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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한 번 천재는 영원한 천재일까

금융권 회장 낙하산 논란을 바라보는 삐딱한 자세

김범주 스프경제
김범주 스프경제

누구에게나 전성기가 있다, 다만 전제도 있다


1. 예능 PD에게 물어봤습니다. 예능 PD는 언제가 전성기냐고요. 눈 돌리는 곳마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보이고, 만드는 프로그램마다 터트릴 것 같은 자신감이 쏟아져 나오는 그런 시기가 몇 살 때냐고 말이죠. 잠깐 생각하더니 아무래도 30대 후반인 것 같다고 답을 했습니다. 판에 들어와서 10년쯤 지나서 돌아가는 걸 좀 알겠고, 여기저기 인맥도 좀 생겼고, 감각도 팽팽하고, 그래서 가장 좋은 결과물이 나올 때란 거였습니다.

의사에게도 똑같이 물어봤습니다. 분야마다 좀 다른데, 많은 환자를 상대하면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진단을 주로 하는 분야들은 상대적으로 오래가고, 대신 손을 써서 정교하게 수술을 해야 하는 분야는 아무래도 40대 중반이 지나면 집중력부터 떨어지는 것부터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마다 다 전성기가 있습니다. 특히 스포츠는 결과로 나오기 때문에 바로 알 수가 있죠. 여자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가장 빠릅니다.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바둑기사들은 20대 초반을 넘으면 보통 꺾이고, 다른 대부분 종목도 30대 초반을 지나면 '에이징 커브'라고 해서 점점 성적이 떨어지는 구간에 접어들게 됩니다.


2. 경제 쪽도 다를 것 없습니다. 이건 뭐 저 말고, 너무나 권위가 있는 분 말씀을 빌리도록 하겠습니다.
Q: 왜 컴퓨터 업계는 젊은 사람들이 지배하고 있죠? 애플 직원들 평균 나이가 29살이잖아요.

A: 사람들은 늙어가면서 갇히게 됩니다. 우리 마음은 일종의 전기화학 컴퓨터 같은 거예요. 당신의 생각이 마음속에 공사장 발판 같은 패턴을 만든단 말이죠. 화학적 패턴을 그리고 있는 거예요. 대부분의 경우에 사람들은 레코드 판에 홈 같은 그 패턴 안에 갇혀서 절대로 빠져나오지 못해요. ..(중략)… 30대나 40대에도 뭔가 놀라운 기여를 하는 예술가는 드물죠. 물론 어떤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호기심 많고, 삶의 경외감 속에 사는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드물죠.

Q: 많은 40대들이 이 이야기 들으면 아주 즐거워하겠네요.

네, 스티브 잡스입니다. 스물아홉 살 때, 1985년 2월에 '플레이보이'와 했던 인터뷰입니다. 서른이 되기 전에 이미 일가를 이룬 천재가, 한계에 갇힐까 봐 걱정하고 있는 게, 미래를 미리 아는 입장에선 괜한 걱정한다는 생각이 들죠.


3. 몇 년 전, 소위 말하는 좋은 대학 좋은 과를 나온, 사회적으로도 꽤 인정받는 자리까지 올라간 분을 몇 번 만날 일이 생겼습니다. 처음 만났던 자리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문득 이런 질문이 날아왔습니다.

"MBC 청룡이 지금 어떻게 됐지?"

뭐지, 유머인가, 하고 눈을 쳐다봤는데, 흠… 당황했습니다. 네, 정말로 저에게 답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30년 가까이 야구에 정말 정말 관심이 없다가, 갑자기 머릿속에 청룡이 떠오른 건가, 네, 뭐, 그럴 수도 있는 거죠.

그런데 이후 만남에서도 비슷한 질문들이 튀어나왔습니다. "키즈카페는 뭐 하는 곳인가" "요새 편의점에서 도시락이 그렇게 잘 팔린다던데" "멘솔은 담배 브랜드 아닌가" 등등. 얼음을 깨고 나온 캡틴 아메리카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궁금해졌습니다. 저 사람이 맡은 일은 안녕한 걸까,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역시나였습니다. 어떻게 좋은 대학을 나왔다는, 그래서 '천재임이 분명한 것 같은' 사람이 지금 저렇게 됐고, 그거보다 더 중요한 건, 저렇게 됐는데도 저 높은 위치에 올라있는 것인가 하고 말이죠. 그래서 유심히 관찰한 결과, 여러 비슷한 경우를 찾았고, 관찰했고, 어느 정도 답을 얻게 됐습니다.


4. 1번을 설명하면서 빼먹은 것이 있습니다. 전성기는 노력한 사람들만 누린다는 겁니다. 물론 기본 자질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죽어라 노력하지 않으면 전성기도 없습니다. 고등학생 때 야구천재 소리 듣던 수많은 선수들 중에 그냥 사라진 선수가 하나둘이던가요. 한창때 세계 랭킹 1위 타이거 우즈도 시즌 끝나면 선생님 만나서 레슨받았습니다. 갈고닦아야 자질도 살아나는 겁니다.

머리 쓰는 영역은 다를까요. 갈고닦지 않으면 낡고 뒤떨어지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저 고민을 이십 대에 했고, 죽을 때까지 갈고닦았습니다. 반대로 우리 사회는 10대 20대에 시험 문제 잘 풀어서 좋은 고등학교 좋은 대학 간 걸 몇십 년이 지나도록 그 사람의 능력으로 인정해왔습니다. 어디 어디 졸업했다고 하면, 아 그 사람 똑똑하겠네, 능력 있겠네 해왔다는 겁니다. 그런데, 겪어봤더니 꼭 그런 게 아니라는 거 알게 된 경험 한두 번은 다들 있지 않나요?


5. 대통령과 여당이 노동개혁안을 들고 나왔습니다. 나이 차면 연봉 오르는 호봉제 대신, 실적에 따라서 월급을 정하는 성과급제로 가자는 겁니다. 지금까지 쭉 적었지만, 이제 그래야 될 시대가 왔습니다. 찬성합니다. 그래야 앞에 쭉 적은 문제들도 바뀔 겁니다. 노력이 대우받는 사회가 올 때가 됐습니다. 그런데요, 대통령과 여당이 저런 말을 꺼내려면 먼저 본인들부터 해결해야 될 숙제가 있습니다.

자산이 550조 원인 NH농협지주 새 회장으로 이석준 씨가 뽑혔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윤석열 대통령 캠프에서 일했고, 그 직전에 좀 굵직한 이력으로 가면 5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때 국무조정실장까지 올라갑니다. 그 전엔 쭉 재무 관련 공무원 일을 해왔습니다. 그 전으로 가면 서울대 경제학과 나와서 행정고시 합격이고요. 자 그런데요. 어릴 때 천재셨던 건 알겠습니다. 그런데 쭉 읊은 이력과, 금융지주 회장 사이에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 건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특히 최근 5년간 어떤 노력을 했는지 찾질 못하겠습니다. 금융업 관련 경력은 아예 없고요. 경제학과 나왔고 재정 관련 업무를 했으니 한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건 아니겠죠 설마. 경제가 어렵고 금융이 위기인 이때에, 550조 거대 그룹을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 남다른, 그런데 아직 보여주지 않은 비전이 있기를, 정말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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