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은둔형 외톨이를 기다립니다"…방 밖으로 나오고 싶다면 이 곳으로

서울 강북구엔 조금 특별한 셰어하우스가 있습니다. 장기간 인간관계를 맺지 않고 집 안에만 머무르던 은둔형 외톨이들이 사회로 나가기 위해 준비하는 곳입니다. 적게는 4~5년부터 많게는 10년 이상의 은둔 경험을 가진 7명의 청년이 서로 도우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같은 건물 다락방엔 이 셰어하우스를 운영하며 은둔형 외톨이를 지원하는 '안무서운회사'가 있습니다. 올해 초 은둔 경험이 있는 청년 4명이 다른 은둔형 외톨이들을 돕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은둔 11년차 은둔 고수이자 이 회사의 직원이기도 한 정인희 씨를 <비디오머그>가 만났습니다.

[정인희 / 11년차 은둔형 외톨이]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은둔형 외톨이 당사자 분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 정인희라고 합니다. 가정에서의 좌절, 학교에서의 좌절, 그런 걸 겪고 나면 사실 사회가 무섭잖아요. 우리라도 좀 안 무서운 사람들이 돼보자, 무섭지 않은 곳도 있다, 이런 것을 말하고 싶었어요."

은둔 생활은 대부분 가정 혹은 학교에서의 상처로 시작됩니다. 정인희 씨도 가정에서의 상처가 게임 중독으로 이어졌고, 등교까지 거부하며 은둔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정인희 / 11년차 은둔형 외톨이]
"14살 때부터 은둔을 하게 됐어요. 아버지가 좀 폭력적인 분이셨어요. 항상 저는 좀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았어요. 암막 커튼을 이렇게 딱 치고 불도 안 켰어요. 24시간 중에 한 10시간에서 12시간을 자고요, 일어나자마자 컴퓨터를 켜요. 현실의 나는 초등학교 졸업이 마지막 최종 학력인 사람이고 나는 일을 해 본 적도 없고 친구도 없고 제가 아무것도 없는 뭔가 인간 쓰레기라고 생각했어요."

정 씨의 인생이 바뀐 건 같은 처지의 다른 은둔형 외톨이들을 만나면서부터였습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이들을 지원했던 일본 기업은 지난해 코로나19 여파로 한국 사업을 중단했습니다.

[정인희 / 11년차 은둔형 외톨이]
"저희는 모두 일본계 은둔형 외톨이 지원 단체인 'K2인터내셔널'의 직원들이었어요. 그 10년간의 노하우를 그냥 날려버릴 수가 없었던 거예요. 저희끼리 합심해서 창업을 해보자."

그렇게 청년 4명이 다락방에 사무실을 차렸고, '은둔도 스펙이 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습니다.

[정인희 / 11년차 은둔형 외톨이]
"저도 11년 동안 운둔했어요,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안 나가고 저는 암막 커튼을 치고 생활하고요, 햇빛을 거의 4~5년간 안 봤어요, 이런 식으로 먼저 다가가면 (상담 당사자들도) '사실 저도 이러이러한 경험이 있는데' 이런 식으로 좀 마음의 문을 열더라고요."

[A씨 / 셰어하우스 입주자]
"혼자 은둔할 때는 기본적인 생활이 안 됐어요. 그런데 여기에 있다 보면 친구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씻고 또 같이 밥을 먹기도 하고 또 청소도 해야 되고 이런 생활이에요. (셰어하우스에선) 반강제적으로 움직이다 보니까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됐고 사람들이 무서웠는데 친구들하고 다니니까 그 무서움도 많이 줄어들고."

하지만 우리 사회 은둔형 외톨이 지원 정책은 아직 걸음마 단계입니다. 2019년 광주광역시가 지자체 최초로 관련 지원조례를 만들었고, 이후 다른 지자체도 속속 지원조례를 내놓고 있지만 정작 정책을 통합 관리할 상위법은 없습니다.

[백희정 / 광주 은둔형 외톨이 지원센터 사무국장 ]
"(조례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거죠. 지자체 재정과 예산 안에서 고민이 돼야 되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법이 만들어지고 그렇게 한다고 하면 전국적인 실태 파악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이 들고요. 실태 파악을 통해서 기본 계획 수립도 가능할 것으로 보이거든요. (현재는 전체 인구의) 0.9% 혹은 1% 정도로 추정한다, 이렇게만 되어 있지 정확한 숫자 통계를 내지 못하고 있죠."

은둔 생활을 극복한 당사자들이 강조하는 건 주변 환경의 변화와 이해 받아본 경험입니다. 때문에 지원센터 등을 통해 당사자들이 집에서 벗어나 교류하고 상담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정인희 / 11년차 은둔형 외톨이]
"이제 저는 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전혀 무섭지 않은 사람이 됐거든요. 내가 혼자 이렇게 수치스러운 경험을 안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말을 못 하는 건데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 그 이후로부터는 조금 말을 하게 되시는 것 같아요. 은둔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이렇게 좀 끌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좀 더 나오기 쉽지 않을까 생각은 해요. 그런데 분명히 쉬운 일은 아니에요."

용기를 내 방 밖으로 나오고 싶다면 '안무서운회사'의 문을 두드려 보는 게 어떨까요?

(취재·구성: 백운 / 영상취재: 홍종수 / 편집: 임재호)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