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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예전에는 보기 드문 광경"…대통령을 향한 야유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임기 두 번째 연두교서(年頭敎書/State of the Union Address)를 발표했습니다. '연두교서'라고 하니 뭔가 굉장히 봉건제적 느낌이 물씬 풍기지만 사실 연초에 대통령이 국정 상황 전반을 의회에 설명하고 협조를 구하는 자리입니다. 통상 상하원 합동 연설로 많이 불리는데 상하 양원은 물론 내각과 주지사, 대법관 등 미국의 거의 모든 지도층이 참석하는 행사로 훨씬 폭넓은 의미를 갖습니다.

환호와 냉정 사이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국정연설하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Mr. Speaker,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의장님, 미합중국 대통령께서 입장합니다.)"라는 소개와 함께 바이든 대통령이 하원 본회의장에 들어서자 여야 의원들을 포함한 모든 참석자들이 일제히 일어나 박수로 맞이했습니다. 연설 전까지 공화당 의원들이 기자들을 상대로 바이든 정부에 대한 비판 목소리를 쏟아냈지만 국가원수에 대한 예의에서 일까요? 회의장 안에서 만큼은 달랐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환호는 그가 몇 차례나 '감사합니다'를 연발한 뒤 '제발'이라는 말까지 붙인 뒤에야 잠잠해졌습니다. 하지만 연설이 시작되자 양극화된 미국의 정치상황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일자리 증가, 코로나19 극복 등 국정 성과를 강조할 때면 민주당 의원들과 내각의 관료들은 매번 일어나 박수를 쳤지만 공화당 쪽은 조용했습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 뒤에 나란히 앉은 상하원 의장의 모습은 극명했습니다. 당연직 상원 의장인 해리스 부통령은 '다리 아프겠다' 싶을 정도로 분주히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한 반면, 공화당 소속으로 지난해 중간 선거에서 하원을 장악해 의장직에 오른 매카시 의장은 간간히 박수만 칠 뿐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카메라에 미친 의원석 역시 공화당 쪽 좌석은 잠잠하다 못해 냉랭했습니다.

야유에 직접 설전까지…달라진 미 국정연설장

조 바이든 대통령 연두교서 중 야유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올봄 재선 도전 선언을 앞둔 때문일까요? 1시간 10분가량 이어진 바이든 대통령의 연설 대부분은 미국 국내 문제에 집중됐습니다. 뉴욕타임스도 <Biden Puts the Focus on Issues at Home Despite His Victories Abroad(바이든, 외교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국내 이슈에 집중하다)>라는 기사 제목을 뽑기도 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특히 초당적 협력을 강조하며 공화당에 손을 내밀면서도 양보는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가 하면 야당과 마찰을 빚는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 '거부권 행사'를 불사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등 도발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대통령의 이런 발언에 야당 측 좌석에서는 격앙된 반응이 터져 나왔습니다. 먼저 국가 부채를 거론하며 트럼프 전 대통령 당시 국가 부채가 급증했다고 지적하자 야유가 쏟아졌고 바이든 정부 출범 후 남부 국경 지대가 무력화 됐다는 공화당의 비판이 거센 상황에서 (멕시코 등 국경을 통해 불법 수입되고 있는)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로 청소년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고 언급하자 몇몇 공화당 의원들이 "국경 문제 때문이다(The board! The board)"라거나 "그건 당신 잘못이다(It's your fault!)"라고 직접 외치기도 했습니다.

특히 최근 미 연방정부 부채한도 상향 문제를 놓고 여야 간 정부 지출 삭감이 논란이 되는 상황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던진 발언은 대통령과 야당 의원 간 설전으로까지 번졌습니다. 현재 공화당 내에서는 바이든 정부의 사회복지(Social Security)와 의료복지(Medicare) 정책을 놓고 해당 예산을 삭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이견이 있는 상태입니다. 평소 공화당 노선으로 본다면 삭감 요구가 타당하지만 문제는 민심입니다. 복지 정책 삭감을 반길 리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에 공화당이 연방 정부 부채 한도 상향의 전제 조건으로 지출 축소를 요구하면서도 해당 복지 예산에 대해서는 공개 언급을 피하고 있었는데, 바이든 대통령이 공화당 쪽에서 복지 예산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한 겁니다. (정치적으로 공화당의 아픈 곳을 건드린 셈입니다.) 이에 공화당 쪽에서 "거짓말쟁이"이라는 격한 표현까지 써가며 바이든 대통령의 주장을 반박했고 바이든 대통령은 즉석에서 자신에게 그런 요구를 한 사람이 있다며 증거를 보여줄 수도 있다고 맞받았습니다.

비판하되 협력도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국정연설하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뉴욕타임스는 이런 광경을 '대본 없는 드라마'라며 과거 대통령 국정연설에서 거의 볼 수 없었던 광경이라고 적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험악한 장면은 길게 가지 않았습니다. 공화당 의원들 스스로 오래 끌지 않았고 매카시 하원의장도 의장석에 앉아 '쉬쉬'하며 조용히 해줄 것을 주문했기 때문입니다. 전 국민이 지켜보는 국정연설 자리에서 정치적 문제로 대립하고 심지어 설전까지 벌이면서도 지킬 선은 지킨 셈입니다.

요즘 세계 각국이 정치적 양극화로 분열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트럼프 전 대통령 등장 이후 이 현상이 심화됐습니다. 하지만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에 대한 예우나 국가 안보 문제에는 함께 'USA'를 외치는 등 단합된 목소리를 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정당이 야당이 됐든 대통령 국회 시정연설 때 손팻말을 들고 항의하는 게 일상적인 모습이 됐습니다. 항의할 일이 있으면 항의하는 게 민주주의 제도이니 문제 될 건 없습니다. 다만, 힘을 합칠 부분까지 대립과 반복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게 여당이건 야당이건 어느 쪽이나 마찬가지인 건 두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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