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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전쟁과 스태그플레이션…2023년 '영구위기'를 항해하는 원칙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2023년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 자료: 국제금융센터
▲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2023년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 자료: 국제금융센터
 
2023년 계묘년, '검은 토끼의 해'가 밝았다. 1월 1일 원단,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볼 수 있는 곳마다 해맞이 인파로 붐볐다. 모처럼 쾌청한 날씨, 사람들은 밝게 솟아오르는 태양을 보며 또 한 해를 다짐했다.

지구 온난화로 녹아 풀린 영구동토(permafrost)가 영구위기(permacrisis)로 변신해 나타난 것일까. 영국의 콜린스 영어사전은 2022년 올해의 단어로 '영구위기'를 선정했다. 전쟁과 전염병, 인플레이션 등으로 위기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상황을 일컫는 단어로 2023년에도 영구위기 상황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2023년은 2019년 12월 말 중국 우한의 수산시장에서 시작돼 3년 동안 전 세계를 짓누르던 코로나19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한 해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꽃피는 봄이 되면 3년 동안 얼굴을 갑갑하게 가렸던 마스크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코로나19의 뒤끝은 매섭기 그지없다. 우한에서 시작해 유럽과 미국, 남미, 중동, 동남아를 돌아 다시 중국 본토로 간 코로나19는 14억 인구의 글로벌 생산기지 중국 본토를 감당불능의 전염병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코로나19로 공급망이 붕괴된 가운데,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쏟아 부은 11조 달러 규모의 유례없는 돈은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으로 나타났고, 이에 맞선 중앙은행들의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은 주식과 부동산, 가상화폐, 채권 등 부풀대로 부풀어 오른 자산버블을 터트리며 '부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가파른 금리인상으로 소비여력이 축소되고, 자산가격 하락으로 부의 역소비 효과가 나타나면서 올해 전 세계 경제는 인플레이션 속에 경기는 침체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국면에 빠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 김용철 취파용
▲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우크라이나 전쟁이 촉발한 에너지와 식량 위기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우크라이나 구하기에 나선 미국과 유럽 등 서방진영과 핵무기 사용을 위협하며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러시아의 충돌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성 속에 있다.

첨단기술 보호와 안보를 명분으로 내세운 미국의 중국 통제 정책, '하나의 중국'이란 원칙을 내세우며 타이완을 언제라도 집어 삼킬 기세를 보이고 있는 중국,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영토 분쟁은 지정학적 위험을 고조시키고 있다. 경기침체는 국가주의를 부활하고, 지정학적 위기를 더욱 고조시킬 가능성도 점쳐 진다.

2023년 세계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간 헤게모니 싸움, 에너지 위기, 거시경제적인 위기가 한꺼번에 나타나면서 1, 2차 석유파동이 발생했던 1970년대, 나아가 1, 2차 세계대전이 이어진 1910년대 이후의 정세와 유사하다는 진단도 나온다.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가격이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는 가운데, 사상 최대의 무역적자를 경험하고 있는 작지만 개방된 경제 대한민국은 어느때보다 위기를 효과적으로 헤쳐나가는 리더십이 요구되고 있다.
 
2022년 전세계 원자재, 채권, 주식, 암호화폐 가격 / 김용철 취파용
▲ 2022년 전 세계 원자재, 채권, 주식, 암호화폐 가격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패권전쟁…지정학적 위기의 향방은?

2022년 2월 24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수도 키이우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전역에 대한 침공을 단행했다. 장거리 미사일로 타격한 뒤 탱크를 앞세우고 대제국 러시아군이 진군하면, 2014년 크름반도를 병합할 때 처럼 손쉽게 우크라이나를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은 11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군의 잔인한 행태에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복수심과 결사항전 의지는 갈수록 강해지고, 우크라이나군은 전쟁 발발 후 러시아가 점령했던 대부분 지역을 수복한데 이어 친러시아 세력이 점령하고 있던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지역에서 러시아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올해 450억 달러의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을 편성하고, 패트리어트 미사일과 탱크 등 갈수록 강력한 무기를 지원하고 나섰다. 수세에 몰린 러시아가 올 봄 대반격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자국 방어를 위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내비치며 협상을 타진하고 있지만 타협의 가능성은 크지 않은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예상 시나리오는 세 가지, 러시아가 승리하는 경우와 우크라이나가 승리하는 경우, 그리고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장기간 계속되는 것이다.

러시아가 대변격에 성공해 전쟁에서 승리할 경우 우크라이나에 엄청난 희생과 피해가 따를 것으로 예상되지만, 지금까지 러시아의 전쟁 수행 능력을 보면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과 나토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우크라이나가 승리하는 시나리오는 가능해 보이지만,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이 천명하는대로 친러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돈바스 지역과 러시아가 2014년 강제 병합한 크름반도 등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러시아군이 완전히 퇴각하는 상황은 달성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러시아 내부의 불만이 고조되면서 푸틴 대통령이 실각하지 않는 한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지역 등 돈바스 지역을 중심으로 장기전이 계속되는 상황, 이 경우 러시아가 공급하는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적인 에너지난과 곡물 수급의 불안정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확장을 억제하기 위한 미국의 대중국 봉쇄조치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러시아에 대한 제재와 봉쇄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방진영과 중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제국주의 진영의 대결 구도를 더욱 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기준금리(파랑, 좌축)와 한국의 기준금리(검정, 우축) / 김용철 취파용
▲ 미국의 기준금리(파랑, 좌축)와 한국의 기준금리(검정, 우축)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자산버블 붕괴에 부채위기

작년 2월 말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표면화된 1970년 대 이후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미국 연준은 작년 3월 부터 7차례 연속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4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0.75%p씩 인상하는 자이언트 스텝을 취하기도 하면서 작년 초 0~0.25%였던 미국의 기준금리는 12월 4.25~4.5%로 4.25%p나 인상됐다. 1970년대 이후 가장 큰 폭의 금리 인상이다.

글로벌 공급망이 점차 복구되고, 국제유가가 하락세를 나타내면서 작년 6월 9.1%를 기록했던 미국의 소비자물가는 11월 7.1%로 낮아졌지만, 미국의 고용과 소비는 아직 뜨거운 상황이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는 아직도 수그러 들지 않고 있다. 미국 연준은 기준금리를 올해 상반기 5.25%까지 인상한 뒤, 연말까지 유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미국의 기준금리는 2024년에도 4.25%에 머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코스피지수 / 김용철 취파용
▲ 코스피지수
 
작년 3월부터 12월까지 10개월 만에 제로수준에서 4.5%까지 미국의 급격한 기준 금리 인상은 자산가격의 급격한 하락을 유발하고 있다. 한때 3조 달러에 육박했던 전 세계 가상화폐의 시가 총액은 8천억 달러 선으로 떨어졌고, 미국 나스닥 지수는 3분의 1이 하락했다. 급격한 금리인상에 채권가격도 급락하면서 올 상반기 금융기관들의 대차대조표에는 보유 자산의 가격하락 여파가 그대로 반영돼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제로금리가 유지되면서 자본은 언제 어디서나 값싸게 구할 수 있는 대상이었지만, 작년 각국 중앙은행들의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고 선언했다. 금융위기 이후 양적 완화와 제로금리 정책으로 낮은 금리로 쉽게 구할 수 있는 자본을 이용한 대규모 인수합병이 급증했고, 미래 가치를 우선시 하는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가 붐을 이루었지만, 이제 많은 벤처기업들이 시장가치 하락은 물론 돈을 구하지 못해 자금난에 허덕이는 상황이 됐다.

금리가 1%일 경우 10년 후 1백 원을 받으려면 91원을 예금해야 하지만, 금리가 5%일 경우 61원만 예금하면 된다. 반대로 10년 후 100원짜리 자산의 가치를 현재가로 환산할 경우 금리가 1%이면 91원이지만 5%이면 61원이 된다.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만큼 투자자들은 현재의 이익을 선호하게 되고, 이런 성향은 투자를 위축시키고 자산의 현재 가치를 급격히 떨어트린다.
 
IMF 추산 집값 괴리율 / 김용철 취파용
▲ IMF 추산 집값 괴리율
 

금융위기의 최대 진원지 부동산…과감한 위기관리 정책 필요

국제통화기금(IMF)는 지난 12월 '아시아 지역의 주택시장과 주택 구매력' 보고서에서 코로나19 발생 이후 비정상적으로 급등한 주택가격이 경제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IMF는 보고서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집값이 소득과 주택 수급, 경기추세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올랐다면서, 기술적 분석 결과 뉴질랜드의 집값은 연간 20%, 한국과 호주의 집값은 10%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각국의 집값 폭락 기록 / 김용철 취파용
▲ 각국의 집값 폭락 기록
 
IMF는 건설산업은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만큼, 전반적인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크고, 가격 변동 폭과 기간도 상당하다고 밝혔다. 주택관련 자산이 개인자산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개인들의 소비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IMF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의 집값은 1991년 최고치를 기록한 후 2006년 3분기까지 63분기 연속 하락하면서 최고치 대비 평균 45.2%가 하락했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원지가 됐던 미국의 집값은 2006년 1분기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2011년 2분기까지 22분기 연속 하락하면서 최고치 대비 39.1%가 떨어졌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1년 2분기 최고치를 기록한 집값은 외환위기가 발생하기 1년 전인 1996년 3분기까지 22분기(5년6개월) 연속 하락하면서 평균 33.7%가 하락했다. 홍콩의 집값은 1981년 1분기부터 1984년 3분기까지 15분기(3년9개월) 동안 무려 51%가 떨어지기도 했다.

IMF는 집값대비 대출규모의 비율(LTV)이나 소득대비 이자상환비율(DTI) 등 대출규제 정책이 집값 안정에 중요하지만, 그림자 금융 등 정책의 불완전성으로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전 주택관련 대출 규제가 코로나19로 느슨해지면서 집값 상승요인이 됐던 것도 최근 집값 버블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 / 김용철 취파용
▲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작년 11월 18일 기사에서 중국 이외에도 아시아의 소득대비 집값과 부채 규모가 상대적으로 커서 부동산 버블 붕괴의 위험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2021년 말 현재 소득대비 각국 수도의 집값은 홍콩 20배, 한국 19배, 타이완 16배로 집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미국 산호세 12.6배, 런던 8배 보다 비싸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는 한국이 105%, 타이완 97%, 홍콩 94%, 미국 77%, 영국 85%로 우리나라가 최고 높다고 지적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는 중국의 성장이 아시아 국가들의 충격을 완화했지만, 지금은 중국의 도움을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오랫동안 2%대에 머물렀런 우리나라 은행의 평균 대출금리는 재작년 하반기부터 급격히 오르면서 한국은행이 집계한 작년 11월 은행의 신규대출 이자율은 연 5.64%에 달했다. 작년 9월 말 현재 가계부채는 1천862조 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이자부담은 1년 사이 배가 증가한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를 겪은 미국은 은행주택담보대출의 90% 이상이 장기 고정금리 대출이라고 한다. 반면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의 주택 모기지 대출은 변동금리 대출이 대부분이다. 주택을 사기 위한 가계 대출이 금리상승의 위험에 그대로 노출돼 있는 것이다.

미국의 헤지펀드 '브릿지워터'의 창립자 레이 달리오(Ray Dalio)는 '대규모 부채위기를 항해하는 원칙'에서 급격한 부채 축소가 GDP 3% 이상의 충격을 초래한 48개의 금융위기를 분석하고,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은 악성 부채의 상환기간을 늘리고 부담을 최대한 낮춰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위기 자체도 중요하지만, 위기의 규모와 파장을 정확히 파악하고 제때 과감한 정책을 수행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2023년 대한민국은 사상 최대의 부채를 떠 안은 상황에서 급격한 글로벌 금융긴축과 금리상승, 지정학적 위기의 파고를 넘어야 하는 상황이다. 레이 달리오는 "한 번 시작한 부채 축소와 버블 붕괴의 위기는 3~5년간 지속된다. 위기를 극복하는 리더십은 인기가 있을 수 없다. 인기에 휘둘리지 말고 과감하고 효과적인 정책으로 생산성을 높여, 성장률을 제고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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