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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전세사기' 시작은 2015년 화곡동, 막을 수 있었는데…

<앵커>

피해자가 늘고 있는 전세사기 사건의 배후 세력에 대해 저희가 단독 취재한 내용 전해 드립니다. 1천 채 넘는 빌라를 가지고 있다 숨진 김 모 씨는 지금까지 그 실체가 거의 드러난 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김 씨의 과거 행적을 취재한 결과, 이미 몇 년 전,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 전세사기를 벌였던 사람과 연루돼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먼저 조윤하 기자의 단독 보도입니다.

<조윤하 기자>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 카페.

4년 전 이곳에는 부동산이 있었는데, 1천 채 넘은 빌라를 갖고 있다 숨진 빌라왕 김 모 씨가 여기서 중개보조원으로 일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김 씨를 데리고 있던 부동산 대표는 누굴까.

[인근 가게 사장 : 처음에는 계약 한 건도 못 했어요, 없었어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빌라 전세한다고 하면서 사람들이 북적거리기 시작하더라고. 강서에서 자기가 제일 잘나간다고.]

SBS 취재 결과, 부동산 대표는 지난주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진 공인중개사 조 모 씨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조 씨는 이미 8년 전인 2015년부터 무자본 갭투자에 바지사장을 앞세운 수법을 썼습니다.

당시 화곡동 빌라에 명의가 대거 올라간 4명을 확인했더니, 이 가운데 1명이 지난달 구속된 원조 빌라왕 강 모 씨였는데, 바로 조 씨의 바지사장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A 씨/전세사기 피해자 : 강○○ 씨랑 계약을 하시는 게 좋겠다고 계속 저한테 권유하고. (사기인 걸 알았을 때) 임신 초기여서 가면서 넘어지고. 다리 풀려가지고. 이거 매일 생각이 나서 두통약 먹으면서 잠자고….]

[B 씨/전세사기 피해자 : 조○○ 씨가 다 계획한 것처럼 느껴졌고, 사실 저는 강○○ 씨 목소리가 기억이 나지 않아요. 조○○ 씨가 아예 판을 깔아놨다고 생각을 해요.]

사실상 조 씨가 배후에서 전세사기를 주도한 건데, 조 씨 밑에서 이른바 2세대, 숨진 빌라왕 김 씨가 일하면서 사기 수법을 그대로 베꼈던 겁니다.

화곡동이 전세사기의 근원지가 된 것도 여기서 터를 닦은 1세대 영향이 컸습니다.

[B 씨/전세사기 피해자 : 2019년도에 터졌을 때, 사실상 빌라왕들이요 그때 더 많이 생겼어요. 자기들끼리 리베이트를 해서 다 나눠 먹고, 판이 커진 거잖아요.]

조 씨는 사실관계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 "아는 바가 없다"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영상취재 : 박현철·조창현, 영상편집 : 이승진, CG : 최재영·제갈찬, VJ : 김상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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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보신대로 지금보다 앞선 2019년에 이미 전세사기 피해를 봤던 사람들은 당시 경찰에 고소장을 냈습니다. 그런데 피의자들이 재판에 넘겨지기까지는 3년이 더 걸렸고, 일부 혐의는 공소시효를 넘기기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수사가 길어지는 사이에 또 다른 전세사기는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이 내용은, 정반석 기자가 단독 취재했습니다.

<정반석 기자>

원조 빌라왕 강 모 씨와 건축업자로부터 거액의 리베이트를 챙긴 공인중개사 조 모 씨의 피해자들이 경찰에 고소장을 낸 건, 지난 2019년 8월입니다.

1년 뒤 이들은 검찰로 송치됐지만, 2년 4개월이 더 지난 지난 4일에서야 기소됐습니다.

고소 3년 5개월만인데, 조 씨에 대한 구속 영장은 기각됐습니다.

검찰은 피해 사례를 추가 조사하는데 시간이 걸렸다는 입장인데, 수사가 지지부진하면서 피해자들은 큰 고통을 받았습니다.

[A 씨/전세사기 피해자 : 아무리 물어봐도 '수사 중이다'. 수사관만 계속 바뀌고, 검사만 계속 바뀌고. '검사실 바뀌었습니다' 이런 문자만 계속 오고.]

[신중권 변호사/전세사기 피해자 대리인 : 검찰에서 뭘 했는지 확인 가능한 게 있거든요. 그게 (지난해) 12월에 몰려 있어요.]

특히 공인중개사 조 씨는 이번에 기소될 때 공인중개사법 위반 혐의는 적용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리베이트를 받은 것이 중개 대가 초과 보수가 아니라는 게 검찰의 설명인데, 이미 지난해 5월로 이 혐의에 대한 공소시효가 지나 따져볼 수도 없게 됐습니다.

[신중권 변호사/전세사기 피해자 대리인 : 법에는 명확하게 명목 여하 불문하고 돈을 법정 수수료 이상 받으면 불법으로 돼 있거든요. 공소시효 지난 다음 이제와서 '어차피 혐의없음 할거였어', 이게 말입니까?]

그 사이 조 씨는 공인중개사 자격을 계속 유지하면서 지난해 화곡동 상가 건물을 사들이는 등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김승남/더불어민주당 의원 : 경찰이나 검찰이 미온적으로 대처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강력하게 처벌을 했다면 아마 이런 피해가 좀 최소화하지 않았을까….]

화곡동에서 발발한 초기 전세사기 사건을 3년 넘게 내버려 둔 결과는, 전국 각지 빌라왕의 출몰과 전세사기 대란이었습니다.

(영상취재 : 박현철·양두원, 영상편집 : 이승진, CG : 류상수·이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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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전세사기 사건 집중 취재하고 있는 정반석 기자 나와 있습니다.

Q. 화곡동에 전세사기 집중된 이유는?

[정반석 기자 : 전세사기 피해자 10명 중 7명은 20대와 30대 사회초년생들인데요. 모아 놓은 돈이 많지 않다 보니까 깨끗하지만 싸고 교통이 편리한 지역을 선호합니다. 아무래도 재개발, 재건축 요소가 적은 화곡동은 신축빌라는 많은 대신에 전세 보증금이 저렴한 편이기 때문에 이들이 몰릴 조건을 갖추고 있는 거고요. 여기에 2015년 하반기 이후 정부가 임대사업자들의 세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저희가 보도한 1세대 전세사기범들은 이런 정부 정책을 역이용해서 수많은 빌라들을 사들인 거고요, 이런 똑같은 수법에 수백 명이 울게 된 겁니다. 얼마나 화곡동에 이런 피해자들이 몰려 있냐 하면, 지난해 서울에서 발생한 전세 보증금 미반환 사고, 10건 중에 4건은 화곡동에서 발생했습니다.]

Q. '늑장수사' 검찰은 책임 없나?

[정반석 기자 : 앞서 보셨듯이 피해자들이 고소장을 내고 검찰이 기소하는 데만 무려 3년 5개월이 걸렸습니다.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전세사기가 대대적으로 이슈가 된 지난해 연말에야 구속영장을 청구한 거고요. 일부 혐의는 공소시효를 넘겼기 때문에 뒷북 수사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저희가 취재해 보니까 1세대에 전세사기범들 중에서는 아직도 전세사기 혐의로는 처벌을 안 받은 분들도 있습니다. 추가 피해자 양산을 막기 위해서 수사를 좀 서둘러야겠습니다.]

(영상편집 : 이승진, CG : 최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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