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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복붙'으로 만든 학교 석면 보고서의 진실…서울시교육청은 뭘 했나

학교 석면 중복사진 부실 조사

아래 사진은 석면 해체 공사를 진행한 서울의 모 고등학교 석면 잔재물 보고서 일부입니다. 자세히 보면 아주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이 학교 6층 창고 바닥 모서리에서 채취한 석면 시료의 전자현미경 사진과 3학년 12반 창틀에서 채취한 시료 사진이 100% 똑같습니다. 아니, 어떻게 10만 배까지 확대 가능한 전자현미경 사진이 이렇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을 수가 있을까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2층 교무실 바닥 시료 사진과 6층 실무 교육실의 콘센트 상부 사진도 똑같았습니다. 이 보고서 곳곳에서 컨트롤 C와 V로 소위 '복사 붙여 넣기' 한 흔적들을 여럿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학교 석면 중복사진 부실 조사

학교 석면 잔재물 보고서는 학교가 석면 해체 공사를 진행한 뒤 남은 석면이 없는지 검사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1급 발암 물질인 석면이 아이들이 공부하고 생활하는 학교 공간에 남아있으면 절대 안 될 일이기 때문이죠. 석면 잔재물 검사를 통해 석면이 하나도 없다, 즉 '불검출'됐다고 결론이 나야만 석면을 해체한 교실 현장에서 실내 공기를 필터로 걸러 밖으로 빼내는 음압기를 철거하고 온전히 해체 공사를 마무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학교 석면 중복사진 부실 조사

그런데 결과물 사진만 '복붙'한 엉터리 검사였으니 실제로는 교실 공간에 위험한 석면이 남아 있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엉터리로 검사했던 학교 석면 공사들이 벌써 1년 전 일들이었으니 개학한 뒤 이미 아이들 일부가 석면을 들이마셨을 수도 있습니다. 최근 서울시교육청 감사 결과, 석면 조사 업체 4곳이 서울 지역 초중고 17개교에서 엉터리 석면 조사를 벌인 걸로 드러났습니다. 어느 학교의 석면 조사 보고서는 사진 중복률이 60%가 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업체들은 서울시교육청에 "업무상 실수였다"라고 해명했다고 합니다.

대체 이런 황당한 일이 왜 벌어졌을까요? 사건은 2018년 서울 인헌초등학교 석면 검출 사태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석면 제거 공사 후에도 교실에서 석면이 검출돼 개학이 무려 한 달이나 미뤄진 사건입니다. 조희연 교육감은 방진복 차림으로 학교 현장에 짜잔 하고 나타나서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죠. 그때 조 교육감이 내놓은 대책이 바로 '전자현미경 검사'였습니다. 석면 해체 공사 이후에 채취한 시료를 전자현미경으로 들여다봐서 남아있는 석면을 아주 샅샅이 들여다보겠다는 것이었죠. 아이들 건강을 위해서는 충분히 해볼 수 있는 생각입니다.
 
(사진=시민단체 제공)

그런데 정작 석면 관련 시민 단체들은 조 교육감의 전자현미경 검사법을 반대했습니다. 왜일까요? 비록 그 취지는 참 좋지만, 현실 여건이 그에 못 미쳐서 자칫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방학만 되면 석면 해체 공사하는 학교들이 넘쳐 나는 반면 석면 해체 공사나 분석 업체는 수가 많지 않아서 지금도 한 업체가 여러 학교를 동시에 맡아 마구잡이 식으로 진행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자현미경 검사 방법을 도입하면, 가뜩이나 장비도 비싼데 영세한 석면 조사 업체들이 그런 걸 제대로 해낼 리가 없다는 것이죠.

(사진=시민단체 제공)

그런데도 조희연 교육감은 전자현미경 검사 방법을 밀어붙였습니다. 참 희한하게도, 전자현미경 검사를 할 수 있다는 업체들이 너도나도 손 들며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참고로 고용노동부가 석면 조사 기관을 지정 관리하지만, 전자현미경은 업체들이 의무적으로 보유해야 할 사항이 아닙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전자현미경 사진 '복붙' 사태가 터진 것입니다.

시민 단체들은 엉터리 석면 조사는 어느 정도 예견된 사태였다고 지적합니다. 전자현미경으로 석면을 조사할 역량이 안 되는데 기준만 높인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돈벌이에 눈먼 업체들은 어떻게든 계약을 따내는 게 목적이지 전자현미경 분석 역량을 갖추는 건 사실상 뒷전이었죠. 어떤 석면 조사 업체는 시료를 채취하자마자 불과 서너 시간 만에 보고서를 만들어줄 수 있다며 방학 기간에 석면 해체를 서둘러 끝내야 하는 학교들을 안심시키기도 했습니다. 이런 현실을 보면 전자현미경 검사 기준은 탁상공론이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2018년 인헌초 방문 조희연 (사진=연합사진)

인헌초 석면 검출 사태 때에는 방진복 차림으로 깜짝 등장했던 조희연 교육감, 이번 엉터리 석면 검사 사태 때에는 어디 있었을까요? 서울시교육청은 사건 개요만 아주 간단하게 적은 두 장 짜리 보도자료만 냈을 뿐이었습니다. 똑같이 위중한 석면 사태인데도 서울시교육청 대응이 너무나 비교될 정도로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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