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불공정 규제" vs "독과점 방지"…리코의 KBO 상대 가처분 신청 톺아보기

변호사 3인 "대리인은 법인 아닌 자연인 · FA 선수는 무적 선수" 한 목소리…계약 선수 제한 가능 여부엔 의견 엇갈려

[취재파일] "불공정 규제" vs "독과점 방지"…리코의 KBO 상대 가처분 신청 톺아보기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KBO 선수들은 자신의 계약을 스스로의 힘으로 ‘혼자’ 체결해야 했습니다. 각종 데이터와 고과 산정표로 무장한 구단 관계자 앞에서 선수 스스로 자신이 얼마나 가치 있는 선수인지 증명하는 일은 당연히 쉽지 않았고, 많은 경우 구단이 내민 제안을 좋으나 싫으나 감내해야 했습니다. 법적 분쟁에 휩싸인 개인이 변호사의 도움 없이 재판에 임해야 한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를 상상해본다면, 선수들이 느꼈을 감정을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지난 2001년, 흔히 에이전트라고 부르는 선수 대리인의 부재가 구단-선수 간의 불공정 계약을 야기한다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명령을 받고 처음 대리인 제도를 만든 KBO는 이후에도 제도 시행을 미뤘습니다. 하지만, 서울지방변호사회 등 각종 단체에서 공정위 신고 등을 통해 시행을 촉구했고, 2017년, 그러니까 제도가 만들어진 16년 만에 처음 KBO에 대리인, 에이전트라는 존재가 활동할 수 있게 됐습니다.
 
자, 이제 선수가 에이전트를 선임할 수 있게 되었으니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일까요? 그게 또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먼저 KBO 규약에 있는 관련 내용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KBO 규약
제42조 [대리인]
① 선수가 대리인을 통하여 선수 계약을 체결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의 공인을 받은 자를 대리인 으로 하여야 한다.
② 대리인은 동시에 구단당 선수 3명, 총 선수 15명을 초과하여 대리할 수 없다.
③ 대리인제도의 운영은 KBO와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가 합의하여 시행한다.
④ 대리인제도의 시행일은 부칙에 따로 정한다.

앞서 에이전트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메이저리그나 축구 등 다른 종목과 비교했을 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저 42조 2항, KBO가 한 에이전트 당 계약할 수 있는 선수 수를 제한하고 있다는 부분일 것입니다. 해당 조항에 따라 대리인은 물론, 선수의 자유도 당연히 제한 받게 됩니다. 선수 입장에서는 같은 값이면 더 좋은 대리인과 계약을 맺고 싶을 텐데, 만약 해당 대리인의 고객 수가 이미 다 차 있다면 계약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을 테니까요.
 
물론 이런 자유의 제한이 그 이상의 편익을 약속한다면 충분히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구단 당 3명, 최대 15명 조항은 무효”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등법원이 함께 쓰고 있는 서울 서초동 법원청사 전경 (사진=서울고등법원 제공, 연합뉴스)

선수 대리인 업계 1위인 리코스포츠에이전시(이하 리코)의 이예랑 대표는 지난달 1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대리인지위인정가처분신청서를 냈습니다. 대리인 한 명이 구단 당 3명, 최대 15명의 선수만 계약할 수 있도록 한 해당 규정은 민법, 공정거래법 등에 어긋나므로 무효라는 취지입니다.
 
만약, 계약 가능한 선수의 숫자를 제약하는 규정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그 규정을 KBO가 해석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판단해달라고 덧붙였는데 사실상 이 부분이 이예랑 대표 측이 정말 주장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법인 = 대리인 1명' 규제는 무효
KBO는 현재 한 법인을 대리인 1명과 동일하게 취급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리코 에이전시에 대리인 자격을 갖춘 사람이 두 명이 있든, 세 명이 있든 상관없이 리코가 계약할 수 있는 선수가 구단 당 3명, 최대 15명으로 제한된다는 겁니다. 이예랑 대표 측은 이런 KBO의 유권해석에 명확한 근거가 없으며, 사업자단체의 불공정행위에 해당한다며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② FA 선수의 원소속구단 선수 간주는 무효
FA는 자유계약선수를 일컫는 말로, 어떠한 구단에도 속하지 않은 상태로 자유롭게 계약을 맺을 수 있는 상태의 선수를 말합니다. 하지만, KBO는 대리인 규정을 적용함에 있어 FA선수가 원소속구단 선수인 것으로 간주해 구단 당 3명의 쿼터 안에 산입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A선수가 FA자격을 획득해 더 이상 B구단 소속이 아닌 상태에도 이미 B구단 선수 3명과 대리인 계약을 체결한 에이전트는 A선수를 추가로 대리할 수 없게 되는 겁니다. 이예랑 대표 측은 이 역시 불공정한 업무방해행위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KBO “대리인 규정은 독과점 규제 위한 것”

 
KBO 리그

KBO의 대리인 규정에 대한 입장은 명확합니다. 모두 특정 업체의 독점을 막기 위해 존재하는 규정이라는 겁니다. 최근 2년 간 FA 계약 총액 1288억 5천만 원 가운데 리코가 535억 원, 전체 계약의 41.5%를 휩쓴 상황인데, 만약 해당 조항이 무효화 된다면 특정 업체, 즉 리코의 독점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 KBO는 보고 있습니다.
 
2018년 이후 현재까지 선수협회 공인 대리인으로 등록된 사람은 195명입니다. 그 가운데 86명은 2년 동안 선수 계약을 하지 못해 등록이 취소됐고, 현재 자격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91명입니다. 그 중에서도 실제 야구 선수와 계약을 맺은 대리인은 전체의 28.6%인 단 26명에 불과할 정도로 리코 등 특정 회사의 독과점이 심각한 상황인데, 구단 당 3명, 전체 15명이라는 제한을 풀어버린다면 시장의 건전한 경쟁을 해치게 된다는 겁니다.
 
결국, 법인에 대리인 자격을 가진 이가 몇 명이 있든 법인을 대리인 1명으로 간주하는 것도, FA 신분인 선수를 원소속구단 선수로 보는 것도 모두 특정 업체의 독점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유권해석이라는 것이 KBO의 설명입니다.
 
KBO 이경호 홍보팀장은 현재 리코 측이 낸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질 경우 “자유로운 에이전트들의 시장 경쟁 구도에 엄청난 피해가 올 수 있고, 독과점이 심해져 신규 대리인이 선수를 유치하는 데 거의 불가능한 구조가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오랜 기간 여러 검토와 준비 끝에 태어난 것이 대리인 제도”라며, “지난 5월 운영협의회에서 딱 한 번 논의됐을 뿐인 대리인 규정에 대해 (리코 측이) 추가 논의 없이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고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또, “평소 42조 2항의 제약을 피하기 위해 선수들과 매니지먼트 계약을 유지하다 FA계약에 임박해 에이전트 계약으로 전환하는 리코의 편법을 오히려 개선해달라는 요구도 많다”고 주장했습니다.
 
기존 대리인 규정이 불공정한 규약이라는 리코 측의 주장과 독과점을 막기 위한 제도라는 KBO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 SBS는 이미 법원에서 시시비비가 가려지게 된 점을 고려해 과연 이번 가처분 신청이 쟁점으로 삼은 대리인 규정과 이에 대한 KBO의 유권해석을 법적으로 어떻게 보아야할지 자문을 얻어 현재의 논란을 정리해보고자 했습니다. 모두 3명의 변호사가 SBS와의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1. 법인=대리인 1명’ KBO 유권해석 “말도 안 돼”


한경수 공정거래법 전문변호사는 한 법인에 대리인이 몇 명이 있든 구단 당 3명, 최대 15명 이상 선수 대리를 맡을 수 없다는 현재의 KBO 유권해석을 “자의적인 해석”이라고 못박았습니다. “기존 대리인 규약 자체가 지나치게 선수들의 이익을 제한하고 있는데, 규약에 없는 내용을 근거로 KBO에서 선수들의 행동을 제약할 순 없다”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국내 대형 로펌에서 근무하는 A 변호사 역시 의견이 같았습니다. 특히 문제로 삼은 건 선수협과 KBO가 합의해서 만든 ‘KBO리그 선수대리인 규정’이었습니다.
 
KBO리그 선수대리인 규정
제6조 [선수대리인의 자격]
① 선수대리인은 선수협회가 정하는 자격시험을 치르고 일정한 점수 이상을 획득한 자 중에서 이 규정에 따라 선수협회가 인정하는 자로 하며 법인 또는 법인으로 보는 단체는 선수대리인이 될 수 없다.

A 변호사는 “KBO 규약에 대리인 자격에 대한 규정이 없고, 규약 42조 3항에 따라 대리인 제도의 운영을 KBO와 한국 프로야구 선수협회가 합의하여 시행한다고 명시돼 있는 만큼 대리인 자격은 법인이 아닌 자연인에게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말했습니다. 또, “KBO와 구단들 간의 약속인 KBO 규약은 일종의 소비자인 선수 입장에서는 무조건 따를 수밖에 없는 ‘약관’과 같다”면서 “약관을 소비자에게 불공정하게 해석하는 것은 약관법에 의해 강하게 통제된다”고 덧붙였습니다. 공익 변호사단체에서 근무하는 B 변호사 역시 다툼의 여지는 있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KBO가 인정하는 선수협회의 대리인 공인 절차는 ‘사람이 보는 시험’”이라면서 “대리인 1명에 구단 당 3명의 선수를 대리할 수 있다면, 법인의 경우 대리인 자격을 지닌 사람 수만큼 곱해서 선수를 대리할 수 있다고 계산하는 게 적절하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2. "FA선수, 원소속구단 선수로 봐선 안 돼"

 
A 변호사는 KBO 규약에 따라 선수의 연봉이 2월에서 11월까지 활동기간 10개월로 분할해 지급되는 점과 FA 권리를 행사한 선수는 모든 구단과 자유롭게 계약을 맺을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KBO 대리인 규정, 즉 42조 2항에 따른 구단 당 3명의 제약이 FA 선수에게는 적용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야구선수계약서
제5조 [계약기간] 본 계약의 계약기간은 20__년 __월 __일부터 20__년 11월 30일까지로 한다. 다만, 계약기간 중 참가활동기간은 2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로 한다.
KBO 규약
제72조 [연봉의 지급] ① 구단은 연봉을 10회로 분할하여 참가활동 기간 동안 매월 1회 일정한 날을 정하여 월별로 지급하여야 한다.
제161조 [FA의 정의] 프리에이전트(FA)는 제17장에서 정한 요건(FA자격요건)을 갖추어 모든 구단과 선수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권리(FA권리)를 취득한 선수를 말한다.
 
한경수 변호사 역시 해석의 여지가 있다고 전제한 뒤 “42조 2항이 FA 선수에게 효력이 미친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만약 FA 선수를 원소속구단 선수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관련된 규정이 따로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기 위해서는 FA 선수가 해당 규정의 잘못된 해석으로 인해 받는 불이익이 크고, 회복할 수 없다는 점이 강조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3. 대리인 당 계약 선수 제한엔 의견 엇갈려

 
제42조 2항, 대리인 1명이 구단 당 3명, 최대 15명까지만 계약을 맺도록 한 조항 자체에 대해선 변호사들의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B 변호사는 “리코는 선수 대리인 시장에서 1위 업체이고, 이예랑 대표도 거액 계약 체결 소식과 관련해 자주 뉴스에 등장할 만큼 유명한 사람 아니냐”면서 “(리코가) 파산 직전에 이르렀다거나 적자 누적으로 도산이 우려되는 상황이 아닌 이상 KBO가 독과점을 막기 위해 현행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부분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한경수 변호사는 대리 선수의 수를 제한하는 규정 자체가 “시대의 흐름에 많이 뒤떨어져 있다”고 평했습니다. “한국의 경우 많은 제도를 폐쇄적인 시스템을 유지하는 일본에서 가져왔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미국식의 개방적인 제도로 바뀌어나가는 경우가 많다”면서 “KBO의 대리인 규정은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일부 굉장히 폐쇄적인 조합에서나 볼 수 있는 드문 조항”이라고 말했습니다.
 

따뜻한 스토브리그를 위하여

 
한창 열기를 더해가고 있는 올해 한국시리즈가 끝나면 곧바로 스토브리그가 찾아옵니다. KBO는 한국시리즈 종료 5일 뒤 FA 자격 선수를 공시하고, 해당 선수들은 3일 이내에 KBO 총재에게 권리행사 승인을 신청해야 합니다. 빠르면 그때쯤에 맞춰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이는 리코 측의 가처분 신청이 인용될지 아니면 기각될지, 또 이번 FA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기왕 대리인 규정이 도마 위에 오른 만큼, 가능하면 선수들에게, 그리고 KBO리그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논의가 전개되어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앞으로 다가올 추운 겨울, 야구가 돌아올 따뜻한 봄만을 기다릴 야구팬들을 위해서라도요.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