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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로켓 섬광 대소동, 이유는 '홍어'…예고 못한 짠한 사연들

어제 저녁 시민들이 촬영한 발사체 모습. 왼쪽은 단 분리가 되는 순간이고, 오른쪽은 단 분리 이후 섬광이 확산되는 모습이다.
▲ 어제저녁 시민들이 촬영한 발사체 모습. (왼쪽은 단 분리가 되는 순간이고, 오른쪽은 단 분리 이후 섬광이 확산되는 모습이다.)

어제(30일) 오후 6시를 갓 넘기자 경찰, 군, 언론사에 "하늘로 섬광이 솟구치고 있다"는 신고가 빗발쳤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찍힌, 하늘로 길게 뻗은 섬광의 영상과 사진도 함께 제보됐습니다. 국방과 과학 담당 기자들이 여기저기 문의해봤지만 돌아오는 답은 "모른다"였습니다. 김포부터 부산까지 두루 보인다니 상당한 고도까지 무엇인가 치솟았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군 레이더에 잡힐 텐데, 합참 측은 "현재 진행 중인 군 훈련은 없다"고만 답변했습니다.

휴전선 가까운 북한 땅에서 미사일을 쐈거나, 북한 무인기 격추 작전일 수도 있어서 불안과 긴장이 엄습했습니다. 혼란이 극에 달하던 오후 6시 45분, 국방부는 기자단에 "고체 추진 우주발사체 시험비행 성공"이라는 짧은 공지를 보냈습니다. 고체연료 추진 방식의 로켓을 시험발사한 것입니다. 의문의 섬광은 로켓의 비행운이었습니다. 군사정찰위성을 우주로 보낼 로켓 개발을 위해 한 걸음 내딛는 시험이었습니다.

발사의 의미야 어떻든, 깜깜한 저녁 시간에 사람들 놀라지 않게 사전에 미리미리 알렸으면 얼마나 좋았겠냐는 핀잔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반응입니다. 하지만 말 못 할 극비 개발이라는 점, 로켓 발사의 짠한 애환 등 뒷이야기를 알면 영 이해 못 할 바도 아닙니다.

'홍어 잡이'에 달린 발사 시점


홍어

고체연료 추진 방식의 우주발사체는 국방과학연구소가 개발하고 있습니다. 어제 시험발사도 국방과학연구소의 충남 태안 안흥 시험장에서 실시됐습니다. 안흥 시험장 외의 다른 발사 장소는 없습니다. 서해안이라 중국이 있는 서쪽, 북한이 있는 북쪽으로 못 쏩니다. 남쪽으로만 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태안 이남 바다에서 홍어가 많이 잡힌다고 합니다. 어선들이 많습니다. 로켓을 발사하려면 먼저 어선들을 대피시켜야 합니다. 고역입니다. 기껏 형성된 홍어 어장 포기하고 며칠씩 어선 철수하라고 어민들에게 강요할 수 없는 노릇.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어민들 생업에 지장이 안 되는 범위에서 설득도 하고 보상도 하면서 시험발사 날짜와 시간을 잡는다"고 말했습니다.

원래 시험발사 날짜는 1~2주 전이었지만 어선 소개가 잘 안돼 어제로 미뤄졌습니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어민들과 협의해서 겨우 받아낸 시간이 밤 9시였는데 오후 6시가 다가오면서 어선 소개도 다 됐고 그나마 좀 이른 시간이라 서둘러 발사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섬광이 보이지 않을 시점에 쏘면 좋았겠지만 잠시 잠깐 기회의 창이 열리자 앞뒤 안 가리고 버튼을 누른 것 같습니다. 국방과학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우리도 낮에 섬광 없이 조용히 쏘고 싶다", "온갖 발사체 개발 일정 때문에 툭하면 배 빼야 하는 어민들 사정도 딱하다"고 토로했습니다. 한 바다를 번갈아 나눠 쓰는 어민과 국방과학자의 동병상련입니다.

어쩔 수 없이 공개한 비밀사업


지난 3월 실시된 고체연료 우주발사체 추진 시험. 어제는 2차 시험발사로 2단과 3단 추진체를 점검했다.

고체연료 추진 방식의 우주발사체 개발은 비닉(秘匿) 사업입니다. 비밀리에 숨겨서 하는 사업이라는 뜻입니다. 국회에도 보고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비닉 무기의 시험발사 일정은 국방부의 극소수 인원에게만 공유됩니다. 최고 등급의 비공개 사업임에도 어제 국방부는 공개했습니다. 연말 저녁 섬광 대소동이 벌어졌으니 이실직고 외 다른 방도가 없었습니다.

땅은 좁고, 바다는 어선으로 붐비는 우리나라에서 안전하고 조용하게 비밀 무기 개발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미국, 중국은 땅이 넓어서 사막이나 바다의 외진 귀퉁이에서 막 쏴도 비밀이 보장됩니다. 북한은 인민들 안전 무시하고 서해안에서 내륙 관통해 동쪽으로 발사합니다. 우리 국방과학은 이런 사정, 저런 사정 피해 가며 겨우겨우 쏩니다.

여러 사람 놀랐고 비닉 사업 공개됐다지만 다 지나간 일이고, 어쨌든 어려운 과업에 성공했습니다. 국방과학연구소 과학자들에게 박수를 보내줬으면 좋겠습니다. 가깝게는 정찰위성, 좀 멀게는 고체연료 신형 탄도미사일을 확보하는 자주국방의 한 과정을 통과했으니 박수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어제는 2단, 3단 추진체 시험까지 했습니다. 최고 난도라는 1단 추진체 탑재 발사, 정찰위성 탑재 발사가 남았습니다. 1, 2, 3단 완전체 로켓과 정찰위성은 아무도 모르게 감쪽같이 쏠 수 있도록 십시일반 도와주면 우리 국방과학자들은 꼭 목표를 이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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