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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카톡 없이 친구의 생일을 기억하시나요

[인-잇] 카톡 없이 친구의 생일을 기억하시나요

장재열|비영리단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을 운영 중인 상담가 겸 작가

SBS 뉴스

작성 2022.10.25 14:02 수정 2022.10.27 17:1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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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카톡 없이 친구의 생일을 기억하시나요
얼마 전 토요일이었습니다. 그날은 집단 상담을 진행 중이었는데요. 나의 다양한 모습을 알아보기 위해 내가 보는 나, 타인이 보는 나, 그리고 특수한 상황 속에서의 나 등 여러 면으로 자기 자신을 살펴보는 그런 워크숍 형태의 상담이었지요. 그중에서 <타인이 보는 나>라는 꼭지는 여러 가지 키워드들을 내 주변 지인들에게 카톡으로 보내고 "이 키워드들 중에서 나에게 해당하는 건 무엇인 것 같아?"라고 질문한 뒤 답변을 모아보는 것이었죠. 친구, 가족, 동료 등 10명 정도의 지인들에게 '따뜻함, 철저함, 수용적임' 등 성격을 나타내는 키워드를 사진으로 찍어보내고서 10명이 골라준 것을 종합해보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참여자들이 웅성웅성거리기 시작하는 겁니다.

저는 물었지요. "왜요? 무슨 일인가요?"

참여자들은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카톡이 안 와요."

사람마다 각기 친구 지인에게 답장이 오는 타이밍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이렇게 모든 참여자가 동시에 지인들에게 답장이 안 온다고 한 적은 처음인지라 적지 않게 당황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이런 뉴스 속보가 뜨더군요. 카카오톡 먹통.

그렇습니다. 제가 집단 상담을 진행했던 그날은 바로 '카카오톡 먹통 대란'이 일어났던 10월 15일 토요일이었습니다. 3시간을 기다려도 답장이 오지 않아서, 총 4시간으로 구성된 집단 상담은 결국 애매하게 끝날 수밖에 없었는데요. 그래서 제가 몇몇 참가자들에게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오늘 상담이 완벽하게 진행되지 못한 것 같으니 혹시 카카오톡이 정상화되면 나중에라도 어떤 답변들이 왔는지 공유해 주세요. 그러면 같이 보고 좀 분석해드릴게요."

며칠 뒤 몇몇 참여자들에게 진짜로 연락이 왔는데요. 카카오톡 때문에 불편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한 참여자가 이런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근데 저 그다음 날이 생일이었거든요. 근데 카카오톡 먹통이 하루 넘어서까지 진행됐었잖아요. 그래서 생일 축하가 너무 적게 와서 좀 속상했어요. 하필 제 생일에..."라고요.

근데 이어서 이런 말을 하더군요?

"근데 저 같은 사람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트위터 보니까요. 카톡 먹통인 날이랑 그다음 날 생일이었던 사람들이 꽤나 생일 축하를 못 받아서 아쉬웠다. 다소 슬펐다, 울적했다. 이런 얘기들이 많더라고요. 저 같은 사람이 굉장히 많았구나라고 생각해서 조금 위안은 됐어요."

돌이켜보면 저도 카카오톡으로 친구들의 생일을 챙겨주기 시작한 지 꽤 오래됐는데요. '카카오톡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친구들의 생일을 기억할 수 있을까? 나는 몇 명 정도의 친구 생일을 기억하고 있지?'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웬걸 5명이 채 안 되는 겁니다. 카카오톡을 통해서 참 많은 것들을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더군요.

친구들의 계좌번호를 알지 않아도 축의금을 대신 내달라고 돈을 송금할 수 있고, 생일 선물을 직접 보내지 않아도 쿠폰 형태의 기프티콘으로 보내면 친구가 자기 집 주소를 알아서 입력합니다. 즉, 친구의 주소를 알 필요가 없어졌죠. 생일, 주소 뭐 이런저런 것들... 예전에는 수첩에 빼곡히 적어서 한 장 한 장 넘겨보던 것들이 이제는 하나도 필요 없게 돼버린 겁니다.

이 카카오톡 먹통 대란에 가장 피해를 덜 입은 세대는 10대였다고 하는데요. 그들은 이미 카카오톡을 사용하지 않고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 이른바 DM으로 소통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들은 친구의 전화번호조차 알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알고 계셨나요? 지금의 10대들은 전화번호를 교환하는 것이 아주 친해지고 싶은 친구 또는 이미 아주 절친인 친구들에게만 허락하는 아주 특별한 행위라는걸요.

지금의 성인들이 친구의 생일, 주소를 점점 모르게 되듯이 10대들은 그것을 넘어 친구의 전화번호도 서로 알 필요가 없어진 겁니다. SBS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 된 적이 있는데요. 배우 이광수가 게스트로 출연한 한 아이돌 그룹의 10대 멤버와 함께 사진을 찍은 겁니다. 사진을 어떻게 서로 교환하지라고 생각하다 이광수 배우는 '전화번호를 교환하게 되는 건가?'라고 다소 들뜬 모습으로 코믹한 장면을 연출했는데요. 상대방 10대 아이돌 멤버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에어드랍 하실래요?"라고 물었습니다. 전화번호 조차도 필요하지 않은 시대가 된 것이지요.


이렇게 우리는 점점 더 연결이 편리해지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요, 이 편리한 연결이 완벽하게 안정된 기반 속에 있지 않다는 걸 깨닫게 해준 것이 바로 카톡 먹통 대란이 아닐까 합니다. 카카오톡과 인스타그램, 페이스북까지 모든 연결의 미디어 도구들이 한순간에 먹통이 된 우리의 일상을 잠시 상상해 볼까요. 도움을 청하려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기도 어렵습니다. 내 생일을 알고 축하하는 사람도 거의 없겠죠. 정말 위급한 상황이 있어서 가장 내 집 근처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러 달려가다가도 집 주소를 모르기 때문에 멈칫할 수밖에 없습니다. 단지 앱 몇 개가 안될 뿐인데, 우리는 꽤나 고립되어버리는 겁니다.

수많은 편의 속에서도 현대인의 정신건강은 점점 더 하락 곡선을 그리고 있는 요즘입니다. 마음 건강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건강한 관계 맺기 라는 걸 생각해보면 우리는 기술적 편리함에 익숙해져 그 속에 숨겨진 위태로운 연결의 위험성을 간과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어쩌면 편리함에 맞서서 아날로그적인 노력을 의식적으로 해야하는 시대가 온 지도 모르겠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잠시 멈춰 소중한 친구들 몇 명의 생일을 달력에 표시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카톡 없이도, 인스타그램 없이도, 우리가 서로의 마음을 연결할 수 있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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