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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이영표-김호곤의 재계약 불발…시도민구단 '정치 외풍'에 흔들

이영표 대표-김호곤 단장은 왜 물러나야 했나

[취재파일] 이영표-김호곤의 재계약 불발…시도민구단 '정치 외풍'에 흔들
프로축구 K리그의 시도민구단은 수차례 '정치 외풍'에 흔들렸습니다.

각종 정치행사에 동원되거나, 지방 선거가 끝난 뒤엔 '낙하산 인사'로 곤욕을 치러왔습니다.

올해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이번 시즌 돌풍을 일으키며 상위 스프릿인 파이널A에 진입한 강원의 이영표 대표와 민 구단의 새로운 '롤 모델'로 떠올랐던 수원FC의 김호곤 단장이 구단주에게 '철퇴'를 맞았습니다.

강원도는 최근 오는 12월 계약 기간이 끝나는 이 대표에게 재계약 불가를 통보했고, 수원시 역시 내년 2월 계약 만료를 앞둔 김 단장에게 "재계약은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축구 행정가로 변신한 축구인 출신, 이 대표와 김 단장 모두 성적은 물론 경영 능력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도 너무나 당연해 보였던 '연임'의 벽을 넘지 못한 겁니다.

구단주인 지방자치단체장의 '눈'은 팬들과 너무 달랐습니다.
 
이영표 강원FC 대표이사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연합뉴스)
 

강원, "누구보다 일 잘했던 대표 이사" vs "새로운 시작 필요"

최근 강원도가 이영표 대표에게 재계약 불가 통보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강원 공식 서포터즈인 '나르샤'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나르샤의 성명 중 일부>

"다사다난한 대표이사와의 관계를 지내고 울고 웃으며 지내온 세월 동안 우리에게 진짜 대표이사라고 내세울 수 있는 인물은 이영표 대표이사 한 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단순히 02년 월드컵 멤버, 한국축구 레전드를 떠나 대표이사로서의 그의 업적은 K리그 구단 운영 수익률 1위를 비롯 수많은 스폰을 유치하였으며 이는 불과 작년 강등 싸움을 하던 팀을 '상스(상위 스플릿)' 그 이상의 아시아로서의 도전을 가능하게 했던 1등 공신임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것이다.

많은 대표이사들을 거쳐 왔지만 가장 바라고 이상적인 대표이사는 강원FC를 건강하게 만들면 된다. 나르샤는 이러한 대표이사 덕분에 그동안 너무 행복한 나날을 즐기고 있었음은 분명하다 '일' 잘하는 대표이사가 필요하고 이영표 대표이사는 그 '일'을 훌륭히 수행해 나아가고 있었다고 나르샤는 확신한다."

한 마디로 "역대 대표이사 중 유일하게 팬들에게 인정받은 '일 잘하는' 대표였다"는 내용입니다. 사실이 그랬습니다.

2020년 12월 취임 후 첫 시즌 막판. 팀이 강등위기에 처하자 이 대표는 '명장' 최용수 감독을 영입했습니다. 말 그대로 '십고초려' 끝에 최 감독의 마음을 돌렸고 강원의 미래를 함께 그려나갔습니다. 이 둘은 2021년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으며 1부리그에 잔류했고 2022년 이 대표와 최 감독은 합을 맞춰 K리그1 구단 역대 최고 성적 타이인 6위에 올랐습니다.
 
강원FC

경영 능력도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스폰서 유치와 각종 상품화 사업, 사회 공헌은 물론 팬들과도 활발하게 소통했습니다. 강원도도 이 부분에 이견은 없었습니다.

강원도 관계자는 SBS와 전화통화에서 "실적이 좋으셨죠. 인정합니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런데도 '재계약을 하지 않는 이유'를 묻자 "계약 기간이 만료됐으니 새로운 대표를 선임한다. 새로운 분위기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자는 의미"라고 답했습니다.

이 대표가 물러나게 된 건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국민의 힘 소속 김진태 지사가 당선된 게 결정적인 계기로 보입니다. 지자체장의 소속당이 달라진 후 고위층 인사들이 바뀌었던 다른 시도민구단의 과거 사례가 워낙 많았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최문순 전 지사가 영입한 이 대표는 새 구단주에겐 '옛사람'일 뿐입니다. 능력을 인정하고도 계약 만료를 이유로 재계약을 하지 않는다면 정치적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팬들의 공감도 얻지 못했습니다. 나르샤는 강경하게 맞섰습니다.
 
"민심을 잃을 결정을 선택한 김진태 도지사에게 강한 유감을 표하는 바이며 아직 계약기간 두 달이 남은 이 시점에 다시 한번 재고해 주시길 강력히 바란다. 재계약이 무산될 경우 강력한 행동으로 나설 것임을 미리 밝히는 바이다. 우리의 재계약 촉구가 생떼를 부리는 게 아닌 강원FC를 사랑하는 도민들의 염원이고 현재 민심임을 알아주길 바란다. 부디 민심을 역행하는 어리석은 판단을 하지 않는 수장이길 바란다."
 
이영표 대표가 강원도에 사퇴의 사를 밝힌 가운데, 나르샤는 현재 강원도와 면담을 계획 중이고, 추가 대응책을 고심하고 있습니다.
김호곤 수원FC 단장
 

수원FC, '낙하산 인사' 우려가 현실로?

2019년 수원FC 단장으로 부임한 김호곤 단장도 4년간 엄청난 성과를 냈습니다. 2020년 5년 만에 수원FC를 1부리그로 이끌었고, 지난해에는 창단 처음으로 파이널 A에 진출시켰습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이승우를 영입하고, 지난여름 잉글랜드에서 뛰던 지소연을 수원FC 위민에 입단시켜 한국 남녀 축구의 흥행을 주도했습니다.
 
수원FC 이승우

하지만 역시 정치 외풍에 희생양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지방선거 이후 이재준 수원시장의 선거캠프에서 활동했던 축구인이 수원FC 차기 단장으로 부임할 것이란 소문이 돌았고, 김 단장은 지난주 수원시로부터 일방적으로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습니다. 수원FC 서포터즈 역시 홈 경기에서 김 단장의 '재계약'을 요구하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구단주의 결정에 반발했습니다. 서포터즈가 인정하는 단장이 재계약 불발 사유도 듣지 못한 채 팀을 떠나야 할 상황입니다.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축구계 관계자는 "새 구단주가 수원FC 단장뿐 아니라 사무국장, 감독까지 새 인물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김호곤 단장이 김도균 감독과 재계약을 서둘러 진행하면서 김 감독이 다음 시즌에도 팀을 이끌게 됐지만 소문이 사실이라면, 시즌 초반 성적이 좋지 않을 경우 '감독 흔들기'가 본격화될 전망입니다. 사무국장 역시 계약 기간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김 단장은 재계약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자신을 둘러싼 흉흉한 소문에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습니다. 수원FC 홈 경기장에서 서포터즈가 '재계약'을 요구하는 플래카드를 내건 배경에 김 단장이 있다는 소문입니다. 여기에 특정 구단 선수들을 영입하는 과정도 수원시에서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 단장은 "그런 일은 절대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김 단장은 내년 2월 임기까지 팀을 이끈 뒤 물러날 예정이지만 '축구인들을 무시하는 처사'에 안타까움을 드러냈습니다.
 
수원FC
 

'초보 구단주'들의 선택에 달린 강원-수원FC의 운명

시즌은 끝났지만 단장들은 비시즌에 더 바쁩니다. 선수단 정리와 선수 영입, 동계 전지훈련 등 비시즌 일정을 진두지휘합니다. 두 달 내에 선수단 운영은 물론 스폰서 유치 등 업무가 쌓여 있는 상황에서 단장 교체는 새 시즌 준비에 큰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습니다. 업무 능력이 뛰어난 새 단장이 부임해 빠르게 정상화가 된다면 다행이지만 '낙하산 인사'의 행정 전문성 결여로 구단 발전이 정체되는 악순환이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가 큽니다.

'초보 구단주'들의 선택이 강원과 수원FC가 쌓아온 역사에 흠을 남긴다면 그 상처는 구단뿐 아니라 팬과 서포터즈에게도 고스란히 남게 됩니다. 선거 후 정치 외풍에 흔들리는 시도민 구단의 아픈 역사가 다시 반복되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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