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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멘터리] "아바타"로 역사를 쓴 '물의 남자' 이야기

이주형 기자의 씨네멘터리 #55

"내가 왕이다(I'm the King of the world)".

"타이타닉"으로 제70회 아카데미 감독상을 거머쥐며 수상 소감을 말하던 제임스 카메론은 마지막으로 이 한마디를 외치고 들어갔습니다. ("타이타닉"은 이 해 무려 11개 부문상을 휩쓸었습니다) 주로 이 장면만 반복해서 접한 탓인지, 약간은 거만하고 감정적인 사람일 거라는 게 제가 제임스 카메론에게 갖고 있는 이미지였는데 '실물 영접'하면서 선입견은 부서졌습니다. 인터뷰장에서 마주한 제임스 카메론은 더없이 진지하고 학구적인 교수 같은 인상을 풍겼습니다.

"'아바타2'는 전편과 많이 다른 영화입니다. 자식들을 보호해야 하는 난민 부모 세대와 질풍노도 시기에 있는 자식 세대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성인 관객을 위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청소년 관객을 위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제임스 카메론은 차분하게 자신의 신작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아바타1"과 "아바타2"가 많이 다른 영화라는 제임스 카메론의 주장에는 이견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바로 그 지점에서 "아바타:물의 길"의 흥행 정도가 결정될 겁니다. 영화는 결국 보는 사람의 몫입니다. "아바타:물의 길"을 보면서 저는 '영화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떠올렸습니다.

영화는 태생부터 '스펙터클'이었습니다. '보다'라는 뜻의 라틴어 'spectare', '공연, 극장'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spectaculum'을 어원으로 하는 스펙터클(spectacle)은 19세기 후반 뤼미에르 형제가 발명한 영화라는 미디어에 썩 잘 어울리는 단어입니다. 예술로 자리 잡기 전 영화의 본질은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1895)"처럼 놀.랄.만.한. 볼.거.리.였습니다. ("열차의 도착"은 그저 열차가 달려와 정차하고 승객들이 승하차하는 것이 내용의 전부입니다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움직이는 사진(motion picture)' 자체가 엄청난 시각적 충격, 즉 스펙터클이었습니다)

"아바타:물의 길"의 한 장면 (출처:IMDB)

"아바타"는 기본적으로 '놀랄만한 볼거리(spectacle)' 정신을 구현한 영화입니다. 그게 바로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 철학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바타:물의 길"의 최종 예고편(영어 버전)에는 "영화를 경험하라(Experience the motion picture event)"라는 카피가 등장합니다. 저는 이 자막에 제임스 카메론이 개입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영화를 가리키는 여러 단어 가운데 '무비(movie)'도 아니고 '시네마(cinema)'도 아니고 '필름(film)'도 아닌 '활동 사진(motion picture)'라는 고색창연한 단어를 끌고 온 것은 영화 초창기에 관객들이 느꼈던 흥분과 놀라움을 선사하겠다는 제임스 카메론의 선언입니다. (함께 쓰인 '이벤트'란 단어도 의미심장합니다)

키네토그래프를 만들었던 발명왕 에디슨과 시네마토그래프를 발명했던 뤼미에르 형제처럼 제임스 카메론도 엔지니어(그는 촬영 장비와 CG 등 영화에 필요한 기술을 그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고안하고 제작합니다)인 동시에 제작자이고 감독입니다. 이미 고도로 분업화된 할리우드에서도 마치 영화 초창기 때 영화인들처럼 발명가이자 제작자이자 감독으로서 영화를 만들어 돈을 버는 사람입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가장 큰 시각적 충격을 받았던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는 "아바타"가 아니라 몰핑 기법을 활용한 "터미네이터2(1991)"입니다. 총포에 맞아 얼굴에 구멍이 나도 곧바로 회복하고, 신체 일부가 칼로 변하는가 하면 아예 다른 사람으로도 변신하는 '액체 금속( liquid metal)' 빌런 'T-1000'의 모습은 경이에 가까웠습니다. 그 당시 할리우드만이 창조해낼 수 있는 위대하고도 넘사벽인 볼거리였죠.

스펙터클, 특히 물처럼 유동성( liquidity) 있는 피사체가 등장하는 스펙터클에 대한 제임스 카메론의 애착과 탐구는 사상 최초로 물을 CG로 구현한 "어비스(1989)"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비록 제임스 카메론이 감독한 영화 중 유일하게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어비스"에서 시도한 물의 움직임을 의인화한 디지털 특수 효과 등은 "터미네이터2"와 "타이타닉", "아바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며 발전했습니다.

"아바타2"를 연출 중인 제임스 카메론 감독 (제공: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아바타2"는 영화의 이야기 대부분이 물에서 펼쳐집니다. 물의 움직임과 배우들의 연기는 제임스 카메론의 전매특허와도 같은 모션 캡쳐(제임스 카메론은 배우의 표정까지 잡아내는 자신만의 모션 캡쳐를 '퍼포먼스 캡쳐'라고 명명)와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서 실제같이 구현되고, 하이프레임레이트(HFR)와 하이다이내믹레인지(HDR)를 통해 더욱 매끄럽고 선명하게 보여집니다. 뤼미에르 형제가 초당 16프레임(16fps)으로 영화를 찍기 시작했고 지금은 거의 모든 영화가 초당 24프레임으로 제작된다면 "아바타2"에서 제임스 카메론은 초당 48프레임의 하이프레임레이트로 찍은 장면을 다수 삽입했습니다.

또 적외선 카메라로는 수중에서 배우들이 입은 마커 달린 수트를 모션 캡쳐할 수 없다는 문제를 자외선 LED를 써서 해결했고, 수면이 거울처럼 마커를 반사하는 문제는 물에 작은 플라스틱 공을 뿌려서 해결했습니다. 또한 CG로 제작된 배경과 캐릭터들을 실시간으로 렌더링해 실사 촬영 화면과 함께 보여주는 버추얼 카메라와 사이뮬캠(simulcam) 시스템을 써서 촬영함으로써 촬영 영상이 실제로 관객들에게는 어떻게 보여질지를 현장에서 바로바로 확인하면서 정밀하게 연출했습니다.

모션 캡쳐를 위해 수면에 뿌린 플라스틱 공. "아바타2" BTS(비하인드 더 씬)의 한 장면

이렇게 완성된 "아바타:물의 길"의 스펙은 3D×4K×HFR×HDR. 이 스펙은 이 영화가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이고, 그의 영화는 스펙터클이라는 걸 증명하는 수식처럼 느껴집니다.

최근 EBS "위대한 수업"에 나온 제임스 카메론은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저는 영화 제작자(film maker)이자 탐험가(explorer)인 제임스 카메론입니다."

그는 자신을 감독(diretor)도 아니고 프로듀서(producer)도 아닌 '메이커(maker)'로 소개합니다. 그의 정체성은 영화감독에 머물지 않습니다.

"나는 어떻게 할리우드에서 백 편의 영화를 만들고 한 푼도 잃지 않았는가"라는 책을 쓴 할리우드 B급 영화의 제왕인 로저 코먼 수하에서 경력을 시작한 '청출어람 청어람' 제임스 카메론은 본인 스스로를 프로듀서로서의 제작자를 넘어 글자 그대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는 또 10년 전에는 직접 제작에 참여한 1인용 잠수정을 타고 세계에서 가장 깊은 바다인 챌린저 해연의 마리아나 해구에 내려갔다 온 진짜 탐험가이기도 합니다. 인류 최초의 챌런저 해연 단독 잠수였습니다. 이처럼 테크놀로지와 바다에 집착하는 제임스 카메론은 "위대한 수업"에서 자신이 영화 제작에 필요한 기술을 얻는 두 가지 방법에 대해 털어놓았습니다.

첫 번째는 직접 새로운 기술을 창조하는 겁니다. 두 번째는 상황을 지켜보는("watch the landscape") 것입니다. 다른 기술자나 창작자, 감독, 예술가들이 이뤄 놓은 것을 보고 영감을 얻는 것이죠. 제임스 카메론은 이 두 가지 방법을 섞어가며 영화에서 시각적 표현의 지평을 넓혀왔습니다.

제임스 카메론이 "아바타" 제작에 매진하고 있던 지난 3년 동안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와 이로 인한 스트리밍 서비스의 활황은 극장과 영화의 미래에 대한 거대한 물음표를 스크린에 띄웠습니다. 올해 칸 영화제도, 부산국제영화제도 포럼 등을 통해 이 주제를 다뤘습니다. 그렇다면 1980년대부터 영화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온 제임스 카메론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제임스 카메론은 "아바타2"가 극장에서 경험해야 하는 영화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자신도 스트리밍 서비스를 종종 보지만, '영화적인 경험'은 차원이 다르다고 못 박았습니다. 지난 14일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개봉한 "아바타2"는 돌비시네마나 아이맥스, 4DX 같은 특수관부터 매진되고 있습니다.

"아바타:물의 길" 3D 아이맥스 포스터 (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얼마 전 영국영화협회(BFI)가 발행하는 저명한 영화 전문지 "사이트 앤드 사운드(sight&sound)"는 역대 최고의 영화 100편의 리스트를 10년 만에 갱신했습니다. 벨기에 감독 샹탈 아커만의 "잔 딜망(1975)"이 알프레도 히치콕의 "현기증" 밀어내고 처음으로 1위에 올랐습니다. 사이트앤사운드 100선은 1952년부터 지금까지 70년 동안 매 10년마다 갱신되고 있는 리스트입니다. (이번에 "기생충"이 한국 영화 최초로 90위에 랭크됐습니다)

"아바타"는 순위에 없었습니다. 올해 전 세계에서 크게 히트한 "탑건:매버릭"도 순위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곧 스펙터클'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각각 13년, 36년 만에 속편을 낸 두 영화 모두 거뜬히 역대 최고의 스펙터클 영화 톱50 안에 들어가지 않을까 예상해봅니다. 두 영화 모두 예고편에서 "오직 극장에서만(only in theatre)"을 강조한 영화들입니다.

"아바타2"가 좋은 영화인가? 라고 묻는다면 저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영화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불러냅니다. 하지만 "아바타2"가 볼만한 스펙터클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CG의 완성도가 중요한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하는 분들은 이 영화를 보지 않기를 권합니다. "아바타2"를 본 이후에는 여러분은 다른 영화들의 CG 수준을 참아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모든 CG가 눈에 거슬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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