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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핀란드 교민이 본 이태원 참사

이보영│전 요리사, 현 핀란드 칼럼리스트 (radahh@gmail.com)

기도 믿음 희망 (사진=픽사베이)
얼마 전 핀란드에 사는 한국 교민 한 분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조그만 사업체를 운영하시며 교민 사회에서 나름 성공한 분이다. 요즘 이분의 최대 관심사는 아들의 결혼인데 만날 때마다 서른이 다 되어가는 아들에게 어울릴만한 한국 처자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고는 하신다.

경제적인 것은 물론이고 외모도 준수하고 성격도 서글서글해 남의 도움은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씀드리니 요즘 한국 젊은이들은 자국애가 강해 외국에 사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한국은 한 번을 넘어 두 번 이상은 변한 것 같다. 내가 한국을 떠난 90년대까지만 해도 외국에서의 삶을 동경하며 이민 길에 오른 사람들이 참 많았었다. 지금은 반대로 많은 이민자가 살기 좋아진 한국으로 '역이민'을 꿈꾸고 있다.

핀란드에서 한국인이 받는 대우도 많이 달라졌다. 일단 한국인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한국 드라마와 BTS 얘기를 하며 눈을 반짝인다. 얼마 전에는 핀란드를 방문한 한국인으로부터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국애를 체감할 수 있는 말이었다.

이런 현상이 우리에게는 비교적 새롭다면 핀란드는 그야말로 자국애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처음 핀란드에 와서 신기했던 것 중 하나는 이들이 자신의 나라에 가진 크나큰 자부심이었다. 무조건 핀란드산(이들에게는 국산)이면 '엄지 척'이었고, 핀란드에서 태어난 것은 로또 당첨과 같다는 둥, 세계 어느 나라를 다 여행하고 살아봐도 핀란드만 한 곳은 없다는 둥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처음에는 감동도 많이 받았는데 이제는 외국인과 대화할 때면 자주 등장하는 단골 레퍼토리려니-한다.

고맙게도 우리에게도 이런 시대가 도래했다. 그러던 중 지난달 29일 밤 서울 이태원에서 큰 사고가 터졌다. 핀란드 친구들도 놀랐던지 한국에 있는 친지들의 안부를 묻는 문자를 보내왔다. 핀란드 방송에서도 헤드라인으로 이태원 사고 뉴스를 크게 보도했다. 그런데 한 뉴스에 달린 첫 번째 댓글이 내 눈길을 확 끌었다.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공권력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반증해 준다."

자국애가 강한 대한민국 젊은이들을 나라는 지켜주지 못했다. 제 3자의 눈에까지 명확한 사고의 이유와 책임 소재에 대해 누군가는 사태의 본질을 흐리려 하고 있다.

진정한 애국심은 짝사랑만으로는 이루어지기 어렵다. 케네디 대통령의 대통령 취임사에서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국가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자문해 보십시오"

언뜻 국가를 향한 국민의 희생을 강요하는 말처럼 들린다. 그래서 일부 국가주의자들이나 보수 정치인들은 이 문장을 자주 인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뒤에 나오는 문장을 살펴보면 이런 해석이 얼마나 문맥을 떠난 오해였는지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이 미국 국민이든 세계 시민이든, 제가 이 자리에서 여러분에게 요구했던 똑같은 수준의 높은 힘과 희생을 저에게 요구하십시오. (Finally, whether you are citizens of America or citizens of the world, ask of us here the same high standards of strength and sacrifice which we ask of you.)"

나라에 사랑을 먼저 주고 떠난 젊은이들을 대신해 부탁하고 싶은 게 하나 있다.

앞으로는 소위 국가라면, 그것이 제대로 된 국가라면, 적어도 젊은이들의 숨통만은 틔워줄 수 있도록 힘과 희생을 감내해 달라고 감히 요구해 본다.

기도 믿음 희망 (사진=픽사베이)

#인-잇 #인잇 #이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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