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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리스트] "판은 깔려있었다"…사기에 사기를 치는 이야기

[ 김병진/전세사기 피해자 : 압류 걸리고, 가압류도 걸리고, 최근에는 압류가 하나 더 걸렸어요. ]

[ A 씨 / 전세사기 피해자 : 임신 초기여서 가면서 넘어지고. 다리 풀려 가지고. 이거 매일 생각이 나서 두통약 먹으면서 잠자고… ]

이들에게 전셋집은 다리 쭉 뻗고 편히 쉴 수 있는 보금자리가 아닙니다.

세입자들을 고통 속에 몰아넣은 전세사기 범죄는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 시작합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4년 전 이곳엔 부동산이 하나 있었습니다. 부동산 대표는 바로 화곡동 일대에서 이름을 날리던 공인중개사 조 모 씨입니다.

2015년부터 부동산을 운영해 왔는데요, 조 씨는 평범한 공인중개사가 아니었습니다.

[ 인근 가게 사장 : 처음에는 계약 한 건도 못 했어요, 없었어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빌라 전세한다고 하면서 사람들이 북적거리기 시작하더라고. 강서에서 자기가 제일 잘나간다고. ]

파리 날리던 부동산이 어떻게, 그것도 갑자기 잘된 걸까요? 조 씨는 바지사장 강 모 씨를 앞세워서 화곡동 빌라 수십 채의 전세 거래를 주선했습니다.

부동산 임대사업을 하고 싶은데 돈이 없다는 일용직 노동자 강 씨에게 조 씨는 의도적으로 접근했습니다. 

자본금이 없어도 부동산 여러 채를 소유할 수 있고, 건축주에게 받는 리베이트를 빌라 한 채당 150~200만 원씩 지급하겠다고 말하며 범죄 속으로 끌고 온 겁니다.

[ B 씨/전세사기 피해자 : 조 씨가 다 계획한 것처럼 느껴졌고, 사실 저는 강 씨 목소리가 기억이 나지 않아요. 조 씨가 아예 판을 깔아놨다고 생각을 해요. ]

그런데 취재 과정에서 최근 사망한 40대 바지사장 김 모 씨가 이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숨진 김 씨가 과거 조 씨가 운영하는 부동산에서 중개보조원으로 일했다는 자료가 확인됐습니다.

정리하면 조 씨를 중심으로 동업자인 바지사장인 강 씨가 있고, 조 씨 밑에는 중개보조원으로 김 씨가 활동했던 셈인데, 숨진 김 씨는 이곳에서 일하며 사기 수법을 배웠을 걸로 추정됩니다.

김 씨는 훗날 적극적으로 전세사기 범죄에 가담해 천 채 넘는 빌라의 주인이 됐고, 전세사기 2세대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가 됩니다.

그렇다면 강 씨나 숨진 김 씨와 같은 바지사장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취재진은 먼저 김 씨의 행적을 찾아 나섰습니다.

[ 김 씨 지인 : 어떻게 하다가 지금 그 부동산을 한다고 해서. 부동산을, 걔가 어떻게 부동산을 하지? ]

관련 기록들을 하나씩 살펴봤더니, 숨진 김 씨가 과거 보이스피싱 일당의 중간책으로 활동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김 씨는 사기 방조 혐의로 징역형까지 선고받았었습니다.

일당과 함께 주택 3,400여 채의 명의를 이전받은 뒤에 잠적한 또 다른 바지사장 권 모 씨도 전세사기 이전에 확인된 전과만 모두 3건. 

이 가운데엔 바다이야기 불법게임장을 운영한 것도 있었습니다. 

보이스피싱, 사기, 도박 같은 민생범죄를 저질렀던 이들이 전세사기 범죄에 다시 등장해서 피해자를 만든 셈이죠. 

심지어 자신도 모르는 새 명의를 도용당해서 바지사장이 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 명의도용 피해자 A 씨 동생 : 아무것도, 빈손으로 갖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재산세가 날아오는가. 그래서 나는 '사기꾼한테 사기당한 것 같다' 이런 생각을 가진 거죠. ]

[ 명의도용 피해자 A 씨 : 그럼 선생님은 그 집에 가보신 적은 없으세요? 없어요. 가봤으면 다 알지… ]

이렇게 수많은 피해가 이어질 동안 수사당국은 대체 뭘 하고 있던 걸까요.

초기 피해자들이 공인중개사 조 씨와 바지사장 강 씨를 고소한 뒤 검찰 기소까지 무려 3년 5개월이 걸렸습니다.

지난달 청구된 조 씨의 구속영장은 기각됐고, 조 씨의 공인중개사법 위반 혐의는 지난해 5월 공소시효가 지나 따져볼 수도 없게 됐습니다.

그 이유가 뭔지 묻자, 검찰은 리베이트를 받은 게 '중개 대가 초과 보수'는 아니라고 봤다고 답했습니다. 이 말, 여러분은 이해가 되십니까.

[ 신중권 변호사 / 전세사기 피해자 대리인 : 법에는 명확하게 명목 여하 불문하고 돈을 법정 수수료 이상 받으면 불법으로 돼 있거든요. 공소시효 지난 다음 이제 와서 '어차피 혐의없음 할거였어', 이게 말입니까? ]

문제는 공인중개사법 위반이 아니면 공인중개사 자격을 제재할 방법이 없단 겁니다. 검찰의 늑장수사가 전세사기 이후에도 공인중개사 활동을 이어가도록 면죄부를 준 셈입니다. 

[ 신중권 변호사 / 전세사기 피해자 대리인 : 공인중개사법 위반이 돼야 자격의 정지가 되든 뭐든 간에 행정 처분이…. 리베이트 그렇게 많이 받았는데 공인중개사 그냥 그대로 하는 거예요. ]

SBS 경제부 전세사기 취재팀은 이어지는 보도를 통해 정부는 전세사기 대란을 왜 막지 못했는지, 그리고 그 책임은 어디에 있는지 끝까지 규명해 나가겠습니다.

( 취재 : 이혜미, 안상우, 정반석, 조윤하 / 영상취재 : 이재영 / 편집 : 한만길 / 담당 : 김도균 / 제작 : D콘텐츠기획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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