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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일주일에 40억씩 번 보이스피싱 조직, 창립자는 전직 '경찰'이었다

[꼬꼬무 찐리뷰] 일주일에 40억씩 번 보이스피싱 조직, 창립자는 전직 '경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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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22일 방송된 '사람을 죽이는 목소리-발신:김미영 팀장'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손호준, 공승연, 가수 카더가든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무서운 목소리

때는 2010년 가을, 충남 천안이야. 29살 안정엽 씨는 한 거리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그녀'를 찾았어. 정엽 씨는 그녀를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한눈에 그녀를 알아봤어. 마치 혼이 나간 사람처럼, 안색이 창백한 그녀의 표정 때문이야. 정엽 씨는 다가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어. "저, 신고하신 분 맞죠?"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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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정엽 씨는 3년 차 순경이야. 순찰 중에 '범죄 신고가 접수됐으니 출동하라'는 무전을 받았고, 신고자이자 피해자인 그녀를 만났어. 그녀는 낯선 남자한테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는 소름이 쫙 끼쳤다고 했어. 자신을 '검찰 수사관'이라고 소개한 수화기 너머 그 남자는, 고압적인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대.

"수고하십니다. 서울지검 첨단범죄수사팀 ㅇㅇㅇ수사관이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고 본인과 관련된 명의도용 사건 때문에 몇 가지 사실 확인차 연락을 드렸습니다. 범인 현장에서 본인 명의의 통장이 나왔습니다. 그 통장이 범행에 이용돼서 피해를 본 사람이 수백 명입니다. 지금 본인 계좌에 있는 돈도 범죄수익인지 확인해야 하니까 당장 국가안전계좌로 송금하세요."

맞아. 보이스피싱 전화였어. 그녀는 너무 겁이 나서 아무 경황이 없었대. 제대로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남자가 불러준 계좌로 돈을 보내 버린 거야. 송금한 돈은 무려 1억 3천만 원. 안 순경은 금액을 듣고 깜짝 놀랐어. 그녀는 자기랑 동갑, 29세였거든. 사회 초년생 나이인 그녀는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모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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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는 고아원에서 자랐고, 내가 행복한 가정을 꾸리려면 꼭 집이 있어야 되겠다는 목표가 생겼대요. 그래서 19살 때부터 공장에 들어가 일을 했는데 '먹고 싶은 거 안 먹고 사고 싶은 거 안 사고 모은 돈이다' 그런 말씀을 하시는데 충격적이었죠."
-안정엽, 당시 출동 순경

'가족'이란 단어가 자기 인생에 없었던 그녀가 그걸 꿈꾸며 모으고 모은 돈. 그 피 같은 전재산이 전화 한 통에 사라져 버린 거야. 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울면서 안 순경한테 "제 돈 찾을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어. 그녀의 간절한 눈빛을 보며 안 순경은 "우리나라 경찰 수사력이 세계 최고인 거 아시죠? 걱정 마세요"라며 위로했어. 그때까지만 해도 수사라는 걸 제대로 해 본 경험이 없는 안 순경은 당연히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 범죄에 이용된 전화번호도 알고 계좌번호도 있으니까. 그렇게 파출소에 피해 접수를 하고, 사건을 경찰서로 이관했어.

얼마 후 이 사건을 담당한 선배를 술자리에서 만난 안 순경은 보이스피싱 범인을 잡았냐고 물었어. 그 선배는 안 순경에게 "보이스피싱은 못 잡는 범죄"라고 말했어. 안 순경은 이해하지 못했어. 전화번호랑 계좌번호가 있는데 왜 이걸 못 잡느냐며, 선배가 능력이 부족한 거 아니냐고 화를 냈어. 그녀의 간절했던 눈빛이 떠올라 울컥하기까지 했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친구라는 사람이 파출소를 찾아왔어. 그녀가 연락이 안 된다며 실종신고를 하고 싶대. 그때 안 순경은 '뭔가 잘못됐구나'를 느꼈어. 그녀는 결국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됐어.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거야. 안 순경은 화도 나고 슬프고, 한편으로는 무서움도 느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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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진짜 무섭구나 느꼈어요. 돈만 가져가는 게 아니라, 경제 살인이구나. 사람의 목숨까지도 가져갈 수 있구나."
-안정엽, 당시 출동 순경

▲ 보이스피싱범 검거에 모든 걸 바친 남자

얼마 후, 안 순경은 지능범죄수사팀에 지원했어. 마음속으로 그녀한테 보이스피싱범을 꼭 잡겠다고 약속했거든. 팀을 옮긴 안 순경은 정말 미친 듯이 수사했어. 보이스피싱범이라 의심되면 무작정 며칠씩 미행했고, 두 달 동안 집에도 못 들어갔어. 보이스피싱 사건을 가지고 해 볼 수 있는 조사란 조사는 다 해봤어. 그렇게 두 달을 보냈지만, 안 순경은 단 한 명의 보이스피싱범도 잡지 못했어. 신고를 받고 달려가면, 이미 은행에서 돈을 뽑아 사라진 후야. 대포 통장을 쓰니 추적도 불가능해. 피해자는 늘어만 가고 속수무책이야. 그제야 안 순경은 깨달았어. "보이스피싱은 못 잡는 범죄"라고 했던 선배의 말이 맞았다는 걸.

그날도 하루종일 허탕만 친 안 순경. 밤늦게 퇴근한 후 TV를 보다가 눈이 번쩍 뜨이는 뉴스를 봤어.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 보이스피싱범을 검거했다는 뉴스였어. '우린 못 잡았는데 저긴 어떻게 잡았지?' 하는 생각에 안 순경은 뉴스에 나온 그 경찰서를 직접 찾아가 검거 방법을 물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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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순경이 간절하게 물어보자 서울 형사는 검거 노하우를 알려줬어.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어. 현재도 이용되는 수사기법이라, 범인에게 노출되면 안 되거든. 이렇게 얻은 노하우는 효과 만점이었어. 안 순경은 곧바로 현금 인출책으로 의심되는 남자를 포착했고, 그가 ATM 기계에서 돈을 인출할 때를 노렸어. 남자는 카드를 바꿔가며 30분 동안 돈을 뽑았어. 가만히 살펴보니, 그 남자 주변으로 다른 남자들이 더 모여들었어. 이들은 은행을 돌면서 돈을 뽑은 현금인출 조직이야. 안 순경과 형사들은 이들을 덮쳤고, 사기 현행범으로 체포했어. 안 순경에게는 경찰 인생 첫 검거였어. 그 자리에서 압수한 돈은 무려 8700만 원.

"피해자에게 피해금 돌려준다고 전화하니까, 피해자가 막 감사하다고 하는데 정말 보람찼어요. 그동안 경찰 생활하면서 느껴보지 못했던 갖가지 희열, 보람, 긍지를 다 느꼈던 거 같아요."
-안정엽 순경

그 후로 안 순경은 매일 야근을 하는데도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 보이스피싱범들을 줄줄이 계속 잡았거든. 어느새 햇병아리였던 안 순경은 베테랑 안 형사로 성장했어.

그런데, 여전히 목이 말라. 보이스피싱 피해가 줄지 않거든. 실제 보이스피싱 범행을 이끌어나가는 중심은 해외에 있는데 그들을 잡지는 못하고, 국내에서 심부름만 하는 말단 조직원만 검거하니 회의감도 들어. 그래서 안 형사는 새로운 목표를 세웠어. '상선'을 잡자는 것. 물론, 쉬운 일은 아니야. 보이스피싱의 본거지는 해외에 있고, 국내 인출책들은 상선이 누군지, 어디 있는지도 몰라. 그래도 간절히 원하면 이뤄진다고, 어느 날 안 형사에게 기회가 왔어.

▲ 이 중에 '상선'이 있다

안 형사 일행은 미행을 눈치채고 도주하는 인출책 일당을 쫓느라 고속도로에서 추격전을 벌였어. 눈 내리는 고속도로를 시속 180km로 달리는데, 앞서 가던 인출책 일당이 차창 밖으로 뭔가를 휙 던졌어. 안 형사는 끈질긴 추적 끝에 이들을 검거하는 데 성공했고, 이후 눈 쌓인 고속도로를 되짚어가며 그들이 버린 게 뭔가 찾았어. 도망가는 와중에 버린 거면 분명 중요한 물건일 테니까. 그렇게 고속도로 갓길 주변을 뒤지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 뭔가 반짝이는 걸 발견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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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버린 건, 체크카드와 통장 수십 개였어. 피해자들의 돈을 인출하는 데 사용한 거야. 그런데 이 통장 뭉치에서 정말 중요한 단서, 계좌번호 하나가 발견됐어. 인출된 피해 금액이 흘러 들어간 계좌였어. 이 계좌의 주인은, 불법 환전상이었어.

범죄 수익을 해외에서 직접 받으면 거래 내역이 남으니, 보이스피싱 조직은 불법 환전상을 통해 자금 세탁을 거쳐 돈을 전달받았어. 불법 환전상의 계좌번호를 알아낸 안 형사는 '미친 짓'을 해보기로 했어. 이 불법 환전상한테 송금받은 사람들의 계좌를 전부 동결시켜 버린 거야. 무려 189개의 계좌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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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계좌를 지급정지 시키자, 경찰서에는 항의 전화가 빗발쳤어. 유학생, 해외 사업자 등 환전 비용을 아끼고자 불법 환전상을 이용한 사람들이 돈을 못 찾으니 계좌를 풀어달라 난리를 쳤어. 안 형사는 이들에게 불법 환전을 한 건 사실이니, 억울하면 경찰서에 나와 조사를 받으라고 말했어. 그렇게 안 형사는 한 명도 빠짐없이 조사했는데, 대부분 보이스피싱과 상관이 없어 보였어. 세 사람만 제외하고.

그 세 사람 중 하나는, 중국을 오가며 중고차 무역업을 하는 장 씨야. 장 씨는 직원들 월급계좌가 묶여서 월급을 못 쓰고 있으니 계좌를 풀어달라 했어. 두 번째는, 퇴직 후 필리핀에서 동생과 여행사를 운영한다는 박 씨. 그는 점잖은 목소리로 보이스피싱을 잡는데 뭐든 도와주겠대. 마지막 세 번째는 중국에서 사우나를 운영하는 김 씨. 직업만 200명이 넘는 건실한 사업채래.

안 형사는 김 씨한테만 한국에 와서 직접 조사를 받으라 했어. 김 씨의 신상관계를 확인하다 보니, '조폭'으로 등재가 돼있던 거야. 김 씨는 흔쾌히 조사받으러 오겠다고 했고, 실제로 경찰서에 나타났어. 형사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조사를 받은 김 씨는 불법 환전은 인정한다며 입건하면 처벌을 달게 받겠다고 했어. 하지만 자신은 보이스피싱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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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를 포함해 장 씨, 박 씨까지 세 명 모두 경찰에 소명 자료를 완벽하게 제출했어. 서류상으로는 전혀 문제 삼을 게 없어. 안 형사는 다시 고민에 빠졌어. 이 189명 중에 분명 보이스피싱범이 있을 텐데, 어떻게 추적해야 할까.

▲ 거대 보이스피싱 조직 창립자, 그의 반전 과거

그리고 얼마 후, 안 형사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어. 바로 중고차 무역업자 장 씨였어.

"형사님, 저 기억하십니까? 지금 만나주면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하나 해주겠습니다."

안 형사는 곧바로 장 씨를 만나러 갔어. 장 씨는 날도 흐린데 선글라스를 쓰고 나타났어. 가까이서 보니, 얼굴이 온통 멍투성이야. 장 씨는 자신의 신변을 보장해 달라며,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꺼냈어. 직원 월급을 줘야 하니 지급 정지된 계좌를 풀어달라 요청했던 장 씨. 알고 보니 그 직원이란 사람들이 다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이라는 거야.

장 씨는 1년 전쯤인 2012년 청도에서 그들을 만났어. 중국에서 사업하는 사람들이라 소개를 받았고, 투자를 받을 수 있을까 싶어 관계를 맺었대. 어느 날 그들은 장 씨에게 도움을 청했어. 자기네 계좌가 범죄계좌로 오해를 받아 지급정지 됐으니 경찰에 소명하는 것을 도와줄 수 있냐고. 장 씨는 좋은 마음으로 계좌 푸는 걸 도와줬대. 그 이후 장 씨는 그들과 급속도로 친해졌는데, 우연히 그들의 정체가 보이스피싱 조직이라는 걸 알게 된 거야.

장 씨는 일단 자신이 눈치챘다는 걸 숨기고, 은밀하게 놈들의 정보를 수집했어. 그런데 어느 날, 장 씨가 술에 취해 정체를 안다고 실수로 말해버린 거야. 장 씨의 말에 그들의 눈빛은 싹 변했고, 장 씨에게 조용히 하라 경고하며 집단 구타했어. 장 씨는 그 길로 귀국한 후 안 형사한테 전화를 건 거야. 장 씨는 자기가 파악한 놈들의 정체를 그림으로 알려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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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일당의 조직도야. 흡사 멀쩡한 기업체 조직도 같지? 제일 아래쪽은 콜센터에서 피해자와 통화하는 팀원들인데 많을 땐 이 사람들이 200명이 넘는대. 그리고 그 사람들을 관리하는 팀장, 그 위엔 그룹 계열사처럼 사장단이 포진돼 있어. 그리고 맨 위에 우두머리인 총책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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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보이스피싱 콜센터의 실제 모습이야. 가구공장으로 위장한 콜센터 내부 모습인데, 그냥 일반 회사 같은 모습이야. 더 놀라운 건, 이 거대 조직의 우두머리, 총책의 정체야. 바로 조폭 출신 김 씨가 총책이었어. 자기 발로 경찰서를 찾아와서 보이스피싱은 모른다고 했던, 바로 그 사람. 보통 강심장이 아니야.

"수사를 보이스피싱 때문에 시작을 했고, 최종 목표로 생각했던 게 눈앞에 다가왔으니까. 찌릿찌릿 정도가 아니고 흥분 그 자체였죠. 그렇게 갈망하던 보이스피싱의 본체, 본진. 이 조직을 이끌어가는 총책. 드디어 누군지 특정했다는 게..."
-안정엽 형사

이게 끝이 아니야. 동생과 여행사를 운영한다는 박 씨. 보니까 이 사람도 보이스피싱 관련자야. 이 박 씨의 정체는 더 놀라워. 알고 보니 박 씨는 총책 위의 총책, 이 거대 보이스피싱 조직을 만든 창립자 박 회장이었어. 수사를 해보니 이 박 회장은 보통 사람이 아니야. 이 조직원들 사이에는 박 회장에 대해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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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회장이 중국 청도에 나타난 건 2010년. 당시 보이스피싱 콜센터의 풍경은, 예전 '개그콘서트'에서 개그맨 정찬민, 이수지가 하던 코너 '황해'의 모습과 흡사했어. 당시만 해도 보이스피싱 전화를 거는 사람들이 대부분 중국 동포라, 특유의 억양이 있었고 수법도 원초적이고 허술했어. 그래서 상대방을 속이기가 쉽지 않아. 박 회장은 사람들을 더 잘 속이기 위해 세 가지 변화를 시도했어.

첫 번째는, 목소리를 바꾸는 것. 박 회장은 콜센터 직원들을 한국에서 데려와서 표준어를 구사하고 신뢰감 가는 목소리를 선별했어. 두 번째는, 보이스피싱 아이템을 바꿨어. 그리고 피해자를 낚기 위해 이런 문자메시지를 보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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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영 팀장입니다. 고객님께서는 최저 이율로 최고 3000만 원까지 30분 내 통장 입금 가능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며 누구나 한 번은 받아봤을 이 문자. 보이스피싱의 상징, '김미영 팀장'은 박 회장의 창조물이야. 박 회장이 개발한 새 아이템은, 바로 대출사기였어.

박 회장의 세 번째 변화는 수신자를 바꾸는 거였어. 저축은행 같은 제2금융권에서 대출이 거절된 사람들의 명단을 사들였고, 이미 빚이 많거나 신용도가 낮은 이런 사람들을 주요 타깃으로 삼았어. 이런 박 회장의 수법들은 얼마나 성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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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받으려는 사람들은 돈이 없는데, 그 사람들한테 돈을 뜯어내는 거니까. 진짜 발상의 전환이죠. 대출 사기형 보이스피싱을 만들면서 새로운 장을 연 거죠. 공범들은 '보이스피싱의 르네상스가 왔다'라고 이야기했었어요."
-안정엽 형사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 사기를 치는 게 어떻게 실제로 가능했을까? 비밀은 '디테일'에 있었어. 박 회장은 보이스피싱 대본, 일명 '멘트지'를 만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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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회장이 직접 대본을 쓰고, 전직 은행원이 감수를 했대. 대본에는 은행에서 사용하는 전문 용어들로 대출을 위한 대사들이 적혀있고, 심지어 상대가 의심할 경우를 대비해 상황별 대처 멘트까지 상세히 적어놨어. 어떻게 하면 상대를 속여 돈을 뽑아낼지, 연구를 거듭해서 만든 치밀한 시나리오야. 도대체 이 박 회장, 뭐 하는 사람이길래. 이렇게 치밀하게 준비한 걸까? 이게 박 회장의 과거 사진이야.
꼬꼬무

경찰 제복을 입고 있지. 박 회장은 알고 보니 전직 경찰이야. 그것도 사이버 범죄 수사대 소속이었어. 그는 보이스피싱범들을 수사하던 경찰이었어.

▲ 힘든 사람들의 희망을 노린, 악랄한 수법

과연 이놈들은, 어떻게 피해자를 낚는 걸까. 실제 이 박 씨 조직의 콜센터에 있던 사람을 '꼬꼬무'가 직접 만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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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에 일을 시작합니다. 한국이 한 시간 늦다고 하더라고요. 한국 금융권이 9시에 시작하잖아요. 9시부터 4시까지, 장 마감이 오후 4시니까. 12시에 점심시간 빼고 나머지는 계속 전화 통화하면서 이어가는 거죠."
- 보이스피싱 콜센터 제보자

실제 은행 운영시간에 맞춰 똑같이 일을 시작하는 콜센터 직원들이 전화기 앞에 앉으면, 곧바로 오늘 전화할 사람들의 전화번호와 개인 정보가 담긴 데이터베이스를 나눠줘. 거기엔 직업, 대출 이력, 대출 희망 금액, 거절 사유, 신용불량, 대출 한도 초과, 개인 회생 이력 등 모든 정보가 담겨 있어. 타깃이 언제 은행에 대출을 시도했고, 얼마를 원했는데 거절당했는지, 그런 내용이 다 들어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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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보를 토대로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 "저는 XX은행의 장ㅇㅇ 대리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한 후, 며칠 어디 은행에서 얼마를 대출 원했지만, 거절당하지 않았냐고 물어. 너무 정확히 알고 있으니, 피해자는 전화상대가 은행 직원이 맞다고 믿게 돼. 그리고 이때, "제가 살펴보니까 대출이 가능하실 거 같아 전화드렸습니다"라고 말해. 살짝 의심스럽긴 해도, 대출이 된다는 솔깃한 제안에 돈이 필요한 피해자는 전화를 끊을 수가 없어.

요구하는 서류를 알려준 팩스번호로 보내. "빠르면 오늘 중으로 원하는 1000만 원 받아볼 수 있다"는 장 대리의 말에 피해자는 희망이 솟아나. 장 대리가 위기의 순간에 나타난 천사 같아. 바로 이 때, 한마디를 덧붙여. "고객님의 신용 평점이 워낙 낮으시잖아요. 대출을 받으시려면 보증이 필요한데, 보증보험 가입 비용이 13만 원 정도인데, 가능하실까요?"라고. 1000만 원을 대출해 준다는데, 13만 원이 대수야? 그래서 그 13만 원을 당장 보내. 그게, 보이스피싱 피해의 첫 시작이야.

잠시 후, 또 다른 사람에게 전화가 걸려와. 이번엔 XX은행 결재팀의 김미영 팀장이래. 서류를 받았는데 신용 평점이 너무 낮아 대출을 못 해주겠다면서 전화를 끊어버려. 고도의 심리전이야. 일부러 '밀당'을 하는 거야.

또다시 전화가 와. 이번에 피싱범 장 대리야. 장 대리는 원래는 대출이 안되는데 방법이 있긴 하다며, 6개월치 이자 200만 원을 선납하면 대출 가능하다고 말해. 200만 원이란 말에 부담스러워 하니, 장 대리가 너무 안타까워하며 절반인 100만 원을 자기 사비로 내주겠대. 이런 장 대리가 얼마나 고맙겠어. 1000만 원 대출이 코 앞인데, 피해자는 100만 원을 보낸 후에 대출금이 들어오길 기다려.

또 전화가 걸려와. 이번에도 장 대리인데, 피해자가 과거 대출받은 이력을 들먹이면서 금감원에서 대출한도 초과라 대출이 불가하다고 했다고 말해. 대출을 해주고 싶은데 너무 안타깝다며, 이걸 해결하지 않으면 절대 대출이 안 나온다고 혼내기도 해. 피해자가 어떻게 해결해야 하냐 물으면, 거기서 금액이 커지는 거야. 이때 장 대리는 다시 당근을 내밀어. 대출을 받으려면, 빚 갚을 소득이 있는 척 꾸미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그건 본인들이 할 테니 작업에 필요한 300만 원을 보내라고 해. 금액이 커지니 피해자는 불안해하지. 이때 하는 말이 있어. "이 돈은 대출을 받으면 다 돌려드려요"라고.

은행 홈페이지를 확인하면 실제로 장 대리의 이름이 있으니 피해자는 더 믿게 돼. 당연하지. 피싱범이 실제 있는 이름을 도용했으니까. 그렇게 피해자는 주변 돈을 어떻게든 끌어 모아, 힘들게 300만 원을 만들어 보냈어. 그리고 또 전화가 와. 이번엔 금감원이야. 금감원 직원이란 사람은, 서류 조작해서 대출받는 거 불법인지 몰랐냐며, 불법대출을 시도했으니 벌금 700만 원을 내야 한대. 고객이 400만 원, 불법 대출을 해준 은행이 300만 원을 부담하래. 그리고 대출도 안 된대. 본인이 불법 대출에 가담했다고 생각한 피해자는, 또 어떻게든 주변 돈을 끌어 모아서 400만 원을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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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대리, 김미영 팀장, 그리고 금감원 직원까지. 전부 다 보이스 피싱범들이야. 셋이서 이 피해자 한 사람의 돈을 더 뜯어내기 위해 머리를 맞대. 작전회의 끝에, 금감원 직원이 다시 피해자한테 전화를 걸어. "절대 안되는 대출이지만, 장 대리 얼굴 봐서 대출은 해주겠다"고 말해. 이쯤 되면, 피해자는 장 대리를 운명 공동체처럼 생각해. 여러 차례 통화하며 장 대리와 호칭도 친근해져.

"어느 순간 가족이 되는 거예요. '선생님' 됐다가 '고객님' 됐다가, 나중에 친해지잖아요? 그럼 '엄마'라고 합니다. '이렇게 했는데 왜 돈이 안 나오냐?' 하면, '엄마가 더 노력해 봐라. 내가 엄마 도와주려고 이러는 거지 나 좋으라고 이러는 거 아니다' 이런 식으로 말하죠."
- 보이스피싱 콜센터 제보자

그 후로도 온갖 명목으로 입금을 요구해. 불법 조회 기록을 삭제해야 한다, 전산 처리 비용이 든다, 이러면서. 심지어 처리 과정이 오래 걸려서 대출이 취소됐다면서, 지금까지의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도 해. 어느 순간 보낸 돈은, 대출 희망 금액을 넘어. 1000만 원 대출 받으려다가 5000만 원을 보낸 사람도 있어. 당시 50세 싱글맘이었던 윤지은(가명) 씨도 피해자 중 한 사람이야.

"또 보내고 또 보내고. 얼마 보내면 바로 대출금 보내겠다. 5~6일 동안 수백 통의 전화를 한 거 같아요. '찾으려면 돈을 보내야 한다' '내가 보낸 돈 받아야겠다' 대출은 둘째 문제고 내 돈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그 생각에 더 빠져든 것 같아요. 이제 물불 안 가리고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빌리고. 아들 보험까지 해약해서 한 입에 다 털어 넣은 거죠."
-윤지은(가명). 당시 50세 싱글맘, 대출 사기 보이스피싱 3천만 원 피해

아직 끝이 아니야. 어느 순간 느껴지는데, 더 이상 피해자한테 나올 게 없다고 생각하면 마지막 작업에 들어가. 장 대리가 다시 전화를 걸어. 피해자가 울면서 애원해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아. "이제 다 끝났다. 10만 원만 더 보내면 된다"며 마지막 한 방울의 피까지 쪽 빨아먹는 거야. 그제야 피해자들은 사기라는 걸 깨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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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은 생각도 많이 했죠. 내가 여기서 떨어져 죽으면…. 그런 생각을 하면, 제가 싱글맘이니까. 제가 죽으면 자녀들 걱정, 자녀들 때문에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지만. 많이 힘들었어요. 그게 있잖아요. 돈만 잃는 게 아니더라고요. 사람이 완전 바보가 되더라고요. 신임도 잃고. 그래서 그거 회복하는데 참 세월 많이 흘러요."
-윤지은(가명). 당시 50세 싱글맘, 대출 사기 보이스피싱 3천만 원 피해

이 보이스피싱 조직은 어마어마한 수익을 냈어. 일주일에 무려 40억 원 정도의 수익을 올렸대. 그땐 속일 사람도 많고 돈 보내는 사람도 너무 많은데, 대포통장이 모자라서 그 돈을 다 못 받을 정도였대. 조직의 사장단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을 휘감고, 주말마다 유흥가를 누비면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어.

▲ 10년 간의 추적, 10년 만에 지킨 약속

이제 정체를 알았으니 이 악마 같은 놈들 잡아야지. 근데 이 조직의 본거지는 중국이야. 안 형사는 공안에 협조를 요청했어. 석 달 만에 온 답은 '협조 불가'였어. 그럼 선택지는 하나야. 국내에서 검거해야 해. 최대한 이들이 한국에 많이 들어왔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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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로 잡은 날짜는 추석이야. 조사해보니, 이 조직원들이 지난 설날에 한국에 많이 들어왔었더라고. 그럼 이번 추석 때도 많이 들어올 것이라 생각한 안 형사는 일당의 출입국 상황을 24시간 감시했어.

드디어 조직원 하나가 들어왔어. 그리고 뒤를 이어 하나, 둘 계속 입국하기 시작해. 근데 아직 총책이 안 들어왔어. 가장 중요한 건 총책이니, 총책이 들어와 있는 시점, 그리고 사장단, 팀장급이 가장 많이 들어와 있을 때를 검거 디데이로 잡고 기다렸어.

점점 입국하는 조직원 수가 늘어나고, 입국자가 20명을 넘었어. 총책을 기다리며 애가 타는 순간, 드디어 총책 김 씨가 한국땅을 밟았어. 하지만 박 회장은 아직 입국 전이야. 바로 그때, 서열 6위 정도 되는 사장급 조직원이 한국에 들어왔다가 몇 시간 만에 바로 다시 중국으로 출국했어. "어? 혹시 정보가 새어 나갔나?" 싶었어. 더는 못 기다려. 들어온 놈들이 다시 나갈 수도 있으니. 바로 출국금지를 시켰어.

총 28명이 포위망 안으로 들어왔어. 총책부터 검거 후 나머지 조직원을 체포하는 계획을 세우고, 경찰서 모든 인력이 연휴를 반납하고 총동원 됐어. 조직원들이 이용하는 차량을 특정하고, 총책 김 씨의 차량을 발견해 은밀히 추적했어. 총책 차가 주택가로 들어섰고, 작전이 개시됐어. 형사들이 긴밀하게 움직여 주차하는 척 양쪽 골목 입구를 막고 도주로를 차단했어. 김 씨가 차에서 내리는 순간, 안 형사가 다가갔어. 그리고 철컥, 수갑을 채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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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열 1위 총책의 검거와 동시에 나머지 조직원을 일제히 잡아들였어. 총 44명이었어. 이들에게 피해를 입은 피해자는 543명이야. 이렇게 대규모 해외 보이스피싱 조직을 소탕하고 총책까지 잡은 건 이때가 대한민국 최초야.

근데 아직, 총책 위의 총책, 박 회장을 못 잡았어. 박 씨에겐 인터폴 적색 수배가 떨어졌어. 인터폴 수배 단계 중 가장 강력한 조치야. 박 씨는 전 세계에서 쫓기는 신세가 됐는데, 수사망이 좁혀오자 종적을 감췄어. 8년이 흐른 2021년, 드디어 박 씨를 목격했다는 첩보가 입수됐어. 필리핀 마닐라에서 400km 떨어진 시골 마을이었어. 박 씨는 가명을 2개나 쓰며 조용히 은둔생활을 하고 있었어.

얼마 후 필리핀 이민청과 무장 경찰이 출동했어. 2021년 10월 4일 필리핀에서 마침내 박 씨를 체포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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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기 너머 그 목소리를 쫓기 시작한 지 10년 만이야. 안 형사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안 형사는, 그 사람이 생각났대. 햇병아리 순경 시절 만난 동갑내기 그녀. 지난 10년간 포기하고 싶어질 때마다 간절하게 바라보던 그 눈빛을 떠올렸어.

"저도 하다 보면 어떤…. 뭐라고 해야 될까요. 번아웃되는 경우들이 생기잖아요. 슬럼프가 오는 경우도 있고, 일을 하기 싫을 때가 올 때도 있고. 그분을 종종 생각을 해요. 떠오를 때가 많죠. 내가 그 당시에 지금 내 상황이면, 내가 잡아줄 텐데. 빨리 잡았다고 하면, 그 사람이 생각을 달리하지 않았을까."
-안정엽 형사

2013년에 검거된 총책 김 씨에겐 징역 9년, 사장급 조직원들에겐 징역 5~6년이 선고됐어. 2021년 검거된 박 씨는 아직 처벌을 받지 않았어. 왜냐하면, 현재도 필리핀 이민청 수용소에 수감 중이야. 현지에서 연루된 다른 사건의 조사가 안 끝나서, 아직 송환이 안되고 있는 상황이야. 송환이 이뤄져야 재판과 처벌이 가능해.

박 씨는 검거됐지만, 보이스피싱 수법은 점점 더 진화하고 있어. 신종 수법들이 넘쳐나. 보이스피싱이 사라지는 날이 올까? 안 형사는 꼭 그날이 올 거라고 믿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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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내 인생을 한 단어로 요악한다면, '보이스피싱'이에요. 제가 노력했던 것보다 운이 좋게 큰 조직을 검거하게 됐고, 보이스피싱과 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렸죠. 보이스피싱이 사라질 때까지는 계속 수사를 할 생각합니다."
-안정엽 경위,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

더 이상 보이스피싱은 잡을 수 없는 범죄가 아니야. 이젠 반드시 잡히는 범죄지. 그래도 우리는 보이스피싱에 당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해.

보이스피싱은 금전적 피해로 끝나지 않아. 절박했던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 희망과 공포를 넘나들면서 느낀 절망감, 마음의 상처가 엄청나. 그리고 다른 범죄는 보통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감싸주는데, 보이스피싱 피해자는 "바보같이 그걸 당하냐"며 비난하는 경향이 있어. 나도 그러진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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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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