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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드'보다 쫀득한 법정이야기 - 한 개의 기쁨이 천 개의 슬픔을 이긴다 [북적북적]

'K드'보다 쫀득한 법정이야기 - 한 개의 기쁨이 천 개의 슬픔을 이긴다 [북적북적]

[골룸] 북적북적 360 : 'K드'보다 쫀득한 법정이야기 - 한 개의 기쁨이 천 개의 슬픔을 이긴다
 
"아버님이나 제형 씨가 큰아버님들에게 몇 대 맞는 것도 포함이 되긴 합니다만……"
제형 씨는 "네?"라고 말하면서 눈을 크게 떴다.


올해 가장 큰 화제를 몰고 다녔던 드라마라면 단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우영우]가 사랑받을 수 있었던 여러 포인트 중 하나로, 각 에피소드의 사건들이 굉장히 사실적인데다 법정 드라마의 묘미를 살리는 방향으로 전개된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극중 등장한 많은 케이스들이 실제 우리 법정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소재로 가져온 것이기도 합니다.

[우영우]에 나왔던 사건들 가운데, 어떤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까? 저는 우영우의 친구 동그라미 아버지 형제의 재산 분쟁 건이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삼형제 중 막내인 동그라미의 아버지는 선친이 자신에게 남긴 재산을 형들에게 증여하는 과정에서 형들에게 속아 사실상 자신에게는 빚만 남게 되는 각서를 쓰게 됐었죠. 나중에야 속았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형들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증명할 방법이 없고 증여를 약속한 각서의 법적 효력을 물릴 수도 없습니다. 이때 우영우 변호사가 생각해 낸 묘수가 있었으니, 형들이 증여자인 동그라미 아버지 가족에게 '불법 행위'를 해올 경우 증여를 취소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결국 동그라미 부녀는 삼촌들의 폭행을 유도해 상황을 반전시킵니다. 또 다른 에피소드, 법정 다툼을 통해 로또 당첨금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던 도박꾼이 돈이 생긴 뒤 돌변해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하고 바람을 피우며 행패를 부리다 돌연 교통사고로 사망해 버린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두 에피소드 모두 우리 법정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들입니다. 도박꾼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결말까지도, 드라마를 위해 지어냈던 작위적인 에피소드가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일을 드라마로 각색했다는 겁니다. 바로, 오늘 함께 읽는 책 [한 개의 기쁨이 천 개의 슬픔을 이긴다]를 쓴 25년차 변호사, 조우성 작가가 맡았던 사건들입니다. 조우성 변호사는 이 두 사건을 비롯해, 자신의 변론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에세이를 몇 년 전 '슬로우 뉴스'라는 온라인 미디어에 연재했습니다. 오늘의 책에도 물론 이 두 사건을 다룬 에세이들이 각각 실려 있습니다. 비단 이 두 케이스뿐만 아니라, [우영우] 곳곳에 녹아 들어간 인물들이나 법정 공방들이 군데군데 보입니다.

[한 개의 기쁨이 천 개의 슬픔을 이긴다]는 올여름에 출간된 이른바 '법률 에세이' 모음집입니다. 조우성 변호사가 몇 년 전 내놨던 에세이집 [내 얘기를 들어줄 단 한 사람이 있다면]과 [이제는 이기는 인생을 살고 싶다]를 합친 개정판입니다.
 
"선배님, 이 사건은 왜 맡으셨나요? 패소가 뻔한 사건인데."
내 말을 들은 최 변호사는 빙긋이 웃으며 물었다.
"그래? 그건 뭐 법정에서 가려질 테고. 유언장 작성에 대해 할머님에게 조 변호사가 조언해 드렸다면서?"
"네, 제가 자세하게 설명해드렸죠."
그러자 선배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맞아. 아주 자세하게 설명을 했던 것 같아."
나는 선배의 표정을 보며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밀려들었다. ('유언장에 숨겨진 할머니의 진심' 中)

이 책을 펼치기 전부터 '재미'가 있을 것은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법정물이 재미있는 건 실제 법정이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법의 힘을 빌리러 찾아올 때는 보통, 세상사에서 가장 극단적인 코너까지 몰렸을 때입니다. 극적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사건적 재미'가 법률전문가가 아닌 일반 독자들에게까지 깊숙이 와 닿도록 솜씨 좋게 가공한 것은 조우성 변호사의 구수하고도 매끄러운 입담입니다. [우영우]에 나왔던 에피소드들은 이번 낭독에서 일부러 제외했지만, 그만큼 솔깃한 에세이들이 많아 낭독할 편을 고르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스토리텔링 능력이라면 세계 어디에서도 뒤지지 않을 K드라마보다 더 쫀득한 스토리텔링을 보여주는 실제 사건들이 호기심을 유도하는 글솜씨로 전개됩니다.
 
할아버지가 참 딱하다는 생각을 하며 변호사석에서 일어서려는데 K판사가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더니 다시 할아버지께 큰 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할아버지, 제가 다시 한 번 말씀드리는데요, 기록을 잘 살펴보시면 답변할 내용이 있습니다. 저는 판사라서 그것을 가르쳐드릴 수는 없고요. 꼭 변호사님을 찾아가서 기록을 한 번만 봐달라고 하십시오. 그러면 좋은 방법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K판사는 이 말을 하면서 세 번이나 나를 쳐다봤다. 마치 할아버지가 아닌 내게 하는 말 같았다.
('K판사는 왜 변호사를 세 번이나 쳐다봤을까' 中)

[한 개의 기쁨이 천 개의 슬픔을 이긴다]에선 법의 힘을 청하러 찾아오는 사람들에 대한 저자의 따뜻한 시선이 유독 돋보입니다. 이 책에는 분쟁이 법정까지 가기 전에 변호사와 의뢰인이 함께 '세상 사는 인정'으로 해법을 찾아낸 케이스들이 꽤 등장합니다. '법대로 하자'고 하기보다, 상황에 맞게 서로 사람의 마음을 살피고 이해해 주는 마음씀을 보일 때 문제가 더 술술 잘 풀리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를 넌지시 반복해서 들려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그친다면 '산전수전 공중전' 사건의 당사자들을 대리하고 해법을 찾아낸 변호사의 관록이 녹아있는 에세이라고 소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조우성 변호사가 자신의 법정 경험에서 길어올린 특별한 지혜들이 이 에세이집 전반에 깔려 있습니다. 호의나 배려도 적절한 수준이 좋은 것이지, 도에 지나치게 되면 오히려 냉정이나 소심보다 더욱 극적인 비극을 불러올 수 있다는 깨달음. 나에게 지나치게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유혹만 피해도 큰 사기는 당하지 않고 살 수 있다는 자각. 그야말로 '교훈적'인 기승전결이 에세이마다 녹아 있습니다. 저도 기자로서 극적인 사건들을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보며 갖게 된 생각들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들이 제법 많아서, 책장마다 새삼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곤 했습니다.
 
"법에도 인정이 있나요?"라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개인적인 인정에 이끌려 사건을 처리할 때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종종 냉정한 법의 세계에서도 K판사처럼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는 판사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기대를 한다. 세상이 좀더 아름다워지길 바라면서 말이다. 앞으로도 법정에서 K판사와 같은 이들이 따뜻하고도 사려깊은 재판을 진행해주길 기원하고 또 응원한다. ('K판사는 왜 변호사를 세 번이나 쳐다봤을까' 中)


고사성어 등을 동원해 일종의 '교훈'을 주며 끝맺는 글쓰기 방식이 '요즘 스타일'은 아닌 것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특별한 경험이 많은 어른이 점잖게 들려주는 인생사를 옛날 이야기 듣듯이 빨려들어 읽어 내려가게 되는 재미가 더해지기도 합니다.

'탈북여성 강도' 에피소드를 비롯해 [우영우]에 특별히 두 번 등장했던 판사를 기억하십니까. 변론을 준비 중인 변호사들에게 법정에서 본관부터 물어보고 항렬을 따지는 모습이 언뜻 '학연 지연 혈연에 매몰된 판결을 내리겠거니' 싶은 선입견을 주면서 등장했지만, 법의 공정을 해치지 않고 온정에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피고인의 딱한 처지와 신입 변호사들의 좌충우돌 열정을 두루 품어주는 판결을 내렸던 '참어른 판사님' 말입니다. 책장 사이사이에 비치는 조우성 변호사의 얼굴은 어쩐지 그 판사님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삼독' 출판사의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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