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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무하는 '꼼수 반성' 어떻게 개선해야 하나 [취재파일]

가해자 지원 산업
감형을 위한 가짜 반성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가해자가 피해자 단체에 기부하거나 봉사활동을 하고, 헌혈증이나 장기 기증 서약서를 냅니다. 변호사들은 감형 방법을 알려주고, 가해자들끼리는 인터넷에서 정보를 공유합니다.

1. 상당한 피해 회복 2. 진지한 반성 3. 형사 처벌 전력 없음.

성범죄 재판의 3가지 감경 기준입니다. 특히 성범죄 피의자 공판에서 반성 여부는 주요 양형 기준이기도 합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는 진지한 반성을 '범행 인정 경위, 피해 회복, 재범 방지를 위한 노력을 조사해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진심을 판단하고 특정하는 데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SBS는 4차례 보도에 걸쳐 성범죄 피의자들이 어떻게 반성을 입증하는 꼼수를 쓰는지, 이런 꼼수가 실제 재판에서 인정되는 현실까지 살펴봤습니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전문가들을 통해 이들이 바라보는 현실은 어떠한지, 어떻게 개선해나갈 수 있을지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현실은 더 하다

기사를 보고 대검찰청에서 연락이 와 "현실은 더 하다"고 알려왔습니다. 재판에서 감형만 받고 장기기증을 철회하는 경우까지 있고, 심지어는 피고인이 피해자와의 합의서를 위조해서 제출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판결문을 살펴보니 이러한 사례가 빈번하게 나타났습니다. 지난 2021년 9월 데이트 폭력으로 재판에 넘겨진 한 피의자는 고소 취하 목적으로 피해자를 협박해 합의서를 얻어냈습니다.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에 대한 악의적인 진정과 민원을 제기하고 협박하면서 합의서 작성을 강요한 겁니다. 피해자 조사 과정에서 이를 알게 된 검찰은 보복 협박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지난 2020년 10월엔 성폭력 범죄로 복역 후 출소한 지 4일 만에 일면식이 없는 피해자를 강간 상해하고도 허위 합의서를 작성하게 한 피고인이 구속기소 됐습니다. 합의서를 바탕으로 불구속 송치된 사건이었는데, 검찰 단계에서 피의자가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피해자를 회유해 이미 작성된 합의서에 서명만 하도록 강요한 사실이 밝혀진 겁니다.

하지만 공판 단계에서 이러한 꼼수들이 밝혀지기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양형 자료로 사후 장기기증 서약서를 제출하거나 기부금 영수증을 제출하는 경우가 많은데, 재판이 끝나고 서약을 철회하거나 기부를 철회해 환불받는 피고인이 많습니다. 대검 관계자는 "재판이 끝난 뒤 서약을 철회하게 되면, 검찰과 법원의 손을 떠난 상태라 추적이 어려운 근본적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진지한 반성이 감경 기준 중 하나인 건 범죄자에게도 사회 복귀 여지를 줘야 한다는 철학에서 비롯됩니다. 진지하게 반성해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있다면, 그 길을 열어주는 것도 재판부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진지한 반성을 어떻게 가려내느냐는 검사들의 고민이기도 합니다. 지난해 6월 대검찰청은 범죄자들의 꼼수 감형 시도가 성범죄자들을 중심으로 특히 늘고 있다며 전국 일선 검찰청에 대책 시행을 지시했습니다. 이에 검찰에선 피해자와의 합의서가 위조된 건 아닌지, 제출된 서류가 진실한지 재차 검토하고 있습니다. 피해자에게 직접 연락해 피고인에게 사과받은 게 맞는지, 피고인을 여전히 처벌할 의사가 있는지도 물어봅니다. 이 과정에서 피고인의 거짓 반성이 발각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체로 이러한 꼼수에 대한 대응이 어려운 건 진심을 판단하는 과정이 여전히 모호한 영역으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피해자의 의견을 보다 경청하고, 가해자의 반성을 문서만으로 판단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가해자들의 기부 문의를 빈번하게 받고 있는 한국성폭력상담소의 김혜정 소장은 "재판부는 피고인의 사정보다 피해자의 사정과 상태를 더 조사하고 반영해야 한다"며 "제출된 각종 문서를 바탕으로 '피고인이 반성했다'며 감형하는 관행을 없애는 게 근본적 해결책"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으로 국회에는 피해자의 가해자 처벌에 대한 의견을 양형 참작 사유에 명시하는 형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지만, 1년 가까이 국회에 계류돼 있습니다.

변호사들을 통해 양형 꼼수가 홍보되는 현상을 막아야 한다고 말하는 전문가들도 있었습니다. 지난 2021년 논문 "성폭력 사건 해결의 '법 시장화' 비판과 '성폭력 정치'의 재구성에 관한 연구"를 통해 성폭력 재판이 시장에서 산업화되는 문제를 지적한 김보화 이화여대 여성학 박사(젠더폭력연구소 소장)는 "성폭력 범죄에서 가해자를 변호하는 법 시장이 강화하면서 감형 전략이 발명되고 있고, 그런 전략이 노하우로 홍보되는 현상이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따라서 변호사들의 자정 노력도 병행돼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대검 관계자는 "변호사들이 '기부금은 나중에 환불받으면 된다' '장기기증 서약을 철회할 수 있다'며 가해자에게 꼼수를 교육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데 그런 교육을 한다는 것 자체가 가장 문제"라고 강조했습니다. 김 박사 역시 "변호사 단체는 자체적인 노력과 규제를 통해 스스로 자정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야 하고, 판사들은 성 인지 감수성 등에 대한 적극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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