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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4.3일마다 한 명씩, 사람이 추락하고 있습니다

미화원 떨어짐 사고, 연평균 84.5건…'위험의 외주화' 속 안전 사각지대

[취재파일] 4.3일마다 한 명씩, 사람이 추락하고 있습니다
"당장에 지금 사고가 나지 않더라도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올라가서.
사실 진짜로 사람이 떨어져서 죽어봐야지 아는 건가, 이런 생각도 들어요."

50대 전직 청소 노동자는 지금도 양 손목을 제대로 구부리지 못합니다. 구청과 계약한 하청 청소대행업체 소속이던 그는 지난해 6월 재활용 쓰레기 수거 작업을 하다가 3m 높이의 청소차 위에서 떨어졌습니다. 차량 위까지 가득 쌓인 스티로폼 박스가 떨어지지 않도록 고무밴드로 고정하려다 낡은 밴드가 끊어지면서 그 반동으로 그대로 튕겨 나간 겁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양 손목이 모두 부러져 철심을 박았고 6주 치료 후에도 영구 장애가 남았습니다.

그는 사고가 난 지 1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똑같이 작업하고 있다며 "사람이 떨어져 죽어야만 바뀌냐"라고 되물었습니다. 같은 날 밤 그가 탔던 청소차를 따라가 봤습니다. 미화원들은 여전히 얇은 철봉 하나에 발을 디딘 채 보기에도 위태롭게 차량 위에 쓰레기를 모으고 내리는 작업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말대로 사고 이후에 바뀐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지난 6년간 떨어짐 사고 507건…'4.3일마다 한 명씩 추락'

환경부는 매년 환경미화원들의 산업재해 신청 및 승인 현황을 집계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7년부터 올해 9월까지 떨어짐 사고로 산재를 신청한 환경미화원은 모두 507명. 연평균 84.5명이니 4.3일마다 한 명꼴로 높은 곳에서 추락한다는 겁니다.

이런 사고는 대부분 재활용 폐기물 수거 작업을 하다 발생합니다. 종량제 봉투에 담는 일반 쓰레기나 음식물 쓰레기와 달리 스티로폼 박스 등의 재활용 폐기물은 부피가 큰 편입니다. 그러니 한 번에 최대한 많이 실으려면 차량 위에까지 쌓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미화원들은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씩 청소차 꼭대기를 오르내려야 하고, 그러다가 떨어져 다칩니다.

쌓여있는 스티로폼

누가 이들을 청소차 꼭대기로 밀어 올렸나

환경미화원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뉩니다. 지방자치단체나 산하 공기업 소속인 공무직 직원들이 있고, 지자체와 계약한 청소대행업체 소속 직원들이 있습니다. 후자의 정식 명칭은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대행 용역. 우리가 매일같이 내놓는 쓰레기들을 처리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 하청 노동자들입니다.

청소차 매달렸다 떨어져 중상 환경미화원

다른 수많은 산업과 마찬가지로 하청 계약에서 안전은 언제나 비용에 밀려납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청소대행업체 관계자는 이렇게 냉소했습니다.
 
"청소차가 쇠붙이가 아니라 고무로 돼 있고 스펀지로 돼 있어도 다칠 사람은 다쳐요. 우리가 차 위에 올라가지 말라고 해도, 담당 구역을 다 못 치우면 아침에 구청에서 순찰관이 돌면서 똑바로 안 하냐고. 그런 얘기 듣기 싫으니까 단 하나라도 더 실으려고 본인들이 자꾸 올라가는 거죠."

"우리가 안전수칙 철저히 지키라고 강요하잖아요? 그럼, 환경미화원들이 다 그만둔다고 해요. 자기들이 몇만 보씩 더 뛰어다녀야 하니까. 그렇게 안전수칙 잘 지킨다고 구청에서 차량 증차를 해주나요, 돈을 더 주나요? 아니면 청소 구역을 줄여주나요? 어차피 작업량은 정해져 있는데."
 

'인명사고 1회는 경고, 2회는 100만 원'…'위험의 외주화'의 민낯

너무나 당당한 답변에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래서 원청인 지자체에 환경미화원 사고 발생 시 해당 업체에 어떤 불이익을 주는지 질문했더니 이런 답변이 왔습니다.
 
"(인명사고) 1회 발생 시 경고, 2회 발생 시 위약금 100만 원, 3회 발생 시 200만 원 부과.
청소대행업체 특수계약 조건에 명시돼 있음"

형사적 책임은 어떨까요. 산업안전보건법은 노동자가 추락할 위험이 있는 장소에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담당하는 노동부 근로감독관에게 물었더니 대부분 처벌이 어렵다고 답했습니다.

환경미화원
"해당 업체에서 청소차에 올라가서 작업하라고 강요했다면 위법일 수 있죠. 그런데 조사를 나가서 작업 내용을 들어 보면 거의 업체에서는 올라가지 말라고 안전교육을 했는데, 환경미화원들이 그렇게 하면 훨씬 더 많이 오가야 하니까 본인들이 올라간 경우예요."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원청인 지자체와도 연관성이 있어요. (환경미화원들이) 한 번 더 왔다 갔다 하면 그거에 대한 비용이 발생하잖아요? 인건비를 늘려서 사업자들을 더 쓰든가, 아니면 차량을 더 쓰든가 이런 식으로 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예산의 문제죠."


결국 매주 청소차에서 사람이 떨어져 다치는데 올라가라고 시킨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참 이상한 결론이 나옵니다. 취재하는 내내 '위험의 외주화'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누가 죽어야만 바뀌냐"는 환경미화원의 질문에 우리는 뭐라고 답해야 할까요. 매일 밤 우리 사회를 깨끗하게 하는 모든 분의 안전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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