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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그들은 왜 '환경 테러리스트'로 불리게 되었나 ①

자국 문화유산과 예술품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각별한 사랑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 프랑스인들에게 얼마 전 깜짝 놀랄 만한 일이 있었습니다. 유럽의 기후환경운동 단체 '저스트 스톱 오일(Just Stop Oil)'의 활동가로 추정되는 인물이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 빈센트 반 고흐와 폴 고갱의 작품을 훼손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 발생한 겁니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문제의 인물은 지난달 27일 오르세 미술관을 찾아 반 고흐의 자화상에 풀칠을 하려다 경비에게 제지를 당했습니다. 그는 바로 방향을 틀어 고갱의 작품으로 돌진했지만 이마저도 박물관 측에 의해 가로막혔고,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도착하기 전 자취를 감췄습니다. 미술관 측은 이 인물이 당시 손에 들고 있던 '수프가 담긴 병'을 압수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오르세 미술관 측은 SBS 취재진에게 현지 보도의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고 확인하면서, 해당 인물에 대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고 밝혔습니다. 현재는 파리 검찰청이 수사를 진행 중입니다. 실질적인 피해가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미술관에 전시된 명화를 훼손하려는 시도만으로도 범죄가 성립한다고 보는 겁니다. 프랑스 문화부 장관까지 나서 자국 내 국립 미술관 관계자들에게 경계 강화를 당부했을 정도입니다.

저스트 스톱 오일 활동가들이 반 고흐 '해바라기'에 수프를 끼얹고 나서 손을 접착제로 벽에 붙이는 시위를 했다.

하지만 유럽의 모든 미술관들이 다 이렇게 운이 좋았던 건 아닙니다. 영국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전시된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해바라기'는 지난달 14일 같은 단체인 '저스트 스톱 오일'의 활동가들로부터 토마토 수프 공격을 받았습니다. 네덜란드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 전시된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도 지난달 풀칠 공격을 받았고, 독일 포츠담 바르베리니 미술관에 전시된 클로드 모네의 '건초더미' 역시 환경단체 '라스트 제네레이션(Last Generation)' 소속 활동가들의 공격을 받아 으깬 감자를 뒤집어썼습니다. 이달 들어서도 이탈리아 로마의 보나파르테 궁전 미술관에 전시된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씨 뿌리는 사람'이 환경단체 '울티마 제네라지오네(Ultima Ganarazione)' 활동가들로부터 야채수프 공격을 받았습니다.

기후환경운동 활동가들은 명화를 공격하며 이렇게 외칩니다. "예술이 생명, 식량, 정의보다 소중합니까? 당신들은 그림을 지키는 것이 지구와 생명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네덜란드에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공격한 활동가들은 "부끄러운 줄 알라"는 다른 관람객들의 야유에 "아름답고 귀중한 무언가가 당신 눈앞에서 훼손되는 걸 보니 기분이 어떤가? 우리 행성이 훼손될 때 나도 바로 그런 기분을 느낀다."고 대꾸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기후 위기를 초래하는 화석 연료 사용을 당장 중단하고 친환경 에너지 전환에 시급히 나설 것을 각국 정부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실시간 e뉴스3. 명화 테러ok

다행스럽게도 공격을 받은 명화 대부분 실제 훼손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이들이 페인트 등 심각한 훼손을 야기할 수 있는 화학물질보다는 수프나 으깬 감자처럼 덜 치명적인 물질을 공격에 이용하기도 할뿐더러, 보다 근본적으로는 미술관에 전시된 다수의 명화들이 유리 덮개로 보호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이런 행위를 한 활동가들이 법적 처벌을 면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네덜란드 법원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며 최근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훼손하려 한 혐의로 기소된 활동가들에게 징역형을 선고했습니다.

기후환경운동 단체의 '명화 훼손 시위'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세상의 이목을 끄는 데는 확실히 성공한 듯 보입니다. 과거 그들이 화석 연료로 돈을 버는 대기업의 건물을 페인트칠로 엉망으로 만들었을 때나 출근길 차량 통행을 막고 점거 시위를 벌였을 때는 이렇게 전 지구적 관심을 얻지 못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지고 사랑받는 명화들을 볼모로 삼는 전략을 택한 뒤에야, 사람들은 대체 이들이 누구이며 왜 이런 짓을 벌이는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저스트스톱오일 활동가들이 반 고흐 '해바라기'에 수프를 끼얹고 나서 손을 접착제로 벽에 붙이는 시위를 했다. (사진=저스트스톱오일 트위터 캡처, 연합뉴스)

'해바라기'에 토마토 수프를 끼얹은 활동가 애나 홀랜드는 이렇게 말합니다. "두 명의 젊은이가 수프를 던졌더니 갑자기 온 세상이 기후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이게 바로 우리가 원하던 바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시위에 쏟아진 관심이 바로 시민과 정부의 행동 변화로 이어질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시위에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들은 이런 극단적인 시위 방식이 오히려 일반 시민들의 반감만 불러일으킬 거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활동가들을 '환경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는 이들과 '미래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주장하는 이들 사이의 간격은 쉽게 좁혀지기 어려워 보입니다.

극단적인 시위의 사회적 득실을 지금 당장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일을 벌이는 사람들과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셈법도 분명 다를 겁니다. 지켜보는 사람들 안에서도 각자의 관심과 가치관, 이해관계에 따라 평가는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지금 유럽 사회에선 기후환경운동 단체의 '명화 훼손 시위'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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