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연락 두절 끝에 받은 '압류' 문자…'빌라왕'에 당한 피해자들

숨진 '빌라왕' 김모씨가 임차인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사진=독자 제공, 연합뉴스)
▲ 숨진 '빌라왕' 김모 씨가 임차인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수도권 빌라와 오피스텔 1천139채를 소유해 '빌라왕'으로 불린 김모(42) 씨가 갑자기 숨져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김 씨는 자기 자본을 거의 투자하지 않은 채 피해자들의 전세보증금을 받아 마구잡이로 주택을 매입했지만, 종합부동산세 체납으로 집이 압류될 때까지 세입자들에게는 연락을 끊고 방치했습니다.

그가 지난 10월 서울 모 호텔에서 숨지면서 임차인 수백 명은 각각 1∼2억 원 안팎의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전세보증 사고 증가세 (사진=연합뉴스)

빌라왕 피해자인 A(39) 씨는 2020년 9월 원래 살던 낡은 아파트에서 이사하기로 마음먹고 방음과 단열이 잘 되는 신축 위주 빌라와 오피스텔을 물색했습니다.

이 중 준공 4년차로 비교적 신축인 인천시 미추홀구 숭의동 한 오피스텔 전세 계약을 맺었습니다.

22평(74㎡)에 전세보증금 2억1천500만 원인 이 집은 당시 전세와 매매 계약이 동시에 이뤄졌습니다.

이른바 '전세 끼고 매매'입니다.

이때 집을 매입한 새 임대인이 빌라왕 김 씨였습니다.

그는 전셋값과 똑같은 2억 1천500만 원에 이 집을 샀습니다.

자기자본 하나 없이 A 씨의 보증금만으로 집값을 치른 셈입니다.

A 씨는 당시 빌라왕 김 씨가 전세금을 끼고 얼마에 오피스텔을 사들였는지 정확하게 알진 못했지만, 전세보증보험 가입이 가능하다는 말에 '별일이야 있겠냐' 싶어 전세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빌라왕 사기의 실체가 드러난 건 계약 후 2년 가까이 지난 뒤였습니다.

A 씨는 지난 9월 전세 계약 연장을 위해 김 씨에게 여러 차례 연락했으나 그는 묵묵부답이었습니다.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자 김 씨는 그때서야 '종합부동산세가 너무 많이 나와 신용불량자가 됐고 그 집도 압류될 것'이라며 '새로운 세입자를 구한다 해도 전세 대출이 안 되니 부동산에 집을 매매로 내놔달라'고 청천벽력 같은 답변을 했습니다.

급하게 등기부등본을 떼어 보니 집은 이미 7월에 압류된 상태였습니다.

A 씨는 오늘(21일) "분양권을 사둔 아파트가 있어 당장 내년 3월까지 중도금 대출과 잔금을 치러야 하는데 2억 넘는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막막한 상황"이라며 "나야말로 신용불량자가 되게 생겼다"고 토로했습니다.

국토교통부는 전세 사기가 의심되는 106건을 1차로 경찰에 수사 의뢰했습니다.

이 중 16건이 빌라왕 관련 사건입니다.

재산과 경제 활동이 거의 없던 김 씨가 이른바 '바지 사장' 역할을 맡은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습니다.

건물을 지은 건축주들이 시세보다 비싼 값에 전세 계약을 맺은 브로커들에게 수수료를 지급하면 이들이 이자 지원금 등을 미끼로 세입자로 끌어들이고, 그 건물은 바지사장인 김 씨에게 넘겨지는 방식입니다.
보증금 돌려 받기 힘든 전세 사기 증가

빌라왕 피해 임차인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의 피해 사례를 종합해보면 김 씨의 주택은 대부분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보험 가입이나 전세금안심대출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많은 피해자들은 이에 안심하고 전세 계약을 맺었습니다.

한 피해자는 전세안심대출 승인이 된다는 조건으로 김 씨와 2억여 원의 전세 계약을 했으나 이후 그는 연락이 끊겼고 집도 압류됐습니다.

같은 대출을 받고 입주했으나 중간에 김 씨가 임대인으로 바뀌고 집이 압류된 피해자도 있었습니다.

김 씨가 숨지면서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한 피해자들조차 보증금을 돌려받기가 어려워졌습니다.

보증이 이행되려면 임차인들이 김 씨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해야 하는데 그의 상속인이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4촌 이내 친족이 상속하지 않는다면 세입자들은 법원이 상속재산 관리인을 지정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나 김 씨가 지난해 종부세 62억 원을 체납하면서 소유 주택이 압류되고 집을 팔아도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가능성이 커 상속자를 찾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이 때문에 법적으로 필요한 절차를 마쳤는데도 HUG에서 보증금을 받지 못한 사례도 나오고 있습니다.

A 씨는 전세보증보험을 통해 돈을 돌려받으려면 임차권 등기명령을 해야 한다는 말에 지난달 30일 이 절차를 마쳤습니다.

이 명령은 전세 계약이 끝난 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이사할 경우 우선변제권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장치입니다.

그러나 보증 이행 신청을 받은 HUG 측에서는 김 씨가 숨진 뒤 등기 명령이 설정돼 보증이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A 씨는 "김씨가 전세보증사고를 계속 내고 있는 임대인이라는 사실을 HUG가 더 일찍 인지했을 텐데도 임차인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고지하지 않아 피해가 더 커진 것 아니냐"고 하소연했습니다.

사태가 커지자 HUG는 내일 오후 2시 서울 서부관리센터에서 빌라왕 사기 피해와 관련한 설명회를 열기로 하고, 임차인들에게 공지했습니다.

최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전세사기 피해자들 대다수가 사회 초년생이어서 모자란 예산은 HUG를 통해 대출받는 경우가 많다"며 "HUG가 보증 대상 물건에 대한 적격 심사를 강화하고 이에 따른 예산과 인력 충원도 수반돼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사진=독자 제공, 연합뉴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