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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앗아간 숙소 규정 강화했다더니…"너무 비현실적"

<앵커>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이주노동자가 없으면 잘 돌아가지 않는 일터가 많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냥 싸게 쓰는 인력 정도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그래서 숙소 문제가 특히 심각합니다. 2년 전 비닐하우스에서 살던 한 노동자가 숨지자 정부가 대책을 내놨었는데,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을지, 저희가 짚어봤습니다.

먼저 그 현장을 제희원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제희원 기자>

지난해 정부는 비닐하우스 안 가설건축물을 숙소로 쓰면 고용 허가 내주지 않겠다는 방침을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비닐하우스 안에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넉 달 전 네팔에서 입국한 니르말 씨.

농장 바로 옆 검은 차양막이 덮인 비닐하우스 안 컨테이너가 니르말의 숙소입니다.

난생처음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한겨울을 여기서 견뎌 내야 하는데, 믿을 건 전기장판 하나뿐입니다.

퀴퀴한 주방 공간에는 흙먼지가 가득하고 샤워장에는 전등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고용주는 그런데 근로계약서에 이 숙소를 '주택'이라고 적어서 정부 단속을 피해 갔습니다.

[니르말(가명) : 전기장판 있어요. 사장님이 (줬어요.) (방 안에서 옷 입고 있어요?) 옷 입고 있어요.]

한 달에 딱 이틀만 쉬면서 월급을 200만 원 남짓 받는데, 이런 곳에 살게 해줬다고 고용주가 월급에서 20만 원을 떼 갑니다.

[니르말(가명) : 한 달에 먼저 20만 원 잘라. 많이 일해요. 약 뿌리고.]

이 숙소는 그나마 나은 편입니다.

맨땅을 파고 나무판자로 발판을 만든 재래식 화장실을 써야 하는 이주노동자도 있습니다.

정부가 2년 전 사고 이후 개선책을 내놨지만, 달라진 게 거의 없습니다.

고용주가 작성한 기숙사 정보가 맞는지 틀린지, 고용노동부는 직접 확인하겠다고 했습니다.

실제 얼마나 자주 감독하고 있는지 물어보겠습니다.

점검을 나가기는 하는데, 일일이 확인할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고용노동부 의정부지청 직원 : 포천, 남양주, 양주, 구리, 연천, 철원에 출장갔고. 올해보다 내년에 두 배로 늘리니까. 지금 있는 인력이 그걸 다 소화해 내느냐고.]

실제로는 서류 접수부터 확인까지 제대로 안 한다는 게 현장의 이야기입니다.

[김달성 목사/포천이주노동자센터 : 고용노동부는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 알선할 때 기숙사에 대한 서류를 제대로 심사도 하지 않고, 검토도 깊이 하지 않고.]

(영상편집 : 최은진, VJ : 박현우, 화면제공 : 포천이주노동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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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정부가 내놓은 개선책에는 돈을 지원할 테니까, 비닐하우스 대신 노동자들이 제대로 지낼 숙소를 지으라는 내용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보조금이 턱없이 부족해서, 정부가 현실을 너무 모른다는 불만이 많습니다.

이어서 정준호 기자입니다.

<정준호 기자>

이주 노동자 4명을 고용 중인 농장주 A 씨.

오랜 시간 함께 일할 동료라는 생각에 9천만 원을 들여서 새로 숙소를 지었습니다.

정부 보조금으로 1천500만 원을 받았고, 나머지는 본인 돈을 썼습니다.

비용 부담이 커서 포기한 고용주가 더 많습니다.

[농장주 A 씨 : 누가 여유가 돼서 농사 짓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어요. 뭐 먹고 살려고 하는 건데. (주변 농가도) 하고 싶은데 비용 부담이 많이 드니까, 뭐 저쪽에서는 뭐 한다고는 했지만 실질적으로 비용이 충분히 나오는 것도 아니고.]

정부는 2년 전, 빈집을 고쳐 쓰거나 새로 지을 때 최대 1천500만 원까지 지원하는 대책을 내놨습니다.

하지만 농촌이라도 이 돈만으로 집 짓기란 애초에 불가능합니다.

농장주 상당수가 남의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짓는 임차농이어서 추가 부담을 할 능력이 거의 안 됩니다.

농지에 가깝게 지으려 해도 용도 변경이 까다롭고, 땅 주인이 허락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보다 못한 지자체는 정부 지원을 받아 기숙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남상호/강원 철원 양지마을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 팀장 : 교육할 수 있는 회의실도 있고, 다음에 공용 휴게실이 있어서 집처럼 생활할 수 있는 그런 장소를 만들고자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기숙사 규모가 크지 않아서 완공 후 입주할 수 있는 이주노동자는 5% 남짓입니다.

정부 대책에 한계가 드러난 만큼 기숙사든, 공공임대든 지금보다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우춘희/이주인권 연구활동가 : 못 사는 나라에서 왔다 해서 더러운 곳에 살 거라는 그런 좀 인종차별적인 생각이 정책 전반적으로 깔려 있다고 사실상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마 더 고쳐지기 어려울 것 같아요.]

(영상취재 : 전경배, 영상편집 : 이소영·박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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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 내용 취재한 제희원 기자 나와 있습니다.

Q. 직접 현장을 가보니...?

[제희원 기자 : 정말 이게 사람이 살 곳인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리포트에 나온 이주노동자의 방은 고시원보다 조금 큰 정도인데, 원래 여기에 동료와 함께 2명이서 각각 20만 원씩 40만 원을 내고 살다가 그 동료는 견디다 못해 최근에 떠났습니다.]

Q. 숙소 마음대로 바꿀 수 있나?

[제희원 기자 : 그러니까 이 노동자는 굉장히 강력하게 고용주한테 항의를 했고, 고용주의 동의를 받아서 떠났으니까 합법적이기는 한데 사실 현실에서는 아주 드문 사례입니다. 정부는 노동자들한테 숙소를 가보고 너무 열악하면 직접 신고를 해라, 그러면 옮기게 해주겠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 자체를 아는 노동자가 별로 없고요, 또 옮긴다 하더라도 거기서 거기라는 얘기가 많아서 농어촌보다는 사정이 그나마 나은 공장으로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Q. 이주노동자 주거권 개선, 대책은?

[제희원 기자 : 기존에 제도가 있습니다. 고용주가 노동자를 모으기 전에 뭐 냉난방 설비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또 화장실 상태는 어떤지 같은 것을 서류에 작성하게끔 했습니다. 여기에다가 영상이나 사진을 첨부해서 좀 보여주면 노동자도 쉽게 고를 수 있고 고용주도 더 신경을 쓸 테니까 지금보다는 좀 나아지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나옵니다.]

Q. 힘든 농장주는 어떻게 지원?

[제희원 기자 : 그렇기는 합니다만, 농장주들이 앞에서 보신 것처럼 이걸 무료로 제공하는 게 아니고 월세로 20~30만 원씩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농촌에서 이게 적은 돈이 아니니까, 그 정도에 맞는 숙소는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봐야 하고요. 또 외교 문제도 있으니까 정부도 기숙사를 짓는 걸 더 지원하든지 해서 현실적인 해법을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영상편집 : 최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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