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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대담해진 병역 비리 컨설팅…'작전'처럼 이뤄졌다

[취재파일] 대담해진 병역 비리 컨설팅…'작전'처럼 이뤄졌다
SBS의 연속 보도가 이어지며 일부 군 전문 행정사들의 이른바 '병역비리' 불법 브로커 활동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돈을 내고 거짓으로 병을 꾸며 병역 면제를 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시민들은 공분하고 있습니다. 사회 구성원들에게 공평하게 돌아가야 할 병역의 의무를 '꼼수'로 회피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우리 사회의 역린을 건드린 모양새입니다.

검찰과 병무청 합동수사팀의 수사를 받고 있는 병역 면탈 브로커 구 모 씨와 김 모 씨는 직업군인 출신의 군 전문 행정사로 불법 영업을 이어온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관련 업계에서는 이미 이들이 2020년 즈음부터 "병역을 면제 받게 해주겠다"며 불법 영업을 해왔다는 소문도 퍼져있었는데요, 다른 행정사들 사이에서는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 줄을 이었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어떻게 불법 브로커 활동을 했는지'입니다. 브로커들이 의뢰인들에게 한 영업과 실제 병역 면탈을 조장한 일련의 과정들은 치밀하고 대담했습니다. 검찰의 관련 수사가 아직 진행 중인 만큼 추가 범행 사실들이 나올 수 있지만, 이 시점에서 드러난 브로커들의 불법 영업의 실체를 정리해봤습니다.
 

'작전'처럼 이뤄진 병역 면탈 컨설팅…불법 영업 적극 홍보

브로커 구 씨 등은 기본적으로 온라인을 기반으로 활발한 홍보 활동을 벌였습니다. 포털사이트 블로그 등은 이들의 '전초기지'였습니다. 지식인에서 군 입대를 앞둔 사람들이 올린 질문에 답변을 단 뒤 1:1 대화나 전화를 통해 상담을 하도록 유도하거나, 포털사이트 전문가 채널에 등록해놓은 뒤 병역 면탈의 고객이 될 만한 사람들에게 유료 개별 상담을 홍보하는 식이었습니다.

특히 이들은 관련 행정사 단체의 로고나 양식을 그대로 베껴 마치 신뢰도 있는 업체인 것처럼 꾸몄는데, 이는 왕성한 온라인 활동에 더해 홍보 효과를 키우는 역할을 했습니다. 심지어 구 씨는 블로그 대문이나 포털 프로필에 "본인은 병역기피를 조장하거나 사위를 이용해 병역을 면탈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법적 관련 부서 국방부, 병무청에 해당 사실을 통지할 것"이라며 "병역이행에 대한 누구나 공정한 병역 업무이행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적어놓기도 했죠.

겉으로는 정상적인 업체인 것처럼 꾸몄지만 실제로는 은밀하게 개별 상담을 통해 군 면제 방법을 컨설팅해주는 불법 영업을 이어간 겁니다. 다만 검찰이 불구속 수사 중인 김 씨는 최근 언론 보도가 집중되자 블로그에 올려둔 글을 모두 비공개 처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의 병역 면탈 컨설팅은 곳곳에서 마치 '작전'처럼 은밀하게 이뤄졌습니다. SBS 취재진이 찾아간 브로커들의 행정사 사무실은 서울 강남의 주요 역세권에 위치한 공유 사무실들이었습니다. 상시 근무하는 사무실을 차려놓고 영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 사무실에 '비상주 입주사'로 계약해놓고 사무실 주소지만 걸어둔 것이죠. 이들은 최소 수개월치 이상 입주료를 미리 선납해둔 상태였는데, 해당 사무실들은 우편을 받거나 회의실을 임시로 사용하는 용도로만 썼고 실제 상담과 서류 작업 등은 일반 카페나 다른 사무실에서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면탈자 병역판정서

영업은 지인 소개를 통해 알음알음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구 씨에게 2000만 원을 건네고 상담을 받았던 한 의뢰인은 그의 코칭을 받아 '뇌전증'을 허위 진단받은 뒤 실제 2년 만에 현역 대상이었던 3급에서 4급 보충역을 거쳐 5급 전시근로역으로 판정 받아 병역을 면제 받자 주변인들을 구 씨에게 소개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그가 구 씨와의 상담을 위해 찾은 서울 모처의 카페에서는 이미 앞에 다른 의뢰인 여럿이 앉아 차례를 기다리기까지 했을 만큼 성황이었다고 합니다. 최근 검찰 조사에서 혐의를 일체 자백한 그는 자신이 소개한 지인이 계약금 수백만 원을 넘겼다가 구 씨가 구속기소되자 수사 대상에 같이 오르게 됐다며 후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데이터 있다" 자신한 브로커…수사망 오른 면탈자 규모 최소 70여명

구 씨 등은 '내가 시키는 대로 따라오면 면제를 받을 수 있다'며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었습니다. 처음부터 병역 면탈을 위해 그를 찾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군 입대 연기 방법을 찾거나 행정심판 등으로 신체검사 등급을 다시 판정 받고자 찾아온 사람들까지도 병역 면탈 컨설팅의 고객으로 적극 영업했습니다. 생계나 가정 상황 등 저마다의 사정을 갖고 구 씨를 찾아온 이들에게 실제 군 면제가 가능하다는 제안은 달콤한 유혹이었던 셈입니다.

실제 구 씨의 이같은 영업 방식은 SBS가 입수한 그의 상담 녹취록에서도 확인됩니다. 프로스포츠 선수 등 유명인들을 상대로 면탈에 성공했다며 "(이미 그간 성공한) 데이터가 있다. 5급이 안 될 수가 없다"고 자신한 그는 별도 상담료 대신 성공 보수로 최대 5000만 원을 제시하며 성공을 장담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구단에 자진 신고하며 드러난 프로 배구 조재성 선수처럼 허위 뇌전증을 코칭하는 수법으로 군 면제를 받아낸 실제 유명인 의뢰 사례들로 '경험치'가 쌓이자 점점 더 대담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구 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공공연히 실적을 홍보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주장한 이른바 성공 사례는 수백여 건에 달했는데, 2019년 11월부터 올해 6월까지 4급이나 5급 등 현역 부적합 판정을 받아낸 게 256건, 재검사를 통해 등급 조정에 성공한 경우가 554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가 주장한 수치를 액면 그대로 믿는 것은 위험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과 2년여 기간 동안 상당 규모의 불법 영업을 지속해온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현재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른 구 씨 등을 통한 병역 면탈자들은 최소 70여 명 규모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브로커들을 통해 신체등급을 감경받거나 군 입대를 면제받은 이들 전부를 대상으로 위법 여부를 폭넓게 들여다보고 있어 수사가 진행될수록 수사대상 규모는 추가로 확대될 전망입니다.

업계에 밝은 한 군 전문 행정사는 "지난해 초부터 구 씨에게 병역 면제가 가능하다는 말을 들은 뒤 확인을 위해 나와 다른 주변 행정사들에게 다시 문의해오는 사례들이 꽤 많았다"며 "구 씨가 이미 군대에 입대한 이들을 대상으로도 현역 부적합 심사를 통해 중도 제대할 수 있게 하는 컨설팅도 같이 진행했던 것으로 안다"고 귀띔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병역비리 사태에 대해 언론의 보도가 잇따르자 병역 면탈에 따른 법정 처벌 수위에 대한 문의도 부쩍 늘어났다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비리 병역 면제 수사팀 확대 지시

수사 촉발한 군 전문 업계 행정사 제보…분기점 될 검찰 수사

구 씨 등에 대한 이번 사정당국의 수사는 같은 업계의 군 전문 행정사들의 제보로 시작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지난해 병무청에 구 씨의 불법 영업 내역과 상담 녹취록 등을 채증해 제보했다는 한 행정사는 "병무청도 관련 사안을 파악하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고 하더라"며 "구 씨가 계속해서 근거지를 옮겨다닌 탓에 병무청으로서도 접촉해서 확인하기 쉽지 않았던 모양"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2022년에도 거액을 내고 병역의 의무를 회피하는 꼼수가 공공연하게 이뤄졌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병역 비리는 공정과 정의의 원칙에 반하는 범죄라는 점에서 사회 구성원들에게 박탈감을 불러일으키는 화약고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에 지난달 초 꾸려진 검찰과 병무청의 병역 면탈 합동수사팀의 수사는 이제라도 병역비리를 발본색원할 기회라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행히 이원석 검찰총장도 지난달 29일 "병역기피자와 '검은돈'으로 신성한 병역 의무를 오염시킨 브로커, 의료기관 종사자 등에 대한 엄정한 수사와 법 집행"을 당부해 검찰의 관련 수사도 탄력을 받을 전망입니다.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병역비리, 이번에는 뿌리 뽑을 수 있을까요? 지금 우리가 맞은 '검찰의 시간'에 기대가 모이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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