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k] '찐팬' 눈은 못 속여…'노벨상 가수' 친필 사인본, 가짜였다

"만약 밥 딜런이 이 책을 (서명하기 위해) 만졌다고 상상하면, 그의 영혼이 나와 함께 있는 것 같아요." 

2006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전설적인 싱어송라이터 밥 딜런의 오랜 팬인 헨리 번스타인(Henry Bernstein)이 말했습니다. 

스타의 손길이 닿은 물건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설레는 것이 무릇 팬들의 마음입니다. 

이번에도 헨리는 그의 친필 서명이 적힌 책이 판매된다는 소식에 설레는 마음으로 한정본을 구매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구매한 이 한정본에 쓰여진 밥 딜런의 서명이 가짜라는 사실이 팬들에 의해 드러났습니다.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은 23일(현지시간) 100년 역사를 가진 대형 출판사 사이먼앤드슈스터(Simon & Schuster)가 성명을 통해 딜런의 저서 '대중 음악의 철학(The Philosophy of Modern Song)' 한정판에 담긴 서명이 진본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환불을 약속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지난달 발간된 이 책에는 프랭크 시내트라의 '스트레인저스 인 더 나이트'와 더 후의 '마이 제너레이션' 등 대중음악 65곡에 대한 딜런의 생각이 담겨있으며, 현재까지도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 책을 출판한 출판사 사이먼앤드슈스터는 초판과는 별개로 딜런의 서명을 담은 한정본 900권을 제작해 판매했습니다. 

▲ 밥 딜런 칠필 사인이 담긴 한정본 판매 페이지

한정본 구매자들에게는 출판사 대표인 조나단 카프의 서명이 있는 편지도 함께 동봉했습니다. 편지에는 밥 딜런 친필 사인이 담긴 책이 진품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 밥 딜런 칠필 사인이 담긴 한정본(왼쪽) 함께 동봉된 출판사 대표의 편지(오른쪽).

이 한정본은 한 권당 600달러(약 80만 원)에 거래됐는데, 딜런의 서명이 각종 경매에서 1천 500~2천 달러(약 264만 원)에 거래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비싸지 않은 가격에 판매된 셈입니다.

문제는 한정판에 쓰인 딜런의 서명입니다. 

한정본 구매자들 사이에서 딜런의 서명이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이어졌고, SNS를 통해 서명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 끝에 결국 딜런이 직접 서명한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특히 유명인들의 서명 감별 전문가인 저스틴 스테프먼(Justin Steffman)은 한정본 17권의 서명 이미지를 비교한 끝에 딜런의 서명이 기계로 쓰인 것이라며 주장했습니다. 

백악관을 포함해 미국의 각종 기관·단체나 유명인들이 서명이 들어간 서류를 대규모로 작성할 때 사용하는 '오토펜'이라는 기구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손으로 쓴 필체에는 일반적으로 흐름이 있지만, 펜 기계를 사용하면 시작과 끝 지점에 더 많은 압력을 가하게 된다"며 "새 책에 있는 딜런의 사인을 보면 서명 전체에 약간의 흔들림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며 사람이 서명한 게 아닌 사본임을 설명했습니다. 

한정본 구매자들의 문의에 대해 출판사는 당초 "온라인에 떠도는 가짜 소문"이라고 일축했지만, 트위터나 온라인커뮤니티에까지 논란이 확산하자 결국 공식 SNS를 통해 사실을 인정하며 사과했습니다. 


다만 사이먼앤드슈스터는 서명이 진본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서명이 복사된 것인지는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한편 한정본을 구매한 팬들은 이번 소동이 딜런과 무관하고, 출판사의 잘못된 마케팅 때문에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저작권 판매로 수천억 원을 벌은 딜런이 가짜 서명으로 팬들을 속이면서까지 한정본을 판매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진= @siomonschuster @jgriner @bobdylan 트위터, AP/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