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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신문 배달

김지나ㅣ미대 나온 글쟁이. 미국에서 패션 비즈니스로 활동 중인 칼럼니스트.

신문 (사진=픽사베이)

어릴 적 종이 신문은 우리 모두에게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끈이었다.

"신문요~" 젊은 청년의 숨 가쁘고도 낭랑한 목소리는 이른 아침을 여는 힘찬 기상 이상의 메아리였다. 그때는 신문을 보지 않는 집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지금처럼 읽기 편한 가로쓰기도 아닌 세로쓰기였고 한문이 한글보다 더 많을 때도 있었으나 글을 읽을 수 있는 평범한 시민에서부터 지식인까지 그들의 눈과 귀는 신문으로 통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엄마를 떠올리면 따뜻한 아랫목에 신문을 펼치고 두꺼운 안경을 낀 채 한 자 한 자 자세히 들여다보셨던 모습이 기억난다. 하교한 막내딸의 간식거리를 준비하시기 전까지 엄마의 시선은 안경 너머에 있는 신문에 언제나 고정돼 있곤 했다.

그랬던 엄마의 모습이 이제는 고스란히 지금 내 모습이 되었다. 이역만리 미국 동부 어느 시골구석까지 한국 신문이 매일 이른 아침에 배달된다면 누가 믿을 수 있을까? 한국에선 매일 신문을 받아보는 가정집이 과거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오히려 "요즘에 누가 신문을 받아보니?"라고 반문하는 한국 분이 계셔서 흠칫 놀랐다.

우리 집에는 아침 6시 전후로 한국 사람이 아닌 미국 사람이 신문을 배달해 준다. 현관까지는 아니고 우체통이 있는 큰 거리까지 신문을 비닐봉지에 넣어서 던져놓는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배달하고 토요일 자 신문은 온라인으로 볼 수 있다. 신문 한 부는 $0.5(한화로 700원 정도)인데 1년 계약을 하면 배달을 포함 $150정도다.(한화로는 20만 원이 조금 넘는다). 한국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평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신문이다.

어릴 적 기억 속의 엄마처럼 넓은 테이블에 신문을 펼쳐놓고 커피를 한잔 마시며 뉴스를 보는 그 시간이 나에겐 너무도 소중하고 행복한 하루의 시작이다. 이른 아침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직장으로 나가기 전 신문 속 세상을 보노라면 온갖 기묘한 일들이 벌어져 입이 떡 벌어지기도 하고 안타까운 소식에 눈물을 훔치기도 한다. 내가 사는 동네 뉴스에서부터 비행기를 타고 가도 24시간을 가야 하는 저 멀리 아프리카나 러시아 전쟁터의 슬픈 이야기까지 세상의 일거수일투족을 편히 앉아서 내다볼 수 있는 신문은 내게 만물의 지식을 가져다주고 세상과 연결시켜준다.

신문의 1면은 당연히 미국 내 핫이슈로 장식된다. 요즘처럼 중간 선거 기간이면 온통 정치판 일색이고 한인 사회의 동향이나 정보를 준다. 많은 면이 광고로 도배되기도 하지만 미국에서 살아가는 한인에게 꼭 필요한 정보도 빠짐없이 기재해 주어 언어가 미숙한 많은 한인 1세대들의 속풀이를 대신해 주기도 한다. 타국에 살면 모두가 애국자가 된다고 하는데 꼭 맞는 말이다. 한국 뉴스에 더욱 열을 올리고 한국의 영광은 곧 나의 영광이고 한국의 슬픔은 그 누구보다 슬픈 이야기로 전해진다. 그래서 아마도 한국보다 타국의 한국 신문 배달이 더욱 간절한 건지도 모르겠다.

요즘처럼 모든 게 빠른 시대에 잉크로 찍어낸 따끈한 신문을 집집마다 배달하는 모습 두고 젊은이들은 나무늘보처럼 한없이 느린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느리게 진행되어 절대 수정 불가한 신문은 그만큼 한 자 한 자에 신중을 다한 정확한 단어와 사실만을 전하는 신뢰도는 빠르게 입력하고 다시 빠르게 정보를 수정할 수 있는 일회성 인터넷 뉴스가 대신할 수 없으리라 생각된다.

인터넷 뉴스가 대세이긴 하다. 나 또한 틈만 나면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고 영상을 시청한다. 인터넷 뉴스의 좋은 점은 내가 보고 싶은 것만 골라서 습득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인터넷 뉴스에는 진짜와 가짜가 있다. 특히 인터넷과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수천 개가 되는 토픽에서 진품과 가품의 교묘한 차이를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 가짜 뉴스인지 모르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어가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이비 종교에 홀리듯 무섭고 깊은 수렁에 빠져버리기 쉽다. 진짜와 가짜를 가려낼 수 있는 개인적인 올바른 지적 시선이 필요하다.

인터넷이 온 국민의 눈과 귀가 되어버린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휴대전화의 보급에 있다. 1인 1대의 휴대전화 시대가 열리면서 화면에 나타난 뉴스를 눈으로 보면서 몇 천 년 동안 활자란 오로지 종이로만 전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세상 사람 모두가 잊었나 보다. 활자가 내 손안에 들어있고 언제 어디서든 내 손 안의 기계에 클릭만 하면 온 세상의 뉴스는 누구나 볼 수 있는 시대가 왔으니 한마디로 내 손안에 세상이 들어가 버린 셈이다.

전자책 읽기 붐이 분명히 있었다. 애플이나 여기저기에서 종이책과 함께 전자책 발행이 필수가 되어버렸고 신문 또한 인터넷 신문이 대세를 이루었다. 서재가 남자들의 로망이었고 그전에는 '세계전집'이 부잣집의 필수 아이템인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근사한 남자가 차 안에서 전자 북을 보고 있는 모습이 로망으로 바뀌었다.

인터넷이 보편적인 상식이 되어버렸고 활자가 아닌 인터넷 사용이 문맹의 높낮이를 대신하게 되었다. 인터넷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줄 알아야 지구상에 존재의 가치를 확인하는 방법이 되어버렸으니 나를 비롯한 나의 윗세대들의 아픔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을 실시간으로 마주하기엔 너무 벅찬 일이었고 이는 세대 간의 소외계층을 한층 더 부추기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과학이 후퇴하는 법은 절대 없기에 아득한 후손들은 종이로 된 신문을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것이고 한국의 유산인 팔만대장경 같은 유물이 되어버릴지도 모르겠다. 레트로를 그리워하는 우리네가 침을 발라가며 잉크 묻은 손으로 신문을 넘기는 그런 모습이 아무리 옛스럽다 부르짖는다 한들 지나간 영광은 돌아오지 않으리라.

내 추억의 소환은 여기까지인듯하다. 내 나이에 매일 아침 안경을 장착하고 신문을 정독한다고 하면 믿지 않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아직 인쇄가 다 마르지 않아 행여나 활자가 뭉개질까 염려스러운 마음과 신문 특유의 휘발유 냄새를 킁킁 맡으며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집어 들어 신문을 감싼 비닐을 벗기고 그 비닐도 아까워 강아지들의 대변 비닐 상자에 구겨 넣는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시점에서 오늘의 핫뉴스는 개기일식일 거라는 걸 나는 안다. 이태원 참사의 명칭을 두고 나오는 의견들과 김 수석과 강 수석이 청문회에서 주고받은 메모에 '웃기고 있네'라는 문구가 또 한 번 한국 정치판을 정말 웃기게 만들고 있는 모양이다.

'신문요~'라며 소리치는 사람은 없지만 축축한 낙엽들 사이로 행여 이슬에라도 젖을세라 몸을 숨긴 오늘 자 신문의 운명은 내 손바닥에 올려진다. 오늘은 한껏 게을러지고 싶은 가을의 연장, 겨울의 초입이다. 어서 들어가 한 자 한 자 그림과 활자를 맞추어봐야겠다.

커피 카페 (사진=픽사베이)

#인-잇 #인잇 #김지나
[인-잇] 한국 0.86 vs 미국 1.7
인잇 사람과 생각을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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