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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교육부는 왜 대학에서 손을 떼려고 할까

대학 규제 완화의 의미와 예고된 부작용

[취재파일] 교육부는 왜 대학에서 손을 떼려고 할까
교육부가 대학에 대한 규제를 확 풀겠다고 나섰습니다. 교사·교지·교원·수익용 기본재산 같은 대학 설립 4대 요건 완화를 비롯해 정원 조정의 자율성에, 재정 지원을 위한 3년 주기의 기본역량진단 폐지까지 그동안 쌓여왔던 대학들의 민원을 한꺼번에 다 들어줄 셈입니다.   
 
이미 대학에 대한 규제 완화는 이주호 부총리의 취임 기자 간담회 등에서 여러 차례 예고된 바 있었고, 특히 대학실(고등교육정책실)을 폐지하는 내용의 조직 개편 방안까지 나오면서 큰 폭의 변화가 예상됐습니다. 지금껏 법과 규정에 따른 규제, 그리고 재정 지원을 통한 보이지 않는 규제를 마음껏 행사해오던 교육부가 왜 이렇게 나오는 걸까요? 
 

대학 위기 속 교육부의 한 수…"출구 전략이다"


한 고등교육 정책 전문가는 교육부의 이번 조치를 최상의 전략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학령인구 감소로 이미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대학이 수두룩한 상황에서 갈수록 학생은 줄어드니, 현재 4백여 개 대학 가운데 20~30%는 문을 닫아야 할 수도 있다는 경고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부가 예전과 같은 권한을 행사했다가는 앞으로 겪을 더 큰 위기에 대한 책임만 떠안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겁니다. 대신 학과 신설·통합이나 정원 조정, 교원 확보율 등에 대한 자율권을 대학에 주고, 스스로 살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는 겁니다. 지방대에 대한 권한을 시도 지방자치단체에 넘기겠다는 방침도 난파선에서 뛰어내리는 출구 전략의 하나로 봤습니다. 책임 떠넘기기라는 거죠. 그렇다면 대학들은 이번 조치를 환영하고 있을까요? 
 

재정지원 평가 벗어난 건 기쁘지만…"정글로 던져졌다"

대학

소식을 접한 한 사립대 교수는 교육부의 '기본역량진단' 폐지 소식에는 환호했습니다. 3년마다 돌아오는 평가의 지표들이 실제 연구 상황과 맞지 않아서 괴로웠는데, 이를 더 이상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너무나 기쁘다는 겁니다. 앞으로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의 인증 평가로 대체된다는 데 대해서도 대학 교육 관계자들이 좀 더 현장에 맞는 지표를 만들어낼 거라고 기대감을 표했습니다. 

하지만, 정원 규제 완화 소식에는 한숨을 짓더군요. 이공계가 아닌 인문계열 학과들은 정원 감축 또는 학과 폐지 압력이 커질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특히 서울이나 수도권 일부 대학은 몰라도, 지방 대학은 엄청난 타격을 입을 거라고요. 재학생 충원율이 학교 평가에 가장 중요한 지표인 상황에서, 안 그래도 학생 모집에 큰 어려움을 겪는 지방대에서는 인문계열 학과 대신 취업률 높은 이공계열 학과에서만 신입생을 뽑고 싶어 할 겁니다. 지금까지 대학의 학과 통폐합 시도가 교수·학생들의 반대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었는데, 정부가 학과·정원 조정의 장애물을 없애면서 학교 측은 '생존'을 내세워 학과 통폐합을 밀어붙일 거라고 이분은 예상했습니다. 

고등교육 정책 전문가도 이번 조치로 지방 사립대, 특히 지금껏 열심히 생존을 위해 달려온 대학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동안 경쟁력을 쌓아왔던 지방 사립대들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거라는 겁니다. 대학과 학과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은 학생·학부모에게 합리적인 선택을 기대할 순 없다는 거죠. 이들이 정확한 정보 분석에 의한 판단보다는 이미지에 끌려 서울·수도권 대학을 고를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겁니다.  
 
지방 사립대 총장도 수도권 쏠림이 가속화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특히 이주호 부총리가 지방 대학에 대한 권한을 지방자치단체에 넘기겠다고 발언한 데 대해, 전문성 없는 시도 공무원이 어떻게 대학을 지원한다는 것인지 의문을 표했습니다.
 

보호막 없는 생존 경쟁…지방대 중 옥석을 가릴 수는 없을까?


윤석열 정부의 1백만 디지털 인재 양성 계획이 발표됐을 때도 지방대 총장들이 거세게 항의했습니다. 신산업·첨단학과에 한해서라지만, 서울·수도권 대학의 정원 규제를 풀어주면, 수도권 쏠림 현상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규제 완화도 거의 비슷한 부작용이 예상됩니다. 대학 설립 4대 요건 가운데 교사(학교)와 교지(땅) 문제는 대부분 서울과 수도권 대학의 민원이었던 것처럼, 이번 조치에 이들의 이해가 더 많이 반영됐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최근 지역 소멸의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정부는 지방대가 지역 인재 양성의 거점이 돼야 한다는 얘기를 반복해서 하고 있는데, 주요 정책을 발표할 때 지방대에 미칠 영향을 더 세밀하게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부실한 지방 사립대를 모두 안고 갈 수는 없지만, 경쟁력이 있는 대학은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록> 입시를 앞둔 중고생에게 미치는 영향은?

수능 채점 결과 발표

최근 명지대와 명지전문대의 통합안에 바둑학과 폐지가 포함되면서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세계 유일의 바둑학과가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국내외 바둑인들이 우려와 반대를 표명하고 나선 겁니다. 이런 식으로 대학의 구조조정은 입시생들이 목표로 하고 있던 학과를 사라지게 할 수도, 정원을 줄일 수도 있습니다. 이공계 인기학과는 오히려 모집 정원이 늘어날 수도 있겠지만, 기초학문이나 인문계 학과의 경우엔 SKY 대학 같은 일부 대학을 빼고는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대학 관계자들은 전망합니다. 기초학문이나 인문계를 지망한다면 통폐합, 구조조정의 바람에서 그나마 안전한 거점 국립대학을 노리라고 말합니다. 이런 암울한 전망이 현실로 다가올까 두려운 게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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