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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북에 핵 군축 제안?…미국의 '착각'

미국 내 대표적 싱크탱크로 꼽히는 미국외교협회(CFR)에서 북핵 문제와 관련한 새로운 제안이 나왔습니다. 글쓴이는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 회장으로, '새로운 핵 시대'(The New Nuclear Era)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주요 내용으로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높아진 핵 전쟁 위험과 그에 대한 대처 방안 등을 담았는데, 러시아, 중국 등 주요 핵 보유국과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같은 사실상의 핵 보유국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북한 이야기도 함께 거론됐습니다.

북한 핵실험
 

미국외교협회 회장 "핵 보유국 '북한'"

하스 회장은 첫 단락에서부터 핵 보유국으로 영국, 프랑스, 중국,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과 함께 북한을 꼽았습니다. 북한의 경우 다른 나라들과 달리 국제사회에서 불법 핵무기 개발국으로 지정돼 제재를 받고 있지만, 이런 명분보다는 실질적 핵 위협 여부에 방점을 둔 걸로 보입니다. 하스 회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이란 등의 상황과 함께 "또 다른 우려는 아시아에서 발견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북한을 핵무기에서 떼어놓고자 했던 시도들은 어떤 진전도 이루지 못했다"면서 대안으로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완전한 비핵화 목표는 유지하되 그동안 미국과 한국, 일본이 제재 완화를 해주는 대신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시스템을 제한하는 군축 협정을 제안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미국은 북한 뿐 아니라 중국에 대해서도 한국, 일본과 긴밀한 동맹을 유지해야 한다"면서 "이에 실패할 경우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핵무기를 포기한 것에 대해 재검토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습니다. 미국 정부 차원에서 분석한 것인 만큼 우리 생각과 같지 않을 수 있지만 당사자 입장에서 과연 수용 가능한 것인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북 상대로 '핵 군축', 한·일 수용 가능한가

먼저, 군축 협상 제안입니다. 사실 군축 협상은 북한이 미국을 향해 줄곧 요구해온 내용입니다. 핵 군축이란 곧 핵 보유국 인정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스 회장은 그간 비핵화 시도가 진전을 이루지 못한 만큼 실질적인 핵 전쟁 위험을 낮추기 위한 고육책으로 이를 제시한 걸로 보입니다.

하지만 미국이 제재 완화를 대가로 북한과 핵 군축 협상에 나서는 순간, 아무리 비핵화가 목표라고 외친다 해도 북한은 국제 사회에서 실질적인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는 데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됩니다. 이는 사실상 '도발에 대한 보상'을 지급하는 것으로, '반드시 도발의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고 공언해온 미 정부의 주장과도 배치됩니다.

그보다 중요한 건 미국이 북한과 핵 군축에 나섰을 때 한국과 일본이 동의할 수 있느냐 입니다. 하스 회장의 말처럼 비핵화 목표를 그대로 유지한다 해도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런 식의 협상은 핵 보유국으로서 북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해줄 수밖에 없고 이는 한국과 일본 내 여론을 자극할 게 뻔합니다. 적어도 한국에서 이를 쉽게 수용할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앞서 언급했듯 하스 회장은 "북한 뿐 아니라 중국에 대해서 한국, 일본과 긴밀한 동맹을 유지해야 한다. 실패할 경우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핵무기를 포기한 것에 대해 재검토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지만, 오히려 미국이 북한의 핵 무장을 용인하는 걸로 비쳐지는 순간, 한국과 일본 내 핵무장 논의는 촉발을 넘어 폭발할 수 있습니다.

북한 핵실험장
  

핵 군축 하면 최고 수혜는?

이런 반응은 핵 군축으로 누가 수혜를 보게 되는지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예측이 가능합니다. 물론 핵 군축은 한반도와 일본 등 주변 지역의 안정에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비핵화가 아닌 군축 정도로는 일본은 물론 한국도 결코 안심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암묵적인 북한의 핵 보유국 지위 인정을 강요당할 위험까지 있습니다.

북한에서 핵 군축이 이뤄지면 가장 이득을 보는 건 미국입니다. 현재 북한이 박차를 가하고 있는 핵 전력 개발은 대부분 미국을 겨냥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를 제한할 경우, 미국이 받는 위협이나 압박이 가장 크게 줄어들게 됩니다. 반면, 한국과 일본은 실질적으로 크게 달라질 게 없습니다. 155mm포만 있어도 쏠 수 있는 게 핵입니다. 한국을 향한 압박에 굳이 파괴력 크고 멀리 날아가는 핵무기가 필요할 리 없습니다.

지금까지 북핵 해결을 위한 시도가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니 뭔가 다른 돌파구를 찾을 필요는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에 제재 완화를 대가로 핵 군축에 나서는 방식은 적어도 한국 내에서 큰 호응을 얻긴 어려워 보입니다. 궁금한 건 이런 제안이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 회장의 개인 생각인지 여부입니다.

미국 정부는 북핵 문제에 대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핵과 재래식 무기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한 확장억제 공약'을 재확인하는 걸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면에서 미국 주요 정책 결정자들의 생각이 미국의 국익만을 고려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건 아닌지 우리 정부의 대비가 필요해 보입니다. 경제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는 '미국 우선주의'가 안보 분야에서는 예외라고 단정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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