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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멘터리] 범죄도시에서 아바타까지 '2022 올해의 영화들'

이주형 기자의 씨네멘터리 #57

     서기 2022년이 지나갔습니다. 제가 2222년을 맞는 일은 없을 테니(심지어 올해 태어날 아기조차 택도 없습니다), 지난해가 제가 지구별에 와서 겪고 가는 가장 많은 ‘2’자가 들어간 해였습니다. 유사 이래로 222년과 1222년을 제외하면 지난해보다 2자가 더 많이 들어간 해는 없으니까요. 

2022년 최고의 흥행 영화는 “범죄도시2”가 차지했습니다. 1천269만 명이 봤지요. 코로나 이후 첫 번째 천만 영화입니다. 2위는 “탑건:매버릭”(817만)이고 3위는 “아바타:물의 길”(731만), 4위는 “한산:용의 출현”(726만)입니다. , 5위는 “공조2:인터내셔날”(698만), 6위는 “닥터스트레인지:대혼돈의 멀티버스”(588만)로 기록됐습니다. 

씨네멘터리 그래프

눈 밝은 독자분들은 알아차리셨을 겁니다. 패턴이 보이죠. 1위부터 6위까지가 모조리 속편입니다. 한마디로 ‘2’의 해였습니다. 9위 “쥬라기월드:도미니언”(283만)과 10위 “마녀2”(280만)도 속편이라서 흥행 톱 10 중 8편이 속편이고, 그 중에서도 “쥬라기월드”를 뺀 일곱 편은 제목 뒤에 ‘2’를 붙일 수 있는 ‘찐 속편’입니다. 

2022년 흥행 톱10 영화 중 ‘유2’하게 속편이 아닌 영화는 “헌트”(430만)와 “올빼미”(322만)입니다. 흥미롭게도 두 영화는 모두 50대 감독의 데뷔작이었습니다. 두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속으로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헌트”를 보고 나서는 ‘아니, 이정재 배우가 연출도 이렇게 잘 한단 말이야?’하고 놀랐고, “올빼미” 시사회 직후에는 ‘아니, 도대체 어떤 감독인데 데뷔작의 완성도가 이 정도야?’하고 놀랐습니다. (알고 보니 안태진 감독은 “왕의 남자” 조감독 이후 17년 만에 첫 메가폰을 잡은 집념의 한국인이었습니다) 

     올해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풀리자마자 “범죄도시2”가 비수기를 강타하면서 영화 시장이 부활할 거라는 기대감을 크게 높였습니다. 그래서 여름 대목이 도래하자 한국형 블록버스터 4편(“외계+인”, “한산”, “비상선언”, “헌트”)이 한 주 차이로 잇따라 개봉하는 모험을 했는데 결과는 기대치를 밑돌고 말았습니다. 

이후 하반기는 큰 화제거리를 만들지 못한 채 “아바타”가 연말연시 시장을 견인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큰 기대 속에 상반기를 시작했지만, 여름 시장이 기대에 못 미치면서 코로나 이전의 전성기였던 2019년의 관객 수 2억2천660만 명의 절반 수준인 1억1천만 명 수준에서 올해 영화 시장은 마감했습니다. (매출액 기준으로는 60% 수준 회복)

     그럼 2022년에 작품성과 화제성 측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던 영화는 어떤 영화들이 있을까요? ‘씨네멘터리’도 고심을 거듭하며 2022년 올해의 영화 베스트 10을 꼽아봤습니다. (여러분들도 댓글로 올해 자신만의 베스트10을 꼽아주시면 잘 챙겨 보겠습니다)

'씨네멘터리'가 뽑은 '2022 올해의 영화' 베스트 10

2022년 올해의 한국 영화는 아무래도 박찬욱이라는 시네아스트의 건재를 알린 “헤어질 결심”이었습니다. 칸 영화제 감독상과  청룡영화상 작품상 등 국내외 상을 휩쓸었고, 우리가 왜 문어와 구어를 따로 쓰는지 깨닫게 해 준 영화였습니다. 대사가 유행어가 될 정도로 화제가 된 것에 비하면 흥행은 그에 못 미쳤는데(약 190만 명), 박찬욱의 영화가 봉준호의 영화에 비해 취향을 많이 타는 ‘아비투스(habitus)’의 장벽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2022년 올해의 외국 영화는 “아바타:물의 길”과 “탑건:매버릭”의 2파전이 될 것 같습니다. 두 영화 모두 뼛속까지 영화인이라고 할 수 있는 제임스 카메론과 톰 크루즈가 제작과 감독 또는 주연을 맡은 영화입니다.  

두 사람 모두 큰 스케일의 영화를 추구하고 극장에서의 ‘영화적 경험(cinematic experience)’’을 강조하는 필름 메이커 들인데, 흥미로운 것은 한 사람은 CG(디지털)의 극한까지, 또 한 사람은 거꾸로 실사(아날로그)의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영화인이라는 점입니다. “아바타”는 해를 넘겨서도 당분간 흥행 독주를 펼칠 걸로 보이는데, 1편과 “범죄도시2”의 흥행 성적을 넘어설지도 관심사입니다.

2022년은 일본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떠오른 하마구치 류스케의 해이기도 했습니다.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을 받은 “드라이브 마이 카”가 연초에 상영됐고, 곧이어 베를린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던 “우연과 상상”이 봄에 개봉해 호평을 받았습니다. (씨네멘터리 #24 "넌 지금 행복해?"…'대화의 마법사'의 신작) 2021년 12월 말에 개봉한 “드라이브 마이 카”가 최근 재개봉했고, 올해 초반까지 장기 상영하며 흥행했다는 점, 2022년 씨네멘터리에서 다룬 첫 영화였다는 점을 감안해 두 편 모두 베스트 10에 포함시킵니다. 

이제 다섯 편이 남았네요. 마블의 멀티버스론에 지쳐갈 무렵 저예산으로 기발하게 멀티버스를 구현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도 리스트에 넣어봅니다. 한번 보면 에브리씽을 다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좀 정신없는 영화이긴 하지만 지난해 10월 12일 개봉 이래 지금까지도 상영되면서 35만여 명의 관객을 불러 모으고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독립 영화 2편을 꼽았습니다. 먼저 70년대 청계천 평화시장 소녀공들이 자신들의 청소년기와 당시 사회 현실을 진솔하게 털어놓은 영상구술사 “미싱타는 여자들”입니다. 이제는 초로에 접어든 이들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영화가 기록해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한 편은 이일하 감독의 “모어”입니다. 소수자로 살아 온 드랙 아티스트 모지민 씨의 인생을 딱딱하거나 지루하지 않게 독특한 형식의 다큐멘터리 영화에 녹여냈습니다. “헤드윅”의 주인공 존 카메론 미첼이 깜짝 등장합니다.  두 영화는 유명한 민중 가요(“미싱타는 여자들”)와 80년대 히트곡, 이랑의 음악이 나와(“모어”) 음악 듣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이제 두 편이 남았네요. 어떤 영화를 넣어야 할지 고민됩니다. 

우선 이정재 감독·주연의 “헌트”를 넣어보겠습니다. 오랜 기간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발전시켜 온 시나리오에 한국의 굴곡 많은 현대사를 오락 영화의 틀 안에서도 비교적 매끄럽게 담아내 스타 배우 출신 감독에 대한 선입견을 부끄럽게 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지막 한 편은 “올빼미”입니다. 명작이라고 하기엔 2% 부족해 보이는 게 사실인데, 톱 스타라고 하기에는 2% 부족한 캐스팅과 제작비로 이 정도 대중성과 완성도를 보여주는 상업 영화를 뽑아내는 건 분명히 운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안태진 감독이 앞으로 내놓을 영화에 따라 아직 상영 중인 이 영화에 대한 평가가 더 풍부해질 수 있다고 봅니다.

이상 10편 외에도 “어나더 라운드”, “해탄적일천(대만 뉴웨이브의 거장 에드워드 양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39년 만의 한국 정식 개봉)”, “놉”,  “거래완료”, “아마겟돈 타임”, “알카라스의 여름” 등을 후보작에 올려놓습니다. 

     이 밖에도 2022년 '씨네멘터리'는 영화를 둘러싼 여러 가지 궁금증을 풀어봤습니다. 영화 러닝 타임이 점점 길어지는 이유는 무엇인지, 티켓값은 얼마가 적정한지, 4K 리마스터링 영화는 어떻게 탄생하는지, 한국 블록버스터의 스펙터클한 장면은 어떻게 구현되는지등등입니다.

     2022년은 넷플릭스, 디즈니+ 등 스트리밍 서비스들이 많은 작품들을 쏟아내며 코로나로 맞이한 기회의 정점을 찍은 한 해이기도 했습니다. 반면 한국 영화는 지금 상영하고 있는 윤제균 감독의 “영웅”처럼 대부분 코로나 이전에 기획되고 제작된 작품이 한 해 내내 시장에 풀렸고 아직도 창고에 있는 많은 작품들이 개봉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위기가 유예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독립예술영화 쪽도 사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국내 유일의 영화주간지 “씨네21”은 2022년 베스트 한국 영화 10선에 독립예술영화를 무려 8편이나 올려놓았지만, ‘팬데믹 이전과 비교했을 때 관객 수 1만 명의 장벽은 훨씬 높아져 있는 상태’라고 썼습니다. (“씨네21” 1383호 ‘2022년 독립영화계를 말한다’) 올해 한국 독립예술영화 중 관객 1만~2만 명 대는 약 20편, 3만 명 이상은 5편 안팎입니다. 또 “벌새”, “윤희에게”(이상 2019년), “찬실이는 복도 많지”, “남매의 여름 밤”(이상 2020년) 등 흥행과 작품성 모두 평가를 받으며 존재감을 드러낸 독립예술영화가 올해에는 눈에 띄지 않았다고 이 잡지는 평가했습니다.

     이렇게 2022년을 보내며 한 해의 한국 영화계를 정리해봤습니다. '씨네멘터리'는 2022년 총 55편의 에피소드로 독자 여러분과 만났습니다. 지난 한 해 성원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쿠키> 2022년 ‘올해의 000’

○ 올해의 영화인: 마동석 ("범죄도시2”)
○ 올해의 부사: 마침내 (“헤어질 결심”)
○ 올해의 명령: 발포하라! (“한산”)
○ 올해의 질문: 한국에서는 결혼했다고 좋아하기를 중단합니까? (“헤어질 결심”)
○ 올해의 제목: “헤어질 결심” (씨네멘터리 #23 '헤어질 결심'과 '중경삼림'의 작명학)
○ 올해의 클래식:  슈만 "어린이 정경" 1곡 ‘미지의 나라들로부터’ (“우연과 상상”)
○ 올해의 자동차: 사브900 (“드라이브 마이 카”)
○ 올해의 비행기: F/A-18 슈퍼호넷 (“탑건”)
○ 올해의 간병인: 탕웨이(“헤어질 결심”)
○ 올해의 행정구역: 강원도 고성군 태국면 (“헌트”)
○ 올해의 소도시: 진해 (“창밖은 겨울”)
○ 올해의 제2외국어: 페르시아어 (“페르시아어 수업”)
○ 올해의 수사: “비상선언” 역바이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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