명한 진단은 한편으로 참신하다. 좋은 서점은 번성하고, 나쁜 서점은 망한다는 거다. 이커머스의 시장 점유율이 늘어나고, 책도 전자책으로 읽는 독자가 늘어나면 결국 오프라인 서점은 도태되는 수밖에 없다는 기존의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롭다.

"제가 볼 때 서점들이 아마존에 고객을 빼앗기고 어려움에 처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서점들이 별로 좋은 서점이 아니었던 거예요. 킨들과의 경쟁에서 밀린 이유도 결국 같다고 생각합니다. 훌륭한 서점이 아니었던 거죠."

던트는 영국에서 자기 이름을 딴 던트 서점을 창업했다. 2011년, 그는 몰락하던 서점 체인 워터스톤스(Waterstones)를 인수해 구제해 냈다. 반스앤드노블에서도 그는 목표한 바를 이뤄내며 망하는 건 시간문제라던 서점을 되살려내고 있는 듯하다. 비결은 무엇일까?

던트는 우선 각 지점에 상당한 권한을 주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훌륭한 서점이란 그 서점이 발 딛고 있는 지역사회의 특성과 요구를 반영한 공간이다. 큰 교회 옆에 있는 반스앤드노블과 고등학교 정문 앞에 있는 반스앤드노블이 똑같이 운영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는 출판사들과 맺었던 마케팅 계약을 해지하거나 갱신하지 않았다. 이 마케팅 계약이란 출판사가 반스앤드노블에 돈을 내고 서점의 매대를 사서 원하는 책을 눈에 잘 띄는 데 진열하는 거다. 반스앤드노블로서는 쉽게 돈을 벌 수 있지만, 지점마다 고객의 수요에 맞춰 책을 진열하고 서가를 꾸미기는 어려워진다. 마케팅 계약이 사라지자, 자연히 지점마다 특색이 드러났다.

"세 걸음 앞으로 갔다가 때로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기도 하고 그럽니다. 전진은 제가 지점마다 완전히 자율적으로 서점을 찾는 고객이 원하는 책을 마음껏 진열해 보라고 독려하는 일입니다. 책을 어떻게 진열하든, 가격을 얼마로 책정하든, 분류를 어떻게 하든 본사에서는 전혀 간섭하지 않습니다. 모든 걸 위에서 정한 방침대로 따라야 한다면, 이런 자율적인 전략은 설 자리가 없겠죠."

한때 독립 서점을 소유하고 운영했던 던트는 훌륭한 서점에는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고 믿는다. 그는 서점의 가치를 계량적으로 수치화한 고객 분석에는 회의적이다. 한 번은 내가 던트에게 반스앤드노블은 고객을 인구 통계 특성에 따라 분류하고 맞춤형 전략을 짜는지 물어봤다. 그는 단호히 말했다.

"내 앞에 경영진은 사실 그런 종류의 질문에 답하려고 어마어마한 돈과 품을 들였죠. 저는 사실 전혀 관심이 없어요. 심지어 그 질문에 관해 생각하기도 귀찮을 만큼요. 서점을 누가 찾는지 요란하게 분석하는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서점은 누구나 오는 곳이니까요."

던트는 전자책 이용자가 서점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생각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반스앤드노블도 자체 전자책 서비스 누크(Nook)가 있다. 킨들이 한창 떠오를 때 던트가 경영하던 워터스톤스는 킨들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얼핏 보면 내 발등을 찍을 수 있는 도끼를 파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던트의 생각은 달랐다.

"전자책을 읽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딱 하나. 간편해서 그런 거예요. 반대로 종이책은 엄청난 즐거움을 오롯이 품은 보물창고와 같죠. 멋진 서점에서 좋은 책들을 알아가며, 내가 읽을 책을 고르는 일은 정말 행복합니다. 이게 정말 몸에 배면 절대로 끊기 어려운 습관이 돼요. 전자책도 읽는 습관, 독서하는 습관을 들이는 데 좋고, 더 많은 사람이 책을 읽으면 결국에는 전자책뿐 아니라 종이책도 더 사게 될 거예요."

반스앤드노블이 코로나19 팬데믹 중에 부활했다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잘 나가리라는 보장은 없다. 팬데믹 때 큰 성공을 거둔 서비스, 기업 가운데 벌써 몰락한 곳이 얼마나 많은가. 펠로톤(Peloton)만 봐도 그렇다. 이 비싼 운동기구를 직접 산 고객뿐 아니라 최고점에서 펠로톤 주식에 투자한 사람들은 지금 펠로톤만 생각하면 울상일 거다.

반스앤드노블은 공개기업이 아니므로, 정확한 매출, 이윤 정보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던트는 반스앤드노블의 모든 지표가 매우 고무적이라고 말하며,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이유를 다들 알 거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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