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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시진핑, 트뤼도에 '대화 공개' 항의…무슨 말 오갔길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를 만나 불만을 표출하는 이례적인 일이 발생했습니다.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한 나라 정상이 다른 나라 정상에게 직접 불쾌감을 표시하거나 항의하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시진핑, 트뤼도에게 작심 항의…"대화 왜 공개했나"


시진핑 주석과 트뤼도 총리의 대화 장면이 포착된 것은 16일 G20 정상회의 마지막 날 연회장이었습니다. 대화 내용은 현장에 있던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는데, 시 주석은 트뤼도 총리에게 "우리가 나눈 대화 내용이 모두 언론에 유출됐다"며 "이건 부적절하다"고 항의했습니다. 이어 "더구나 우리 대화가 그렇게 진행되지도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시 주석은 통역마저 도중에 끊으면서 "신용이 있다면 서로 존중하는 태도로 더 좋은 소통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과에 대해 말하기 어렵다"고 속내를 쏟아냈습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이 트뤼도 캐나다 총리에게 항의하고 있다.

이에 트뤼도 총리는 "캐나다에서는 자유롭고 공개적인, 솔직한 대화를 지지한다"고 응수했습니다. "중국과 함께 건설적으로 각종 현안을 논의하길 기대하겠지만, 양국이 동의하지 않는 일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시진핑 주석의 얼굴에서는 이내 웃음기가 사라졌습니다. 시 주석은 "(대화의) 여건을 만들자"라는 말을 두 차례 반복한 뒤 트뤼도 총리에게 악수를 청하고 자리를 떴습니다. 1분 동안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카메라가 근접 촬영하고 있었던 만큼 두 정상의 대화가 촬영된다는 사실을 시진핑 주석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시 주석이 작심하고 트뤼도 총리에게 공개 항의한 셈입니다.
 

캐나다 "중국 간섭에 우려 표명"…중국 "논의 안 돼"


시진핑 주석이 지목한 '언론에 유출된 대화'는 전날 두 정상이 나눈 대화를 말합니다. 시 주석과 트뤼도 총리는 15일 G20 정상회의장에서 만나 10분 정도 대화했습니다. 이후 '글로브 앤드 메일' 등 캐나다 언론은 "트뤼도 총리가 시진핑 주석에게 중국의 캐나다 간섭 의혹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어 트뤼도 총리가 말한 '간섭'은 지난 2019년 캐나다 총선 당시 중국의 개입 의혹을 언급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습니다. 캐나다 언론은 하루 앞선 14일 캐나다 전력회사의 중국계 직원이 중국 정부에 비밀 업무 정보를 넘긴 간첩 혐의로 체포된 사실도 함께 전했습니다. 즉, 중국이 캐나다 선거에 개입하고 산업 비밀을 빼내려 하자 트뤼도 총리가 시진핑 주석에게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는 취지입니다.
캐나다 '글로브 앤드 메일'은 "트뤼도 총리가 시진핑 주석에게 중국의 간섭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고 보도했다.

트뤼도 총리는 중국의 선거 개입 의혹에 대해 직접 발언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8일 영국 BBC방송에 "2019년 총선 당시 중국이 최소 11명의 후보를 지원했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중국이 캐나다 선거에 개입하려 공격적인 게임을 벌였다"고 말했습니다.

캐나다 언론은 '중국의 간섭 문제' 외에도 트뤼도 총리가 시진핑 주석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북한 문제, 12월 몬트리올 기후변화 회담의 중요성 등에 대해 논의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지속적인 대화의 중요성도 이야기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중국 측 얘기는 다릅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캐나다 언론이 보도한 다음날인 16일 '단독'이라는 타이틀을 달아 두 정상의 대화 경위와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당시 대화는 트뤼도 총리가 시진핑 주석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와 이뤄진 것이며, 두 정상의 대화는 매우 짧았다고 했습니다. 트뤼도 총리는 시 주석에게 "한반도, 우크라이나, 캐나다·중국 관계, 생물 다양성 등에 대해 얘기할 기회를 갖기를 바란다"고 말했고, 이에 시진핑 주석은 "중국·캐나다 관계의 핵심은 차이를 관리하면서 공통 기반을 찾는 것"이라고 답했다고 글로벌타임스는 전했습니다.
중국 글로벌타임스는 "트뤼도 총리가 먼저 시진핑 주석에게 다가와 '담소'를 나눴다"고 전했다.

여기서 양국의 시각차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중국 매체가 언급한 '캐나다·중국 관계'에 캐나다 매체가 보도한 '중국의 캐나다 간섭 문제'가 포함됐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논의가 이뤄지지도 않았을뿐더러, 짧은 시간 얘기한 여러 의제 중 하나라는 게 중국의 입장입니다. 시진핑 주석이 트뤼도 총리에게 "더구나 우리 대화가 그렇게 진행되지도 않았다"고 말한 것은 이를 지적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캐나다 "3년여 만의 회담"…중국 "비공식 담소"


10분 정도의 대화를 공식 회담으로 볼 것인지를 놓고도 양국의 입장은 크게 갈렸습니다. 캐나다 매체들은 "3년여 만의 첫 '회담(talks)'"이라고 의미를 부여한 반면, 중국 관영 매체는 '담소(chat)'라고 표현했습니다. 캐나다 입장에선 공식 회담이니만큼 대화 내용을 공개해도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고, 중국 입장에선 비공식 담소일 뿐이니 당연히 비공개되는 것으로 예상했을 수 있습니다. 정상 회담의 경우 통상 사전에 의제를 정하고 사후 발표 때도 발표 여부와 발표 수위를 미리 정하기 때문에, 이런 논의가 없었던 이번 대화 내용이 공개된 것 자체가 중국 입장에선 불쾌하게 느껴졌을 수 있습니다.
16일 G20 정상회의 연회장에서의 시진핑 주석과 트뤼도 총리

이는 트뤼도 총리의 말처럼 '언론의 자유'를 중시하는 서방과 '관리된 메시지'를 중시하는 중국 간 문화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트뤼도 총리의 정치적인 의도가 없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실제 15일 첫 대화는 여러 명이 있는 곳에서 두 정상이 서 있는 상태에서 이뤄졌습니다. '공식 회담'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대화가 이뤄진 15일 중국 외교부는 시진핑 주석이 프랑스, 네덜란드, 남아프리카공화국, 호주, 세네갈, 한국, 스페인, 아르헨티나 등 8명의 정상과 양자 회담했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에 캐나다는 없습니다. 중국은 트뤼도 총리와의 대화를 공식 회담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트뤼도 총리 측이 유리한 대화 내용을 언론에 공개해, 캐나다 내 반중국 정서를 이용하려 했을 수 있습니다. 시진핑 주석 입장에선 이대로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을 수 있습니다.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곧장 항의하고 싶었을 수 있습니다.

중국과 캐나다의 관계는 지난 2018년 미국의 요청으로 캐나다가 중국 최대 통신장비 회사인 화웨이의 멍완저우 부회장을 대이란 제재 위반 혐의로 체포하면서 급속히 나빠졌습니다. 이번 일로 두 나라 관계의 회복을 기대하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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