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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쌍방울캐슬① 도쿄에셋에서 쌍방울까지…불법 사채업자의 그룹 회장 입성기

[취재파일] 쌍방울캐슬① 도쿄에셋에서 쌍방울까지…불법 사채업자의 그룹 회장 입성기
2018년 삼성증권 유령주식 사태, 1,000원 대신 1,000주가 입금된 직원들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주식을 매도할 것인가 반납할 것인가. 주식을 팔아치운 이들은 해고가 됐고, 동시에 형사처벌 수순을 밟았다. 향후 동종업계 종사도 힘들어졌다. 법원과 불특정 일반 투자자들은 그들에게 '욕심에 눈이 멀어 직업윤리를 배반하고 자본시장의 신뢰를 떨어뜨렸다'고 비난했다.

그렇다면 회장이 자사 주식으로 주가조작을 벌여 불법 이익을 챙겼다면 어떻게 될까. 직원보다 책임 범위가 넓고 두터운 직책을 가지고 있고, 범죄 양태도 더욱 의도적 계획적이며 자본시장 피해도 더 크다. 법리를 모르더라도 어떤 죄가 더 중한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지만, 상식과 현실은 다르다. 문제의 회장은 도리어 경제 권력을 공고히 하며 그룹을 소유할 수 있었다.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의 이야기다. 끝까지판다팀이 김성태에 주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불법 대부업체 도쿄에셋…강남 사채업자 김성태

유가증권 시장에 김성태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한 시점은 2015년 3월 6일이다. 신주인수권 형태로 75만 주(0.85%)를 가지고 '비등기 임원 회장'으로 취임했다는 쌍방울 공시자료가 시작이다. 0.85% 지분으로 쌍방울 지배가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김성태가 누구인지 알려진 바도 없이 갑자기 툭 튀어나와 '쌍방울 정점'에 올랐다는 내용이 전부다.

김성태를 둘러싼 '전주 조폭 출신, 불법 오락실 운영, 강남 사채시장 큰 손' 등 각종 풍설은 뒤로하고, 취재진이 공문서 등을 통해 확인한 그의 흔적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 강남에 위치한 '도쿄에셋'에서다. 법인등기상 사업목적은 투자 컨설팅, 2008년 설립 신고를 했지만 실제 사업은 최소 한 해 전인 2007년부터 이뤄졌다. 사업의 실체는 미등록 사채업, 쉽게 말해 불법 대부업체였다. '강남 사채업자 김성태'는 풍설이 아닌 사실이었다.

도쿄에셋의 자금 동원력을 정확히 산정할 수 없지만, 2007년부터 5년간 확인된 불법 대출 누적액만 318억 7천만 원에 이른다. 돈을 빌려 간 채무자 중엔 배상윤 KH그룹 회장(대출 시점엔 강남 사우나 운영자), 범 LG가 3세, 중견기업 일가, 유망 코스닥 상장사 대표 등이 있다.

특이점은 도쿄에셋 불법대출 시기와 일부 채무자들의 금융범죄 시기가 겹친다는 점이다. 금융범죄에 도쿄에셋 자금이 흘러 들어갔다는 개연성이 높은 이유다. 유력인사들이 제도권 금융이 아닌 고리의 불법 대부업체에 손을 벌린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김성태가 강남 사채업 세계에선 남다른 입지를 가지고 있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쌍방울 인수' 합법적 사업가 변모? 불법 대부업에서 주가조작 사범으로

주가, 주식

도쿄에셋을 운영할 때부터 김성태는 철저히 뒤로 빠져있었다. 실소유자이지만 대리인을 내세우는 이른바 '바지사장' 경영 방식을 고수했다. 도쿄에셋 지분은 타인 명의로 차명 보유하며 업체 대표 역시 운전기사를 내세우는 방식이다.
 
<도쿄에셋 지분 구조> → 실소유주: 김성태
지분 40%: 김성태의 운전기사 박 모 씨
지분 30%: 직원 오 모 씨
지분 30%: 최 모 씨

사채업으로 돈을 불리던 김성태는 2010년 기점으로 변화를 도모했다. 2009년 10월 14일부터 이듬해 1월 26일까지 3개월에 걸쳐 업체 상호를 '도쿄에셋→티그리스→태평양통상'으로 바꿨다. 사흘 뒤인 1월 29일 대한전선으로부터 쌍방울 주식과 경영권을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불법 대부업체가 '상표갈이' 방식으로 이름을 바꾼 뒤 상장사를 인수한 것이다. 유가증권 시장에 뛰어든 사채업자의 의도는 불법적 과거와의 단절을 통한 '음지에서 양지, 합법적 사업가'로 변모하기 위함일까. 내심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또 다른 범죄의 시작이었다.

태평양통상(구 도쿄에셋/이후 '레드티그리스'로 변경)이 쌍방울 인수 2년 뒤인 2012년까지 여전히 불법대출을 한 것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김성태는 쌍방울 인수 직전부터 주가조작을 벌이고 있었다. 직원, 가족 및 친인척 명의 계좌를 이용해 가장매매, 고가매수, 물량 소진 매수 등 고전적 시세 조정 방식으로 쌍방울 주식을 이용해 또다시 재산을 증식했다.

유가증권 시장 진입 1년여 뒤인 2011년 8월엔 코스닥 시장에도 손을 뻗쳤다. 코스닥 상장사 유비컴 주가조작 사건이다. 김성태는 주가조작 세계에서 선수로 통하는 김 모 씨에게 유비컴 인수 자금을 지원했고, 대신 담보로 유비컴 주식을 챙겼다. 저가에 받은 주식을 고가에 매도하기 위해 시세 조정을 했고, 그 차익은 김성태의 몫이었다. 실제 기업을 인수해 경영할 목적이 아닌, 말 그대로 시세 차익 목적의 전형적인 금융범죄였다.

코스피와 코스닥을 오가며 입지를 다졌던 김성태는 3년 뒤인 2013년 4월 서울중앙지검 증권범죄합수단이 발족하면서 한차례 위기를 맞았다. '쌍방울 주가조작(유비컴 사건도 포함)'이 합수단 출범 후 사실상 첫 인지 사건이 된 것이다. 검찰은 자금 추적을 통해 도쿄에셋 실소유주가 김성태라는 사실을 파악했고, 주가조작 범죄 정점에 김성태가 있다는 걸 확인했다.

수사가 턱밑까지 오자 김성태는 도주했고, 검찰은 김성태의 친동생 등을 먼저 기소했다. 김성태는 이때도 본인은 뒤에 숨고 대리인을 내세워 빠져나가려 했다. 쌍방울 관리이사였던 동생도 형의 실체가 드러나는 걸 막고자 법정 증언할 관련자에게 입막음 시도까지 했다.

조폭 출신? "숫자 기억력 남달라…회사 운영도 거칠게 했다"

당시 검찰은 '김성태'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관련자를 상대로 전방위적인 수사를 벌였다. 관련자 다수는 김성태를 두고 "도쿄에셋의 실소유자"라는 사실 외에 "전주 조폭 활동을 하다 상경해 돈을 벌었고, 주변에도 조폭 출신이 많다"라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조직폭력배 출신 김성태'라는 풍설이 나오게 된 계기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복수의 관련자들은 "조폭처럼 회사 운영도 거칠게 했다", "셈이 빠르고 계산이 능하며 숫자 기억력이 남다르다", "강남 바닥에선 진작부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고, 김성태에게 돈을 빌리면 안 갚을 수 없다"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놨다.

당시 수사팀도 이런 진술 등을 바탕으로 '김성태의 계보' 즉, 어떤 조직 출신인지 확인했다고 한다. 수사기관이 통칭 '조폭' 여부를 확인할 때 검경이 각자 보유하고 있는 '관리 대상 조폭 명단'을 활용한다. 관리 대상 명단에 포함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말 그대로 조폭 혐의로 기소됐을 경우다. '폭력행위처벌법 4조 단체구성죄'로 기소된 전력을 말하는 건데, 취재진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김성태는 이 법으로 기소된 적도 처벌받은 적도 없었다. 또 다른 방법은 기소 대상에 없었더라도 조직폭력배 수사 과정에서 파악한 인물을 정리해 등록시킨 경우다.

2013년 당시 합수단은 검찰과 경찰의 관리 대상 명단을 모두 확인했지만 김성태 이름은 명단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 조직 활동을 했지만 파악된 바가 없거나, 조직 생활을 한 적이 없거나 둘 중 하나인데, 주가조작 수사 이후 시간이 흐른 뒤 김성태 이름은 검찰의 관리 대상 조폭 명단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호화 변호인 대동 김성태…'재벌 공식 3-5법칙' 적용한 법원

김성태는 도주 1년여 뒤 2014년 4월 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게 됐다. 고법 부장판사 출신, 검사장 출신, 대형 로펌 소속 등 이름을 올린 변호인만 31명에 달했지만, '도주한 피고인, 주가조작의 주범, 막대한 부당이득' 등 불리한 양형 인자만 있을 뿐 유리한 양형 인자는 없다는 게 대체적 시각이었다.

하지만, 3년간 진행된 1심 재판 결과는 '징역 3년-집행유예 5년'이었다. '재벌 정찰제 판결, 재벌 공식'이라는 '3-5 법칙'이 김성태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된 것이었다. 1심 재판부의 양형 이유는 이랬다.

"일반 투자자에게 예측하지 못한 손해를 입게 한 점, 시세조종 기간이 짧지 않고, 취득한 이익도 다액인 것으로 보이는 점, 범행 대부분을 부인하고 있는 점… 다만, 현재 쌍방울이 건실한 기업으로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2017년 2월 3일 1심 판결문 中>

재벌 집행유예 판결의 클리셰인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이라는 표현이 '쌍방울의 안정적 운영'으로만 표현이 바뀌었을 뿐, 이 짧은 문구의 힘은 여전히 강력했다. ▶범행 부인 ▶도주 전력 ▶다수의 피해자 ▶범죄 수익 ▶자본시장 교란 심각성 등 모든 불리한 양형 요소를 상쇄시켰다. 법원이 '강남 사채업자 출신의 주가조작 사범'을 '재벌급'으로 자리매김 시켰다는 비판을 받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쌍방울 전 김성태 회장 일지

1,500만 원으로 해소된 사법리스크…경제권력 된 김성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검찰은 당시 김성태 일당이 주가조작으로 347억 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겼다며 추징을 구형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재판부는 취득한 이익이 다액으로 보인다면서도 "정확한 추징금액을 산정할 계산 자료가 증거로 제출되지 않았다"며 추징금을 선고하지 않은 것이다.

"시세 조정 행위나 미공개 정보 이용 등 금융범죄가 발생하게 되면 불법적인 이득을 추징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데 부당 이득을 산정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다툴 수 있는 쟁점들이 많다 보니까 법정에서 추징액을 정확하게 특정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추징이 선고되지 않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것이 결국 불법적 이득을 범죄자에게 귀속시키는 결정적인 이유가 됩니다." <김정철 변호사 인터뷰>

결론적으로 1심 판결이 항소심을 거쳐 대법원에서 확정되면서 김성태는 최종적으로 실형과 추징금을 피할 수 있었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법언이 형사재판의 대원칙이지만, 유독 경제권력과 막강한 방어권을 가진 이들에게만 적용되는 원칙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주가조작 사건과 별도로 기소됐던 '김성태의 대부업법 위반 사건'도 주가조작 1심 선고 한 달 전인 2017년 1월 11일 선고됐다. 결과는 벌금 1,500만 원, 이 사건은 검찰도 김성태도 항소하지 않아 1심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불법 대부업체 도쿄에셋으로 검은돈을 불리고, 이 업체로 쌍방울을 인수해 주가조작을 하고, 다시 코스닥 시장으로 넘어가 시세 조정을 한 일련의 범죄 행각에 대해 김성태가 치른 대가는 무엇일까. 1심 재판 당시 구속 기간 1년을 제외하면 벌금 1,500만 원 납부가 전부다. 이를 두고 검찰 관계자는 "형사사법 시스템이 세탁기 역할을 해줬다"고 평가했다. 불법 사채업자의 그룹 회장 재탄생에 사법 시스템이 일조해줬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법리스크를 해소한 김성태는 7개 기업을 거느린 쌍방울그룹을 완성했다. 더 강력한 경제 권력을 지니게 됐고, 현재는 쌍방울그룹 횡령 배임 사건, 대북 송금 의혹, 정치인 뇌물 사건, 야당 대표 변호사비 대납 의혹 등에 연루돼 도피한 상태다.

▶ [취재파일] 쌍방울캐슬② 판 · 검사에 의원까지…김성태의 '인의 장막' 사외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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