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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맥락과 다르다"는 미국…따져봤습니다

오늘(22일)로 중국 당 대회도 끝나면서 북한의 7차 핵 실험이 사실상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아직 당 간부와 국가주석, 총리 등의 인선안을 의결하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가 남아 있어서 그때까지는 자제할 거란 전망도 있지만 혹한기로 접어들기 전에 북한이 핵 실험에 나설 거란 관측이 많습니다. 여기에 중거리, 단거리,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까지 온갖 종류의 핵 투발 수단을 시험 발사하면서 북한 핵 위협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습니다.

난감해진 건 현 정부입니다. 전 정부와 안보 문제에서 차별화를 강조해왔는데 정작 북한의 핵 위협이 노골화한 상황에서 딱히 국민을 안심시킬 만한 대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4년 8개월 만에 확장억제전략협의체를 재가동하는 등 미국과 긴밀히 공조하는 모습을 보이고는 있지만 과거와 같은 핵우산 공약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여권을 중심으로 '전술핵 재배치' 논의가 다시 등장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북한 김정은

'전술핵 재배치' 질문에 '확장 억제 제공'…부정? 긍정?

전술핵 재배치 목소리

정부도 내부적으로 전술핵 배치와 관련한 복수의 구상을 실제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미국에 요청해 괌에 전술핵을 배치한 뒤 이를 공동 운용하는 방안이나 나토식 핵 공유를 추진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 정부 움직임이 알려지면서 미 정부 브리핑 때 이에 대한 미국 측 입장을 묻는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미국의 기존 방위 공약을 재확인하는 선에서 답변을 대신했습니다.

전술핵 재배치든 핵 공유든 관련 질문이 나올 때면 미 정부 당국자는 약속이나 한 듯 "바이든 대통령이 핵과 재래식 무기, 미사일 방어 능력 등 모든 범위의 미국 방어 능력을 사용해 확장 억제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답변이 한반도 핵 문제에 대한 미 정부의 언론 대응 지침인 걸로 보입니다.

미 정부의 이런 반응은 한국 내 전술핵 재배치에 부정적인 걸로 인식됐고 미국 내 전문가나 언론에서도 이런 해석에 큰 이견이 없었습니다. 특히 대외 전략의 큰 틀이라고 할 수 있는 바이든 정부의 국가안보전략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명문화해 한국 내 전술핵 재배치 가능성은 낮은 걸로 평가됐습니다. 그리고 지난 18일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의 발언은 이런 해석에 더욱 무게를 실었습니다.

골드버그 주한 미국 대사 초청 관훈클럽 토론회 (사진=연합뉴스)

골드버그 대사는 이날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주한미군 내 전술핵 재배치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윤석열 대통령이 핵확산방지조약(NPT)에 대한 한국의 의지를 밝힌 점을 거론하며 "전술핵이든 아니든 위협을 증가시키는 핵무기가 아니라 오히려 그런 긴장을 낮추기 위해 핵무기를 제거할 필요에 좀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확장 억제는 미국이 가진 핵 전력을 포함한 모든 부문을 동원해 보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한 우리의 의지는 그 누구도 의심해서는 안 된다"며 "전술핵에 대한 이야기가 푸틴에서 시작되었든 김정은에서 시작되든지 간에 그것은 굉장히 무책임하고 위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긴장을 늦추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토론회 참석자는 답변 의도를 명확히 하고자 "대사님의 답변을 들어보니 일각에서 나오고 있는 나토식 핵 공유 협정 같은 것도 반대하는 입장으로 보인다. 그렇게 이해해도 되겠나"라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골드버그 대사는 "제가 말씀드린 것은 핵능력을 포함한 확장 억제에 대한 미국의 의지였다"고만 답했습니다. 자기 말만 하고 정작 묻는 말에는 답하지 않은 겁니다.

정확히 답변하지 않았으니 그에 대한 분석 기사가 이어졌고 모두 골드버그 대사가 '전술핵 재배치'에 부정적 입장을 보인 것으로 전했습니다. 그렇게 전술핵 재배치에 대한 미 정부의 입장이 명확해지는가 싶었는데 미 국무부 쪽에서 반박이 제기됐습니다. 골드버그 대사의 발언이 잘못 보도됐다고 지적한 겁니다.
 

"'전술핵 재배치에 부정적', 맥락과 달라"

미 국무부 고위 당국자는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의 일본 방문 일정을 브리핑하는 자리에서 한국 내 전술핵 재배치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이 기회에 확장 억제에 관해 이야기하겠다"며 "바이든 대통령은 핵, 재래식, 미사일 방어를 포함한 미국의 모든 방어 역량을 동원해 한국에 확장 억제를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확인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골드버그 대사의 발언들이 (보도된 게) 맥락에서 벗어났다는 점을 명확히 하겠다"며 "이 문제에 관한 미국의 정책은 변한 게 없다. 미국은 모든 대북 문제에 있어 한국과 협력하는 데 완전히 전념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미 국무부

정리하자면 '미국은 핵을 포함해 모든 확장 억제를 제공한다. 골드버그 대사의 말이 전술핵 재배치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는 보도는 맥락에서 벗어난 거다. 미국은 모든 대북 문제에 한국과 협력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여러분은 이 말이 어떻게 들리십니까? 해석하기에 따라 '미국은 핵 포함해 확장 억제 제공한다. (핵 자체가 긴장 완화에 도움 안 된다는 거지,) 전술핵 재배치나 핵 공유에 가부를 말한 적 없다. (전술핵 재배치나 핵 공유도 포함해) 대북 문제는 한국과 완전히 협력하고 있다'로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석할 경우, 우리 정부에게는 상당한 여지가 생깁니다. 국가안보전략 발표로 고려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봐야 하는 전술핵 재배치까지는 아니더라도 핵 공유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일부에서는 이 발언을 이렇게 해석하는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맥락으로 볼 때 이 해석은 다소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각각의 질문과 답변 상황을 따져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남의 약속에 대한 기대치, 어디까지

먼저 이 당국자가 핵 포함 모든 방어 역량을 동원해 확장 억제를 제공하겠다는 발언은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 질문 때 나왔습니다. 미 국무부나 국방부 브리핑 때 나오는 질문 답변의 패턴 그대로여서 추가적인 의미를 부여할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이후 골드버그 대사가 전술핵 재배치에 부정적으로 발언한 것 아니냐는 취지의 질문이 나오자 이에 "맥락에서 벗어나게 보도됐다. 모든 대북 문제에 한국과 협력하고 있다"는 답변이 이어졌습니다.

전후 문맥을 놓고 해석하자면 '전술핵 재배치 얘기 나오는데 핵 포함 모든 방어 역량 동원해 확장 억제 제공할 테니 걱정 말라', '대사 발언 놓고 전술핵 재배치 부정적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말한 적 없다. 모든 대북 문제는 한국과 협력하고 있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미국대사 발언에 대한 설명에서 '맥락과 다르게 보도됐다, 모든 대북 문제 한국과 협력한다'고 강조한 건 '전술핵 재배치나 핵 공유 가능성도 있을 수 있다' 라기 보다 한국 정부가 검토한다는 내용에 직접 부정적 의견을 낸 걸로 비칠 경우 자칫 양국 간 엇박자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미국은 모든 대북 문제에 있어 한국과 협력하는 데 완전히 전념하고 있다"고 강조한 걸로 해석하는 게 더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용산 대통령실 청사

외교적 수사는 직접적인 답변을 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굳이 외교 부처가 아니더라도 미 정부 부처 어느 쪽에 질문을 해도 외국 기자의 질문에 맞춰 딱딱 답해주는 경우는 없습니다. 이번 미 국무부 고위 당국자의 답변 역시 그래서 해석의 여지가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대북 문제가 나올 때마다 나오는 '바이든 대통령은 핵, 재래식, 미사일 방어를 포함한 미국의 모든 방어 역량을 동원해 한국에 확장 억제를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확인했다'는 말에 '핵 우산' 제공 약속 이상의 추가적인 의미를 둘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남이 해주는 약속에 대해 기대치를 높이는 건 비상시를 대비하는 데 있어 좋은 자세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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