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청춘들은 잘못이 없다" 이태원 참사 끝나지 않은 애도

'국가 애도 기간 마지막 날 이태원역' 취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노트북을 다시 켤 수밖에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듯, 저 역시 사고 이후 제대로 잠을 이루기 힘들었습니다. 누군가의 딸, 친구, 연인이었을 사람들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습니다. 참사가 난 지 일주일, 활기 넘쳤던 거리는 여전히 거대한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156명의 목숨이 스러진 골목은 영상에서 보는 것보다도 훨씬 비좁아 보였습니다. 추모 공간이 된 이태원역 1번 출구와 사고 골목 초입엔 하얀 국화와 쪽지들이 빼곡히 쌓여있었습니다. 미처 다 피지도 못한 청춘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미안함,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린 상실감이 거리에 뒤엉켜 있었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붉어진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다음엔 너의 손 안 놓칠게"…"너무 늦게 와서 미안해"

이태원 참사 추모 (제희원 취재파일용)

추모객들에게 이곳에 찾아온 이유를 물었습니다. 서울 신내동에서 지하철을 타고 이틀째 이곳을 찾은 74살 이계순 씨는 희생자 또래인 손주들 생각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강원도 춘천시에서 온 곽요한 씨는 대구 지하철 참사 생존자라고 했습니다. 아직도 당시가 선연한데, 참사가 이어지는 현실이 개탄스럽다고 말했습니다. 참사 당일 이태원역 2번 출구에서 부상자 심폐소생술을 돕던 김지용 씨는 마지막까지 한 사람이라도 더 구조하려던 시민들이 많이 있었음을 꼭 알리고 싶다고 했습니다. 세월호 당시 중학생이었던 한 대학생은 8년이 지난 지금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도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비참하다고 말했습니다. 교복 차림으로 사고 골목 입구에서 땅을 치며 울던 학생은 "내가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해. 제발 돌아와"라고 소리치며 목 놓아 울었습니다. 아이와 함께 국화꽃을 놓는 가족 단위 추모객도 많았습니다. 눈시울이 붉어진 채 자녀를 꼭 끌어안는 부모들도 곳곳에 보였습니다.
 

"'참사'를 '사고'라고 바꿔 부르면 책임이 손톱만큼이라도 가벼워지나"

이태원 참사 추모 (제희원 취재파일용)

국가 애도 기간은 끝이 났지만, 시민들의 비통한 마음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추모 쪽지에는 책임회피에 급급한 정부를 비판하는 글도 여럿 보였습니다. 희생자들뿐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었다는 공감과 분노가 커지는데도 당국은 '사고 사망자'와 '참사 희생자' 용어 사용을 두고 논란의 불씨까지 지폈습니다. 결국, 참사 일주일 만에 서울시청 광장 분향소 현판은 '이태원 사고 사망자'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로 문구가 변경됐습니다. 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이런 정부의 대응을 강하게 질타했습니다. "정부가 잔머리나 굴리고 있다"면서 "이 시점에서 시급히 해야 할 일은 어떤 이유에서 그런 끔찍한 일이 벌어졌으며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철저하게 규명해 내는 일"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진정한 애도는 참사를 제대로 직시하는 것부터

이태원 참사 추모 (제희원 취재파일용)

서울시청 합동분향소엔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추모의 마음을 모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분향소를 매일 찾아 조문했습니다. 이런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모두가 한마음일 겁니다. 소설가 김훈의 말처럼 '우리는 왜 날마다 명복을 비는지, 우리는 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156명의 우주가 사라지고, 그 156명을 둘러싼 수많은 인연들이 가장 비통한 시간을 보내는 지금. 우리 사회가 보내야 할 진정한 애도는 확실한 진상 규명과 제대로 된 재발 방지 대책 약속일 겁니다. 국가 애도 기간 이후에도 전국 곳곳 분향소는 당분간 더 운영될 계획입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진심으로 빕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