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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스레터 이브닝(10/14) : 또 바이든 뒤통수 친 빈 살만…석유 질서가 변했다

스브스레터 이브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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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에 보는 뉴스 요약, 스브스레터 이브닝입니다.

석유를 중심으로 한 국제 질서가 크게 흔들리고 있네요. 에너지 질서의 중심 축이었던 미국과 사우디의 70년 밀월이 깨지고 있기 때문이죠. 사우디는 미국 정부가 은밀히 부탁한 내용까지 폭로하면서 한 방 먹이기도 했죠. 중간선거 전략 하나가 들통나면서 체면 구긴 바이든 행정부가 발끈할 수밖에 없죠.  
 

"미국이 감산 미뤄달라 했다" 이례적 폭로


미국과 사우디의 신경전이 표면화된 계기부터 살펴보죠. 지난 5일 'OPEC 플러스'(OPEC+/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기타 주요 산유국들로 구성된 기구)가 대규모 감산 결정을 했는데요, 이게 미국으로서는 모욕적인 일이었죠. 미국으로서는 대러 제재와 물가안정을 위해서는 석유 증산을 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게 어려우니 감산만은 막아보려 외교력을 동원했죠. 근데 막상 'OPEC 플러스'는 코로나 유행 이후 최대 감산 폭인 하루 200만 배럴 감산을 결정했는데요, 당초 예상을 훌쩍 뛰어넘은 큰 규모였습니다.

OPEC+

대규모 감산 결정으로 한 방 얻어맞은 미국은 사우디 때리기에 나섰죠. '사우디가 감산을 주도해 러시아의 전쟁을 도왔다' '사우디는 대가를 치를 것이다'면서 공격한 거죠.

근데 사우디가 의외의 반격에 나섭니다. 사우디 외무부가 최근에 성명을 발표했는데요, "미국 정부의 제안대로 OPEC+의 감산 결정을 한 달 미루면 경제적으로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난다"면서 감산이 오로지 경제적 결정이었다고 주장한 거죠. 미국의 주장을 전면 반박하는 내용인데요, 사우디가 미국에 맞서 공개적인 성명을 발표한 것 자체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죠.

사우디 외무부의 성명에는 중요한 폭로가 들어있는데요, 미국이 감산 결정을 한 달 연기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점을 콕 집어 공개한 거죠. 
 

들통난 바이든 행정부 선거전략


"미국이 감산 결정을 한 달 미뤄달라고 했다" 사우디의 이 폭로는 바이든 행정부가 다음 달 중간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고려 때문에 감산을 요청했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죠. 

조 바이든-무함마드 빈 살만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바이든 행정부로선 감산 결정을 한 달이라도 미루는 것이 중간선거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죠. 시장에 원유가 꾸준히 공급되면 미국 내 휘발유값 인상 요인도 억제할 수 있고 인플레 잡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죠. 중간 선거에서도 민주당이 다수당 지위를 사수하는 데 유리하고요.

백악관의 기대와 다른 결정이 나왔으니까, 바이든 정권은 중간 선거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죠. 특히 중간선거를 의식해 감산 연기를 요청했다는 사실까지 사우디가 공개하자 백악관은 더 화가 났죠.  

그래서 미국은 사우디 때리기 수위를 더 끌어올리고 있죠. 사우디 성명에 대해 존 커비 백악관 대변인이 반박 성명을 냈는데요, 시장 상황에 비춰볼 때 감산 결정을 내릴 이유가 없었고 사우디가 러시아와 함께 감산을 주도한 건 도의적, 군사적으로 러시아를 도운 것이라고 사우디 주장을 일축했습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분명히 밝혔듯이, (사우디의) 그런 결정은 후과가 뒤따를 것이다. 이런 말을 하는 중에도 그런 것이 검토되고 있다"고 했는데요, 바이든 대통령이 말한 '후과'를 다시 언급했네요.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1일 CNN 인터뷰에서 "상·하원이 (중간선거 이후) 의회로 돌아오면 사우디가 러시아와 한 짓에 대해 후과가 뒤따를 것"이라고 경고한 적이 있죠. 사우디에 대한 무기 판매 중단을 고려하느냐는 질문에는 "내가 무엇을 고려하고 생각하는지 밝히지 않겠지만 후과가 있을 것"이라고 답했는데요, 이와 관련해서 미국 의회가 사우디에 무기 판매를 1년 간 동결할 수 있다는 최후통첩을 보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죠.

민주당 의원들도 사우디를 성토하고 있는데요, 로 칸나 민주당 하원의원은 "의회에 있는 다수가 사우디의 이런 배은망덕함(ingratitude)에 화가 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해요.
 

바이든, 7월에도 '망신'…미국 힘 빠졌나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7월에도 퇴짜를 맞은 적이 있는데요, 사우디를 찾아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나 증산을 촉구했으나 뚜렷한 성과 없이 빈손으로 귀국한 거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주먹 인사를 하는 모습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빈 살만 왕세자는 2018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였던 자말 카슈끄지 피살 사건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바이든 대통령 스스로가 비판했던 인물입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냉랭했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인플레 잡기 위해 먼저 찾아가는 굴욕을 감수했지만 아무것도 챙기지 못한 거죠. 오히려 인권 문제를 외면한 사우디 방문이었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빈 살만 왕세자를 비판하던 바이든 대통령이 사우디 방문까지 하고도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으니까, 국제 에너지 질서의 주축인 미국-사우디의 '석유동맹'에 균열이 일고 있다는 걸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죠.
 

석유로 맺은 밀월, 석유로 균열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는 194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이 '얄타 회담'을 마치고 귀국하다가 군함 퀸시호에서 사우디 국왕을 만나면서 두 나라 '석유동맹'의 시작으로 여겨지고 있죠. 이후 미국은 사우디에 안보를 제공하고, 사우디는 미국에 석유를 공급하는 밀월관계가 오래 유지됐죠. 

특히 사우디는 석유 거래를 달러로만 받아주는 ‘페트로(petro) 달러’ 시스템을 정착시키면서 미국의 달러 패권 형성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기도 했죠.

하지만 셰일가스가 개발된 이후 미국에게 사우디의 전략적 중요성이 떨어지게 되면서 상황은 많이 바뀌게 됩니다. 미국과 사우디가 '동맹'에서 석유패권을 놓고 '경쟁'하게 된 거죠. 그러자 미국은 카슈끄지 피살 사건의 배후자로 빈 살만을 공개적으로 지목하는 등 그 전에는 눈 감았던 사우디의 인권 문제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죠. 빈 살만은 그런 미국 민주당 정권에 대립각을 세우며 바이든 대통령 뒤통수까지 치고 있죠.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빈 살만은 미국과 사이가 벌어지자 러시아와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러시아는 전쟁을 위해 돈이 필요하고 유가가 올라야 돈을 많이 벌죠. 그러려면 석유를 감산해야 하고요. 사우디와 러시아가 주도하는 OPEC+의 이번 결정은 살만과 푸틴의 이해가 일치한 결과라는 게 미국의 생각이죠.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그리고 중간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유가 하락을 원하는 미국과는 입장이 정반대네요. 

뉴욕타임스가 "바이든 대통령이 쓰라린 경험에서 얻는 교훈이 있다면 미국 대통령이 우호관계나 외국의 공격을 막아주겠다는 약속을 내세워 사우디에 호의를 요구하는 시대는 지나갔다는 점"이라고 진단했다고 하는데요, 미국과 사우디의 밀월은 70여 년 만에 깨지고 있다고 봐야죠. 국제관계에서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걸 새삼 실감하게 되네요.  

레터용 한컷 1014

신병 훈련에 참가한 우크라이나 신병 철모 사진이에요. '후회도, 자비도 없다'(NO REGRET, NO MERCY)라는 문구가 적혀 있네요.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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