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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EYE] 극단적 편향성에 병든 '위험사회'

높은 투표율, 사회적 질병 단면일 수도

"편향성"이란 사전적으로 한쪽으로 치우친 성향을 말한다. 진영갈등이 심각한 우리나라에서 "편향적"이란 표현은 100% 부정적 의미로 다가온다.

그런데 정치적 혹은 이념적으로 조금이라도 편향적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민주주의의 실제 행위인 투표 역시 정치적 편향성을 확인하고 실천하는 절차이다.

보수나 진보냐 혹은, 듣기 좋은 중도냐의 구분은 어떻게 보면 매우 비과학적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념에 바탕을 둔 그런 구분은 우리 사회에선 매우 정확하게 들어맞고 상식적으로 인정받는 분류이기도 하다.

이처럼 편향성이 보편적 현실인 상태에서 균형 잡힌 사고, 혹은 공정한 판단은 가능한 것일까? 가능할 수도 있고 착각일 수도 있겠다.

균형과 공정은 기준점이 동일할 때 의미를 갖는다. 어느 정도의 정치·이념적 편향성을 지닌 개별 국민 입장에서 살펴보면, 그가 보수적 관점을 갖고 있느냐 아니면 진보적 입장이냐에 따라 공정에 대한 각각의 기준점이 다르며, 그 기준점은 바로 각자가 가진 편향성이다.

똑같은 상황을 보고도 어떤 사람은 공정하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불공정하다고 여기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며, 보수나 진보성향의 언론이 같은 사안에 대해 정반대의 해석을 내놓는 원인이기도 하다. 모두가 공정이 좋은 거란 건 알고 있지만, 제각기 가진 편향성의 바탕 위에서 그리는 공정의 모습은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모두는 공정성의 절대 기준이 있다는 착각에 휩싸여 상대를 비난한다. 

민주주의는 다른 가치에 바탕을 둔 편향성과 각각의 이해를 인정하는 다원주의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다원주의 원리로 보면 정치적 편향성과 그에 따른 갈등은 자연스러운 사회 현상이다. 그 갈등이 이른바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경합을 통해 합리적 의사결정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이 민주주의 정신이다.

극단적 편향성이 우점종 된 위험사회

SNS 속 양극화 갈등

그런 측면에서 우리 사회를 차분하게 한 번 바라보자.

세계 어느 나라보다 잘 닦여진 인터넷 공간에선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미디어 업계는 기존의 신문과 방송에다 유튜브를 포함한 개인방송까지 더해지며 온갖 원색적인 의견을 토해낸다.

그 뿐인가. 국내 법규는 내 이념과 이익을 관철시키려는 표현의 자유에도 관대해, 거대 시위로 온 나라가 연일 몸살을 앓고 있고, 행여 내편이 질까봐 대선 투표율이 80%에 육박한다.

언뜻 보기엔 서로 다른 견해와 편향성이 자유롭게 경쟁하는 민주사회의 원리에 가장 잘 부합하는 나라로 비춰진다. 아쉽게도 그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정치적 편향성이 민주사회의 약이 되려면, 우선 건강하고 정확한 정보가 SNS를 비롯한 미디어 공간에서 유통돼야 한다. 이어 그 정보가 개별 국민의 가치체계에 의해 재분류되면서 건강한 편향성이 생성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질적·양적 측면에서 그런 편향성이 다양하게 존재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대한민국은 어떤가. 단적으로 극단적 편향성이 우점종이 된 생태계이다.

명목상 다당제이지만, 거대 양당이 의석을 독과점한 채 극단 대립을 이어가고 있고, 개인의 정치적 견해는 포털에서 양극단으로 나뉜 채 철천지원수처럼 싸우면서 상대의 관점과 이익을 깡그리 무시한다.

건강한 편향성의 바탕인 정보 시장에는 현실과 상대를 왜곡하는 가짜 뉴스가 판을 친다. 거기에 더해 인공지능을 이용한 SNS는 사용자와 동일한 정치 성향의 콘텐츠를 인터넷 상에서 교묘하면서도 끊임없이 제공함으로써 왜곡된 편향성을 더욱 확대시킨다.

어느 쪽이든 확실히 줄을 서야 보상이 주어지다보니, 전문가보다는 극단적인 정치꾼이 관가나 공공기관에 낙하산으로 꽂힌다. 이처럼 왜곡된 인센티브 시스템은 사회의 리더 그룹까지 오염시켜 국가경쟁력을 갉아먹는다.
 

과열된 정치 관심, 사회적 질병의 단면


우리는 선거 때가 되면 "당신의 소중한 한 표가 미래를 바꾼다."며 투표를 독려하지만, 지나친 정치적 관심은 사회적 질병의 단면일 수도 있다는 해석도 있다.

정치학계의 거장 조지프 나이는 지나치게 높은 투표율을 포함해 모든 사람들이 정치에 대해 축구경기와 비견될 정도로 높은 관심을 갖는 것은, 그 사회가 건강하지 않다는 방증이며 민주사회가 감당하기 힘들다는 견해를 「SBS D포럼」 팀과의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각 진영으로 나뉘어 상대를 마치 죽일 듯이 거친 언사를 주고받으며, 조율과 합의보다는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우리의 정치 문화를 보면, 조지프 나이의 해석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역대 대선 당선자들은 예외 없이 내편 네편 따지지 않고 다 품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통치 기간 동안 그대로 됐다고 느끼는 국민이 거의 없다는 게 경험적 진실이다.

하지만 그것을 문제 삼기는 힘들다. 당선자 역시 정치적 편향성이 있고 그 편향성에 부합하는 정책을 우선 선택하는 것이며, 그게 선거라는 민주주의 시스템의 자연스러운 결과이기도 하다.

건강한 정보에 기초한 다양한 편향성이 민주주의의 힘

여야 예산안 협상, 새 중재안 놓고 고심

문제는 극단적 편향성이다. 극단적 편향성은 모든 다양성의 조화, 즉 민주주의의 기본을 허문다. 그러면서 승자독식, 패자소멸, 무한정권을 도모한다. 지금 이 땅에서 우리 정치 문화의 창을 통해 수시로 목도되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정치의 성행은 국가의 미래를 갉아 먹는 거대한 쥐떼의 습격과 같다.

이런 현상이 비단 우리만의 일이 아니란 건 그나마 위안이다. 전 세계를 흑사병처럼 돌고 있는 정치적 양극화, 그리고 극단적 정치 편향은 심화되고 있는 경제적 양극화에 기인한다.

극단적 정치 편향은 필연적으로 내편만을 위한 강력한 포퓰리즘의 유혹을 만들어내고, 그 유혹에 넘어간 정치세력이 다양성을 훼손하고 편향적인 정책을 양산하면, 민주주의의 목적성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정확한 정보에 바탕을 둔 다양한 정치 편향성이 존재하고, 그런 편향성에 따른 이해관계와 갈등이 공론장을 통해 경합하고 조율되면서 합리적 의사결정으로 이어지는 게, 건강한 민주주의의 작동 모습이다.

누가 보더라도 고장난 민주주의의 현재 모습에 대해, 정치 지도자들은 무한한 책임을 느껴야 하고, 공론장 역할을 하는 수많은 미디어의 반성과 더불어, 유권자인 우리 국민도 한번쯤 민주주의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봐야 할 때가 됐다.

고철종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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