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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중요한 건, 주 69시간 일을 시키겠다는 '꺾이지 않는 마음'?

설득의 순서와 방법 고민이 빠져있다

스프_스프경제 (사진=연합뉴스)1. 옛날 캐나다 한 외진 마을 마트에, 영어를 한 마디도 할 줄 모르는 한국 사람과 함께 갔더랍니다. 이 사람이 그날 꼭 참기름 장에, 빨간 소의 생 간을 찍어 먹고 싶다고 해서요. 마침 소 간이 포장이 돼 있었는데, 또 저한테 "이대로 먹어도 될 정도로 신선한 게 맞냐"고, 또 확인해 달라고 했습니다. 캐나다 사람 반응은 예측이 됐는데, 부탁이니까, 의리의 한국인이니까, 어쩔 수 없이 점원을 붙잡았습니다.
 
"실례합니다. 이거, 먹어도 될 정도로 신선한가요?"
"그럼요. 팬에 버터를 두른 다음에 구워 드시면 딱 좋죠."
"아뇨, (옆에 사람을 가리키면서) 이 사람은 이걸 오늘 저녁에 날 걸로 먹을 생각이라서요."
 
그 순간 그 점원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말만 안 내뱉었지, 거의 "왓 더…" 수준이었죠. 그렇게 먹으라고 파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점원도 해줄 말이 없었고 저도 얼굴이 빨개졌지만, 어차피 답정너 상황, 저녁 안주거리를 챙긴 그 사람만 위너였죠.


2. 2018년 6월 27일 서울 전경련 회관. 위에서 벌어진 것과 비슷한 '왓 더' 상황이 벌어집니다. 전경련이 노벨 경제학상 수상 경력이 있는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를 초청해서 막 출범한 문재인 정부 경제 정책들을 하나하나 깨나가던 중이었습니다. 최저임금 올리는 속도를 놓고 크루그먼 교수가 "생산성이 받쳐줘야 가능한 거다. 적절한 속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경계하면서 분위기가 최고조로 달아올랐습니다. 자, 권태신 전경련 부회장이 결정타를 날리기 위해서 나섰습니다.
 
권태신 부회장 : 한국은 7월 1일부터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법안을 시행할 예정이다. 그런데 업종마다 융통성 없이 지나치게 일괄적으로 적용해서 비판을 받고 있다.

폴 크루그먼 교수 : 미국은 노동시간이 40시간이다. 52시간이면 선진국 중에서도 일을 많이 하는 건데,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일을 할 수 있는지 놀랍다. 한국의 노동 조건에 대해서 정말 깜짝 놀랄 정보를 들었다.
 
주 52시간으로 근무시간을 단축한다니, 대체 지금은 얼마나 일한다는 이야기인가. "이 소 간, 생으로 먹어도 될 정도로 싱싱하냐", 수준으로 들렸을 겁니다. 나중에 논란이 되니까, 전경련은 "크루그먼 교수가 한국의 법정 근로시간이 주당 52시간이라는 뜻으로 잘못 이해한 것 같다"는 해명을 내놨습니다만, 뭐 네, 크루그먼 교수가 납득이 됐나 모르겠네요.


3. 정부가 요새 노동 관련 정책 개편을 추진하면서 외국 사례를 자꾸 듭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방금 말한 질의응답과 느낌이 비슷합니다. 대표적으로 외국은 근무시간을 '1주 52시간'으로 딱딱하게 운영하지 않는다는 게 대표적입니다. 그대로 따와 봅니다.
 
ㅇ 외국의 경우 우리나라와 같이 근로시간 산정 단위를 "주 단위"로 하는 경우는 드물고, 노사의 자율적인 선택을 존중하고 있으며,

- 미국의 경우 연장근로의 한도가 없고, 영국은 노사합의시 1주 48시간을 초과하여 근무할 수 있는 옵트 아웃(opt-out) 제도를 운영하고 있음

- 일본의 경우에도 업무량 폭증 등 사유 발생 시 노사가 합의하면 연장 근로 한도를 월 100시간(복수 월 평균 80시간 미만), 연 720시간까지 인정하는 등 다양한 선택지를 부여하고 있음
 
다 팩트는 맞습니다. 그런데요, 저 나라들은 저렇게 규정을 느슨하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저렇게 풀어놔도 규정에서 허용하는 최대치로 일을 시키려고 하는 고용주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생 간을 먹으려고 하지 않는다고요. 노동자들도 저렇게 일하라고 해도 하지 않고요. 저 나라 사람들은 5시면 대부분 퇴근해서, 저녁밥은 집에서 먹습니다. 외국 도심 지하철들, 저녁 여섯 시 반, 일곱 시면 썰렁한 곳이 많습니다. 다 퇴근해서요.

외국과 비교 좋아하시니까, 이런 비교는 어떻습니까. 우리나라 사람들 1년 동안 일하는 시간이 2016년 2069시간이었는데 작년에 겨우 1951시간까지 줄었습니다. 그런데 OECD 국가들이 마지막으로 1951시간 일한 때가 언제일까요. 1972년입니다. 잘못 읽으신 거 아닙니다. 50년 전입니다. 그래요, 유럽 등등은 그렇다고 치고요, 옆 나라 일본 사람들은요, 1992년입니다. 우리가 노태우 전 대통령 때,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했을 때, 마지막 대입 학력고사 봤을 때, 1951시간 일하고 안 한단 말입니다. 작년에 일본, 1607시간 일했습니다. 우리보다 350시간 적게 일합니다. 저런 나라들 규정 들고 와서 저 나라들도 허락해주니까 우리도 하자고 하면, 그대로 설득이 될까요?


4. 정부의 주장을 보니까 자꾸 과거 사례가 떠오릅니다. 주 52시간, 주 52시간 하는데 왜 주 51시간도 아니고, 주 53시간도 아니고 52시간인지, 자초지종을 아는 분들이 별로 없으실 겁니다. 이걸 쭉 보면 지금 상황이 또 다르게 이해가 되실 겁니다.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은 1953년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근로시간은 1일 8시간'으로 정해놨습니다. 당시엔 토요일도 평일이어서, 주 6일 48시간에, 하루 2시간씩 추가 근무가 가능한 걸로 해서 6X2=12시간, 그래서 1주일 근로시간은 총 60시간이었습니다.

이제 주 5일제가 시작됐습니다. 그래서 법을 고칩니다. 1주 근로시간 40시간. 그런데 추가 근무 시간도 5일 곱하기 2 해서 10시간 해야 하는 게 맞는데 그건 그냥 또 12시간을 땡겨 옵니다. 그래서 '주 52시간'이 된 겁니다. 여기까지는 그렇다고 칩시다.

그런데 대한민국 정부가 이 법을 깜찍하게 해석합니다. 단순하게 말씀드리면, "이 법에 적힌 1주일은 일하는 평일이다, 그러니까 1주일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주 52시간'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하는 시간 만이고, 토요일 일요일 이틀 동안은 추가로 하루 8시간씩 총 16시간을 추가로 더 일을 시킬 수 있다는 해석을 만들어 낸 겁니다. 그래서 '52+16', "총 주 68시간을 일을 시킬 수 있다"는 규정을 창조해냈고, 우리 국민들이 그 규정 속에서 몇십 년을 살아왔습니다.

이 해석에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은 성남시 환경 미화원들이었습니다. 단순하게 말해서 "왜 토요일 일요일을 1주일에서 빼느냐"는 소송을 2009년에 낸 겁니다. 초등학생에게 물어봐도 답은 뻔한 문젠데, 이게 참 오래도 걸립니다. 1심 2심에서 이기고 2011년에 대법원으로 넘어갑니다. 그런데 이 순간, 비상이 걸렸습니다. 대법원에서 "1주일은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가 맞다"라고 판결하는 순간 '주 68시간'은 끝나고 준비 없이 '주 52시간'을 해야 되는 겁니다.

대법원은 일단 시간을 끕니다. 그러면서 정치권에 "야, 이러다 다 죽어" 사인을 줍니다. 그래서 2012년 대선에 새누리당 민주당 모두 근로시간을 줄인다는 공약을 내걸었습니다. 박근혜 후보는 2020년까지 연 1800시간으로 줄인다고까지 했었죠. 어쩔 수 없는 선택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취임하고 반년쯤 뒤, 이런 발표가 나옵니다.

스프_스프경제 (사진=연합뉴스)날짜와 내용 보이시죠? 네, 바로 보신 것 맞습니다. 저기 나오는 당은 새누리당, 정은 당시 박근혜 정부입니다. 2016년부터 52시간을 적용하기로 법을 고친다, 발표를 했었습니다. 그랬는데, 저랬다가 재계가 "월급도 줄여라", "다 놀자는 거냐" 반발을 하니까 바로 접습니다. 그래서 화가 난 당시 한국노총 사무처장이 국회 공청회에 나가서 "당장 5인 미만 회사까지 전면 시행해야 마땅한데 뭐 하는 거냐" 하고 일갈하기도 했었습니다. 기억하시죠? 당시 한국노총 사무처장이었던 이정식 현 고용노동부 장관님?

그리고는 어디는 예외를 두네 마네 지리멸렬한 공방이 국회에서 4년 동안 이어집니다. 중간에 한 번 국회의원 선거까지 있어서 사람들도 바뀝니다. 대법원은 계속 기다립니다. 그러다 대통령이 바뀐 겁니다. 그리고 바뀐 대통령이, 이제는 합시다, 그리고 밀어서, 당시 3당 합의로 처리가 된 겁니다. 이게 2018년 2월 28일입니다. 대법원에 올라가서 여기까지 6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대법원이 넉 달 뒤, 6월 21일에 판결을 내립니다. "1주일은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다."라고요. '근로시간 52시간'은 이런 과정을 거쳐서 52시간이 된 겁니다.


5. 자, 그래서 지금 정부가 하려고 하는 건, 2011년에서 2018년 사이, 그 논쟁으로 다시 들어가려는 겁니다. 그때 합의하지 못했던 예외 조항들을 이제 만들어 넣겠다는 거죠. 그 예외가 꼭 필요한 회사들이 있습니다. 선풍기 회사, 아이스크림 회사, 온풍기 회사, 이런 곳들은 일할 때 일해야 되고 일 없을 때는 못 합니다. 예외 인정할 필요 있습니다. 또 어떤 제도든 시행해보고 손질해가면서 고쳐 쓰는 게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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