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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경찰관의 부당 거래…'수사지휘권 폐지' 부작용?

[취재파일] 경찰관의 부당 거래…'수사지휘권 폐지' 부작용?
"경찰관이 피의자와 짜고 사건을 무혐의로 종결한다. 검찰이 재수사를 요청하자 경찰관은 수사기밀을 피의자와 피의자 변호사에게 누설하고 대응방법을 함께 논의한다. 사건은 또다시 무혐의로 종결된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경찰관의 '부당 거래', 지난해 부산에서 실제 일어난 일입니다. 범죄를 수사하고 처벌해야 할 경찰관이 피의자와 한통속이 되어 사건을 '없던 일'로 만들려고 했던 일이죠. 다행히도 이 '부당 거래'는 검찰 수사로 밝혀져 전모가 드러나게 됐습니다.
 

"선거운동 도와달라"며 돈 봉투…수사 없이 '혐의 없음'

돈, 사기, 봉투 이미지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지난 2021년, 부산의 한 대학 총장 A 씨는 부산시 교육감 선거를 1년 앞두고 출마를 결심합니다. 그리고 선거운동을 위해 부산 정가에서 꽤 알려진 B 씨를 선거캠프 총괄본부장으로 영입하죠. 인터넷 홍보 등으로 인지도를 높이는 선거운동을 부탁하는 대신 그 대가로 약 5천3백만 원을 건넵니다. 이는 불법입니다. 우리 선거법에는 법에 규정된 수당과 실비를 제공하는 걸 제외하고, 선거운동과 관련하여 금품을 제공할 수 없게 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직선거법 230조 1항 4호)

이후 대학 총장 A 씨는 출마를 포기했지만, 부산선관위는 지난해 5월, 위 혐의에 대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합니다. 이 사건은 부산 남부경찰서로 배당됐고 경위 C 씨가 담당하게 됩니다. 피의자가 된 총괄본부장 B 씨는 C 경위에게 이 사건은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의견서를 제출하죠. 그러자 C 경위는 피의자인 B 씨의 의견을 그대로 반영해 대학 총장 A 씨와 B 씨 등에 대해 '혐의 없음'으로 지난해 9월, 불송치 결정을 내립니다. 사건을 더 수사하거나 검찰에 보내지 않고 그대로 종결해 버린 겁니다.
 

검사가 재수사 요청했지만…또다시 '혐의 없음'


그런데 기록을 넘겨받은 검사가 들여다보니 이상합니다. 사실관계만 봐도 선거법 위반이 맞는 것 같은데 경찰이 그냥 '혐의 없음'으로 결정을 내린 겁니다. 법리를 다투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그저 막연하게 "선거와 관련이 없다"고 좁게 해석을 해버린 거죠. 검사는 경찰에 재수사 요청을 합니다. 2021년에 개정된 형사소송법에 따라 검사는 합당한 이유가 있을 때 1회에 한해 경찰에 재수사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과연 경찰은 다시 수사를 진행했을까요? 놀랍게도 불과 일주일 만에 C 경위가 보내온 대답은 "혐의 없음", 그대로였습니다. 검찰의 재수사 요청에도 불구하고, 다시 수사를 진행한 흔적도 보이지 않았죠. 사실상 주임 검사의 의견을 무시하고 불송치 결정을 반복한 겁니다. 이제 검찰도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됐습니다.
 

검찰의 압수수색…녹음파일로 드러난 '부당 거래'

검찰, 정진상 실장에 대한 압수수색

검찰의 직접 수사가 시작됐습니다. 법에 따라 검찰의 재수사 요청에도 경찰관이 불송치 결정을 유지하는 경우, 법리에 위반되거나 송부된 기록만으로도 혐의가 명백히 인정되는 경우 등에 한해 사건 송치를 요구할 수가 있거든요. 전 대학 총장 A 씨와 선거캠프에서 일한 B 씨 등을 상대로 대대적인 압수수색이 이뤄졌습니다. 돈이 오갔는지 규명하기 위한 계좌 추적 등 금융거래 분석도 함께 진행됐다고 합니다.

경찰이 두 차례나 '혐의 없음'으로 결론 냈던 이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는 데는 불과 1달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전 대학 총장 A 씨가 B 씨에게 5천3백만 원의 금품이 건넨 사실뿐 아니라 또 다른 남성에게 현금과 홍삼액 등이 건네진 사실까지 추가로 드러났습니다. 부산지검 동부지청 형사3부(부장검사 송봉준)는 지난해 11월 30일, 이들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수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금방 드러날 사건을, 도대체 C 경위는 왜 두 번이나 '혐의 없음' 결정을 내린 건지 알아내야 했죠. 묻혀질 뻔한 '부당 거래'의 민낯은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당사자들의 '대화 녹음 파일'로 드러났습니다. C 경위가 피의자인 B 씨에게 전화해 검찰의 재수사 요청 사실 등을 알려주고 대응 방식을 논의한 사실이 녹음 파일에 고스란히 담겨 있던 겁니다.
 

경찰관, 피의자 측 변호사와 대응 방식까지 상의


검찰 수사로 드러난 '부당 거래'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1차 수사에서 피의자 B 씨의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여 '혐의 없음' 결론을 내린 C 경위는 검찰이 재수사를 요청하자 다시 B 씨에게 전화를 겁니다. 그리고는 검사가 재수사를 요청했으며, 검사의 의견이 어떠어떠하고, 재수사 요청 내용과 기한은 이렇다는 상세한 내용을 모두 전달합니다.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대응방법까지 함께 논의하죠. 모두 수사기밀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C 경위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B 씨와 친한 변호사 D 씨에게 전화를 겁니다. 수사 상황을 더욱 자세히 알려주며 대응 방안을 상의합니다. D 씨는 정식으로 선임되지도 않은 상태라 변론을 할 자격도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말입니다. 이 대화 녹음까지 압수수색으로 모두 확보한 검찰은 지난 12일, C 경위를 공무상비밀누설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바뀐 제도와 무관치 않아…'수사지휘권 폐지' 부작용?

검찰 직접 수사권 대폭 축소

다행히 이번 일은 사건을 이상하게 여긴 주임검사의 노력으로 밝혀지게 됐지만, 그렇다고 뒷맛이 개운치는 않습니다. 이런 '부당 거래'가 일어날 수 있었던 상황과 배경이, 바뀐 법 제도와 무관치 않기 때문입니다.

예전 같았으면 사법경찰관은 사건을 수사한 뒤 혐의가 있다고 판단되든 없다고 판단되든 기소 또는 불기소 의견을 달아 검찰에 사건을 송치, 즉 보냈어야 했습니다. 수사 중간 단계에서 검찰의 수사 지휘를 받기도 했습니다. '사법경찰관은 모든 수사에 관하여 검사의 지휘를 받는다'고 검사의 수사지휘권을 규정했던, 구 형사소송법 196조 때문이죠.

그러나 이러한 검찰의 수사지휘권은 지난 2021년 1월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폐지됐습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사건을 검찰에 보내지 않고도 스스로 종결할 권한을 갖게 됐습니다. 물론 이번 경우처럼 기록은 송부가 되지만, 예전처럼 자세히 사건을 보고하거나 검토를 받을 필요는 없어진 거죠. 이번 사건의 경우 C 경위가 피의자의 의견만을 들어 '혐의 없음'으로 사건을 자의적으로 종결할 수 있었던 배경이 바로 이겁니다.
 

검찰 재수사 요청은 1번만…'수사 미진' 의심돼도 방법 없어


이번 사건처럼 검찰이 경찰에 재수사를 요청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도 제약이 있습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재수사 요청은 1번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일에서 보듯, 경찰이 반드시 따라야 할 의무도 없습니다. 재수사 요청을 받은 경찰은 그 결과에 대해 검찰에 '통보'만 하면 됩니다. 기록을 보낼 필요도 없습니다. C 경위가 검사의 재수사 요청을 받고도 일주일 만에 똑같은 대답을 보내는 '배짱'을 부릴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역시 이번 사건처럼, 경찰이 똑같은 결론을 내렸을 경우 검찰이 사건 송치를 요구할 수 있지만 이 또한 아무 때나 가능한 게 아닙니다. 엄격한 제한이 붙습니다. 2021년 형사소송법 개정에 맞춰 시행된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 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 64조에 따르면 검사가 경찰의 재수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사건 송치를 요구할 수 있는 경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관련 법리에 위반되거나, 2) 송부 서류와 증거물, 재수사 결과만으로도 재판에 넘길 수 있을 정도로 명백히 채증법칙에 위반되거나 3) 공소시효 또는 형사소추의 요건을 판단하는 데 오류가 있는 경우, 이 세 경우에만, 그것도 30일 이내에만 송치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까다롭죠. 검사가 사건을 자세히 들여다보거나 관심을 갖지 않으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단 얘기입니다.

심지어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즉 수사 미진의 경우에는 아예 송치 요구 대상도 아닙니다. 이번 사건의 경우 꼼꼼히 따져볼 필요도 없이 법리 위반이 의심되는 경우였고 C 경위 역시 제대로 검토조차 하지 않고 허술하게 사건을 종결해 송치 요구가 가능했지만, 사실관계가 조금만 더 복잡했더라면 경찰이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게 의심되더라도 검찰이 사건을 다시 수사할 방법이 없습니다.
 

예견됐던 부작용…제2, 제3의 부당 거래 막아야

검찰/경찰

사실 이러한 부작용에 대한 우려는 이미 2년 전에도 나왔던 얘기입니다. 당시 대대적인 검경 수사권 조정 차원에서 이뤄진 법 개정을 두고 많은 논란과 우려가 있었죠. 한 경찰관의 일탈을 제도 전체의 잘못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이번 사건이 당시 제기된 숱한 우려와 부작용이 '현실화'된 사례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제도가 바뀌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던 일이기 때문이죠.

2021년 이전이었다면, C 경위는 사건을 그냥 '혐의 없음'으로 종결할 수 없었을 겁니다. 수사 단계에서 검사의 수사 지휘를 받아 범죄 사실과 법리적 부분을 조금 더 들여다봐야 했을 수도 있습니다. 검사의 재수사 요청을 이번처럼 무시해 버리기도 어려웠을 것이고 무엇보다 피의자와 피의자 쪽 변호사의 의견만을 그대로 받아 적을 생각은 하긴 어려웠을 겁니다. 물론 현장에는 C 경위보다 양심적이고, 검찰의 수사 지휘 없이도 사건을 원칙대로 처리하는 경찰관이 더 많겠지만 언제나 물을 흐리고 조직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건 이런 경우입니다.

검경 수사권과 수사지휘권 이야기를 여기서 반복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이런 부당 거래가 또 일어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런 부당 거래를 찾아내고 처벌할 길이 예전보다 좁아졌다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수사지휘권 논란은 오래된 논의이고 경찰의 반박 논리도 있었지만 그 반박 논리는 대부분 검찰이 준사법기관이 맞느냐 혹은 법 개정의 위헌성 여부 등에 초점이 맞춰져 왔습니다. 그러나 일반 시민에게 중요한 건 그런 책상 위 논의가 아닙니다. 바로 이렇게 현장에서 벌어지는 부작용입니다.

형사소송법 개정 이후 2년이 지났습니다. 이런 부작용이 반복되면 제도를 다시 고치자는 말이 반드시 나올 겁니다. 검찰이나 경찰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정의롭지 못한 소수의 부당 거래가 반복되면 결국 피해를 입는 건 이 사회 시스템과 대다수의 선량한 시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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