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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무임승차 논란에서 우리가 배워야 하는 교훈은?

[스프경제] 해야 할 일을 늦추면, 다음 세대가 피해를 본다

스프경제
1. 오늘은 퀴즈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정부는 경로우대 대상을 현재 65세 이상에서
68세 또는 70세 이상으로 축소하거나,
일정 소득 이하의 60세 이상으로 한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신문 기사의 일부분입니다. 65세 이상 노인들 지하철 무임승차 이야기가 한창인데, 그 이야기구나 싶으시죠? 그런데 이 기사, 요새 것이 아닙니다. 문제 나갑니다. 언제 기사일까요?

정답은, 1989년 1월 21일 경향신문 기사입니다.
(마우스로 긁으면 답을 보실 수 있습니다.)

네, 그만큼 묵고 묵은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때 순리대로 풀었다면은 지금처럼 큰 문제가 되지도 않았을 겁니다. 한 세대가 책임져야 될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결국 나중에 미래세대가 뒤집어쓴다는 교훈을, 사례를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살펴보겠습니다.


2. 노인들한테 대중교통을 할인해 준 건 1980년부터입니다. 70살 이상 노인들한테, 5월 8일 어버이날을 맞아서 지하철 요금을 50% 깎아주기 시작했습니다. 1982년부터는 65살로 나이를 더 내렸고, 1984년에는 완전 무상 이용까지 갑니다.

그런데 당시 상황을 되짚어보면, 정치적으로는 꽤 영리한 결정이었다는 결론을 얻게 됩니다. 실제로는 이 혜택을 받을 사람이 거의 없었거든요. 노인이 없었고, 지하철도 부족했고, 타기도 힘들었으니까요.

1980년에 우리나라 사람들 평균 수명은 65.7살이었습니다. 할인을 받을 수 있는 70살이 되기 전에 상당수가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입니다.
여자는 그래도 70살까지는 살았는데, 남자는 61.8살이면 평균적으로 사망했습니다. 그래서 1980년 전국에 70살 이상은 총 60만 1,237명, 전체의 1.6%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중에 지하철 할인을 받을 수 있는 노인은 더 적었습니다. 그때는 지하철이 서울에 1호선과 국철밖에 없었거든요. 꼴랑 인천-수원에서 청량리까지 가는 게 다였습니다. 당시 서울의 70세 이상 인구는 11만 1,208명으로 더 줄어듭니다. 그중에 이 구간을 타는 사람만 할인받는 것이었죠.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닙니다. 타고 싶어도 지하철을 탈 수가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하철에 에스컬레이터가 없었거든요. 당시 서울시청 앞에서 지하철을 타려면 이런 계단을 내려가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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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역에 에스컬레이터 처음 생긴 게, 2호선 생길 때, 1982년 역삼역부터입니다. 그전에는 계단을 한 번에 몇십 개씩 걸어서 오르내려야 했는데, 그게 고통스러워서라도, 노인들은 주로 버스를 탔습니다.

1977년 통계를 보면, 전체 서울 대중교통 이용자의 80%가 버스를 탔고, 지하철은 4.5%만 이용했습니다. 그 지하철 타는 4.5% 중에서도 노인은 1% 미만에다가, 50%만 할인해줬으니, 전체 대중교통에서 할인받고 지하철 타는 노인 비중은 0.02%보다 크게 작았을 거란 결론에 도달합니다.

그런 점에서 당시 전두환 정권 입장에선 꽤 성공한, 생색내기 정책이었습니다. "노인 공경한다"는 칭송을 들으면서, 실제로 돈은 거의 들일 필요가 없었으니까 말이죠.


3. 이 제도가 중간에 한 번 바뀔 뻔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맨 앞에 퀴즈에 나왔던, 1989년 일입니다.


그때 논란의 핵심은 시내버스였습니다. 지하철 하고는 별도로, 정부는 1982년부터 노인들에게 시내버스 무임승차를 시켜줬습니다. 그때 대한노인회장이던 이규동 씨가 대통령 전두환 씨에게 요청을 해서 얻어낸 것이었습니다. 이규동 씨는 바로 전두환 씨의 장인, 그러니까 이순자 씨의 아버지니까, 버스 무임승차는 사위가 장인 체면을 세워준 정책이었던 셈입니다.

그런데 시내버스는 지하철 하고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전국에서 다 타니까요. 게다가 이 노인 숫자가 늘기 시작했습니다. 노인 인구는 80년대 초반에 145만 이었는데, 90년에는 216만 명까지 늘어납니다. 1989년에 정부가 이 노인들 버스비 예산으로 352억 원을 쓰게 됐는데, 그때 버스요금이 140원이었던걸 생각하면, 지금으로 치면 매년 3천억 원 정도 되는 세금을 내놓게 된 겁니다. 그때 결정적으로, 대통령이 바뀌죠. 그래서 '경로우대 전면 재검토'를 꺼내 들게 된 겁니다.

1년 뒤, 결국 1990년 1월 1일부터 시내버스 무임승차는 폐지됐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지하철 무임승차만은 살아남았습니다. 노인층 반발을 감안해서 정부가 운영하는 곳은 제도를 유지하기로 한 결과입니다. 말씀드린 대로 노인들은 주로 버스를 타던 시절이고, 여전히 지하철은 서울에 4호선까지만, 그것도 분당 일산 등등까지는 가지도 않은 상황이어서, 적자가 크지 않았던 것도 한몫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30년이 지나서, 서울에서만 지하철 무임승차로 1년에 3천억 원 적자가 나는 상황이 됐습니다. 공교롭게도 1989년 정부가 썼던 노인 버스비와 맞먹는 수준입니다. 그렇게 되니까 다시 똑같은 논란이 불거진 겁니다.


4.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제도는 더 있습니다. 공무원 연금도 배경까지 쭉 보면,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어있습니다.

공무원연금은 1960년에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공무원 월급이 보통 회사원의 절반 정도일 때라서 인기가 너무 없다 보니까, 사람 끌어모으려고 만든 제도였습니다. 단순하게 말해서 20년 이상, 월급에서 2.3%를 떼서 내면, 나중에 지금 받는 월급의 최고 50%까지 보장해 준다는 게 핵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제도도 '지하철 무임승차'와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 연금을 실제로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거든요.

1960년 당시 6급 이하 공무원의 정년은 55살이었습니다. 연금은 그 이후에 받게 되겠죠. 그런데, 1960년 한국 국민의 평균수명은 남자 51.1살, 여자 53.8살이었습니다. 상당수 공무원들이 정년 전에 사망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연금은 구경도 못 해보고 말이죠.

기대수명이라고, 그해에 태어난 아이가 몇 살까지 살지 예상해 보는 통계가 또 있습니다. 2021년 기대수명은 83.6살입니다. 2021년에 태어난 아기는 2,100년을 넘겨 살 거란 뜻입니다. 그런데 1960년의 기대수명은 얼마였을까요? 55살이었습니다. 2015년이면 보통 세상을 떠날 걸로 예상이 됐다는 뜻입니다. 시간이 흘러도 별로 바뀔 게 없다고 판단할 수 있죠.

그래서 그랬는지, 정부는 1980년대까지 이렇게 모은 공무원 연금 기금을 신나게 마음대로 써버렸습니다. 어디 쓰는지, 나중에 채워 넣을 건지, 관리 감독하는 시스템도 없었습니다. 누군가 찾으러 올 일 없을 것 같은 금덩어리가 내 손에 있는데, 안 쓰는 게 바보죠. 그때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던 겁니다.

그런데 예측은 틀렸습니다. 1960년에 태어난 사람은 역사상 가장 많은 108만 명입니다. 그런데 이 중에 현재 83%, 90만 8,143명이 살아있습니다. 그리고 이 연령대 남자들은 앞으로 21.4년, 여자는 26.2년을 더 살 걸로 계산이 됩니다. 모두에게 다행인 일입니다. 단, 연금만 빼고요. 연금 문제는, 갈수록 상황이 안 좋아질 테니까요.

2000년대 들면서 그래서 난리가 났습니다. 처음에 왜 제대로 제도를 만들지 않았냐, 중간에 퍼 쓴 돈 어쩔 거냐, 손을 제대로 봤어야 할 거 아니냐, 뒤늦은 지적들이 쏟아졌지만, 일은 벌어진 뒤고요. 결국 이것도 미래 세대가 책임질 일로 남았습니다.


5. 여기까지 읽고 나면, 아 옛날 사람들 진짜, 하고 혀를 끌끌 차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잘못을 안 하고 살고 있을까요? 우리도 지금 무언가 일을 저지르면서, 나중에 어른이 될 우리 아이들에게 피해를 안기고 있지는 않을까요?

지금으로부터 딱 5년 뒤에 초등학교에 갔다고 생각해 봅시다. 학교 교실을 한 바퀴 돌고 나면 아 이거 뭐지, 온몸으로 느끼게 될 겁니다. 2028년 우리나라 초등학교는 이런 모습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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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학생 수가 6학년의 3분의 2 수준으로 쪼그라듭니다. 이미 아이를 그렇게 낳았기 때문에, 바뀌지 않는 미래입니다. 교육부와 교육계는 우리나라 학교에 학생이 여전히 OECD보다 많아서, 계속 투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미 작년에 초등학교 한 학급당 21.03명을 달성해서 OECD 평균을 달성했고요. 2028년이면 저 1학년 같은 경우는 학급당 13명으로 떨어집니다. 본의 아니게 유럽이나 미국보다도 선진적인 교육환경이 되는 거죠.

당장 교사 채용이 문제가 됩니다. 2016년에서 서울에 공립 초등학교 교사로 922명이 채용됐습니다. 올해는 114명입니다. 거의 10분의 1로 줄었습니다. 자 그런데 서울교대는 올해도 신입생을 396명 뽑았습니다. 그리고 내년에도 똑같이 396명을 뽑겠다고 발표를 해놓은 상황이고요. 그런데 지금 상황으로는 아직 입학식도 못 가본 이 신입생 396명 중에 4분의 3은, 서울 초등학교 교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채용 숫자가 더 줄어든다면... 이쯤 되면 더 드릴 말씀이 없어지네요.


5. 그런데 이렇게 상황이 어려워질 거라는 걸 몰랐던 게 아닙니다. 준비하라고 여기저기서 경고음을 울렸습니다. 국책연구기관인 고용노동정보원이란 곳이 있습니다. '중장기 인력수급 전망'이라는 보고서를 꾸준히 내는데, 앞으로 10년 동안 사회가 이렇게 바뀔 거고, 그래서 직업도 어떻게 바뀔지 예측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8년 전, 2015년 보고서를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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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줄기 때문에 초등학교 교사들도 꾸준히 줄여야 한다는 제안을 내놓고 있습니다. 2010년 기준으로 15년 사이에 총 1만 8천 명, 10%를 감축해야 한다는 거죠.

그렇다면 정부도 준비를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라고 세금 들여서 이런 연구시키는거니까요. 그런데 줄이기는커녕 반대로 움직입니다. 2015년에 564명을 뽑았었는데, 다음 해 922명, 2017년엔 795명으로 오히려 늘리면서 '마지막 파티'를 벌입니다.

자, 정권이 바뀝니다. 지금까지 너무 많이 뽑아놔서 8백 명은 합격을 하고도 학교를 못 나가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2018년에는 105명을 뽑겠다고 발표합니다. 그게 수치상 맞는 것이었단 이야기죠.

갑작스러운 변화에 깜짝 놀란 교대생과 학부모, 교육단체들이 항의를 한 끝에 결과적으로 2018년에도 385명을 뽑게 됩니다. 그리고 서서히 줄여서 작년에 114명까지 왔습니다. 자 여기까지 읽어보시면 느끼셨을 텐데, 그러면 지난 5년간에도 사실 수요보다 더 많은 교사를 뽑았을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또 그렇게 많이 뽑은 만큼 앞으로 더 크게 채용이 줄어들 수 있는 거고요.

그런데도 지난 정부나 현 정부나 모두, 교대 정원 수는 줄이지 않고 있습니다. 10년째 그대롭니다. 결국 공부 열심히 하느라고, 아이들 뒷바라지하느라고, 이런 흐름 잘 몰랐던 교대 재학생과 그 이후 세대들, 그리고 그 부모들이 후폭풍을 온몸으로 맞게 될 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6. 지하철 무임승차 이야기로 되돌아가 봅니다. 이 문제는 시내버스 무임승차와 함께, 1989년에 어떤 식으로든 손을 봤어야 합니다. 그 이후에도 또 기회는 많았습니다. 정부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란 걸 처음 만든 게 2004년입니다. 그 사이에 대통령이 네 번 바뀌었습니다. 인구구조가 틀어지고 있고, 결국 이 문제 때문에 정부 세금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갈 거란걸 다 알고 있었는데, 대체 뭘 한 건가요. 여야 가릴 것 없이, 표 무서워서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지 않은 결과를,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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