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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장거리 공대지 개발' 기한 준수의 난제…그 후과는?

[취재파일] '장거리 공대지 개발' 기한 준수의 난제…그 후과는?
▲ 시험용 미사일로 장거리 공대지 진동시험을 하고 있다. (사진=방사청 제공)

한국형 초음속 전투기 KF-21에 장착할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의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됐습니다. 국방과학 당국이 독자개발 가능성을 검토하는 탐색개발을 마치고, 실제로 무기를 만드는 체계개발에 착수한 것입니다.

어제(12일) 방사청이 제시한 국산 장거리 공대지의 개발 목표는 독일제 타우러스입니다. 500km 이상 날아가 창문 크기의 표적을 정확히 때린 뒤 수 미터 두께의 강화콘크리트를 뚫고 폭발하는 성능을 구현한다는 구상입니다.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의 개발 및 KF-21 체계통합 기한은 2028년입니다.

그런데 방사청과 국방과학연구소의 고위 당국자들조차 '2028년 개발 완료'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투기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10년 미만 기간에 실패 없이 장거리 공대지를 개발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입니다. 도전 자체는 가치가 있겠지만 문제는 KF-21입니다. 장거리 공대지 개발이 늦어지면 KF-21은 우리 공군과 해외 '큰손'들로부터 외면 받습니다. 강은호 전 방사청장의 표현처럼 꼬리(미사일)가 몸통(KF-21)을 흔들게 됩니다.

한국형 초음속 전투기 KF-21 시제기가 시험비행을 위해 이륙하고 있다.
▲ 한국형 초음속 전투기 KF-21 시제기가 시험비행을 위해 이륙하고 있다.
  

'2028년 개발 완료' 자신 못하는 당국

작년 10월 19일 국방과학연구소 국정감사에서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국방과학연구소 관계자로부터) 2028년까지 (장거리 공대지의) 개발이 불가능하다고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박종승 국방과학연구소장은 "2028년도에 연동해서 나가는 것은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이 아닌) 유도 폭탄류가 의논됐다", "2028년도 장거리 공대지에 대해서는 공군에서는 그렇게 요구하고 있고, 방사청은 거기에 맞게 어떤 형태이든지 정책 결심을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스케줄에 대해서는 추후에 검토해 봐야 되겠지만 그것은 별도로 보고하겠다"며 즉답을 피했습니다.

박종승 소장의 발언은 유도폭탄이야 2028년까지 되겠지만 장거리 공대지 2028년 개발 기한은 모종의 정책적 판단에 따라 변경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하태경 의원실 관계자는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 개발을 위한 중요한 시험 스케줄을 잡을 수도 없고, 잡지도 못하고 있다", "개발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1년이 지난 어제 국방부 정례 브리핑에서 "2028년까지 장거리 공대지를 못 만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기자 질문에 방사청 관계자는 "이 자리에서 '2028년에 반드시 완료하겠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관련 기관과 협조하고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적기에 추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1년 전 국방과학연구장의 자신 없는 발언에서 한발도 내딛지 못한 것입니다.
 

2028년까지 개발 못하면 어떤 일 벌어지나

2028년 기한을 넘겨 개발에 성공해도 미사일만 떼어놓고 보면 큰 성과입니다. 다만, 장거리 공대지 개발이 늦어졌을 때 곤궁해지는 KF-21의 처지가 걱정입니다. 장거리 공대지 없는 4세대, 4.5세대 전투기는 무력합니다. 한반도 전장만 놓고 봐도 북한의 핵 시설을 멀찍이서 때리지 못하는 최신형 전투기는 존재의 이유가 없습니다. 수출 시장에서 힘도 못 씁니다.

주목할 것은 4.5세대 KF-21뿐 아니라 5세대 F-35를 능가하는 6세대 전투기 개발을 위한 국방과학 강국들의 잰 걸음입니다. 일본(미츠비시중공업)과 영국(BAE시스템즈), 이탈리아(레오나르드)가 2035년 6세대 전투기 개발 완료를 목표로 글로벌 항공 전투 프로그램(Global Combat Air Programme·GCAP)을 출범시켰습니다. 프랑스(닷소), 독일(에어버스), 스페인(인드라)의 미래 전투 항공 시스템(Future Air Combat System·FACS)은 전투기와 항공 무장 개발 능력 면에서 일본·영국·이탈리아의 6세대 동맹보다 강력합니다.

일본 방위성이 공개한 차세대 전투기 이미지. 일본, 영국, 이탈리아가 2035년까지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 일본 방위성이 공개한 차세대 전투기 이미지. 일본, 영국, 이탈리아가 2035년까지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FACS와 GCAP의 6세대 전투기와 4.5세대 KF-21의 시장은 다릅니다. 하지만 4.5세대와 6세대의 중첩 시장이 존재합니다. 동중부 유럽과 중동 등입니다. KF-21이 무장 개발 지연으로 수출 시장에 늦게 진입하면 규모의 경제로 가격을 낮춘 6세대 전투기에 중첩 시장을 내주기 십상입니다.

우리 국방과학 당국이 반신반의하는 목표 기한인 2028년에 장거리 공대지 개발을 마친다고 해도 여러모로 늦습니다. KF-21의 양산 기체가 2026년부터 나오는데 그 이후 몇 년 동안 장거리 공대지가 없으니 그동안 KF-21 수출 마케팅을 공격적으로 못합니다. 이에 비하면 KF-21 1차 양산분 40대는 포기하고 2028년 이후 2차 양산분 80대부터 장거리 공대지를 장착하는 불합리함은 사소하게 보일 정도입니다. KF-21을 개발하는 한국항공우주산업의 한 임원은 "KF-21의 수출을 서둘러 최소 300~400대를 양산해야 KF-21 사업의 성공을 논할 수 있다", "우리 공군용과 수출용 KF-21의 무장을 별도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바꾸고, 또 바꾸며 허송세월

국방부와 국방과학 당국은 장거리 공대지 체계개발의 주관을 어디에 맡기느냐를 놓고 몇 년 동안 같은 자리를 맴돌았습니다. 국방과학연구소가 한다고 했다가, 돌연 방산업체에 맡긴다더니, 다시 국방과학연구소로 넘겼습니다. 방사청은 재작년만 해도 "돈과 시간이 많이 든다"는 반론을 배척하고 업체 주관을 밀어붙였습니다. 작년부터는 염치없이 "돈과 시간이 많이 든다"는 반론을 역이용해 업체 대신 국방과학연구소 주관으로 180도 입장을 바꾼 것입니다.

국방부와 방사청이 오락가락 의사결정을 한 이유는 지금까지도 미스터리입니다. 이리저리 질문해도 당국은 대답을 피합니다. 책임자들 대부분은 무책임하게 공직을 떠났습니다. 그동안 버린 시간과 노력이 아까울 뿐입니다.

또 돌고 돌아 주관기관이 된 국방과학연구소는 개발 사업을 오래 끄는 경향이 있습니다. 감사원이 2018년까지 무기 연구개발 과정을 들여다본 결과, 사업 지연은 업체 주관의 경우 36%에서 평균 10.8개월인데 반해 국방과학연구소 주관은 64%에서 평균 22.6개월로 나왔습니다. 국방과학연구소가 주관하면 개발 사업 지연 가능성은 커지고 지연 기간도 대폭 늘어나는 것입니다.

이미 시간 까먹은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 개발입니다. 국방과학연구소가 주관하면서 시간을 더 허비하면 KF-21 사업이 위기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국방부, 공군, 방사청, 국방과학연구소의 어떤 이라도 나서 장거리 공대지 개발 지연에 경종을 울릴 법도 한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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