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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이태원 참사 유족의 한 달…뜬눈으로 지새운 나날들

이태원 참사 유족

빈소를 찾아온 기자의 손을 꼭 잡으며 "밥을 먹고 가라"고 했던 이태원 참사 희생자 어머니. 그 야윈 몸 뒤엔 밝은 얼굴로 환하게 웃고 있는 30대 딸의 영정 사진이 있었습니다. 여느 또래 친구들과 다를 바 없는 젊은 영정 사진을 보니 말문이 막혔습니다. 어떠한 위로도 와닿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입을 떼기 어려워하자 손에 커피라도 쥐여주는 희생자 어머니의 손은 사시나무처럼 떨렸고, 그 옆에서 바닥만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은 며칠째 울었는지 퉁퉁 부어있었습니다.

기자의 팔뚝을 붙잡고는 "자기 동생이 죽었다고 생각해 봐. 아니 기자님이 죽었을 수도 있어"라며 원통함을 참지 못했던 어머니 이정옥 씨. 그날의 참사가 나의 일이 될 수 있었고, 남의 일이 아니란 걸 더 실감하게 됐습니다. "참사 당일에는 어안이 벙벙해서 내 아들이 왜 거기에 갔는지만 생각했다"던 이 씨는 "하루 지나 보니 아들이 무슨 잘못을 했나 싶었다. 애들이 어딘들 못 가느냐"고 말했습니다. 화가 섞인 말투에선 울분까지 느껴졌습니다.

어디든 갈 수 있는 젊은 생명들에게 벌어진 참사는 이제 한 달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참사 당시, 그리고 한 달 뒤에 나눴던 희생자 5명의 유족들과의 대화는 마음 깊이 남아있습니다. 유족의 심정을 가늠할 수 없으니 이들이 쏟아내는 모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유족들은 참사 당시 시신을 찾는 과정부터 어려움을 겪었고, 원치 않는 명단 공개에 속앓이를 해야 했습니다. 참사 뒤 시작된 경찰 수사엔 답답함만 남았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에 분통이 터진다고 했습니다. 유족을 정쟁의 수단으로 사용하거나 곡해하지 말아 달라고도 부탁했습니다.

자식이 죽었는데…제대로 알려주는 사람이 없다

유족들은 하나같이 고인의 사망 소식을 참사 다음날 점심이 지나서야 알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참사 당일 밤 뉴스를 보다 그날 이태원에 간다고 말했던 아들이 생각난 이정옥 씨. 전화가 연결되지 않자 이태원으로 달려갔지만 아들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인근 병원에서도 생사 확인이 안 됐습니다. 실종자 접수를 받는 한남동 주민센터에서 뜬눈으로 날을 지새웠고, 다음날 점심이 지나서야 일산의 한 병원 영안실에 아들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아들의 생사를 확인하고 시신을 마주할 때까지 반나절이 넘게 걸렸습니다.

이태원 참사 유족
남편을 잃은 아내 A 씨는 "친구를 만나고 오겠다"며 집을 나선 남편의 생사를 다음날 점심에 알게 됐다고 합니다. 남편이 다음 날 아침까지 연락이 안 돼서 애태우고 있었는데, 경찰관이 집에 찾아와 남편의 부고를 전한 겁니다. 참사 당일 신원 확인 작업이 늦어지면서 이처럼 유가족들은 긴 시간 애를 태워야 했습니다.

참사 다음 날 아침엔 용산구 원효로 실내체육관 앞에 있는 취재진에게 찾아와 생사를 묻는 가족도 있었습니다. "혹시 사망자 명단이 있느냐" "동생이 이태원에 간다고 하고는 연락이 안 되는데 어디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물어보는 가족들의 얼굴엔 걱정과 두려움이 함께 묻어있었습니다. 그만큼 사고 이후 안내가 부족했던 겁니다.

원치 않는 명단 공개…삭제도 직접 요청

유족들은 참사 이후엔 원치 않는 사망자 명단이 공개되면서 또다시 분노했습니다. 지난달 14일, 한 인터넷 매체가 희생자 중 155명의 실명을 공개해 논란이 됐습니다. 유족 사전 동의가 없었던 데다, 유족이 직접 요청해야만 삭제를 해준 겁니다.
이태원 참사 유족
유족 A 씨는 기사를 보고서야 고인의 실명이 공개된 것을 알게 됐다고 했습니다. 항의를 하려고 홈페이지를 찾아 전화를 먼저 했는데 통화 연결이 안 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자의 메일 주소로 항의 메일을 보냈는데, 그다음 날 아침이 돼서야 이름을 삭제해 줬다고 합니다. 동의 없는 실명 공개였는데, 삭제도 유족이 직접 나서야만 가능했던 겁니다. 이 과정에서 A 씨는 "우리(유족)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깊은 무기력감과 상실감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지지부진한 수사…왜 아무도 책임지겠다고 안 하나

지난 1일 경찰이 이태원 참사 특별수사본부를 꾸렸지만 수사가 지지부진하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족들도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습니다. A 씨는 "경찰이 빠르고 명확하게 일을 했다면 국정조사 얘기까지 나오지도 않았을 것 같다"며 불신을 드러냈습니다.

이태원 참사 유족
30대 아들을 떠나보낸 문성철 씨는 아직까지 참사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난 고위공직자가 없다는 점을 문제 삼았습니다. 특히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직을 놓지 않는 점을 들며 "지금의 권력을 누리기만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장관도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생각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상황에서 그 밑에 있는 공무원들도 책임을 지겠단 생각을 갖긴 어려울 것"이라고도 덧붙였습니다.

158명 유족 생각 모두 다를 것…곡해 말아달라

제가 들은 유족의 이야기도 희생자 158명 중 5명의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더 많은 유족의 목소리를 듣고 전달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유족 협의체가 구성되고 있지만 협의체에 소속되지 않은 유족도 많습니다. 유족들은 하나같이 "유족들을 폄하하려는 시선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며 "곡해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면서 "유족들 생각은 모두 다를 수 있으니 개개인의 목소리를 모두 들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유족 한 명 한 명의 목소리를 듣고 반영하는 것도 앞으로 정부의 몫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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