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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넘어 아름다움으로…이라영 '말을 부수는 말' [북적북적]

고통을 넘어 아름다움으로…이라영 '말을 부수는 말' [북적북적]

[골룸] 북적북적 368: 고통을 넘어 아름다움으로…이라영 '말을 부수는 말'
 
"'창작의 고통'이라는 말이 가진 모순은 《고통받는 몸》에서 일레인 스캐리(Elaine Scarry)가 한 문장으로 잘 정리했다. "예술가들이 너무나 성공적으로 괴로움을 표현한 탓에 예술가 집단이 가장 진정으로 고통받는 사람들로 여겨지고, 그래서 도움이 절박하게 필요한 다른 사람들에게서 의도치 않게 관심을 빼앗을 위험"이 항상 도사린다. 즉, 고통의 표현은 때로 그 고통을 권력으로 바꾼다. 창작을 통해 고통을 다루기보다 창작을 하는 나의 고통에 대해 더욱 열심히 말하는 창작자들이 실로 많다."

'아무말 대잔치'라는 말에는 아무 말이나 던져서는 안 된다는 뜻을 담고 있겠죠. 말이라고 다 같은 말이 아니고 아무 말이나 해서는 안 되며, 머리가 있으니 말에 앞서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 시대를 꿰뚫는 화두 21개를 던지며 '그 말'들을 정교하게 분석한 책을 읽습니다. 예술사회학자 이라영의 <말을 부수는 말>입니다.
 
"각종 '밈'과 '드립'이 난무하는 언어 속에서 빠르게 상대를 공격하고 이기는 화법이 범람한다. 한편 정치인들은 혐오의 언어를 적극 활용한다. 과격한 비유들이 사실을 왜곡시키고 어느덧 말'싸움'만 남는다. 그럴수록 정확한 말, 공동체의 윤리를 생각하는 말의 가능성을 생각해 본다. 신뢰받는 화자가 되지 못하거나 침묵당하는 이들의 비명 속에서 말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정확한 언어가 아름다운 언어라 생각해 왔다. 무엇이 정확함을 만드는가. 정확함은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을 것이다. 언어에 정답을 찾기는 어렵다. 타인의 고통을 나의 언어로 옮길 때와 마찬가지로 내 마음이 타인의 언어로 전달될 때 의도치 않은 오역이 발생한다. 그렇기에 영원히 내가 닿고 싶은 아름답고 정확한 언어의 세계에 닿지 못할지도 모른다.... 나는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에 대해 잘 알기 위해 쓰는 게 아니라, 화두를 던지기 위해 쓴다. 권력의 말을 부수는 저항의 말이 더 많이 울리길 원한다."

고통, 노동, 시간, 나이 듦, 색깔, 억울함, 망언, 증언… 몸 지방 권력 아름다움까지. 하나하나마다 저 또한 하고 싶은 말들이 적지 않을 것 같은 화두입니다. 이라영 작가는 말에 주목했습니다. 권력의 말은 어떻게 사용되고 저항의 말은 어떻게 감춰지거나 때로는 폄하되고 용기가 필요한지를 근래의 사례를 들어서 분석했습니다.
왜 이 책을 썼는지, 고통으로 시작해 아름다움으로 매듭짓는 말의 여정이 어떤 의미인지 작가의 말에 담겨 있습니다.

제가 처음에 읽은 건, 첫 장 '고통'의 한 대목입니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벙어리 냉가슴 앓다 같은 속담 표현들도 요즘엔 적절치 못한 어휘 사용으로 비판받곤 하죠. 너무 많이 쓰여서 이제는 상투적인 비유처럼 인식되는 '창작의 고통'이라든가 글쓰기를 '산고'에 비교하는 것들에 대한 문제 제기가 신선하면서도 통렬하게 다가옵니다.
 
"청자가 있는 고통은 조명받는다. 그러나 남들이 들어주는 고통은 절반의 고통일 뿐이다. 언어로 정리할 수 없거나, 비명이 되어 쏟아지는 소리로만 존재하여 고통의 청자를 만날 수 없을 때, 그래서 그 고통이 철저히 소외될 때, 고통은 진정 고통으로 존재한다. 설명되지 않는, 혹은 아무도 설명을 요구하지 않고 듣지 않으려는 몸의 고통을 구체적으로 말하는 일은 그 자체로 운동이다. 은폐되어 보이지 않는 고통을 보이도록 만드는 과정에서 고통의 주체를 새롭게 인식시키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산업 재해처럼, 약자들의 고통일수록 오랫동안 이름이 없었다."
 
"아름다운 대상에 대한 소유가 아니라 대상을 어여삐 여기는 마음, 끊임없이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야말로 아름다움과 정의로움을 향한 가장 기본적인 실천이다. 아름다움은 분배되어야 한다. 가장 윤리적인 것이 가장 전위적이다. 윤리가 낡음이 되어갈수록 끈질기게 윤리를 고민해야 한다. 아름다움을 권력의 도구로 활용하느냐, 분배와 돌봄으로 여기느냐에 따라 아름다움의 의미는 다른 방향으로 향할 것이다. 인간이 품은 모방 욕구는 아름다움을 복제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무엇을 복제할 것인가. 권력화된 아름다움인가 분배하는 아름다움인가. 아름다움과 선함에 대한 동경이 나 이외의 타자와 동등하게 연결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연결될 수는 없을까."

저 스스로는 그렇게 문제 되는 단어나 말버릇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고 있었는데, 그래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다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입을 다무는 것, 침묵만이 능사는 아니지만 함부로 입을 열지 않는 것, 머리가 있으면 먼저 생각을 하고 말을 한다는 것, 그리고 계속 성찰해 보는 게 미덕이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작가의 말처럼 고통을 통과한 언어가 아름다움을 운반할 수 있기를 저도 바라봅니다.

*한겨레출판으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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