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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국회가 카카오 논리대로 법안 폐기" 따져 보니…

[사실은] "국회가 카카오 논리대로 법안 폐기" 따져 보니…
카카오톡 먹통 사태와 관련해 정치권의 책임이 제기됐습니다. 2년 전, 이런 먹통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이른바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가로 막힌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분이 일었습니다. 언론에서는 당시 회의록 발언을 소개하며, 데이터 재난에 대한 정치권의 안전불감증을 비판했습니다.

당시 법안에 유일하게 찬성했던 채이배 전 민주당 의원은 최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당시 법사위 의원들의 주장이 "카카오를 회원사로 둔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내놓은 논리와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카카오를 비롯해 네이버, 구글 코리아, 쿠팡, SK커뮤니케이션즈, 넷플릭스 코리아 등 굴지의 IT 기업들을 회원사로 두고 있습니다.

국회가 정말 카카오를 비롯한 업체들의 논리를 그대로 따라 법안을 폐기했는지, 꼼꼼히 따져봤습니다.

사실은 카카오 먹통 국회

2020년 3월 발의된 당시 방송통신발전법 개정안은 주요 통신 사업자가 우회 통신 경로 확보하고, 다른 회사와 협력 방안 등을 정부에 보고해 관리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지금 나오는 대안들과 유사합니다. 2018년 11월 24일, KT 아현지사 건물의 지하 통신구에서 화재가 발생해 통신 장애가 발생한 사고가 계기가 됐습니다.

그런데, 같은 달, 카카오를 회원사로 두고 있는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방송통신발전 기본법 개정안 검토의견' 문서를 국회에 보냅니다. 외부에 공개된 문서는 아닙니다. 이 문서에는 인터넷 기업들이 명백하게 법안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히고, 왜 이 법안을 반대하는지 그 근거가 담겼습니다.

사실은 카카오 먹통 국회
2020년 3월,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국회에 보낸 '방송통신발전 기본법 개정안 검토의견'

이 의견서의 내용과 법사위원회의 회의록을 비교해 보면, 얼마나 논리적으로 일치하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실은 카카오 먹통 국회
2020년 5월 20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

당시 법사위 회의에서는 이 법안을 두고 36분 정도 토론이 있었습니다. 의원들은 법사위 회의가 시작하자마자 '중복규제' 문제를 거론했습니다.
 
○ 김종민 위원 : 정보통신망법에 IDC(인터넷데이터센터) 보호에 대한 규율이 들어가 있지 않습니까? …… 중복규제로 과잉금지에 위배된다……
○ 송기헌 위원 : 물리적인 것 내용적인 것 다 같이 한 법에서 체계적으로 해야 제대로 의율이 되고 그러는 것 아니겠습니까?
○ 정점식 위원 : 정통망법 46조 1항 그리고 시행령 37조 1항 2호에서 …… 정보통신시설을 보호하기 위한 물리적 기술적 조치를 취해야 된다고 규정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미 정보통산망법에 사업자들이 데이터센터 보호 조치를 취하라는 조항이 있는데, 방송통신발법에 또 비슷한 조항을 두는 건 중복 규제 아니냐는 내용입니다. 실제, 정보통신망법 46조, 같은 법 시행령 37조에는 "재난에 대비해 조치를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최기영 당시 과기부 장관은 "정보통신망법은 사전 조치, 방송통신발전법은 사후적 대응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발의된 개정안에는 재난 이후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지침이 담겼다는 뜻입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국회에 보낸 의견서에는 의원들의 주장과 똑같은 내용이 담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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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들은 또 민간 통신사업자들을 강하게 규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 김종민 위원 : 지상파방송사업자라든가 방송채널사용사업자하고 IDC 센터 사업자를 지금 같이 동질적으로 규제 대상에 포함을 시키고 있는데 사실 앞에는 엄격하게 허가를 득해서 운영되는 그런 사업자고 IDC 센터는 그런 사업자가 아니잖아요?
○ 정점식 위원 : 기존의 방송통신사업자와 데이터센터사업자는 조금 성격이 다르니까 다른 법률로 규정하면 안 되냐라는 취지입니다.

의견서에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사실은 카카오 먹통 국회

카카오

또, 방송통신발전법 개정안에서 추가 규제를 만들면 사업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 김종민 위원 : …… 그것에 대한 소비자들의 우려가 또 이 사업 자체를 되게 위축시킬 수도 있단 말이에요.

그리고 이 발언은 의견서에 거의 그대로 적혀 있습니다. 규제 때문에 사업자들이 외국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사실은 카카오 먹통 국회

마지막으로 의원들은 법이 시행돼 정부가 관리할 경우 민간 정보나 영업 비밀이 유출될 가능성을 우려했습니다.
 
○ 김종민 위원 : 이런 민간 정보들이 유출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 ……
○ 정점식 위원 :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과정에서의 영업비밀 또 프라이버시 침해 이런 걸 굉장히 염려를 하고 있습니다.

최기영 당시 과기부 장관은 "재난에 대비한 계획을 세우고, 재난이 발생하면 정부에 보고하는 것이 전부"라고 설명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런 논리 역시,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의견서에 비슷한 내용이 담겼습니다.

사실은 카카오 먹통 국회

최기영 당시 과기부 장관은 이어 데이터 재난은 민생과 관련 있는 문제이라며 처리를 요청하지만, 바로 다음과 같은 반박이 나왔습니다.
 
○ 송기헌 위원 : 방송통신발전 기본법은 민생 법안이 아니잖아요.
○ 장제원 위원 : 이것은 21대 가서 해도 늦지 않아요. …… 뭐가 급해서 이렇게 땡처리하는 식으로 합니까? 나는 참 왜 이것을, 21대에서 또 논의하면 되는 거지. …… 법을 이렇게 마구잡이로 만들면 어떻게 합니까? 

SBS 사실은팀이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국회에 보낸 '방송통신발전 기본법 개정안 검토의견'과 의원들의 발언이 담긴 법사위 회의록을 비교 분석한 결과, 논리가 상당 부분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국, "당시 의원들의 반박 논리가 카카오를 비롯한 인터넷 업체 논리와 같았다"는 채이배 전 의원의 주장은 대체로 사실로 볼 수 있습니다.

카카오 화재

하지만, 당시 법안이 폐기되면서 사태가 악화됐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달리 말하면, 당시 법안이 통과됐다면, 카카오는 통과된 법에 따라 관리 감독을 받았을까요.

당시 개정안의 내용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사실은 카카오 먹통 국회

법안은 먼저, 주요 방송통신 사업자에 데이터센터(IDC) 사업자를 포함시킨 뒤, 재난 상황에 대비한 지도 및 점검, 우회 통신 경로 관리 등과 같은 조치들이 담고 있습니다. 나아가, 정부는 설비 관련 보고 및 서류 검사를 할 수 있고, 사업자가 이를 제대로 못하면 과태료를 부과할 수도 있습니다.

재난을 예방하는 여러 조치가 포함돼 있고, 이번 같은 재난 상황이 발생할 경우 우회 통신경로를 체계적으로 운영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보다는 잘 대처했을 거라는 추측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카카오는 위 법안이 통과됐더라도 적용 대상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법안은 데이터센터 사업자를 주요 방송통신 사업자에 포함시킨다는 전제에서 출발해 관리 및 감독 내용을 한다는 내용인데, 카카오는 지금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사업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카카오는 내년과 2026년까지 두 개의 데이터센터를 만들 계획입니다. 

결국, 당시 법안이 통과됐더라도 이런 먹통 사태가 없었다고 가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카카오 먹통 사태 이후,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들은 데이터 시설을 갖추지 않은 주요 방송통신사업자들도 규제 대상에 포함시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남궁훈 카카오대표, 홍은택 카카오대표
카카오 남궁훈·홍은택 각자대표가 지난 19일 오전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고개 숙여 사과를 하고 있다. 

당시 법안 논의 과정에서 나온 발언 가운데 다툼의 여지가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가령, 법안 '중복'의 문제가 그렇습니다. 

규제가 과하다, 아니다, 정당한 규제다, 이런 식의 찬반 논란을 너머, 비슷한 규제가 두 개의 법에 나란히 존재한다는 문제 제기는 토론이 필요한 대목일 수 있습니다. 법사위는 법 조항의 중복을 피하기 위해 체계·자구 수정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 법사위 위원들이 기업들이 논리를 그대로 반영하기 위해 그런 말을 했는지 그 속사정은 알 수 없지만, 체계·자구 수정 작업은 법사위 고유의 업무인 것도 사실입니다.

당시 법사위 회의에도 이런 취지의 발언들이 나왔습니다.
 
○ 위원장 여상규 : 이게 법체계상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이런 의문들을 제기하신 위원님들이 참 많습니다. …… 이게 두 가지 법률에서 IDC에 대한 규제를 한다 하더라도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중복되지 않게 그렇게 시행령에 잘 반영을 하고 ……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해, 최기영 당시 과기부 장관은 "정보통신망법은 사전 조치, 방송통신발전법은 사후적 대응을 위한 것"이라며 차이를 강조했을 뿐, 왜 중복 조항이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지 명확한 설명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어쨌든 카톡 먹통 사태를 통해 어느 정도 국민적 공감대는 생긴 것 같습니다. 카카오가 국가 기간 시설 만한 위력을 갖고 있다는 점, 실질적으로 우리 일상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 적어도 데이터 재난과 관련해서는 기간 통신시설 만큼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교훈 등입니다.

이제 이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국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입니다. 이런 일 때문에 기자들이 다시 과거 국회 회의록을 뒤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SBS 사실은팀은 "국회가 카카오를 비롯한 업체들의 논리 따르다가 데이터 먹통 방지법을 폐기했다"는 채이배 전 의원의 말을 검증했습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국회에 보낸 의견서 내용이 국회 회의록에 그대로 담겨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채 전 의원의 발언을 '대체로 사실'로 판정합니다. 다만, 단순히 정치에 대한 반감으로 끝낼 일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당시 법안이 가진 한계를 보완하고, 나아가 법사위에서 나온 당시 체계·자구 수정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실효성 있는 대안을 만드는 게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게 사실은팀의 결론입니다.

(인턴 : 강윤서, 정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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