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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엄마가 갑자기 섬으로 떠났다…30일간의 이야기

섬으로 떠난 20년 차 농협 직원 A 씨

SBS는 이틀(10.17~18)에 걸쳐 조합장에게 말대답을 했다는 이유로 갑자기 섬으로 발령이 난 농협 직원의 사연을 보도했습니다. 농협 직원 A 씨가 스스로 제보한 건 아니었습니다. A 씨의 지인이 안타까운 사정을 듣고 민간 공익단체 직장갑질119에 알려왔습니다. SBS가 우연히 해당 내용을 알게 됐고, A 씨를 설득한 끝에 인터뷰할 수 있게 됐습니다.

▶ "말대답했다" 면담 직후 초교 없는 섬 발령…딸과 생이별 (10월 17일 보도)

A 씨는 20년 차 지역농협 직원입니다. 은행 출납 업무, 마트 관리 업무 등을 맡아왔습니다. A 씨는 지난달 16일, 조합장과 면담 이후 사흘 만에 볼음도란 섬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볼음도에는 직원 2명이 근무하는 곳으로 육지와 연결된 다리가 없습니다. 강화도에서 배로 1시간 정도 들어가야 나오는 곳입니다.

박찬범 취재파일 - 볼음도 발령 1

9살 딸을 둔 엄마, 30일간의 이야기

A 씨는 농협을 다니면서 9살 된 딸을 홀로 양육하는 '싱글맘'입니다. 딸은 강화도의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닙니다. A 씨가 승용차로 딸을 등교시킨 다음 근무지로 출근해왔습니다.

문제는 볼음도는 인구 200여 명의 작은 섬으로 학교가 없습니다. A 씨 딸이 학교를 다니려면 주문도라는 섬으로 배를 타고 나가야만 합니다. 결국 A 씨는 학교 문제로 딸을 강화도에 두고 혼자만 볼음도에 남아야만 했습니다.

박찬범 취재파일 - 볼음도 발령 2

A 씨는 볼음도로 인사 발령이 난 지 딱 한 달 만에 섬에서 다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 한 달 동안 A 씨는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30일이라는 시간 동안 A 씨에게 들이닥쳤던 일들을 방송에 보도된 것보다 더 자세히 소개해보겠습니다.

9월 16일, 조합장과의 면담

A 씨는 서강화농협의 한 지점에서 마트 매장 관리직 겸 캐셔로 근무했습니다. 조합장은 서강화농협 내 7개 지점으로 순회하면서 가끔 매장을 방문한다고 합니다. 9월 16일에 조합장이 A 씨가 근무하는 곳을 찾아왔습니다. 곧이어 A 씨를 사무실 안으로 불러오라는 호출이 내려졌습니다.

A 씨는 분위기가 썩 좋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고 휴대전화를 챙겨갔습니다. 그리고 녹음을 하게 됐습니다. SBS 보도에 녹음된 내용 일부가 공개됐습니다. 대화 전반부는 A 씨에 대한 근무 태도에 대한 질책입니다. A 씨가 평소 마트를 찾는 손님들에게 인사를 잘하지 않는다는 민원이 들어왔다며 꾸짖는 내용입니다.

박찬범 취재파일 - 볼음도 발령 3

A 씨는 이때 '죄송합니다'라고 하고 넘어갈까 순간 생각했지만, 마침 대면하고 있는 자리인 만큼 조합장에게 반문을 합니다. A 씨는 인사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누가 그런 민원을 넣었는지 되묻습니다. 이때부터 조합장의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하고, 급기야 인사 담당자에게 전화를 겁니다. 조합장은 그 자리에서 A 씨를 볼음도로 보내라고 인사 지시를 내리고, 볼음도에 들어가 있는 직원 한 명을 빼주라고 말합니다.

박찬범 취재파일 - 볼음도 발령 4

대화 후반부는 A 씨가 근무하는 지점의 지점장과의 대화입니다. 지점장은 조합장과 A 씨 사이를 중재하려고 애를 씁니다. 지점장은 당장 조합장님에게 사과하라며 A 씨를 나무랐고, '조합장이 곧 아버지다'라는 말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A 씨는 그 자리에서 조합장에게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은 채 대화는 끝이 납니다.

9월 19일, 인사 발령 당일 통보

A 씨는 9월 16일(금) 면담이 끝난 뒤 주말이 지나서 9월 19일(월)에 출근했습니다. 조합장이 면담 자리에서 전화로 지시한 대로 인사발령 났습니다. 9월 21일부터 볼음분점에서 가서 근무하라는 내용입니다.

A 씨는 9월 19일 정상 근무하고, 다음 날 휴가를 냈습니다. 볼음도를 갑자기 들어갈 준비가 안 됐기 때문입니다. A 씨는 사실 볼음도가 고향입니다. 그러기에 볼음도 사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9살 딸이 볼음도에서 다닐 학교가 없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박찬범 취재파일 - 볼음도 발령 5

9월 21일, 딸과 볼음도에 들어가다

A 씨는 일단 딸과 함께 볼음도에 들어갑니다. 다닐 학교가 없다는 걸 알지만 9살 딸을 강화도에 홀로 둘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언니와 동생이 인천에 있긴 하지만, 매일 강화도에 와서 딸을 돌봐줄 상황이 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딸을 일단 볼음도에 데리고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학교에는 임시방편으로 9월 30일까지 교외 체험 신청을 했습니다. A 씨의 인사 발령으로 딸의 학습권이 빼앗긴 셈입니다.

박찬범 취재파일 - 볼음도 발령 6

A 씨는 이곳에서 딸이 학교를 다닐 방법을 알아봤습니다. 볼음도에 있던 분교는 일찌감치 폐교됐습니다. 볼음도에는 분교가 폐교된 뒤 인근 배로 5분 거리에 있는 주문도로 학교를 다니는 다른 초등학생이 한 명 있었다고 합니다. 매일 아침 배를 타고 주문도에 들어간 뒤 다시 볼음도로 돌아오는 일정이었습니다. 결국 이 학생도 체력 소모가 너무 심해 아빠를 볼음도에 두고, 엄마와 함께 강화도로 나갔다고 합니다.

9월 30일, 강화도로 돌아간 딸

A 씨도 일단 볼음도를 딸을 데려왔지만, 학교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이곳에서 키울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강화도교육지원청 장학사와 상담 끝에 딸을 원래 학교에 계속 다니게 하기로 했습니다. 평일엔 떨어져 지내고, 주말에만 A 씨가 볼음도에서 만나 강화도 원래 집에서 살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강화도 홀로 남은 딸을 키울 사람을 구하는 것입니다. 친인척에게 도움을 요청해봤지만, 당장 24시간을 돌봐주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고용하기로 했습니다. 딸의 등굣길과 하굣길을 챙겨줄 사람을 찾아봤습니다. 2명을 구하고자 하니까 돌보미 비용만 월 200만 원이 넘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교육지원청은 통폐합 학교 지원금 명목으로 월 45만 원을 지원해주는 방안을 검토했습니다. A 씨의 딸처럼 거주지에 학교가 없어 등하굣길에 비용이 들어가는 가정을 도와주는 제도가 마침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행스럽게도 딸과 같은 학교를 다니는 친구 아버지가 딱한 사정을 듣고 등굣길과 하굣길을 챙겨주기로 했습니다.

박찬범 취재파일 - 볼음도 발령 7

10월 14일, 갈 곳 없는 딸

친구 아버지가 평일 내내 A씨의 딸을 돌봐주는 것도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친구 아버지도 더 이상 A 씨 딸을 돌봐줄 수 없게 됐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교육지원청은 딸이 이대로 혼자 남게 되면 아동 방임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A 씨에게 알려줬습니다.

박찬범 취재파일 - 볼음도 발령 8

A 씨는 다시 강화도에서 딸을 돌봐줄 사람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구해지지 않자 또다시 임시방편으로 딸을 데리고 볼음도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다시 학교에 교외체험 신청을 하기로 했습니다. 교외 체험은 학교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전체 출석 일수의 30%에 해당하는 57일까지 사용이 가능합니다.

10월 17일, SBS 보도 시작

A 씨는 이날 다시 딸과 함께 볼음도로 들어가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상 악화로 배가 출항을 못 했고, A 씨와 딸은 강화도에 남아 있었습니다. 이날 SBS 취재진이 8뉴스 시간에 A 씨의 사연을 소개했습니다.

A 씨는 보도 다음날 딸을 데리고 볼음도에 아침 배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다른 동료 직원으로부터 다시 인사 발령이 날 것이라고 소식을 들었습니다. 문제는 새 근무지가 조합장이 근무하는 본점이라는 점입니다.

10월 18일, 두 번의 인사 발령

A 씨는 볼음도에서 나올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본점은 조합장이 있는 곳입니다. 사실상 조합장과 매일 마주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A 씨가 정식으로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건 아니지만, 조합장과 A 씨가 분리 조치가 안 된 상황에서 같이 있는 건 또 다른 문제입니다.

박찬범 취재파일 - 볼음도 발령 9

A 씨는 본점에서 근무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습니다. 그러자 서강화농협 측은 다시 또 원하는 근무지를 말해보라며 A 씨에게 문의를 했습니다. A 씨는 고민 끝에 조합장이 본점과 기존 근무지를 제외한 다른 지점에서 근무하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리고 서강화 농협 측이 정확한 희망 근무지 한 곳을 말해달라고 하여 한 곳을 골랐습니다. A 씨가 고른 한 근무지는 그나마 조합장의 친인척이나 측근이 없는 곳이라고 합니다.

10월 21일, 딸과 볼음도에서 나오다

A 씨는 10월 21일 자로 볼음도에서 나왔습니다. 볼음도에 9월 21일에 들어가고 딱 한 달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A 씨는 유급휴가 5일을 지낸 뒤 새 근무지에서 일하게 됩니다. 강화도로 다시 나온 만큼 딸과 함께 살 수 있게 됐습니다.

농협중앙회는 이번 사안에 대해서 직접 나서서 진상 파악하기로 했습니다. A 씨도 입장에서는 딸 양육 문제와 분리 조치 문제가 해결됐지만, 지역 단위 농협에서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다시는 나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조사에 임하기로 했습니다.

박찬범 취재파일 - 볼음도 발령 10

번외) A 씨 근무 태도 문제?

SBS 보도 이후 댓글들을 살펴봤습니다. 대부분이 A 씨를 응원하는 내용이었지만, A 씨가 그동안 보여온 근무 태도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단순히 말대답 이유만으로 볼음도로 간 게 맞느냐는 반문이 있었습니다.

조합장과 지점장이 취재진에 밝힌 A 씨의 근무 태도 문제는 크게 3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인사입니다. 손님들에게 인사를 잘 하지 않는다는 지적입니다. A 씨가 마트 손님에게 인사를 잘하지 않는다는 민원이 꾸준히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마트 손님이 직원 인사를 받지 못해 불쾌했다고 말하는 게 요즘 시대 흔한 민원이라고 보이지는 않습니다. 다만, 서강화농협 측은 좁은 지역사회인 만큼 마트를 찾은 어르신에게 인사를 안 하는 건 큰 실례라는 취지로 설명했습니다. A 씨는 이에 대해 바쁘다 보면 인사를 못 하고 지나친 경우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인사를 일부러 안 한 게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두 번째는 점심 식사입니다. A 씨가 발령 전 일했던 지점에서 동료들과 같이 점심 식사를 하지 않았다는 지적입니다. 내성적인 A 씨는 점심을 안 먹거나, 먹더라도 혼자 먹는 게 편해 동료와 같이 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점장은 이 점에 대해서 가족 같은 농협 식구끼리 같이 점심을 먹지 않느냐며 핀잔을 준 적이 있다고 합니다.

세 번째는 커피입니다. A 씨가 근무지에서 혼자만 커피를 마셨다는 내용입니다. 동료들과 같이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는 지적입니다. 서강화농협 측의 근무 분위기를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직원의 개인적인 행동이 엄격하게 제한되고 있는 곳으로 보입니다.

세 가지 지적 사항이 A 씨를 섬으로 인사 발령을 낼 명분이 될 순 없습니다. 노동위원회가 부당 전보 구제 신청이 접수됐을 때 고려하는 요소가 있습니다. 업무상 필요성, 노동자 생활상 불이익, 정당한 절차 여부입니다. A 씨가 섬에서 근무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생활상 지장을 초래하면 안 되는 것이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서 인사가 정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A 씨가 설령 손님 응대가 미흡했고, 점심을 혼자 먹고, 커피를 혼자 마실지언정 A 씨를 갑자기 섬으로 보내도 괜찮은 법은 없습니다. 더군다나 인사권자인 조합장은 A 씨가 홀로 딸을 양육하고 있는 점, 볼음도에서 초등학교가 없다는 점도 인지하고 있었던 상황입니다.

번외) 볼음도 근무, 그동안 누가 했나?

A 씨가 볼음도에서 나온 만큼 누군가는 볼음도에서 근무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번 인사로 볼음도에 들어가게 됩니다. 볼음분점에서는 2명이 근무를 합니다. 이 가운데 직원 1명은 볼음도에 전부터 살아왔던 직원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남은 한 자리에 대해선 돌아가면서 근무를 맡아왔다고 합니다. 조합장은 신입 직원 혹은 전년도에 승진한 직원을 보냈다고 합니다. A 씨가 볼음도 근무가 결정됐을 때 맞교대한 직원도 신입 직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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