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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사람] '고민정' 이 사람을 키운 건 8할이 악플

정치인 고민정

[그사람] '고민정' 이 사람을 키운 건 8할이 악플

1. ’정치인 고민정’의 탄생


전당대회장 분위기만 보면 당선권에 들기 어려웠다. 안정감 있고 호소력 있는 연설이었지만 현장 반응은 차갑다 못해 싸늘했다. 환호와 박수보다 야유와 조롱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이 사람 연설이 끝나고 사회를 보는 사람이 후보자에 대한 비방은 삼가 달라고 부탁하는 일까지 있었다. 전당대회를 생중계한 유튜브 반응은 더욱 냉랭했다. 댓글은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과 조롱이 태반이었다. 적이 아니라 동지들의 비난이라 더욱 뼈 아프고 당혹스러웠다. 그래도 기 죽지 않고 다양한 목소리가 사라진 정당은 죽은 정당이라고 했고, 대세에 영합하지 않겠다고 했고, 줄 서지 않겠다고 했다.
   
“지금 제 SNS엔 우리 진영의 악플들로 뒤덮여 있습니다…제가 싸워야 할 곳은 도대체 어디입니까. 제가 싸워야 할 대상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저는 누구를 위해 이토록 모든 것을 맞아가면서 싸워야 하는 것입니까”<8월 14일 충남 합동 연설>

“외로워지는 순간이 참 많았습니다. 앞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막는 것도 쉽지 않은데 뒤에서 날아오는 공격까지도 방어해야 했습니다…‘당신은 누구의 사람이냐’ ‘누구의 줄에 서 있느냐’ 라고 수없이 강요당하는 이 현실이 저는 무척이나 답답합니다”<8월 21일 전남 합동 연설>

눈물이 인색한 사람이 아닌데 전당대회를 치르면서는 한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감정이 격해져서 목이 메일 법한 순간에도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경쟁자인 정청래가 “나는 고민정을 응원합니다”라고 위로했을 때도, 최고위원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에도 눈물 같은 것은 볼 수 없었다. 울보인 줄 알았는데 독한 사람이다.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는 이재명을 위한 잔치였지만 ‘정치인 고민정’이 탄생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2020년 총선 승리가 당의 총력 지원에 힘입은 승리였다면 이번 승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한, 고민정에 의한 고민정의 승리였고 ‘정치인 고민정’의 탄생을 알리는 승리였다. 정치적 체급이 올라간 것도 소득이지만 자신의 소신과 철학을 지키면서 얻은 승리라는 점이 더 기뻤을 것이다.
'그사람' 인터뷰하는 고민정 의원(오른쪽)

-어떤 점 때문에 고민정에게 유권자들이 표를 주셨을까요.
“미래에 대한 기대감 아니었을까요? 민주당의 미래가 무엇인지 아직은 안개 속이고 어렴풋하지만 느낌상 그래 저런 정치인이 민주당의 미래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당돌하게 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막 울기도 하고 아이 엄마이면서도 경제생활은 본인이 혼자 다 하고. 제가 갖추고 있는 이런 요소들을 당원들께서도 보시고 그래 한번 선택해보자 하신 게 아닐까 싶네요”

전당대회 기간 중 집중포화를 맞은 것은 이재명 뒤에 줄 서지 않고 이재명 대세론에 순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팬덤 정치의 폐해로 민주당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사라졌다는 말은 이번에 처음 나온 말이 아니다. 금태섭이 공천에서 탈락하고 사실상 당에서 쫓겨난 이후 당원들의 돌멩이를 맞고 당을 떠나거나 등을 돌린 사람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당원들의 문자 폭탄을 양념이라고 말한 문재인의 경우를 이야기하며 당신이 이제 소수자 입장에 서 보니 심정이 어떠냐고 물었다.

“제가 할 수만 있다면 책임지고 싶습니다. 이번 전대 과정을 겪으면서 2017년에 나처럼 공격받았던 사람들 입장이 어떠했는지를 그 당시에는 알지 못하고 이제 와서 알아가고 있는 제 모습에 참 죄송하더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더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물론 문재인 대통령께 여쭤보진 않았으니까 그분을 대변한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다만 제 개인 생각으로는 그때 상처받고 과도한 공격으로 인해서 당내 다양한 목소리가 사라졌다면 분명 잘못된 일이고 고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 문재인이 발탁하고 문재인이 인정한 사람


최고위원에 당선된 이후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만큼 바쁘게 보낸다. 인터뷰를 하던 날도 아침 6시반부터 하루 일정을 시작했다. 당초 오후 2시 약속이 3시 반으로, 3시 반 약속이 4시 반으로 미뤄졌고 거의 5시가 다 돼서야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편한 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기는 처음인데 낯설지 않았다. 화면보다 야위어 보였지만 피곤한 기색은 전혀 없었다. 자랑할 만한 성취를 이룬 사람의 표정이었다.  
'그사람' 인터뷰하는 고민정 의원

-큰 선거에서 이기면 어깨에 힘 들어가잖아요. 어깨 힘 들어간 거 스스로 느끼세요?
“좀 들어가야 합니다 (웃음) 이제 초선이 아니라, 그냥 고민정이 아니라 최고위원이라는 위치를 갖고 있는 사람이잖아요. 그만큼의 힘을 때로는 쓸 줄 알아야 하는데 그거를 잘 못합니다. 늘 스스로가 막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죠.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 그게 맨날 고민입니다. 근데 보시기에 당돌하다면 성공한 거고요.”

막내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했다.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뻔뻔해지고 당돌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걸 잘못한다고 자책한다. 위로 오빠가 둘인데 8살, 5살 많으니 막내 여동생이 만만했을 것이다. 청와대에서 인연을 맺은 임종석, 윤영찬, 김의겸, 박수현 등이 정치적으로 오빠 같은 사람들이다. 그 ‘오빠들’이 막내 여동생을 늘 살뜰하게 챙겼던 것 같지는 않다.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오빠들’을 드디어 앞질렀고 그들의 그늘에서 온전히 벗어났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양정철이 문재인 캠프에서 같이 일해보자고 제안했다 그 제안을 받고 한 달을 고민했다. 세 끼를 다 먹어도 살이 쭉쭉 빠졌다. 방송사를 그만 두고 정치권으로 간다는 것은 가족들의 생계가 달린 문제였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일이었다. 남편과 함께 문재인을 만난 뒤 마음을 굳혔다. 설사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지 못한다고 해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 문재인을 돕는 결정이었지만 자신을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남편은 처음에 반대를 했는데 어느 날 ‘당신의 눈빛이 흔들린다. 당신이 정치인으로서 사는 것을 원하지 않지만 정치를 하면 잘할 것 같다’ 그 얘기를 하더라구요. 남편은 정치는 사람에 대한 따뜻함과 공감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인데 ‘당신이 들어가면 정치가 참 좋아질 것 같다’ 뭐 이런 이야기들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2급 선임 행정관으로 청와대 부대변인으로 임명됐다. 타이틀은 그럴 듯했지만 존재감은 별로 없는 자리였다. 아나운서 자리를 박차고 나와 활동비 한 푼 받지 않으면서 선거 운동을 한 것이 높은 자리를 탐해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스스로 의미를 찾기 어려운 일을 하기 위해서 온 것도 아니었다. 청와대에 온 지 석 달 만에 비서실장 임종석에게 사표를 냈다. 그 이후에도 몇 번 사의를 표시했다. 그럴 때마다 문재인이 보이지 않게 때로는 눈에 보이게 감싸고 격려하고 위로했다. 문재인이 김의겸 후임으로 이 사람을 대변인으로 발탁하겠다고 했을 때 찬성한 청와대 참모는 한 사람도 없었다. 문재인은 “그럼 고민정보다 나은 사람을 데려와 보라”고 했다. 2020년 총선 출마가 거론될 때 문재인은 “당신이 하고 싶으면 선거에 나가도 좋고 대변인으로 남아도 좋다”고 했다. 그 말이 그렇게 고마웠다.
 

3. 이 사람의 승부사 기질


고비마다 승부를 걸면서 살아왔다. 총선에서 한 번, 당내 경선에서 한 번 모두 두 번의 선거에서 이겼다. 그 두 번의 승리가 정치적 성장의 발판이 되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청와대 근무 시절 몇 번 사표를 던졌고 출근을 하지 않은 적도 있다.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기 어려운 일을 하는 것에 대한 항의였다. 감이 스스로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다. 이례적인 1급 승진과 부대변인에서 대변인으로 수직 상승은 스스로 돌파하고 만들어가고 싸워 나가는 과정에서 얻어낸 것들이다. 방송사 입사 6년도 안 돼 휴직을 하고 중국으로 1년 유학을 떠났다. 충전을 위한 시간이기도 했지만 조직 안에서 자신의 입지를 찾으려는 노력과 무관치 않다. 길이 막혔다고 생각하면 과감하게 다른 길을 선택했다. KBS라는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정치권으로 간 것도 인생을 거는 결단이었다. 21대 총선에 출마했을 때 쉬운 지역구를 고를 수도 있었지만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 어차피 붙을 거면 센 사람과 붙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간 곳이 서울 광진 을이었고 만난 사람이 오세훈이었다. 가장 크게 승부를 건 것은 가난한 시인과 결혼한 일이었다. 유명 방송사 아나운서면 어떤 사람과 결혼할 것이라는 세상의 편견을 깨고 싶었다. 선택되기보다 선택하는 삶을 살고 싶기도 했다. 실리보다 명분, 명분보다 자기 마음이 우선인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낭만주의자다.
'그사람' 인터뷰한 고민정 의원

“저는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게 살고 싶거든요. 그리고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늘 갖고 살아요. 그래서 막 아끼고 모으고 아등바등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내가 내일 당장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그래서 사랑을 하더라도 죽을 만큼 사랑하는 걸 꼭 해봐야 되겠고 이 정치라는 것도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한번 해봐야 되겠고 막 이게 생기는 것 같아요.”

몇 백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KBS 아나운서가 되었고 만 40살에 청와대 대변인으로 발탁됐고 총선에서 대선후보급 경쟁자를 꺾었고 이번에는 원내 1당의 최고위원으로 당선됐다. 약간 버거워 보이는 목표에 도전하고 그 과정을 통해 성장해왔다. 몸을 만든 다음에 도전하기보다 도전하는 과정에서 몸을 만드는 스타일이다. 이제 갓 마흔 된 아나운서 출신이 대통령 대변인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고민정으로 오세훈을 이길 수 있을까, 친명 대세론 속에서 문재인 아바타 이미지로 당선될 수 있을까 싶은 우려와 회의론을 여봐란듯이 극복해왔다.  
대학 2학년 때 모습, 캠퍼스에서 눈에 띄는 인물이었다.

40대 초반인데 586정서를 가지고 있다. 열 한 살 많은 운동권 출신 남자랑 살다 보니 그렇게 된 거라고 했다. 대학교 때 별명이 ‘만 대 일’이었다. 대학 캠퍼스 학생 숫자가 1만 명쯤 됐는데 그 중에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별명이다. 대학에 입학하던 1998년은 학생운동이 이미 저물었던 때였는데 자기 발로 민중가요 노래패 동아리를 찾아갔다. 다른 동아리들과는 달리 그 동아리는 고민할 거리를 주었기 때문이었다. 시위를 나갔다가 경찰에 붙잡혀 하룻밤 경찰서 유치장 신세를 진 적도 있다. 문재인이 이 사람 부부와 만난 뒤 ‘우리랑 같은 과(科)시구만’이라고 했다는데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만한 이야기다.
 

4. 이 사람을 키운 건 8할이 악플


법무장관 한동훈과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공방을 벌인 동영상은 조횟수가 7백 만이 넘었다. 이 사람의 완승은 아니었지만 민주당 의원들이 한동훈과 대결에서 큰 펀치 한 방을 노리고 달려들다가 어이없이 카운터 펀치를 얻어맞거나 제풀에 나가 떨어진 것에 비하면 선전이었다. 각이 살아있는 주먹을 휘둘렀고 상대방 위세에 주눅들지도 않았다. 이 사람이 이제는 싸울 줄 아는구나 싶은 인상을 심어줬다. 자충수 연발이던 때와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2020년 화려하게 국회에 들어왔지만 그 이후 모습은 의욕이 앞서는 초선의원 모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당시 야당은 ‘문재인의 입’이었던 이 사람을 좋은 표적이자 먹잇감으로 삼았다. 대야 공격수를 자처했는데 공격은 어설펐고 방어는 허술했다. 공감 능력을 자신의 장점으로 내세웠지만 값싼 감성 팔이라고 조롱 당하기 일쑤였고 과도한 비장감은 어딘가 어색했다. SNS에 ‘일사불란’을 ‘일사분란’으로 쓰거나 호가호위라는 사자성어를 맥락에 맞지 않게 사용해서 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다. 이 사람을 적극적으로 나서 옹호해주고 막아주는 동료들도 잘 보이지 않았다.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 대변인으로 뛰다가 ‘피해 호소인’ 발언 파문으로 대변인직을 사퇴했다. 야당 승리의 숨은 공신이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그 때 일을 상기시켰더니 잊고 있었다고 했다. 잊고 싶을 만큼 아픈 경험이었다는 말로 들렸다.  

-이 질문 안 드릴 수가 없는데 가끔 사자성어 실수하시거나 맞춤법 틀렸는데요.
“네 있죠. 호가호위 호의호식. 그건 제 잘못이죠. 제가 착각을 했는데 어쩔 수 없죠. 잘못 했을 땐 깔끔하게 죄송하다고 얘기하는 게 가장 현명합니다. 오래 가면 갈수록 더 궁색해지더라고요”

-혹시 자신에 대한 비판에서 악의적인 프레임이 작동한다는 생각을 합니까.
“뭐 제가 좋은가 보죠. (웃음) 왜냐하면 국회 상임위 하다 보면 말 실수하는 분들 많거든요. 근데 아무도 기사로 공격 안 하거든요. 그래서 억울하지만 ‘그래 좋게 생각하자, 나한테 관심이 많은 거니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사람' 인터뷰한 고민정 의원

-‘사람들이 나를 만만하게 봐’ 이런 생각하십니까.
“합니다”

-어떤 점에서 사람들이 그렇게 본다고 생각하세요.
“조롱과 비아냥을 자꾸 할 때요. 제가 말을 가볍게 하거나 그러지는 않는 편이거든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특히 국민의힘 쪽 젊은 남성들이 많이 그럽니다. 차라리 비판을 하는 건 달게 받겠는데 조롱과 비아냥을 할 때는 더 화가 나고 내가 만만한가 생각이 들고 그래서 내가 더 독해져야 하는가, 이래서 센 언니들이 나타나는 건가 이런 생각도 들고 그렇습니다”

정치권에서 젊다는 것과 여성이라는 것은 여전히 약점이다. 자신이 너무 무르게 대해서 그런 것 같다며 이제는 한 대 맞으면 한 대는 돌려주려고 한다고 했다. 언젠가부터 싸움닭 이미지가 생겼다.

“저를 비아냥대고 조롱하고 이런 정치인들이 많았습니다. 막말을 해도 제가 거기에 막말로 대응하지 않으니까 계속 쉽게 보는 거죠. 만만하게 보고. 그 시간들을 1년, 2년을 겪어 왔는데 과연 이것이 맞는가…저도 계속 변화하는 생물체인 겁니다. 그러면 나도 그들처럼 막말을 하지는 않지만 ‘한 대 맞으면 나도 한 대 치는 정도까지는 하겠어’라고 생각하다 보니 그렇게 느끼시는 거 같고요.” 

이 사람에 대한 공격에는 젊은 여성을 공격하는 전형적인 언사들이 종종 동원된다. 나이가 어떻고 외모가 어떻고 머리가 어떻고 학교가 어떻고 등등.  

“억울할 때도 많았습니다 특히 초기에는. 왜 나만 갖고 이러나… 내가 뭘 특출 나게 잘못한 것도 아닌데. 심지어는 다른 의원님이 쓴 기자회견문인 거예요. 근데 한 30-40명 정도 연명해서 공동으로 올리잖아요. 저도 이름을 올립니다. 그럼 기사 제목은 고민정 뭐…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내가 쓰지도 않았는데 억울한 거죠. 그런 과정을 거치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냐면 나는 행복한 고민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걸 힘들다고 하면 안 되지… 남들은 노이즈 마케팅이라도 해야 한다고 하는 판인데 내 복이 뭔지도 모르고 어리석게 스트레스 받는지도 모르겠다”

-나 미운 털이 박혔나 봐 이런 생각은 안 하세요.
“만약에 미운 털이 너무 심하게 콕 박혀 있으면 심판 받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인은 4년에 한 번씩 심판을 받으니까요”
이 사람을 키운 것은 팔 할이 악플이다. 외부는 말할 것도 없고 내부로부터도 악플 세례를 받았다. 조롱과 멸시 야유를 통해서 오히려 더 성장했고 강해졌다. 이 사람 표현을 빌리자면 큰 산을 하나씩 넘어갈 때마다 더 커지고 더 단단해지고 있다. 무수히 많은 주먹을 맞으면서 어떤 부분이 내 약점인지, 그 약점을 어떻게 방어할지 배운 모양이다. 선의만으로 정의를 이룰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됐다. 정치권의 말이 너무 거칠지 않느냐고 했더니 자신도 그리 생각한다고 했다. 이 부분을 남편과 아내 이야기를 비교해서 들어보면 ‘정치인 고민정’이 새삼 보인다.

-가끔 말 실수해서 구설수에 오르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건 제가 봤을 때는 (언론의) 제목 장사가 좀 많고요…고민정씨가 절제해서 말을 해도 자극적으로 제목이 달려요. 사람들이 이상하게 상상을 하게, 이상한 사람 느낌이 들게 그렇게 제목을 잡더라구요. 근데 들리는 말로는 고민정 씨 이름이 들어가면 조회수가 많다고 하더라구요. 민정씨가 그런 사람이 아닌데 기자들이 그런 사람을 만들어버리는 거 같아서 옆에 있는 사람으로 굉장히 안타깝고 속이 쓰립니다.”/조기영-고민정 의원 남편

“말의 표현 수위에 대해 고민이 늘 많습니다. 말로 이야기를 할 때와 그 단어만 떼내서 글로 봤을 때 그 효과가 상당히 다르거든요. 제가 방송을 오래 해서 말과 글의 차이점도 알고 그 중요성도 아는데 말은 제가 조절해서 하지만 글은 기자들이 뽑아서 쓰시는 것이기 때문에 제가 어떻게 관여할 수 없는 거라서 답답함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왜 이렇게 원색적인 단어를 뽑아서 쓸까 불만이 있었는데 제가 불만을 갖는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닌 거 같더라구요. 그래서 나를 비판하는 건 받아들이자 다만 나로 인해서 말의 수위가 과도하게 높아지는 건 최대한 막자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빠른 속도로 많은 것을 이루어 냈고 걸어온 과정이 화려한데 비주류, 주변인의 감성을 이야기한다. 지상파 아나운서, 대통령 대변인, 40대 초반에 원내 1당 최고위원이면 주류라고 자처할 수 있을 텐데 비주류의 감성을 말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정치인 고민정’의 에너지를 여기에서 찾으려는 것이다.

“여성이라는 거, 학벌 이런 것들이 저에게는 콤플렉스라고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그 콤플렉스라고 사람들이 부르는 것들이 저한테 굉장한 에너지로 작동합니다. 그리고 하나만 더 말씀드리면 모든 변화는 변방으로부터 이뤄진다고 생각하거든요. 늘 중심에 있으면 변화하려는 힘이 작동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변방에 있는 사람들은 늘 중심에 가고자 하는 힘 때문에 변화하려는 에너지가 생기는 거거든요. 어쩌면 고민정이라는 사람은 변방의 요소들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많은 에너지를 갖고 있는 사람일 수 있겠다 생각합니다.
 

5. 시인의 아내, 정치인의 남편

남편 조기영 시인과 함께

이 사람을 ‘내가 세상에서 훔친 유일한 시’라고 말하는 시인과 산다. 남편은 한 번도 직장을 가져본 적이 없다. 제대로 된 시를 쓰는 것, 목숨을 걸어도 좋을 사랑을 하는 것이 인생 목표인 사람이다. 결혼 이후 남편이 가사와 육아를 맡고 아내는 직장을 다니며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육아와 집안 살림은 기영씨가 도맡아서 하시는 거죠?
“네. 제가 합니다. 제가 주부입니다. 이래봬도 제가 주부로서 자부심을 갖고 살고 있습니다. 민정 씨가 대외적인 일을 하는데 가정일로 신경 쓰지 않게 하려고 많이 노력합니다. 지금 가정의 모든 일을 거의 다 제가 하고요. 제가 자부심을 갖는 게 지금까지 한 번도 파출부를 쓰지 않았습니다.” 조기영/ 고민정의원 남편

-요리도 직접 하세요.
“그렇습니다. 국이나 찌개도 직접 만드는데 요즘에는 반찬가게도 자주 이용합니다. 민정씨는 쉬는 날 아이들에게 특별한 거 해주는 정도구요”

-가정 경제권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저는 경제권을 행사하지 않습니다. 민정씨가 일정 금액 떼어주고 제가 그걸로 생활비 합니다. 나머지는 민정씨가 다 알아서 합니다. 제가 돈 이런 거 귀찮아 합니다.”
'그사람' 인터뷰한 고민정 의원과 자녀들(오른쪽)

초등학교 5학년 아들, 초등학교 2학년 딸을 두고 있다.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는 게 이 부부의 바람이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결핍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아이들에게 쏟는 정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아내는 뭐라도 더 해주고 싶어한다. 그런 점을 두고 부부 사이에 다툼이 있고 가끔 큰소리도 나온다. 엄마가 회사를 그만 두고 청와대에 갔을 때 둘째는 만 세 살, 엄마와 함께 한 기억이 별로 없다. 둘째가 말이 늦고 숫자에 약한 것이 자기 탓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미안함을 갖지 않으려고 한다.

“어떤 책에서 이런 글을 봤습니다. ‘내 인생을 희생하면서까지 널 키웠는데 어떻게 네가 이럴 수 있어’ 그걸 맨날 듣고 자란 딸이 성인이 되어서 어느 날 엄마한테 그럽니다. ‘나는 엄마한테 단 한번도 낳아 달라 한 적 없고 희생해달라 한 적 없는데 엄마는 왜 자꾸 그러느냐. 나는 요구한 적 없다’ 맞죠. 아 그래서 나도 딸에게 희생하지 말아야겠다, 미안해하지 말아야겠다. 너는 그냥 그런 엄마하고 살 운명으로 태어난 것이고 난 이 정도의 사랑만 주는 엄마로 태어난 것이니 그렇게 인정하고 살자”

2남 1녀 집안의 외동딸로 자랐다. 늦게 본 막내딸은 부모님에게 말 그대로 금지옥엽이었는데 남들이 부러워하는 아나운서가 되었다. 그 딸이 데려온 사윗감이 11살 많은 시인, 사실상 백수였다. 그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1년만 더 생각해보라고 했다. 1년 후에도 딸은 생각에 변함이 없었고 아버지는 두말하지 않고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했다. 방송사에 다닐 때는 얼마라도 적금을 들었고 재산이 조금씩 늘었는데 정치를 시작한 이후에는 돈을 모으는 것은 포기했다. 무주택자로 산다. 청와대에 근무하는 동안 부동산과는 거리를 두고 살다 보니 집을 살 기회를 놓쳤다.   
 

6. 조국은 여전히 나의 동지


이 사람 속이 꽉 차 있을 거라고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외양에 걸맞은 내면을 갖추기에는 너무나 빨리 달려왔고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이 부족한 곳이 무엇인지 헤아려 볼 기회를 가진 적도 거의 없다. 스스로 부족한 게 많다고 했는데 하고 싶은 것, 알고 싶은 것이 많기 때문이다. 달라진 정치적 체급에 걸맞은 실력을 갖추려고 애쓰는데 그게 쉽지가 않은 모양이다.

-계속 현안들이 있잖아요. 일정도 계속 잡혀 있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찾아오고 핸드폰은 수없이 울려 댈 거고요. 그런 상황에서 공부를 한다고 하는 게 가능할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만.
“말씀 잘하셨습니다. 정말로 공부에 집중할 시간이 없습니다. 의원들끼리 한 달에 한 권씩 책 읽는 모임이 있는데 한 번도 책을 다 읽고 간 적이 없거든요. 근데 오늘 이 말이 나온 참에 제가 스스로에게 약속을 해야겠습니다. 하루에 한 시간은 무조건 책만 보기. 책을 읽지 않고 그냥 현안에 휩쓸려 가면 그냥 막 떠내려가는 것 같더라고요… 사실 핸드폰 자꾸 보게 돼요. 뉴스가 시시각각 올라오고 또 무슨 위원회는 많아 가지고 거기서 또 막 뭐가 올라와요. 그러면 핸드폰을 놓을 수가 없거든요”

조국과 김경수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면 돌멩이가 날아오는 것을 잘 알지만 그 생각을 바꿀 마음은 없다. 많은 사람들이 돌 던지더라도 나는 마지막까지 그들과 함께 하겠다는 자세다. 내 편이라도 잘못한 것이 있으면 회초리를 쳐야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아무리 허물이 있어도 그걸 덮어주는 게 동지다’라는 표현을 쓰셨잖아요. 조국은 여전히 고민정에게 동지인가요.
“그럼요. 그분이 더 맞아야 될 화살이 있다면 제가 조금이라도 더 나눠 맞고 싶은 마음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래야 사람 사는 맛도 나죠”

-조국 장관 일가의 불법은 법원에서 확인돼 가고 있잖아요. 법원에서 확인된 불법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요.
“그것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거기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계시잖아요. 하지만 그게 적정한 것인지 과도하지 않은지는 따져봐야 된다고 봅니다… 시간이 흘러서 그 흙탕물이 가라앉고 강물이 좀 맑게 보여지는 시기가 다가오면 그렇게 공격받았던 것들이 과도한 것은 아니었던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겁니다”

-남의 허물에 대해서 추상 같던 사람들이 자기편의 허물에 대해서 관대한 거 아니냐, 그래서 내로남불이라고 비판을 많이 받지 않았습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동지의 허물을 덮어주십시오’라고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나는 그 사람의 동지이기 때문에 덮어주겠다는 겁니다. 조금은 다르죠. 내가 덮어준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인정해주지 않을 겁니다. 저한테도 화살이 올 수도 있을 겁니다. 그거는 저희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닌 거 같습니다”
 

7. 제게 권력 의지가 있다면 다행이네요

'그사람' 인터뷰한 고민정 의원

한 시간 반 정도 통화에서 조기영은 아내가 정치를 그만 두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열 번쯤 했다. 유시민이 그런 것처럼 정치 그만 두고 자유롭게 살자는 것이다. 이 부부에게 정치는 2인 3각 경기 같은 것으로 보였기에 처음에는 그 말에 무게를 두지 않았는데 몇 번씩 반복하는 그 말을 듣다 보니 적어도 조기영에겐 진심인 것처럼 보였고 이 사람 역시 머리 한 켠에는 그런 생각이 있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도 이 사람이 정치 아닌 다른 선택을 할 것 같지는 않다. 정치의 맛, 권력의 힘을 알아가는 중이고 세상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선한 영향력을 갖기 위해서 아나운서가 된 것처럼 이제 남을 위해서 더 큰 권력을 갖고 싶기 때문이다. 

-고민정이라고 하는 정치인을 보면서 이 사람의 권력 의지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있다면 다행이네요. 난 내가 그게 너무 없는 건가 싶었는데 말씀을 듣고 보니 또 오늘 한참 인터뷰를 하고 보니 사실은 내가 그게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는 생각이 드네요.”

끼가 넘치는 사람은 아니다. 혼자 있기 좋아하고 내성적이라고 했다. 노래도 못하고 춤도 잘 못 춘다. 방송사 근무할 때 연말이면 아나운서들이 재주를 뽐내는 자리에 나가지 못했다. 아나운서 시절 중국으로 유학을 갔을 때 거기 학생들이 아무도 아는 척하지 않았을 때 서운하고 민망했고 스스로 초라하게 느껴졌다. 정치권에 와서 존재감이 남달라졌다. 그런 점에서 정치가 체질인 사람, 40대가 돼서야 자기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발견한 사람이다.

국회에 들어온 이후 대변인 제안을 여러 차례 받았다. 이재명 캠프에서도 그런 권유가 있었다. 내 정치를 하겠다는 결의를 다지면서 대변인은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남을 대변하는 일은 청와대 대변인으로 충분하고 이제는 무엇이 됐든 내가 힘을 갖고, 권력을 갖고 정치를 해보겠다 생각했고 그 첫번째 도전이 최고위원 경선이었다.

-최고위원 도전 준비할 때 고민정이라는 정치인이 제1야당, 원내 제1당 최고위원 할 정도의 콘텐츠를 갖추고 있나 스스로 질문 안 해보셨습니까.
“했죠. 거기에 대한 판단을 받아보고 싶었던 겁니다. 당원들께서 보시고 그 정도 콘텐츠 가지고는 안돼 하면 떨어뜨리실 것이고 그게 아니고 기대를 해볼게 하면 붙일 것이다 저도 한번 판단 받아보고 싶은 욕심이 컸습니다”

당신이 준비된 사람이냐는 질문은 불쾌하게 들릴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악의적인 의도만 아니라면 어떤 질문을 해도 좋다는 태도였다. 가드를 잔뜩 올리고 말 한마디에도 뾰족하게 대응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것은 필요 없는 걱정이었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돈을 얼마나 썼느냐는 질문 말고는 답변을 미루거나 얼버무린 게 없다. 거짓말이나 적당히 꾸며낸 말로 상황을 호도하거나 넘기는 사람은 아니었다.

지역구 주택가 골목에 있는 2층 주택을 빌려 사무실로 쓰고 있다. 큰길 사거리에 자신의 사진과 이름 크게 걸어 놓는 사람들과는 다른 정치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러난 곳이다. 담장도 없애고 누구나 편하게 찾아와서 이야기도 나누고 쉬어 갈 수 있도록 꾸며 놨다. 정치도 그렇게 하고 싶은 거다. 2층에서 인터뷰를 진행할 때 1층에서는 청년들 모임이 있는지 제법 떠들썩했다.

-스스로 지역구 관리를 난 잘하고 있어라는 쪽인가요 아니면 내가 좀 부족하다 싶어 불안한 쪽인가요?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부족하고요 제가 꿈꾸는 지역 국회의원으로 생각하면 그래 이 정도는 잘하고 있는 거야 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러냐면요, 국회의원은 법을 만드는 사람이거든요. 이 지역 주민들을 위한 법을 만드는 건 구의원님들이 조례를 통해 하시는 거죠. 국회의원은 노동자가 됐든 여성이 됐든 아이가 됐든 전국에 있는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게 책무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광진구에 있는 사람만 만나선 안 되죠. 그런데 선거에서 필요한 것은 이 지역 안에서 성과를 내야 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되잖아요. 그게 사실 불가능하거든요”
'그사람' 인터뷰한 고민정 의원

국회의원 3백명 가운데 지명도로 치면 열 손가락 안에 들 테고 정치인 중에 셀럽으로 꼽힐 사람이지만 많이 알려졌다고 제대로 알려진 것은 아니다. 2시간 4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외양에 가려 이 사람 내면이 잘 보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보다는 삶이 더 탄탄한 사람이다 험한 산을 넘고 깊은 물을 건너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제 출발점에 선 정치인이다. 당장 재선이 숙제일 테고 당내에서 유일한 비명계 최고위원으로 어떤 역할을 할지 주시하는 눈들이 많다. 어려울 때면 노무현과 문재인이 겪은 수모와 시련을 생각한다고 했는데 가끔 비바람을 맞기도 했지만 지금까지는 꽃길이라고 봐야한다. 어떤 정치를 하고 싶은지, 어떤 삶을 꿈꾸는지 더 묻고 싶었는데 아이들과 모처럼 저녁을 먹기로 약속했다는 말을 들으니 더 오래 붙잡고 있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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