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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연일 몰리는 트럼프, 바람과 함께 사라질까

[월드리포트] 연일 몰리는 트럼프, 바람과 함께 사라질까
이달 8일 미국 중간선거를 기점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선거일 직전까지만 해도 공화당 압승이 예상되면서 이번 선거 때 곳곳을 발로 뛰며 지지 유세를 펼쳤던 트럼프 전 대통령의 존재감도 어느 때보다 높아졌지만, 개표 결과 압승은커녕 상원 패배에 이어 하원마저도 한 자릿수 승리에 그친 걸로 드러나면서 상황이 반전됐습니다.

이런 상황은 수치로도 확인됩니다. 선거 이후, 차기 공화당 대선 주자 선호도를 묻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공화당 내 잠룡으로 꼽혀온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트럼프를 제친 겁니다. 디샌티스는 확고한 보수주의자로 평소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정치적 노선을 계승한다는 점을 강조해 온 인물이었던 터라, '트럼프'가 '리틀 트럼프'에게 밀린 꼴이 됐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그간 당내 위상을 키워가는 디샌티스 주지사를 견제하지 않았던 건 아닙니다. 중간선거 전인 지난 5일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공화당 후보 지원 유세에서 디샌티스가 자신의 노선을 표방해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다는 점을 겨냥해 그를 조롱하는가 하면, 그로부터 이틀 뒤 언론 인터뷰에서는 디샌티스가 대선에 나서면 "심하게 다칠 수 있다"고 직접 경고를 날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언행은 비판만 불러일으켰고 뒤이은 공화당 선거 패배는 그에게 치명타가 됐습니다. 반면 가볍게 재선에 성공한 디샌티스 주지사는 트럼프의 비판에 아랑곳 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며 자신감을 나타냈습니다. CNN은 디샌티스가 트럼프의 공격을 '소음'으로 일축했다고 전했습니다. 디샌티스 주지사는 "중요한 것은 이끌고 있는지, 결과물을 보여주는지, 국민을 위해 서 있는지"라며 "만약 그렇게 한다면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했습니다.
 

트럼프에게 '등 돌린' 보수 주류층

트럼프의 고전은 2024년 대선 출마 선언에서도 이어졌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이나 폭스뉴스 같은 보수성향 매체들까지 일제히 그에게서 등을 돌린 겁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경우 사설을 통해 세금, 규제 완화, 에너지 안보, 판사 임명, 중동 정책 등을 트럼프 정부 정책 성과로 꼽으면서도 "나르시시즘, 자제력 부족, 참모들에 대한 학대, 유치한 복수 등 그의 성격적 결함이 이러한 성공을 빛 바라게 한다"라고 지적했습니다.

트럼프에게 더 큰 문제는 이들 보수층의 시선이 계속 디샌티스로 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보수 언론뿐 아니라 공화당 지지층에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일론 머스크도 최근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지지 의사를 밝혔습니다. 머스크는 자신이 경영하는 소셜미디어 트위터에서 '2024년 론 디샌티스를 지지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그렇다"라고 답글을 달았습니다. 이어 "2024년 대통령직은 좀 더 분별 있고 중도적인 성향의 인물에게 돌아갔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애저녁에 트럼프와 갈라선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디샌티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차세대 후보로 보고 있다"며 공화당 차기 대선주자로 디샌티스 주지사를 꼽았습니다. 그는 "중간선거 이후 많은 사람들이 트럼프 전 대통령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트럼프, 바람과 함께 사라질까

여기까지 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4년 대선에서 공화당 내 후보로 다시 대선에 서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사실 공화당 주류나 보수 언론이 그를 기피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월스트리트저널 사설에서 언급한 그의 기행 때문입니다. 종잡을 수 없는 행동과 자기 중심적 사고, 합리성에서 벗어난 음모론 등등…

중간선거 전, 옛 공화당(트럼프 행정부는 아닙니다)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한 인사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도 트럼프가 화제였던 터라, 공화당 주류가 왜 그를 후보에서 배제하지 않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답은 하나, 당선 가능성이었습니다. 공화당 주류가 그의 그런 성향을 좋아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 적어도 공화당 내 경선에서 그를 이길 후보가 없다는 겁니다.

물론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그렇다고 트럼프를 배제해도 좋을 정도일까요? 그렇지는 않아 보입니다. 무엇보다 애초부터 그의 정치적 기반은 공화당이나 보수 세력 내 주류가 아니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2016년 공화당 대선 경선 초기, 그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경선 과정에서 후보들을 하나하나 물리치고 결국 후보 자리를 거머쥐었습니다.

그 때 밀려난 후보 중 하나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동생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입니다. 젭 부시는 현 디샌티스 주자시와 견주어도 밀리지 않을 만큼 정치적 자산이나 배경이 든든했던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경선 토론 과정에서 만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일방적으로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고 끝내 낙마했습니다. 트럼프와 디샌티스도 진검 승부를 해보지 않고는 승패를 알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2016년 때와 달리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트럼프의 기행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반면 그 사이 MAGA (Make America Great Again)로 불리는 골수파도 생겨났습니다. 선거에서, 특히 경선에서는 결속력 약한 다수보다는 결속력 강한 소수가 더 힘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트럼프의 강점은 Grass Roots, 민초들을 자기 쪽으로 잡아당기는 수사나 기법에서 뛰어나다는 점입니다. 정치적 기반이 없던 그가 대통령직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트럼프, 공화당 경선에서 진다면

또 하나, 공화당이 싫어도 트럼프를 마냥 내치기 쉽지 않은 현실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지적했듯이 그가 설사 공화당 경선에서 패한다 해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지지자들을 동원해 공화당 대선 후보를 방해하거나 제 3후보로 출마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선 패배도 인정하지 않았던 그가 경선 패배를 쉽게 인정할까요?

만약 그가 경선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선출된 공화당 대선 후보를 계속 공격한다면 공화당은 자중지란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대선 승리는 물 건너 가게 됩니다. 또 다행히 그가 탈당을 한다 해도 민주, 공화에 이어 제3후보로 나서게 된다면 역시 공화당 지지층의 표가 분산되면서 민주당이 대선 승리를 차지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어느 시나리오나 공화당에게는 악몽인 셈입니다.

따라서 공화당에게 최선의 방법은 어떻게든 트럼프의 출마를 막는 것이겠지만 그건 이미 늦었습니다. 제일 먼저 출마 선언을 한 그를 주저 앉힐 방법이 딱히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FBI 수사 등으로 궁지에 몰린 터라 트럼프로서는 꼭 대선 승리가 아니더라도 자기 방어를 위해서라도 대선 출마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니겠느냐는 게 현지 언론들 분석입니다.
 

앞길 창창한 디샌티스, 대선 택하느냐도 변수

사실 가장 유력한 공화당 대선 주자로 떠오른 디샌티스가 실제 대선 레이스에 뛰어 들지도 봐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이런저런 이유들 때문에 디샌티스 입장에서도 2024년 대선 출마는 좋은 선택이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껏 경선에 이겨 놓고도 트럼프가 몽니를 부려 본선을 날린다면… 올해 만 44세로 이제 막 플로리다 주지사 재선에 성공한 그인 만큼 주지사 임기를 마치고도 대선에 뛰어들 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니 말입니다. 물론 선택은 그의 몫입니다.

지금까지 얘기를 살펴보면 대선은 차치하고, 어쨌든 공화당 경선 과정에서 트럼프의 영향력은 여전히 상당할 걸로 보입니다. 다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넘어야 할 산도 만만치 않습니다. 먼저 비밀문서 무단 유출과 의사당 난입 사태, 세금 문제 등 그를 둘러싼 각종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법 리스크는 그가 대선으로 가는 길목 자체를 막아버릴 수도 있습니다.

또 하나 바로 그의 종잡을 수 없는 행동입니다. 얼마 전에는 그가 백인우월론자를 자신의 플로리다의 마러라고 별장으로 초대해 만찬을 함께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2년 남은 다음 대선까지 또 얼마나 많은 일이 있을지는 그의 입과 행동에 달렸습니다. 트럼프의 인기가 일단 꺾인 건 맞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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