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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전대미문 대입 시험지 도난사건, 범인은 학교 경비원?

[꼬꼬무 찐리뷰] 전대미문 대입 시험지 도난사건, 범인은 학교 경비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8일 방송된 '1992년 대학 시험지 도난사건: 정답 없음'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가수 존박, SBS 김가현 아나운서, 영화감독 장규성이 출연했습니다. (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대입 시험지가 사라졌다

때는 1992년, 서울 구로동의 한 고등학교. 쉬는 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남학생 10명이 우르르 밖으로 뛰어 나갔어. 이들이 모여서 한 건 노래 연습. 쉬는 시간, 점심 시간, 가리지 않고 틈만 나면 모여서 노래 연습을 했어. 왜냐고? 성악과를 지망하는 고3 수험생들이었거든. 필기 준비와 실기 연습을 다 해야 해. 대입 시험이 코앞이라 더 열심히 연습했어. 그 자리에는, 19살 윤종이도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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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에 3년을 준비한 게, 거기서 판가름이 나고 결정이 나니까. 인생의 당락, 학생들에게는 가장 소중하고 운명적인 시험을 보는 거거든요." -도윤종, 당시 고3

입시가 전부였던 시절. 지금은 대입시험을 대학수학능력시험, 줄여서 '수능'이라고 부르지? 윤종이는 '학력고사' 세대였어. 1982년~1993년까지 치러진 대학 입학 학력고사는 지금의 수능과 달라. 논리적이고 통합적인 사고 능력을 측정하는 수능과 다르게, 학력고사에서 제일 중요한 건 암기였어. 수학 공식이든, 영어 단어든, 달달 외우면 됐어. 주입식 교육의 백미지.

그리고 학력고사와 수능의 큰 차이점 하나는 바로, '선지원 후시험'. 지금은 수능시험 성적을 확인한 후 대학에 지원하지만, 학력고사는 반대야. 가고 싶은 학교를 먼저 지원하고 그 후에 시험을 쳐. 그래서 정원 40명인 학과에 39명만 지원한다면, 시험을 망쳐도 합격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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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당시 대학 원서 접수 때는 첩보영화를 방불케 하는 작전이 펼쳐졌어. 온 가족이 총출동해서 지원하고 싶은 대학에 뿔뿔이 흩어진 후, 매시간 업데이트하는 학과별 경쟁률을 보고 어디가 경쟁률이 낮은지, 정원 미달된 과는 없는지,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며 서로 연락하다가 마감 시간 직전에 원서를 접수했어.

또 학력고사 세대는 1년에 시험을 3번까지 볼 수 있었어. 전기대, 후기대, 전문대까지. 전기대에 떨어지면 후기대, 그거 떨어지면 다시 전문대에 지원할 수 있었어. 윤종이는 전기대에 떨어지고, 1992년 1월 22일에 치를 후기대 학력고사에 사활을 건 상황이었어.

드디어 후기대 학력고사 시험 전날이 됐어, 대입 시험 전날에는 예비 소집이란게 있어. 지원한 대학에 가서 수험표도 받고, 내일 들어갈 고사장을 확인을 미리 해. 윤종이한테 일이 터진 건, 바로 그 날이었어.

1월 21일, 윤종이는 시외버스를 타고 지원한 대학이 있는 경기도 부천으로 향했어. 마음을 다잡고 정문으로 들어서는데, 방송사, 신문사 차량들이 엄청 많아. 입시 분위기를 촬영하러 왔나 보다 생각했는데, 기자들 표정이 너무 심각해. 오후 2시, 모든 수험생들이 강당에 모였는데 분위기가 어수선했어. 잠시 후 학교 관계자가 단상에 올라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상태로 말했어.

"수험생 여러분, 시험이 취소됐습니다. 다들 집에 돌아가서 뉴스를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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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까지 24시간도 안 남았는데, 학력고사가 갑자기 취소됐다는 거야. 대한민국 건국 이래 처음으로 대입 시험이 취소됐어. 후기대 학력고사를 예정됐던 1월 22일이 아닌, 2월 10일로 연기한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시계를 5시간 전으로 돌려 1월 21일 오전 9시 20분 부천경찰서. 어젯밤부터 당직을 서고 있던 표 경위는 도난 신고 전화를 한 통 받았어. 현장에 있었던 표 경위한테 직접 당시 상황을 들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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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가 경찰된 지 3년 차, 새파란 새내기 경찰이었죠. 그날도 제가 야간 상황부실장을 맡는 날이었고, 상황실 직원 한 분이 전화를 받으시고 절 쳐다보더니 '입시 시험지가 도난당했답니다'라고 했어요. 이상한 사건이잖아요. 강력사건도 아니고, 절도 도난사건인데, 없어진 물품 자체가 대단히 독특한 물건이잖아요. 그런 일은 그 전에도 이후에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표창원, 당시 부천경찰서 3년 차 경위

맞아. 이분은 범죄심리학자 표창원 소장. 바로 그때의 표 경위야. 표 경위의 인생을 바꾼 사건이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화성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오늘의 이 사건이야. 바로, 1992년 후기대 시험지 도난사건.

▲ 철저한 봉인을 뚫고 사라진 시험지

사건이 터진 이후 온 나라가 난리가 났어.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며 부천경찰서 마당은 취재진으로 가득 찼어. 이때 경찰보다 더 비상에 걸린 사람은 누구? 수험생들이지. 당시 수험생 수가 27만 명이 넘어. 시험을 보려고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은 고향에 내려갈 차편을 구하느라 정신이 없어. 경찰, 수험생만큼 비상이 걸린 사람 또 있어. 시험 문제를 내기 위해 감금됐던, 시험 출제위원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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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제를 참여하시는 분들은 20일 이상 연금 생활을 하고, 가족들에게 어느 장소에 가서 연금하는지 정보도 알려주지 않고 출제에 들어갑니다. 실질적으로 외부로 통화할 수 있는 건 원초적으로 차단하고, 유리창도 다 막아놨고 출입하는 문도 못을 박아 출입 자체가 불가능하도록 만들어놓고. 출제 기간에 나오는 쓰레기는 외부로 유출되지 않고 출제가 끝날 때 외부로 나오기 때문에, 현장에서 외부로 나올 가능성은 없다. 정말 온갖 심혈을 기울여서 여러가지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시험 문제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석록, 93년 학력고사 출제 검토위원

이 감금이 끝나는 시점은, 시험 당일 4교시 시험이 시작된 직후래. 근데 시험일을 딱 하루 남겨두고, 감금이 20일가량 연장된 거야. 게다가 시험 문제도 처음부터 다시 내야 해. 이번 시험지 도난 사건으로 여기도 난리, 저기도 난리, 국가적으로 피해가 어마어마해.

도대체, 누가 시험지를 훔쳤을까. 도난사건이 벌어진 곳은 부천의 한 대학교야. 시험 이틀 전인 1월 20일 오전, 성남의 인쇄소에서 시험지 15상자가 출발했어. 교육부 감독관, 경찰을 대동하고 학교 경비과장 김 씨가 운전했어. 학교에 도착한 건 점심 때쯤. 이 시험지 상자는 학교에서 가장 안전한 곳으로 여겨진, 본관 1층 교무처의 안쪽 전산실로 운반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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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지켜보는 가운데, 학교 경비원, 교무처 직원들이 상자를 쌓고 큰 전지로 이중포장을 했어. 그리고 전산실 문을 잠그고, 바깥에 봉인지를 붙였어. 그날 밤 8시 40분,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후에는 건물의 출입구 5곳을 쇠사슬로 걸어 잠궜어. 사실상 건물을 폐쇄한 거지.

이후에 공식적으로 학교에 머문 사람은 20대 경비원 이 씨와 40대 경비원 최 씨, 둘뿐이야. 이 씨는 학교의 정문 경비, 최 씨는 본관 경비를 맡았어. 최 씨가 마지막 순찰을 돈 건 새벽 1시. 그때까진 아무 이상이 없었어. 그 후 최 씨는 교무처 맞은편에 있는 전화교환실에서, 이 씨는 정문 수위실에서 잠이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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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오전 7시 40분, 최 씨가 다시 순찰을 돌려고 복도를 지나가는데 발에 뭐가 밟혀. 유리조각들이야. 이상한 느낌에 위를 쓱 보는데, 교무처 출입문 위쪽 유리창이 깨져 있어. 그런데 문은 잠겨있는 상태야. 누군가 유리창을 깨고 침입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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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 최 씨는 교무처 직원한테 서둘러 전화를 걸었어. 교무처 직원은 그 안에 시험지를 빨리 확인해보라 했어. 그런데 최 씨한테는 교무처 열쇠가 없었어. 급한 대로 최 씨는 사다리를 갖고 와서 깨진 유리창을 넘어서 안으로 들어갔어. 살펴보는데 내부는 깨끗해. 그런데 그 순간, 뭐가 눈에 확 들어왔어. 전산실 문을 봉인해둔 종이가 찢어져 있어. 곧바로 전산실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이중포장했던 전지는 다 찢어졌고 시험지 상자는 날카로운 무언가로 인해 구멍이 난 상태야. 그리고 시험지는 사라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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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인으로 지목된 경비원

도대체 어떤 간 큰 사람이 시험지를 훔칠 생각을 했을까. 경찰은 곧바로 현장 감식에 들어갔고, 전산실 안에서 지문 6개와 족적 2개를 발견했어. 하지만 지문과 족적은 전날 시험지를 운송했던 직원들 거였어. 경찰 도착 전에 수많은 직원들이 현장을 들락날락 하며 현장이 오염됐어. 결국 현장에 남은 직접 증거는 없다고 봐야해.

CCTV가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절, 경찰이 주목한 건 바로 문이었어. 쇠사슬로 봉쇄했던 그 현관 출입문. 사건 당일 아침에도 출입문은 봉쇄된 상태였어. 그리고 또 수상한 게 발견됐어. 지하 1층에 외부 벽면 유리창 하나가 깨져있는 거야. 경찰 눈에는 그 깨진 유리창이 묘하게 부자연스러웠어.

"우성 가장 큰 의문이, 밖에서 안으로 침입했다면 파손된 유리창이 안쪽으로 떨어져야 될 텐데, 유리창 파편이 바깥쪽으로 떨어져있는 부분이 상당히 의문이었죠."
-표창원, 당시 부천경찰서 경위

경비원 최 씨가 교무처에 처음 들어왔을 때, 현장이 깨끗했다고 했잖아? 그건, 시험지가 전살실에 있다는 걸 아는 사람, 다시 말해 범인은 학교 사정을 잘 아는 내부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걸 의미했어. 경찰은 이걸 토대로 용의자를 추리기 시작했고, 몇몇을 용의 선상에 올렸어.

첫 번째 용의자는 학보사 기자 조 씨야. 평소에는 본관 3층에 위치한 학보사에서 밤샘 작업을 자주 했대. 그리고 1월 21일 사건 당일 아침에 경찰이 오기도 전에 사건 현장에 나타나서 사진을 찍고는 급히 사라졌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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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깨진 걸 보고 '무슨 일이 있나?' 해서 평상시 기자 하듯이 그냥 사진을 찍고. 시험을 치른다는 건 알았지만 입시 시험지가 언제 도착하는지 이런 건 정확히 모르고 있었거든요. '본관을 폐쇄해야 하니 나가달라' 해서 당연히 나가 드렸죠."
-조재석, 당시 학보사 기자.

다음은 총장 반대파 학생들과 총장 지지파 교직원들이야. 이 학교 총장이 18년 동안 재임 중인데, 연임 문제를 두고 반대파 학생들과 수년째 대립 중이었어. 총장실 점거 농성까지 했던 학생회 간부들은 "여차하면 시험을 못 치르게 만들겠다"라는 과격한 발언도 하고 그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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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를 못 치르게 할 정도로 농성이 험하지 않았어요. 농성이 꽤 장기간이었는데 일요일 되면 저 혼자 있고 그랬어요, 다 교회 가버리고. 아주 센 점거 농성이었으면 그랬겠어요?"
-정재현, 당시 총학생회 임원

반대로 총자 지지파 교직원들은, 총장이 연임이 힘들 것 같은 분위기니 이런 사건이라도 만들어 분위기가 뒤집히길 바란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어. 그리고 학교 경비원들도 그날 밤 사건 현장에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이라 용의 선상에 올랐어. 심지어 1992년 시대 상황을 반영해 사회 혼란을 야기시키려는 북한 간첩의 소행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어.

당시 경찰이 찾은 범인은, 사건 현장의 최초 발견자 경비원 최 씨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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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사건 초기부터 최 씨를 주목했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었거든. 그날 밤 최 씨는 교무처 맞은편 전화교환실에서 잠을 잤다고 했어. 그런데 정말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를 못 들었을까?

"최초에 3~4번 야간 순찰했다고 진술했거든요. 그렇다면 당연히, 이 사건에 대한 어떤 이상한 낌새, 외부인의 침입 또는 도주, 유리창 깨지는 소리를 분명히 목격하거나 들었을 텐데. 아침 될 때까지 몰랐다는 건 아무래도 의심이 갈 수밖에 없죠."
-표창원, 당시 부천경찰서 경위

더 수상한 건, 최 씨의 진술이 계속 바뀐다는 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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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어떻게 근무를 섰느냐, 조서를 받았어요. 한 5시간 정도 걸렸을 거예요. 그 다음에 다른 형사한테, 4시간 후에 같은 질문을 해서 다시 조서를 받았어요. 일부러 여러 사람 시켜서 조사를 해본 거죠. 그런데 이 사람이 한 입 갖고 진술한 게 다 다른 거야."
-박용문, 당시 최 씨를 심문한 형사

이상해서 확인해보니, 최 씨가 전화교환실에서 잤다는 건 거짓말이야. 실제로는 정문 수위실에서 밤 11시쯤 잠자리에 들었대. 20대 경비원 이 씨는 "저랑 같이 잠이 들었는데, 아저씨가 언제 나가셨는지 모르겠다"고 증언했어. 최 씨는 그냥 정문에 잤다고 하면 되는데, 왜 전화교환실에서 잤다고 자기한테 불리한 거짓말을 했을까.

수상한 점은 또 있어. 그날 아침, 최 씨가 경찰 도착 전에 학교 뒷산을 두 번이나 올라갔다 내려오는 걸 목격한 사람이 있는 거야. 그리고 결정적인 제보가 또 들어와. 최 씨의 직속 상관인 경비과장 김 씨가 "최 씨가 아는 고3 학생을 돕는다고 직접 원서까지 내주는 게 이상해 보였다"고 말했어. 최 씨가 다니는 교회에 홍 양이라고 있는데, 친척도 아닌데 최 씨가 홍 양의 원서를 이 학교에 접수해줬다는 거야.

경찰은 최 씨에게 홍 양과 무슨 사이냐고 집중 심문했어. 그리고 범행 일체를 자백했어. 자신이 시험지를 훔쳤다고.

▲ 자꾸 번복되는 진술, 진범은 따로 있다?

시험지가 도착한 그날, 최 씨는 시험지를 훔치기로 결심했대. 최 씨는 밤 11시쯤 정문 수위실에서 잠드는 척하고 새벽 2시경 조용히 빠져나와 가지고 있던 열쇠로 본관 건물로 들어갔어. 근데 교무처 열쇠가 없어서 각목으로 유리창을 깬 후 사다리를 타고 들어갔어. 그리고 가지고 있던 열쇠로 전산실 문을 열고 연필 깎는 칼로 상자를 찢어 시험지 20여 장을 빼갔대. 최 씨는 기자들 앞에서 시험지를 훔친 이유를 털어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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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양 아버지가 부도를 내고 어머니가 파출부 생활을 하는 등 집안 형편이 무척 어려웠어요. 우리 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할 수 있도록 인간적으로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후기대 입시가 모두 연기됐다는 얘기를 듣고 양심의 가책을 느꼈습니다. 제 잘못 때문에 학생과 학부모에게 큰 피해를 끼쳐 죄송한 마음 뿐입니다."

범행 동기도 나왔고 자백도 받았어. 이제 경찰이 해야할 일은 증거 찾기, 훔쳐간 시험지를 찾아야 해. 경찰이 제일 먼저 간 곳은 홍 양의 집이야. 그런데 홍 양의 집에서는 사라진 시험지가 나오지 않았어. 게다가 홍 양 모녀의 반응도 의외야. "최 씨와는 그런 사이가 아니다"고 펄쩍 뛰어. 정작 홍 양은 자기 실력으로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학교인데 왜 시험지를 훔치냐며 황당해했어.

최 씨한테 다시 시험지 어딨냐고 물으니, 답변이 바뀌었어. 칼이랑 시험지를 신문에 싸서 불에 태웠고, 재를 모아 수위실 앞 쓰레기통에 버렸대. 홍 양을 주려 애써 훔친 시험지를 범행 2시간 만에 태웠다는 거야. 그 쓰레기통을 확인해봤더니 흔적이 전혀 없어. 다시 추궁하니, 이번엔 시험지를 잘게 찢어서 뒷산에 뿌렸대. 실제로 최 씨가 뒷산에서 내려오는게 목격되기도 했으니, 경찰은 뒷산을 수색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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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전체를 뒤졌지만, 이번에도 나온 건 없어. 더 황당한 건, 최 씨가 또 말을 또 바꿔. 시험지를 찢어서 화장실 변기에 버렸대. 경찰은 변기통 정화조를 퍼서 다 확인했어. 하지만 역시 시험지는 없어.

최 씨의 진술은 계속 번복됐어. 심지어 범행 방식이나 동기도 계속 말을 바꿔. 급기야, 자신은 시험지를 훔친 범인이 아니라고, 자백 자체를 뒤집었어. 이 답답한 수사 과정은 연일 언론을 통해 보도됐어. 그리고 그걸 유심히 본 한 남자가 있었어. 이양원 변호사였어. 이 변호사는 유치장에 갇힌 최 씨를 만나고, 바로 그를 변호하기로 마음먹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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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인상이 엄청 위축돼 있고 풀이 죽어있고, 정신이 나가 있는 거 같은 분위기도 좀 있었고요. 절박한 느낌이었죠. 갇혀있던 동물이 빛이나 구원을 보면 절박하게 짖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힘없는 사람 하나를 잡아 가둬놓고 국가 공권력이 엄청난 압박을 가하면 원하는 대로 진술이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자백이 과연 진정성이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심을 가지고 변론을 시작하게 됐어요."
-이양원 변호사

이 변호사는 최 씨가 범인이라는 증거는 하나도 없다고 주장했어. 사건 현장에는 최 씨의 지문도 족적도 없었고, 유리창을 깼다는 각목에서는 유리 성분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어. 물증도 없는데 최 씨를 범인으로 단정 짓고 이리저리 짜맞추다 보니까 진술이 번복되는 걸로 보였다는 거야. 최 씨의 진술이 일관성이 없는 건, 최 씨가 범인이 아니기 때문이라 생각했어. 거기에 결정적으로 거짓말 탐지기를 해보니, 다른 질문에는 수차례 거짓 반응이 나왔지만, '당신은 시험지를 훔쳤습니까'라는 질문에 "아니오"라는 최 씨의 대답만은 '진실' 반응이 나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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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변호사는 경찰이 고문을 가한 게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지만, 최 씨는 물리적인 가혹행위를 당한 건 없다고 말했어. 그럼 더 이상해. 고문한 것도 아니고, 범인도 아니라면, 최 씨는 도대체 왜 자백을 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최 씨의 대답은 이랬어.

"경찰분들과 기자분들 고생하는게 안타까워 자백을 하게 됐습니다."

최 씨에 대한 주변 평판을 들어보니, 평소 조용한 성격에 신앙심도 깊고 친절한 사람이었대. 그래서 보통 사람이라면 이해는 안되지만, 왠지 최 씨라면 그럴수도 있겠다, 싶더래. 게다가 경찰 조사가 한창일 때 최 씨가 인상적인 질문을 한 적이 있어. 박용문 형사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질문이 잊혀지지가 않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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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씨가 '시험지 한 장이 얼마냐'고 물어봐서, 답을 못 줬어요. 나중에 알아보고 알려주겠다고 했어요."
-박용문 형사

박 형사는 최 씨가, 시험지가 얼마길래 온 나라가 이렇게 난리인 거냐고, 기껏 종이 몇 장이 그렇게 대단한 거냐고, 그걸 물어본 거 같았대.

경찰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최 씨한테 물었어. 왜 본관에서 잤다고 거짓말을 했냐고. 한참 망설이던 최 씨가 묘한 행동을 했어. 자꾸 어딘가로 손짓을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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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씨가 가리킨 건, 참고인 조사를 받던 경비과장 김 씨였어.

▲ 여전히 풀지 못한 그날의 진실

김 과장은 사건 전날 시험지 차량을 운전했던 직원이야. 그리고 경찰에게 홍 양 이야기를 제보했던 사람이야. 알고보니, 직속 상관인 김 과장이 최 씨한테 "순찰 열심히 안 한거 문제될 수 있으니, 본관에서 잤다고 말하라"며 거짓말을 시킨 거야.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경비원의 단독 범행이 아닐 가능성, '경비과장의 지시 때문이다'라는 진술, 이런 여러 가지가 모이면서 경비과장에게 수사가 집중되게 된, 아주 유력한 계기였죠."
-표창원, 당시 부천경찰서 경위

경찰이 내사를 시작했어. 근데 김 과장의 집 위치가 좀 특이해. 학교 정문 바로 옆에 있는, 총장 공관에 살고 있어. 총장이 서울로 이사를 가면서, 거기서 살라고 특혜를 준 거야. 알고보니 김 과장은 총장 지지파 교직원 중 하나였어. 게다가 공관은 학교 정문 바로 옆에 있어. 김 과장이 범행 시각에 굉장히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것이지. 그리고 경비 책임자이다 보니, 마스터키를 가지고 있었어. 그런데 사건 다음 날, 그걸 다른 직원한테 넘겨주면서 쓸데없는 의심받기 싫으니 자기한테 마스터키 있었다는 걸 경찰에 굳이 말하지 말라고 했대.

김 과장에게 뭔가 있다는 의심이 들었지만, 김 과장은 입을 열지 않았어.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1월 27일 밤. 그날 김 과장은 유난히 심란한 표정이었대. 조사 받는 내내 박 형사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푹 떨구더래. 전혀 입을 열 생각은 없어 보이고 너무 긴장한 거 같아서, 경찰은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며 김 과장을 귀가시켰어. 그런데 다음 날, 너무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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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학교 경비과장 김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학교 총장 공관 1층 보일러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검찰과 경찰은 이 시각 현재, 김 씨가 왜 갑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 그 동기와 배경을 밝히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습니다."
-1992년 1월 28일, 뉴스 보도 中

시험지가 뭐라고, 사람까지 죽었어. 시험지 몇 장이 사라진 단순 도난사건이 사망사건으로 이어지다 보니, 경찰들도 충격을 받았어.

"한 생명이 그렇게 쓰러져 가셨으니까, 저희 때문이라는 죄책감, 책임감도 무척 무거웠었고. 우리가 뭐 하러 왜 경찰관이 되었으며 수사를 하고 있나, 자괴감이 들었죠."
-표창원, 당시 부천경찰서 경위

갑작스러운 죽음을 두고 여러 추측이 나왔어. 최 씨를 제보한 것도 미안하고 자기도 의심 받으니, 괴로워서 그랬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분명 이 사건에 아는 것이 있다, 배후가 있을 것이다'라고 추측했어. 하지만 진실은 끝내 밝힐 수 없게 됐어.

한 사람은 사망하고, 한 사람은 진범이냐 아니냐로 여전히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을 때, 1992년 2월 10일 그날이 왔어. 연기됐던 후기대 시험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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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시험을 치른 27만명의 수험생 중에는 성악과 지망생 윤종이도 있었어. 희대의 시험지 도난사건으로 떠들썩했던 92학번 수험생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사건의 최대 피해자였던 수험생들은 묵묵히 시험을 봤어.

경비원 최 씨는 경찰 조사를 받는 동안 "내가 혼자 한 일이다", "숨진 김 과장이 시켜서 한 일이다", "아니다 난 아무것도 모른다" 계속 진술이 오락가락했대. 경찰은 어떻게든 사건의 전말을 밝히려 애썼지만 별다른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어. 사건의 진실은 그렇게 묻히고, 최 씨는 풀려났어. 훗날, 최 씨가 이 변호사를 찾아간 적이 있는데 그날 두 사람이 인상적인 대화를 나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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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으니까, 어쨌든 자기가 경비원이었는데 경비를 제대로 못해 이런 일이 일어나 죄스럽게 생각한다고 했어요. 또 진짜 범인과 관계가 없냐고 물었더니, 자신은 정말 관계가 없다고. (숨진) 김 씨는 어떠냐 물어봤더니 '그 분에 대해서는 얘기를 묻어두겠다'고 하더라고요."
-이양원 변호사

이 변호사는 그런 생각을 했대. 최 씨가 뭔가 알고 있을 거 같다고. 범행 당사자가 아니라, 중요한 증인일 수 있다는 거지. 물론 이 또한 이 변호사의 추측일 뿐이야. 그렇게 92년 대입 시험지 도난사건은 지금까지 미제로 남아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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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건 예전에 한 신문에 실린 어느 수험생의 방학 생활계획표야. 식사 시간, 휴식 1시간을 빼고는 하루 종일 공부만 하는 스케줄이야. 놀라운 건, 이 생활계획표를 작성한 수험생은 초등학교 6학년이야. 더 놀라운 건, 이 기사가 실린 연도가 1967년이라는 거야. 이땐 중학교도 입시 시험이 있었어. 더 좋은 중학교를 가기 위해 재수까지 했었대. 우린 꽤 오랫동안 입시에 시달려 왔어.

우리에게 입시는 무엇일까? 경비원 최 씨가 했던 말에 잔상이 남아. "시험지 한 장 가격이 얼마예요?"라는 바로 그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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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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