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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다시 불거진 '안우진 학폭'…5년 전에는 무슨 일이?

[취재파일] 다시 불거진 '안우진 학폭'…5년 전에는 무슨 일이?
오늘(18일) 안우진 선수(키움 히어로즈)가 5년 전 자신의 학폭 문제에 대한 입장문을 발표했습니다.

"언론 보도 이후 저는 가혹한 학교 폭력을 행한 악마가 되어 있었습니다. 여론의 질타 속에 사안의 구체적인 진실은 묻혀 버렸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많이 흘렀다고 해도, 학교 폭력이라는 네 글자의 주홍 글씨로 모든 진실을 덮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지난 15일에는 안우진 선수(키움 히어로즈)의 학폭 피해자 중 3명이 공동 성명을 냈습니다. '5년 전 언론 보도와 달리, 사건 당시부터 폭력이라고 느끼지 않았고, 자상했던 안우진 선배와 잘 지내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한 인터넷 매체와 안우진 선수의 대리인인 백성문 변호사도 '안우진의 억울함'을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이후 피해자 한 명이 당시 폭행 사실이 없었다는 취지로 직접 백 변호사와 인터뷰도 하셨습니다.

최근 나온 주장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폭력이 있었지만 심각하지 않았다. 경찰 조사에서 작성된 피해자들의 진술 조서를 보면, 피해자들은 폭력이라고 인식하지 않았으며, 보도 이전부터 가해자를 용서하고 화해했다. 경찰 조사 결과 불기소 처분이 난 것은, 폭력이 경미했다는 증거다. 특히 특수폭행으로도 기소되지 않은 것은, 기사에 등장했던 야구배트, 야구공을 이용한 폭력이 없었다는 증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장된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선수 본인의 소명도 듣지 않은 채 3년 자격 정지 처분을 내린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그리고 대한체육회의 징계는 과하다."

위 주장들이 제기되면서, 5년 전 당시 학폭 문제를 처음 보도한 저희에게 항의가 쏟아졌습니다. '침소봉대한 기사로 전도유망한 선수의 앞길을 막은 기레기'라는 비난이 줄을 이었습니다.

이 글은 위 주장에 대한 반박입니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1. 보도 당시, '폭력이 있었다'는 객관적 자료들과 증언들이 있었습니다. 즉 당시 제 기사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2. 보도 이후에 작성된 '폭력이 경미했다'는 피해자들의 경찰 진술 조서 및 피해자의 증언은, 폭력이 경미했다는 증거가 아니라 사건이 공론화된 뒤 피해자들의 입장이 예전과 달라졌다는 증거입니다.

3. 폭력의 강도와 양상이 당시 보도 내용보다 심각했다는 여러 제보가 있었습니다.
즉 당시 제 기사는 과장이 아니라 축소 보도에 가깝습니다.

1. 객관적 자료를 통해 증명되는 폭력 사실

저는 당시에 이 사건을 다룬 기사를 3건 작성했습니다.

-2017년 8월 23일 'SBS 8뉴스'를 통해 방송된 [단독] 'MLB 관심받은 특급 유망주, 후배 폭행…학교는 '쉬쉬'
[2017.09.05 취재파일] '고교 야구 폭행 사건, 그리고 침묵의 카르텔'
[2017.09.23 취재파일] 교육청의 권고와도 너무나 달랐던 '야구부 폭력 사건'의 결론

이 세 기사에서, 사건의 구체적 양상을 묘사한 문장은 첫 기사의 첫 문장 딱 하나입니다.
"특급투수로 평가되는 A군을 포함해 서울 B학교 야구부 학생 4명은 지난 4월, 후배 선수들을 야구공과 배트로 폭행했습니다"

이 문장 이후의 모든 기사 내용은, 학교 측과 야구부 고학년 학부모들이 사건을 '축소 은폐'한 의혹이 있다는 내용입니다.

당시에는 폭력이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의문의 여지조차 없었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폭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은 경찰 조사 이전에 휘문고의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소위 '학폭위'에서 다뤄졌습니다. 학폭위는 말 그대로 학교 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처분을 결정하는 기구입니다. 교사와 학부모 위원, 외부 위원이 참석해 가해자에 대한 조치를 결정합니다. 당시 사안의 개요는 아래와 같습니다.
사안 개요(경위)
-2017년 5월 초에 야구부 내에서 부원들을 대상으로 자체 상담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1학년 부원들에게서 다음의 폭력 행위가 있는 것으로 확인됨

-2017년 4월 초, 야구부실에서 3학년 C가 웃긴 이야기를 하던 중 1학년 "나"가 웃자
"빠개?"라고 물었고 1학년 "나"가 "안 빠갰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3학년 A가
선배에 대답하는 태도가 불손하다고 핸드폰으로 머리를 수 차례 때림.

-2017년 4월경, 학교 웨이트장에서 3학년 투수조가 야구부 생활을 똑바로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1학년들에게 얼차려를 주는 상황에서 3학년 C가 야구배트 손잡이 부분으로
1학년 "마"의 엉덩이를 한 대 때림.

-2017년 4월경, 야구부 훈련과정에서 1학년 "가"가 3학년 D를 "어이"라고 불렀다고 하
여 3학년 D가 혼내면서 어깨를 몇 차례 주먹으로 침. 이 모습을 보고 3학년 A가 야구
공으로 1학년 "가"의 머리를 3대 때림.

-2017년 4월 말, 야구부실에서 당일 투수조 훈련 일정을 전달받을 때 1학년 "다"가 (투수
조 훈련 일정이)"꿀이다"라고 말하자 3학년 A가 바닥에 앉은 1학년 "다"를 야구배트
손잡이 부분으로 정강이를 10여 대 때림.

-2017년 3~4월경, 1학년 "가"가 남양주에서 시합 중 2학년 G와 이야기하다 G가 장난으로
"선배 가리냐"고 한 것을 3학년 A가 듣고서 왜 선배를 가리냐고 남양주 시합이 끝나고
야구부실에서 1학년 "가"의 머리를 야구공으로 10여 회 때림.

-2017년 5월 초, 야구부실에서 1학년 "라"가 3학년 A에게 자리를 비켜달라고 말했다가 건방지다는 이유로 3학년 A에게 혼나던 중 3학년 A가 들고 있던 야구 벨트에 부딪침

-2017년 5월 12일, 학교 웨이트장에서 평소 1, 2학년 야구부원들이 3학년에게 반말과
욕을 한다는 이유로 3학년들이 1학년에게 얼차려를 주는 상황에서 3학년 B가 1학년
"바"의 뺨을 두 대 때림.

-2017년 5월 12일, 학교 웨이트장에서 3학년 C가 1학년들이 선배들에게 맞먹으려 하며
만만하게 대한다고 얼차려를 주던 중 야구배트 손잡이 부분으로 1학년 "가"의 머리와
엉덩이를 각각 한 대씩 때림.

<당시 A고 학폭위 회의록 중에서>

위 사건들이, 학폭위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함께 '폭력 행위로 확인한 내용입니다. "A군(안우진)을 포함해 서울 B학교 야구부 학생 4명은 지난 4월, 후배 선수들을 야구공과 배트로 폭행했습니다."라는 당시 저희 기사의 서술과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당시 폭력이 있었다는 사실은 서울시 교육청도 확인했습니다. 당시 서울시 교육청은 해당 학교에 대한 '학폭 사안 컨설팅'을 실시했습니다. 해당 사건을 규정에 맞게 제대로 처리했는지 살펴보고, 틀린 점이 있다면 시정을 명령하는 절차입니다. 당시 학교에 전달된 컨설팅 결과 보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 진술서 등을 검토한 결과 명백히 학교폭력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임
- 피해자 탄원서 등이 제출되었다고 해서 무마될 수 없음
- 새로 열리는 자치위원회에서 합당한 조치가 이루어져야 할 것임

교육청 학폭 사안 처리 컨설팅
교육청의 지시에 따라 다시 열린 2차 학폭위 회의록에는 피해자 학생들과 그 학부모들, 그리고 가해자 학생들과 그 학부모들이 질의응답을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위 가해 사실에 대한 확인 및 질의응답에서, 'A가 때리는 벨트에 맞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움직이다가 부딪친 것'이라고 진술한 피해자를 제외하고, A(안우진)의 가해 사실에 대하여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확인하였습니다. 폭력행위가 있었다고 확인되었기에 가해자들에 대한 선처 요청이 있었음에도 학폭위에서는 안우진에 대하여 서면사과 및 교내봉사 3일의 조치가 이루어졌습니다.

정리하자면, 당시 '명백히 학교폭력이 이루어진 것'은 객관적 자료들로 증명되는 사실이었습니다. 경찰 조사 이전에 이뤄진 저희 보도가 오보가 아닌 이유입니다. 당시 저희 보도에 이상이 없었다는 사실은, 최근 유튜브에서 제 기사를 띄워놓고 비판하신 백 변호사도 저와의 전화 통화에서 인정을 하셨습니다. 백 변호사는 '당시 보도에 문제가 있다는 게 아니라, 이후 경찰 진술조서 내용과 지금 피해자들의 입장이 당시 보도와 다르다는 걸 알리는 취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객관적 자료를 통해 확인된 사실과 입장이, 보도 이후에 달라질 것까지 예상하고 기사를 쓰는 건 불가능합니다.

피해자 측의 가해자에 대한 선처 요청이 있었음에도 기사를 작성한 이유는 이 사건에 대한 학교 측의 은폐 축소 정황 때문이었습니다. SBS에서 제보를 받기 시작한 것은 보도가 나가기 석 달 전쯤이었습니다. 주요 제보자들은 아직 미성년자들인 가해자들의 미래를 위해서 이 사건이 기사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저도 기사를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 대한 은폐, 축소 시도에 분노한 주요 제보자들이 마음을 바꾸셨고, 기사를 작성하게 된 것입니다.

2. 보도 이전과 달라진 '피해자 경찰 조서'의 의미


백 변호사는 유튜브를 통해 피해자의 경찰 진술 조서의 일부를 공개하셨습니다. 지난 7월, 한 커뮤니티에서 피해자 한 명의 진술 조서가 공개된 적이 있지만, 다른 피해자들의 진술 조서가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저도 당연히 이번에 처음 봤습니다. 공개된 진술 조서들에서, 피해자들의 입장은 대동소이했습니다. "폭력이라 생각하지 않았으며, 가해자의 사과를 받아 잘 지내고 있다. 처벌을 원치 않는다." 경찰 조사에서 피해자 전원이 이런 입장이었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변호사께서는 유튜브에서 경찰 진술 조서를 요청하는 기자들에게 제공하겠다고 하셨지만, 제가 반론 보도를 위해 요청하자 거절하셨습니다) 피해자 중 한 명은 어제 백 변호사와 전화 인터뷰도 하셔서 같은 내용을 말씀하셨더군요.

당시 경찰은 언론을 통해 문제가 불거진 뒤 이 사건을 수사했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진술 조서가 진실하다면, 피해자들은 학폭위에서 폭력이라 인정했던 사실을, 경찰 조사에서 모두 폭력이 아니라고 부인했던 것 같습니다. 즉 공론화 이전과 이후, '폭력 여부에 대한' 피해자들의 입장이 달라진 것이지요. 이번에 공개된 경찰 진술 조서는 그 증거로 보입니다.

피해자들이 입을 맞춰 폭력이 아니었다고 주장하고, 특별한 증거도 없으니, 경찰이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을 겁니다. 어제 백 변호사가 공개하신, 당시 경찰이 안우진에게 보낸 격려의 문자도 그래서 가능했을 겁니다. 최근 문제를 제기한 매체와 변호사는 이 대목을 주장의 핵심으로 삼고 있는 듯합니다. '폭력이 경미했다는 경찰 진술 조서야말로 가장 믿을 수 있는 증거'라는 거죠.

과연 그럴까요?

지금도 그렇지만, '운동부 학폭'이 본격적으로 사회 문제가 되기 전인 당시에는 폭력 피해자들이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습니다. '에이스 선배'의 발목을 잡는 후배가 되는 건 야구계에서 '매장'을 자초하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학부모들의 말입니다.
"아이가 맞아서 힘들었었는데 밖에서는 피해자 부모님들 욕하고 있고. 피해자 부모들을 파렴치한 인간들로 보고 있어요. 맞아서 힘들었고 속상했는데, 그런 소리까지 들으니 너무나 속상해요. 왜 훌륭한 아이 하나 프로 보내고 게 좋게 풀어가지, 왜 이렇게 못 해주고 이렇게까지 만들어갔는지. 그 학교 부모님들은 참 대단하다면서 정말 파렴치하다고. "
-A고 학부형 B 씨
"맞은 것도 억울한데, 마치 이상한 아이처럼 취급당하는 게 더 억울해요.
맞았으면 이유가 있을 텐데 왜 토를 다냐. 운동부 특성상 그럴 수 있지 않냐
그런 식으로 분위기를 몰아갔어요. 그게 너무 힘들었어요" -A고 학부형 C 씨

이런 압력을 받고 있던 후배들이, 이미 언론 보도를 통해 한바탕 난리가 난 뒤에 진행된 경찰 조사에서, 형사 처벌로 에이스 선배의 앞길을 막을 수 있는 '폭력 사실'을 인정할 수 있었을까요? 즉 학폭위 때와 달라진 경찰 조사에서의 '폭력 부인'은, '보도와는 다른 진실의 증거'가 아닌 '학원 스포츠계의 위계질서'를 드러내는 증거일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언론 보도 이전에 이루어진 교내 자체 상담에서의 진술 및 학폭위 진술과, 세상이 떠들썩해진 뒤 진행된 경찰 조사 진술 중 진실에 가까운 건 무엇일까요?

3. 폭력의 강도와 양상이 보도 내용보다 훨씬 심했다는 증언들

최근 몇몇 매체들과 백 변호사의 주장 중에는 이런 것도 있습니다. '야구공으로 톡톡 머리를 건드린 정도', '멍도 들지 않게 방망이 손잡이로 건드린 정도'. 폭력이라 부르기 민망한 수준의 접촉이라는 겁니다. 이번에 공개된 경찰 진술 조서와, 어제 백 변호사께서 유튜브에서 공개하신 경찰의 문자를 보니, 경찰 조사에서도 피해자들은 그렇게 주장한 듯합니다. 보도 당시, '장난 수준'이었다던 안우진 측의 주장도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 야구부 학부모들이 알고 있던 내용은 많이 달랐습니다.
"머리 가운데 정수리 있는 데를.. 구속이 150이 넘는 애잖아요. 그런 애가 온 힘을 다해서 머리를 가격을 했으니까... 애들이 너무 그 소리가 무서워서 분위기가 정말 너무너무 공포스러웠다고.." -A고 학부형 D 씨

당시에 복수의 제보자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한 내용이 또 있습니다.
안우진의 폭력이 상습적이었다는 점입니다.
"우진이 라커 안에 도구가 여섯 가지인가 일곱 가지가 있대요 공공연하게 아이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고, 후배들을 심심할 때마다 불러가지고 어떤 걸로 맞을래 하면서.."
–A고 학부형 E 씨
"우진이가 소위 말해 그 짓거리하는 건 사실은 작년부터 유명했고, 참다 참다 1학년 부모들 문제를 제기했나 봐요." -고교야구 관계자 F 씨

당시 복수의 학부모들로부터 들었고, 최근 다시 확인한 당시 상황은 이렇습니다.

2017년 5월 초, 안우진의 상습 괴롭힘을 참다못해 후배 학부모들 중 한 명이 대표로 코치를 찾아갔습니다. 코치는 안우진을 불러 훈계를 했다고 합니다. 제보자들은 안우진은 야구부실로 돌아온 뒤, 1학년 후배 3명에게 왜 부모님께 그런 이야기를 했냐며 비난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날 밤, 안우진이 재활 운동을 위해 야구부를 비운 사이에 다른 3학년들이 1, 2학년들을 집합시켰다고 합니다. 왜 선배에 대해 험담을 했냐며 소위 '원산폭격'을 시켰다고 합니다. 그리고 앞서 안우진이 비난한 3명 중, 치료를 하러 간 한 명을 제외한 두 명을 3학년들이 따로 불러냈다고 합니다. 한 명은 '엎드려뻗쳐'를 한 상태에서 배트로 엉덩이를 두들겨 맞았고, 다른 한 명은 서서 뺨을 얻어맞았다고 주장합니다.

다음 날, 이 사실을 안 야구부 감독과 야구부장 교사는 사태가 심각하다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야구부원 전원에게 그동안 있었던 폭력 사실에 대해 진술서를 받습니다. 하지만 진술서를 받은 뒤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학교에는 '사과와 화해로 사태가 종료됐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러면서 꺼림칙했던지, '이후에 익명으로라도 학폭위 개최 요구가 접수되면 학폭위를 열겠다'고 학부모들에게 공지합니다.

그리고 석 달 뒤인 8월 초, 실제로 학교에 익명의 팩스가 접수됩니다. 학폭위 개최를 요구하는 서한이었습니다. 그래서 8월 14일, 첫 학폭위 개최가 결정됩니다. (A 변호사께서는 유튜브에서 "SBS가 보도를 하려고 준비를 하니까 학교 내에서도 학폭위를 열었다"라고 주장하셨습니다.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저희는 이 학폭위가 열린 지 나흘쯤 뒤에 열렸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학폭위를 준비하며 학교는 야구부원들에게 다시 진술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진술서를 쓰던 야구부원들에게는 이런 일이 있었다는 주장입니다.
"아이들 진술서를 정정해서 다시 받은 걸로 알고 있어요. 학폭위가 열리고 외부에서 다 알게 되고 기사가 나온다고 하니까 학교에서 부랴부랴 다시 작성했던 것 같아요. "그런 적 없다"라고 표현하라고 했던 것 같아요." -A고 학부형 D씨

즉 위에 소개한 학폭위에서 확인된 폭력 사실은, 후배 선수들의 초기 진술 대비 대폭 축소됐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실제로 학폭위에서 사실로 인정된 사건들의 피해자들 중에, 정말 '상습 폭력'을 당했던 선수 한 명은 빠져 있었다고 학부모들은 입을 모았습니다.

학교 측의 '축소 은폐 시도'는 저희가 처음 발견한 게 아닙니다. 저희가 첫 보도를 하기 하루 전인 2017년 8월 22일, 처음 통화한 서울시 교육청의 관계자는 휘문고의 사건 처리 과정에 대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젠가 그젠가. 묘한 보고가 들어와서.. 저희가 들은 바로는 학폭위에서는 가해 학생들에 대해 조치 없음으로 결정했고, 그 학생들에 대하여 선도위를 개최해서 처분을 하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그건 그렇게 하는 게 안 되는 거거든요. 학폭으로 본다면 학폭위에서 조치를 해야 되는 거죠. 학폭위에서 조치 없음으로 해놓고 별도로 교내봉사를 시킨다는 건 좀 이상한 거거든요. 그래서 학교에다 다시 학폭위를 다시 개최하라고 했습니다. 명백하게 학교폭력으로 인정해놓고 나서 조치를 하지 않는 건 잘못이거든요. 결국에는 그러면 은폐 축소 이렇게 되는 거거든요"
-당시 서울시 교육청 장학사 E 씨

학교 폭력을 다루는 기구는 '학폭위'입니다. 폭력 외에 다른 사안(교내 흡연, 기물 파손 등)을 다루는 기구는 '선도위'입니다. 휘문고에서는 폭력 사건 다루는 학폭위를 열어놓고는 가해자 모두에게 '조치 없음' 처분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따로 선도위를 열어 안우진에게 '교내 봉사' 처분을 내립니다. 교육청 담당 장학사는 이 과정을 은폐 의혹이라고 본 겁니다. 진학과 취업에 영향을 주는 학폭위 처분을 어떻게든 피하려 했다고 추측하는 겁니다.

교육청 장학사의 이 확인은, 저희 첫 보도의 주요 내용이 됩니다.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당시 저희 모든 보도의 초점은, 학교와 고학년 학부모들의 '축소 은폐 정황'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당시 학원 스포츠계를 경험하신 분들은 바로 무슨 말인지 알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폭력이 상습적이었고, 학폭위에서 인정된 사실보다 심각했다는 주장은 당시 안우진 측과 학교 측에서 강력 부인했고 있고, 지금도 부인하고 있습니다. 어제 백성문 변호사도 유튜브에서 '다른 피해자가 있었다, 다른 폭력이 있었다'는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셨더군요. 하지만 당시에 저는 여러 제보자들의 일관된 주장이 있었기 때문에, 양쪽의 주장을 모두 싣는 '기계적 중립'을 지키면서 보도할 수도 있었습니다. 저는 당시 기사에 이런 내용을 넣지 않는 쪽을 택했습니다. 첫째, 피해자들이 제보자로 지목돼 또 다른 피해를 볼 위험이 있었습니다. 둘째, 미성년자인 가해자가 회생 불가능한 피해를 입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제 기사는, '과장 보도'가 아니라 '축소 보도'입니다.

제가 당시 보도에서 유일하게 후회하는 게 바로 이 지점입니다. 뒤에 알게 된 건, 제보를 했다고 잘못 소문난 후배 선수가 '왕따'를 당하는 등 2차 피해가 있었다는 겁니다. 제가 그때 '축소 보도'를 하지 않고 진상을 낱낱이 보도했다면, 그 선수의 가슴이 피멍이 들 일도 없지 않았을까. 요즘 안우진 선수가 소속사와 함께 당시 후배들과 열심히 의사소통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후배의 마음도 달래주었길 기원합니다.

4. 안우진이 '명예 회복'과 '복권'으로 가는 길

저는 지난 7월, 유튜브 '야구에 산다'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안우진 선수의 대표 선발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우리 공동체가 정한 벌을 받은 사람에게는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지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
당시 피해자들도 안우진 선수 개인에 대한 복수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피해자 측의 입장을 비추어 보면 조심스럽지만 안우진 선수의 프로 생활, 대표 차출에 반대하시지 않을 겁니다.... 또 사건 이후 지금까지 안우진 선수가 감당해야 했던 비난과 조롱이 18살 때 했던 잘못의 무게를 넘어서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공동 성명을 내는 것에 동의한 3명의 피해자들은, 안우진 선수를 완전히 용서한 것 같습니다. 그중 한 명은 백성문 변호사와 전화 인터뷰도 하셔서 안우진 선수를 옹호하신 것 봤습니다. 좋은 일입니다. 안우진 선수가 지난 5년 동안 후배들의 마음을 잘 어루만져준 결과일 테니까요. 학폭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인, 피해자의 용서가 이뤄지고 있다는 증거이니까요. 이 과정이 완료된다면, 징계 경감을 위한 수순을 밟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보도 이후에 이루어진 경찰 진술 조서가 '확정된 사실'인 것처럼 주장해 '실질적 폭력이 없었다'는 논리를 만들려는 시도는 선수 본인에게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위에 설명한 것처럼, 보도 당시 제가 객관적 자료와 증언들을 통해 파악한 상황은 지금 주장하시는 내용과 완전히 달랐기 때문입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당시처럼 객관적 자료와 증언들이 있는 상황에서, 기사를 쓰지 않는 기자는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겁니다. 저도 그때로 돌아가도 똑같이 할 겁니다. 아니,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 상세한 내용을 담을 겁니다. 당시 보도 이후 학원 스포츠계의 폭력은 급감했습니다. 가해자가 프로 선수가 되려면 반드시 피해자의 용서를 받아야 한다는 문화도 정착되고 있습니다. 5년 전 그때처럼, 앞으로도 '폭력 없는 스포츠계'를 만들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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