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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비행기 타고 네팔 간 '한국 젖소'…네팔 낙농의 희망

[취재파일] 비행기 타고 네팔 간 '한국 젖소'…네팔 낙농의 희망
네팔 수도 카트만두 트리부반공항에 지난달 22일 아시아나 전세기가 내려앉았다. 인천공항을 출발한 지 4시간 만이다. 그런데 비행기에서 내린 탑승객은 사람이 아닌 젖소 42마리였다. 네팔 농축산개발부 차관이 공항에 마중을 나왔다. 주네팔 한국대사도 한걸음에 달려와 젖소를 극진하게 예우했다.

네팔로 간 한국 젖소

한국 젖소 네팔 낙농가에 첫 원조

한국에서 온 젖소는 태어난 지 5~6개월 된 암송아지다. 전국 낙농가와 단체에서 혈통이 우수한 송아지들만 엄격히 선발했다. 한국 젖소의 첫 해외 지원이다. 암송아지들의 어깨는 그만큼 무겁다. 네팔 낙농산업의 발전이라는 임무를 안고 있다. 낯설고, 물 설은 곳에서 잘 적응하는 것이 첫 과제다.

네팔에서 사육되는 젖소는 750만 마리다. 낙농업은 국내총생산(GDP)의 9%를 차지한다. 그런데 우유 생산량이 낮은 게 문제다. 네팔 젖소 한 마리의 연간 산유량은 3천kg, 우리나라 젖소 산유량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젖소 산유량은 9천~1만 kg이다. 2021년 기준 세계 5위다. 이스라엘이 1위(12,512kg), 미국(11,119kg), 캐나다(10,852kg), 스페인(10,786kg)이 우리나라 앞에 있다.

젖소가 살아갈 곳은 카트만두에서 150km 떨어진 신둘리지구다. 네팔 정부가 시범 낙농단지로 조성 중인 곳이다. 네팔에 도착한 지 3일 뒤인 지난달 25일 젖소들은 검역을 마치고 신둘리지구로 이동해 축산 농가에 2마리씩 보내졌다. 비좁고 허름한 우사를 허물고 새로 만든 신식 우사가 젖소를 맞이했다.

네팔로 간 한국 젖소

선물 같은 젖소를 지원받은 달 쿠마리 타파 씨는"한국에서 온 젖소들은 많은 우유를 생산하게 될 것이고, 이를 통해 가계 소득을 창출할 것입니다. 소득이 많아지면 아이들이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깁니다. 정말 기쁩니다"라고 말했다.
 

우수한 송아지 출산 위해 인공수정용 정액도 지원

네팔에서 잘 살도록 젖소들은 한국을 떠나기 전 검역 장에서 건강검진과 백신 접종을 받았다. 한국에서 먹던 사료와 미네랄, 비타민 등도 가져왔다. 또 동물 약품도 함께 지원돼 장소만 바뀌었을 뿐 한국에서 먹고, 관리되던 대로 사육될 예정이다. 젖소들은 15개월이 되면 임신을 할 수 있다. 우수한 새끼를 낳기 위해 한국에서 인공수정용 정액도 들여왔다.

우리나라 젖소가 해외로 나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6·25 전쟁 뒤 미국의 민간 구호기관인 헤퍼인터내셔널(Heifer International)의 도움으로 낙농업을 일으킨 지 70여 년만이다. 해외 원조를 받아 낙농 선진국이 된 우리나라가 도움이 필요한 나라에 낙농을 원조해주는 국가가 된 거다. 헤퍼인터내셔널은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부터 1976년까지 총 44회에 걸쳐 우리나라에 가축을 보내왔다. 젖소 897마리, 황소 58마리, 염소, 돼지, 닭 등 3,200마리에 이른다. 꿀벌 150만 마리도 생태계 회복을 위해 우리나라로 들어왔다.

네팔로 간 한국 젖소

헤퍼코리아가 젖소 네팔 원조 주도

헤퍼인터내셔널은 1944년에 설립된 국제 NGO 단체다. 가축을 통한 국제 구호 협력 사업을 최초로 시작했다. 우리나라에는 2020년 9월 헤퍼코리아가 설립돼 네팔 젖소 보내기 운동을 주도했다. 헤퍼코리아 이혜원 대표는 "헤퍼인터내셔널은 개발도상국에 가축을 통해서 생계 소득 창출을 지원하고 그를 통해서 빈곤 퇴치를 시행하고자 하는 미션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희가 예전에 받았던 지원을 이제는 돌려줄 때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네팔로 간 한국 젖소

지난달 22일 선발대로 네팔에 도착한 젖소 42마리를 시작으로 28일까지 4차례에 걸쳐 젖소 암 송아지 101마리가 네팔로 갔다. 항공기로 운송하기 위해 훈증 처리한 나무 상자 우리를 새로 만들었다. 젖소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하기 위해 항공기내 온도도 섭씨 12.8도~23.9도로 맞췄고, 습도는 40~60%로 유지했다. 이산화탄소 농도까지 세심하게 조절했다. 비행기를 타고 가다 젖소가 질식할 우려에 대비해 전문 수의사도 동행했다.

네팔로 간 한국 젖소

농식품부도 지속적인 네팔 낙농 지원

농림축산식품부도 국제개발협력사업(ODA)을 통해 지속적으로 네팔의 낙농 산업을 돕기로 했다. 모바일 앱을 통한 사양 관리, 젖소 전문가 파견, 바이오 가스 시설 설치 등 다양한 지원을 하기로 했다. 또 네팔에서 희망을 할 경우 국내 젖소 농장에서 네팔 근로자가 사육 기술도 배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헤퍼인터내셔널의 가축 지원 사업 모델은 'Passing on the Gift' 정신이다. 젖소를 지원 받은 농가에서 젖소가 처음으로 새끼를 낳으면 암 송아지를 이웃에 건네준다. 사육 기술과 낙농 지식도 함께 전해 나눔의 연쇄 효과가 지역 공동체에 퍼져 나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네팔로 간 한국 젖소

한국 젖소 101마리를 지원받은 네팔 50농가의 주민들이 이웃에게 릴레이 기부를 통해 젖소 사육이 300농가까지 확산되는 게 1차 목표라고 한다. 착한 영향력이 네팔의 낙농 산업을 탈바꿈 시키길 기대한다. 훗날 네팔 젖소가 또 다른 나라로 보내질 거다. 낙농 기부가 빈곤을 물리치고, 행복한 삶의 밑바탕이 돼 주는 반가운 소식도 기대한다. 그 시작에는 고국을 떠나 타국의 낯선 환경을 이겨내야 할 한국 젖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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