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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故 신영복…다시 불붙은 '지성인 vs 종북'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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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문수/경사노위 위원장(지난 14일)
문재인 대통령이 신영복 선생을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라고 한다면 확실하게 김일성주의자입니다. ]

 국정감사를 파행으로 몰고 간 김문수 경사노위 위원장의 발언, 2018년에도 있었습니다.

'남북정상회담 진단' 토론회(2018년 5월)
[신영복 씨를 생전에도 많이 만났는데, 그분은 명백하게 북한의 간첩이고,
이런 사람의 사상을 존경한다는 것은 저로서는 도저히…우리 나라 대통령으로서 이런 말을 전 세계를 향해서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야당은 고발을 의결했지만, 여당은 감싸안았습니다.

 [주호영/국민의힘 원내대표(어제)
저는 문재인 대통령이 김여정 앞에서 신영복 씨를 가장 존경한다고 할 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

 고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손글씨체로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소주병의 처음처럼, 조정래의 한강, 세월호 당시 "아이들을 구하라"는 문구, 모두 그의 글씨입니다.

 그런 신 교수에 대한 논란의 시작은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거슬러 갑니다.

 [대한뉴스690호(1968년)
지식층 학생 청년들을 꾀어 베트콩식 침투 공작을 준비하다 일망타진된 것입니다. ]
 
 당시 28살 육사 교관이던 신 교수는 북한과 내통하던, 이른바 통일혁명당의 핵심 인물로 지목됐습니다.

 [김형욱/중앙정보부장
대한민국 군·경이 철통같은 방위태세에 있다는 것을 김일성이가 알게 했다는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조직도에는 3명의 지휘부 아래 민족해방전선이라는 조직의 주요 인물로 신 교수의 이름이 적시돼 있습니다. 지휘부 3명은 사형됐고, 신 교수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가 20년 뒤 출소했습니다. 사형된 김질락은 옥중 자서전에서 '신 교수를 만나 사회주의를 가르쳤다'고 썼지만, 신 교수는 후에 이를 부인했습니다.

 생전 신 교수를 만나 인터뷰했던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의 이야기입니다.

 [한홍구/성공회대 교수(출처:한홍구TV)
통일혁명당이라는 이름은 중앙정보부 조사실에서 처음 들었다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북쪽에서는 자신을 통일혁명당의 지도 간부로 알고 있을 것이다' 하시기에 무슨 얘깁니까 했더니, '김종태나 김질락(당시 지휘부)이 그렇게 보고했을 거야.' 김정태나 김질락이 좀 부풀려서 통일혁명당 조직을 얘기할 때 신영복 선생님을 지도 간부라고 북쪽에다가 얘기했을 것이고. 전기고문도 당하고 물고문도 당하고…물고문은 아니고 전기고문하고 구타를 많이 당하셨다고 ]

 출소 후 신 교수는 수형 생활을 토대로 펴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비롯해 각종 저술과 강연 활동을 펼쳤습니다.

 [신영복/2006년 6월 ]
물질적인 성과라든가 효율성, 이런 것들에 매달리다 보니까 가장 중요한 인간적인 신뢰라든가 애정, 이런 것들이 부차적인 것으로 이렇게 밀려나는 그 아쉬움이 없잖아 있습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또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 결국 우리에게 남는 건 뭔가, 이런 근본적인 반성을 해보면 결국 남는 건 서로가 서로에게 쏟는 신뢰와 애정이 아닐까. ]

 그리고 신 교수는 6년 전, 암 투병 끝에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시대의 지성인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재심 없이 그대로 남은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 때문에 여전히 날카로운 시선도 존재합니다. 
올 들어 국가정보원과 경기도교육청은 신 교수의 서체가 쓰인 원훈석과 직인을 교체하기도 했습니다.
(취재 : 한승구, 영상취재: 서진호, 편집 : 김초아, 작가 : 서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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