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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안전운임이 가져다준 최소한의 밥벌이"를 위해서

파업은 끝났지만, 화물차 사고 대책은?

[취재파일] "안전운임이 가져다준 최소한의 밥벌이"를 위해서
화물연대 파업은 끝났지만, '안전운임제'를 둘러싼 갈등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12일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제도 전면 재검토를 시사했습니다. 반면 화물연대는 '시간 끌기'라면서 반발하고 있어요. 한번 제도가 일몰되면 다시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하기 때문에 그것만은 막자는 분위기입니다. 그래서 이봉주 화물연대 위원장은 국회 앞 농성장에서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고요. 안전운임제를 사수하자는 쪽과 그렇지 않은 쪽의 줄다리기는 여전합니다.

화물연대가 파업 종료, 현장 복귀를 결정한 12월 9일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서 눈물 흘리는 조합원들 (사진=연합뉴스)
가장 큰 걱정은 다시 운전대를 잡게 된 화물기사들의 노동 조건이 그대로라는 겁니다. 화물기사들의 일상화된 과로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당장 함께 도로를 달리는 '우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당정은 파업 끝내고 돌아온 노조에 이제는 '책임'을 묻겠다며 제도 폐지를 거론하고 있습니다. 그냥 이대로 폐지되어도 괜찮은 걸까요?
 

인구 규모 비슷한 프랑스보다 훨씬 높은 한국의 '화물차 사망사고' 비중

우리보다 인구가 1천만 명 많은 프랑스와 비교해보면 한국의 화물차 사고 심각성은 더 선명해집니다. 2021년 기준 화물차가 초래한 사망자 수 비중이 프랑스 146명으로 5%였지만, 우리나라는 721명으로 23.4%에 달했습니다. 반면 승용차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프랑스 48%, 우리나라 45.8%대로 큰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정부도 '화물차 사고 감축 필요성'에 대해서는 깊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올해 초 정부 부처 합동으로 <사업용 차량 교통 안전 강화 대책>을 발표했는데, 특히 화물차로 인한 사망사고가 높다는 데 주목했습니다.

정부 부처 합동으로 발표된 <사업용 차량 교통안전강화 대책> 중 추진배경
정부가 내놓은 대책을 볼까요. 과적이나 적재 불량을 근절하기 위해서 단속을 강화하고, 화물차 운행 기록 제출 의무를 강화해서 휴게시간 준수 여부를 확인하겠다는 식입니다. 화물차는 강화된 휴게시간에 따라 2시간 운전 후 15분 휴식을 지키도록 되어있습니다.
 

2시간 운전 후 15분 휴식이 대책? "화물차 근로시간 총량제 도입 필요"

그렇다면 "2시간 운전 후 15분 휴식"으로 화물차 기사들의 졸음운전 막을 수 있을까요? 교통 분야를 연구하는 한상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는 회의적입니다. "15분 휴식은 운전에만 한정되어 있어서 근본 해결책이 되기 어렵습니다. 상하차와 대기시간 등을 모두 포함한 근로시간 총량제 도입이 필요합니다. 화물 시장에서 운임이 낮아진 중요한 포인트는 공급 과잉 때문입니다. 화주 입장에선 운임을 낮춰도 일할 사람이 꾸준히 있으니 운임을 올려야 할 요인을 찾지 못했고, 화물기사 입장에서도 '운임이 적으면 내가 더 일하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구조였던 겁니다. 안전운임제가 나온 건 이런 맥락에서였습니다. 워낙 낮게 형성된 운임을 시장에만 맡기면 올라갈 동기가 부족하니 국가가 표준을 제시하자는 취지입니다. 사고를 낮춰 도로 공공성을 지키면 공동체 전체적으로는 이익이 될 거라는 판단입니다. 화물기사에 대한 근로시간 총량제는 유럽이나 미국, 일본에서는 이미 시행하고 있습니다."

안전운임제를 비단 정쟁의 대상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의 사업장이 시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도로'이기 때문입니다. 한 익명의 화물차 기사가 보낸 메일 전문을 싣습니다. 그는 "안전운임이 가져다준 최소한의 밥벌이"란 표현을 썼습니다.
 
안녕하세요.
경남에서 거주하는 40세 트레일러 운전자입니다.
저는 일요일 저녁 두 아들, 아내와 저녁 식사를 하고 차고지로 나옵니다.

짐이 가득 차 있는 컨테이너 한 개와
비어있는 깡통 트레일러 하나를 싣고 중부지방 충청권까지 운송을 합니다.

매일매일 하루 700에서 800km 운전을 합니다.
85km/h 정속 안전운행을 해서 하루 평균 12시간을 운전합니다.

물론 퇴근은 금요일 밤이 되겠지요
일요일 밤에 집을 나설 때
우리집에 또 놀러와! 라는 둘째 녀석 인사는
일하는 내내 머릿속을 맴돕니다.

수입은 월 평균 2200 정도
유가보조는 월 4,300리터 정도…. 요즘 같으면 월 700만 원 이상 유가로 비용이 나갑니다.
도로비 평균 200만 원, 지입료 25만 원
주차 비용 25만 원
식대 70만 원
매월 부가세 10% 대략 200만 원
차량+샷시 할부금 6.4% 금리 이자 포함
월평균 400만 원
화물공제조합 적재물보험까지 합쳐서 월 60만 원
수입 컨테이너 반납 비용 월 100만 원
소모품 비용 소극적으로 계산해서 월평균 50만 원
집에 가져다주는 돈은 370만쯤 되겠네요.

일평균 15-16시간, 집에도 못 들어가고 벌어들이는…
안전운임이 가져다준 최소한의 밥벌이입니다.

지금 안전운임 폐지를 거론하는 건
40만 운전자와 그 가족들을 사지로 내모는 발언입니다.

왜 쿠팡 노동자가 죽으면 과로사이고
화물차 운전자가 죽으면 과속, 과적에 따른 난폭운전의 결과입니까?
너무나도 답답한 마음에 넋두리해봅니다.

국내외 화물차 사고와 안전운임제 효용성을 연구해 온 백두주 부경대 연구위원(안전운임연구단장)은 이 부분을 꼭 지적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직접 운송하는 사람의 운임을 계속 깎는 방식, 즉 시장의 불안정성을 높이는 방식을 택하면 나중에 불특정 다수가 부담하게 되는 사회적 비용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안전운임제 도입 이후 차주의 주관적 인식, 즉 과적과 과로가 어떻게 변했는지,  노동의 위험도가 어떻게 변했는지 시계열적으로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단순히 소득만 두고 판단해서는 안 되고 거기에 따른 위험 행동도 살펴봐야 한다."

지금 정부의 소통 방식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권영국 변호사는 " 정부가 갈등을 어떤 식으로 조정하고 원만하게 풀어나가기를 택하기 보다 한쪽을 굴복시키는 방식으로 공권력을 동원하고 있는데, 이는 단기간에 효과 있을지 몰라도 내적으로 보면 불만과 문제 의식이 응축되는 과정이기도 하다"면서, "힘으로 누르면 결국 나중에 곪아 터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습니다. 

새 정부가 말하는 '법과 원칙' 중요합니다. 하지만, 헌법에 보장된 노동권 행사 역시 엄연히 법에 보장된 권리입니다. 모든 이에게 똑같은 무게로 내리는 겨울 눈처럼, 법치는 공평해야 합니다. 국회가 문 닫기 전에 안전운임제에 대한 보다 진전된 논의가 이뤄지기를 기대합니다.

(참고자료 : 서울대 환경대학원 한상진 교수 블로그, 한국안전운임연구단 <한국 안전운임 시행 효과 분석 및 지속 가능한 제도 시행을 위한 조사 결과>)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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