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전 서면 질의에 한해 답변"…"대통령도 이런 식으로 안 해"
정재호 대사와 대사관 측이 '브리핑 원칙 파기' 사례로 든 기사는 대사의 일문일답 내용을 기사화한 것이었습니다. '전임 대사 때와 달리 왜 대사가 참가하는 행사 등에 대한 보도자료가 없느냐'는 질문에 정재호 대사가 "대사를 처음 해 봐서 몰랐다"고 답했고, '소통 자리를 마련해 달라'는 취지의 질문엔 "업무추진비 넉 달 치를 행정직원 추석 선물에 기부해 업무추진비도 없다"고 답했다는 등의 내용입니다. 대사관 측은 이 기사가 '브리핑의 모두 발언은 실명 보도하되 일문일답은 비실명 보도한다'는 브리핑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보도 내용은 차치하고 정재호 대사의 실명을 거론해 보도한 것 자체를 문제삼았습니다.
특파원단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대사관 측의 문제 제기로 지난해 10월 특파원단이 총회를 열어 투표한 결과, 참석자 30명 중 24명이 브리핑 원칙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원칙 위반이라는 응답은 4명, 기권 2명이었습니다. 통상 외교 현안에 대한 브리핑에서 기자들이 비실명 보도를 하는 이유는 외교적 상대방이 있어 실명 보도시 국익이 훼손될 우려가 있기 때문인데, 정재호 대사의 해당 발언은 이런 국익과는 무관하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해당 기사의 일부 내용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용되는 대사 업무추진비의 부적절한 사용을 지적한 것이었습니다. 이 기사 이후 대사관은 "행정직원 격려품을 일부 업무추진비에서 지출할 예정이었으나 여러 상황을 감안해 취소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특파원단은 총회를 거쳐 "대사와 특파원단 사이의 갈등은 오히려 브리핑에 임하는 대사의 권위적인 태도와 부적절한 발언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브리핑 규정 위반 여부는 획일적으로 재단할 수 없으며, (다른 출입처 기자단이 하는 것처럼) 사례에 따라 특파원단이 자체적으로 판단하겠다"는 입장을 대사관 측에 공식 전달했습니다.
국감에서도 대사 · 특파원단 갈등 화두…"소통하겠다" 답하더니
정재호 대사는 국감 마무리 발언을 통해 "많은 공무원들은 사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럽다"면서 "특파원들이 (브리핑) 룰을 지키지 않는다면 우리가 제시할 수 있는, 제공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정재호 대사 이전까지만 해도 대사와 특파원단의 브리핑은 문제 없이 진행됐습니다. 대사관 측이 먼저 나서 브리핑 원칙을 문제삼은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대사 브리핑이 끝난 이후에라도 '우리 외교나 국익에 우려가 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대사관 측이 비실명 보도를 요청하거나 아예 비보도를 요청해도 특파원단은 대부분 수용했습니다. 특파원단도 국익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왜 정재호 대사 부임 이후 이런 문제들이 '갑자기' 불거졌는지, 특파원단에게만 원인을 돌릴 게 아니라 정 대사 본인도 자문해 볼 일입니다.
정 대사 취임 일성으로 소통 · 원팀 강조…"중국 외교부보다 못해"
하지만 안타깝게도 30여 명에 불과한 자국민 특파원단과도 제대로 소통이 안 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우리가 권위적이고 불통이라 비판하는 중국 정부도 외교부 대변인 브리핑에선 내신은 물론 외신의 질문도 즉석에서 받아 답합니다. 민주주의 선진국이라 자부하는 한국의 4강 대사와 대사관이 중국 외교부보다 소통을 못한다는 소리를 들어서야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