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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독재자들은 왜 월드컵을 좋아할까

[스프] 독재자들은 왜 월드컵을 좋아할까

스포츠 이벤트의 정치학

이경원 기자

작성 2022.12.10 09:32 수정 2022.12.10 13:4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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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독재자들은 왜 월드컵을 좋아할까
지난달 10일, 카타르 도하발 QR644편이 네팔 카트만두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화물칸에서 흰색 나무 상자가 실려 내려왔다. 상자 겉면에는 '고(故) 우메시 쿠마르 야다프, 21세 남성, 네팔인의 유해'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우메시(아래 사진)는 카타르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20대 청년이었다. 1,500달러의 직업 소개비를 마련하기 위해 집에서 키우던 물소까지 팔았다. 하지만, 우메시의 '카타르 드림'은 비극으로 끝났다. 그는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우메시의 부모는 아들이 왜 죽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건설 현장에서 발판을 들어 올리다가 넘어져 사고를 당했다"는 설명을 들었을 뿐이다. 이 사연을 접한 영국의 BBC 방송이 직접 업체에 문의했지만, "우리는 우메시에게 여러 차례 안전기준을 준수하라고 말했지만, 그가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 우메시의 부주의로 생겨난 사고"라는 답이 돌아왔다.

우메시가 사망한 공사 현장. 우메시의 가족이 영국의 방송 BBC에 제공했다.2010년 12월 카타르 월드컵 개최가 확정된 이후, 카타르는 개발 붐이 일었다. 자국민이 12%에 불과한 카타르는 외국인 노동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작업 환경은 좋지 않았고 희생이 계속됐다. 영국의 가디언은 "카타르에서는 월드컵 개최권을 따낸 이후 6,500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사망했다"고 분석했다.

심지어 사망자 70%가 사고사가 아닌, 심장마비와 같은 '자연사'로 분류됐다. 물론, 카타르 정부의 주장이다. 부검을 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인도와 동남아 지역 빈민촌에 살고 있는 희생자 가족 대부분은 자식의 죽음을 규명할 방법을 모른다.

지난 5월, 스위스 노동 단체가 취리히에서 카타르의 외국인 노동자 인권 탄압 문제를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그리고 월드컵 개막을 20일 앞둔 시점, 카타르 정부는 월드컵 관광객 숙박 시설 근처에 머물고 있던 외국인 노동자 수천 명을 사전 통보 없이 강제 퇴거시켰다. 그들은 카타르를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 그리고 외국 언론의 눈에 띄면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지금껏 인권 탄압을 부인해 왔던 카타르 정부 입장에서 그들의 존재는 자신들의 주장을 반박할 증거나 다름없었다. 월드컵으로 국가 이미지를 개선하고자 했던 목표에 흠집이 나서는 안 됐다.

카타르만이 아니었다. 스포츠 정신과 게임 열기를 지렛대 삼아 "우리는 그렇게 나쁜 나라가 아니"라며 부정적 평판을 세탁하려는 시도는 스포츠사(史) '흔히' 있던 사례였다. 이번처럼 탄압의 증거를 은폐시키기 위해 또 다른 탄압이 자행된 경우도 있었다. 이른바, '스포츠 워싱'(sports washing)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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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이벤트 개최에 열심인 권위주의 국가들]

지난달,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의 아담 샤르프 교수가 스포츠워싱과 관련해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최근 들어, 민주주의 국가보다는 권위주의 국가에서 스포츠 이벤트 개최를 더욱 선호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연구팀은 1945년부터 세계에서 열린 월드컵과 하계 및 동계 올림픽, 여기에 세계적으로 주목도가 높은 육상, 농구, 크리켓, 핸드볼, 아이스하키, 럭비, 탁구, 배구 선수권 등 모두 11개 스포츠 이벤트의 주최국을 분석했다. 그리고 주최국을 민주주의 국가와 권위주의 국가로 분류한 뒤 횟수를 비교했다.

냉전 이후, 권위주의 국가일수록 스포츠 이벤트를 개최하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는 데이터 분석 결과였다. 1990년대 초반 8%에 불과했지만, 최근 37%로 급증했다.

스프 이미지중국과 러시아가 스포츠 이벤트 개최에 열을 올리는 것은 그 상징적 장면이다. 중국은 2008년 베이징 하계 올림픽과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 러시아는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과 2018년 월드컵을 개최했다. 또 다른 빅 이벤트인 세계육상선수권의 경우 2013년 러시아 모스크바, 2015년 중국 베이징, 2019년에는 카타르 도하에서 열렸다.

스프 이미지지난 2월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서도 스포츠워싱 문제가 불거졌다. 개막식 당시 성화 봉송 최종 주자였던 여성 크로스컨트리선수 딜니가르 일함잔이 논란이 됐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한족이 아닌 소수민족 위구르인이다. 무명에 가까운 선수였다.

당시, 서방 국가들이 중국의 위구르 인권 탄압을 명분으로 외교 사절을 보내지 않고 있던 상황이었다. 자연히 중국의 노림수라는 정치적 해석 나왔다. "중국은 소수민족을 성화 봉송 최종 주자로 삼을 만큼 열려 있는 나라"임을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중국이 동계 올림픽을 통해 인권 탄압 이미지를 세탁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불과 10개월이 지난 지금, 신장위구르 자치주 우루무치 아파트 화재로 다시 위구르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른 것은 역설적이다.

카타르 알 자누브 스타디움물론,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스포츠 이벤트를 통해 국내 통합을 유도한 사례는 적지 않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보통 선거 실시 이후, 첫 선출된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인종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1995년 럭비 월드컵을 개최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경제적 목적도 강하다. 스포츠 이벤트는 외국인 투자 유치와 관광 산업 활성화의 모멘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민주주의 국가들은 스포츠 행사를 기피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스포츠 이벤트를 개최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세금이 투입되는데, 예상만큼 좋은 효과를 거두지 못하면 국내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는 리스크 때문이다. 베이징 동계 올림픽은 민주주의 국가들이 유치 신청을 철회하면서 선정된 경우다. 스웨덴은 막대한 경기장 건설비용에 대한 부담 때문에, 폴란드는 주민투표까지 거친 결과 70%가 반대하면서 입후보를 포기했다. 당시 베이징의 유일한 경쟁 후보는 카자흐스탄 알마티뿐이었다.
 

[올림픽 관리 기관이 우크라이나 침공 기관으로]

권위주의 국가의 독재자들은 스포츠 이벤트를 통해 다양한 이득을 취한다. 그 역사는 20세기 초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만큼 스포츠워싱의 역사는 유서 깊다. 파시즘의 대명사 이탈리아 무솔리니는 1934년 월드컵을, 독일의 히틀러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개최했다. 

독재자들은 스포츠 경기에 모인 군중들의 열광적인 모습이 정치 공간에서 구현되길 원했다. 토론이 아닌 연설을 통해 대중과 커뮤니케이션하는 독재자들은 늘 군중의 열기가 필요했다. 대외적으로도 독재 국가라는 이미지를 세탁하고, 나아가 문화적 기술적 우월성 과시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이런 면에서 무솔리니와 히틀러의 사례는 스포츠워싱의 원류였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참석한 아돌프 히틀러하지만, ‘이미지 개선’이라는 무형적 효과에 멈추지 않는다. 스포츠 이벤트는 독재자 개인에게 실질적이고 가시적인 이익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샤리프 교수는 권위주의 국가가 스포츠 이벤트를 유치한 뒤, 국내 투자 과정에서 벌어지는 구체적인 일들에 주목한다.

스프 이미지대표적 사례가 2014년 소치 올림픽이다. 올림픽을 유치하면 건설 붐이 시작된다. 당시 푸틴 대통령은 올림픽 건설과 관련한 여러 계약들을 최측근에게 부여하는 식으로 특권을 줬다. 러시아 최대 가스관 건설 회사 스트로이가스몬타슈 소유주이자, 푸틴의 죽마고우인 로텐베르크 형제는 소치 동계올림픽 관련 계약을 여러 건 따내며 수십억 달러를 끌어모았다.

소치올림픽 폐막식에 참석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심지어, 푸틴은 당시 동계 올림픽을 통해 통치 자원을 결집하고, 이를 전쟁에 쏟아부었다는 의심까지 받고 있다. 조지 워싱턴 대학의 로버트 오퉁 교수가 2017년 펴낸 책 <푸틴의 올림픽 : 소치 동계 올림픽과 21세기 러시아의 진화>는 그 과정을 세밀하게 파헤치고 있다.

러시아는 2014년 2월 소치 동계 올림픽이 끝난 직후, 우크라이나 영토인 크름 반도를 침공해 강제 병합한다. 그 과정에서 병합된 크름 지역을 관리하던 조직이 크리미스트로이(Krymstroy)다. 그런데 크리미스트로이는 소치 동계 올림픽을 위해 만들어진 국영기업 올림프스트로이(Olympstroy)에서 간판만 바꾼 조직이었다.

스프 이미지올림프스트로이는 소치의 올림픽 경기장 건설과 휴양지를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국영 기업이었다. 건설사에 올림픽 계약을 부여하고, 올림픽 운영 과정의 보안 등을 관리했다. 자연히 돈과 정보, 치안력을 흡수할 수 있었다. 즉, 소치 올림픽을 통해 집중된 군사력과 노동력은 바로 크름 침공과 그 사후 관리에 역할을 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크라이나 크름 지역 병합 작전의 최전선에는 올림픽이 있었다. 크름 침공은 당연히 국제적 비난을 받았지만, 푸틴의 집권을 영속화하는 계기가 됐다. 그 비극은 지금의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연결됐다.

오퉁 교수는 이렇게 결론 내린다.

"소치 올림픽은 러시아의 무자비한 프로파간다를 위한 밑거름이 됐다."
 

[영리한 독재자]

물론, 모든 독재자가 스포츠워싱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독재 정권에 맞서는 민주화 혹은 반체제 인사들 역시 스포츠 이벤트를 정권의 실상을 알리는 기회로 여기기도 한다. 독재자 입장에서는 국제적 이목이 집중되는 만큼, 늘 자신이 했던 대로 강경하게 탄압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스포츠워싱의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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